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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문자중 어느 쪽이 더 본질적인가?

격암(강국진) 2024. 7. 9. 17:23

언어는 인간의 이성을 말할 때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 다뤄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언어라는 말 속에 너무 많은 것을 포함 시키기 때문에 벌어지는일이다. 말하자면 우주선도 기계이고 빨래집게도 기계라서 두 개를 같은 것으로 다룰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 그것이 무리한 일이 될 수 있듯이 언어에 대해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동물도 언어를 가진다. 분명히 선사시대의 인간들도 언어를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인간의 언어가 그때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면 인간은 침팬지와 그리 다를 것도 없었을 것이다. 선사시대는 자신의 언어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선사시대다. 하지만 지금도 지구 여기저기에 조금 남아있는 구술문화의 수렵채집인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문명이 발달한 이래 인간의 언어는 그때와 비할 수 없이 발달했다.  

 

그리고 핵심적인 것은 그러한 문명적 발달은 절대로 문자없이는 가능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타고난 기억력만으로 현대문명은 만들어 질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정보를 기록하는 매체인 문자가 있었기 때문에 인간은 타고난 한계를 극복했고 가질 수 있는 정보가 많아지자 언어가 더 발달하고 보편된 것이다. 지금도 존재하는 지방사투리를 보면 알듯이 예전에는 지역마다 언어가 달랐을 것이다. 소통할 필요도 없는 유목집단들이 같은 언어를 가질 이유가 없다. 

 

이 점을 기억하면서 언어와 문자를 나란히 놓고서 과연 어느 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데 있어서 더 본질적인 것이냐고 물으면 그 답은 문자여야 한다. 왜냐면 원시적인 언어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문명이 만들어 지지 않기 때문이다. 발달한 문명은 반드시 문자가 필요하다. 인간이 아메바처럼 아무 원시적 언어도 없는 단순한 생명체였다면 문자도 만들어 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남아있는 수렵채집인들이 보여주듯이 원시적 언어의 존재가 반드시 고도의 문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인간답다라고 말할 때 우리가 말하는 것은 이미 문명인이다. 우리는 현대인들에게는 짐승과 별로 차이도 느껴지지 않는 선사시대의 원시인들을 말하면서 그들이 인간답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말하는 인간답다는 지능적이고 문화적인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비록 기술적으로는 상당히 어려운 이야기이겠지만 만약 침팬지나 돌고래에게 기계를 이식해서 그들이 읽고 쓸 수 있게 만들고 급기야는 그들이 인간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지능적이게 행동하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침팬지나 돌고래를 인간답다고 여길 것이다. 중요한 것은 DNA가 아니라 지능과 사회성이다. 그리고 그것을 많은 인간들은 그냥 타고난 거라고 여기지만 사실 그것은 문자라는 기술에 의해서 후천적으로 만들어지고 주입되는 것이다. 교육없이 인간은 한없이 잔혹하고 단순한 짐승이 될 수 있다. 

 

내가 이렇게 문자와 언어를 비교하면서 인간답다를 말하는데 있어서 문자가 더 핵심적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도 현재에도 사람들은 인간은 그냥 본래 인간다움을 타고났다고 생각하거나 인간의 언어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아는 철학자들은 다 그런 것같다. 플라톤이나 칸트가 인간이 이렇다 저렇다라고 말하면서 인간의 언어에 주목하지는 않는다. 문자에도 주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인간이 뭔가를 알려면 문자로 그걸 기록해야 하기 때문에 지식이란 가장 직접적인 의미로는 문자로 기록된 정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냥 인간이 지식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할 뿐이다. 그들의 논의를 읽다보면 인쇄술이 과학혁명을 만들어 내고 세상을 바꿀 이유가 없다. 인간은 3천년전이든 지금이든 그냥 인간이기 때문이다. 

 

20세기에는 분석철학이 언어에 주목하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기이하게도 그들은 문자라던가 언어의 역사성에 대해서는 별로 주목하지 않는 것같다. 그러니까 인간이 3천년전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언어를 썼고 그때 있던 단어들이 지금도 있고 그때 사람들이 어떤 단어를 쓰면서 생각한 의미가 지금도 통하는 것같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어떤 언어이건 그 핵심은 그게 문자로 기록되어져야 한다는 점을 책을 쓰면서도 주목하지 않는다. 즉 문자의 성질이 우리를 지배한다는 사실이 망각된다. 

 

물론 우리는 문자를 쓰지 않고 말을 하고 혼자서 머릿속으로도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문명인의 머리속을 채우고 있는 개념들은 이미 문자의 결과물들이다. 우리가 어떤 말을 하려면 그 문장이 가진 단어들이 뜻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뜻있는 단어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적어도 대부분 문자때문이다. 선사시대사람들이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그들의 단어들이 얼마나 세분화되고 분명한 의미를 가지겠는가? 소설 1984에 나오는 말처럼 자유라는 단어를 모르는데 자유를 어떻게 말하고 생각하겠는가? 문자가 없는데 어떻게 자유라는 단어가 존재할 수 있는가? 

 

새는 날개로 날아다닌다. 그 새가 자신이 날개덕분에 날아다닌다는 것을 모른다면 그것은 기이하고 불행한 일이다. 그런데 인간은 문자때문에 인간다운 존재가 된 것인데도 그 점이 과소평가되고 있다. 인간은 종종 자신이 본래부터 이성적인 존재였다고 생각하거나 기껏해야 언어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기이하고 불행한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