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대박이 한 쪽박을 이길 수 없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그래서 내 아내는 그걸 우리집의 가훈이라고 부른다. 그 말은 바로 열 대박이 한 쪽박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의 삶에는 아주 여러가지 측면들이 있다. 그것들 중에 아주 성공한 경우를 대박이라고 부르고 아주 실패한 경우를 쪽박이라고 부를 때 사람들은 보통 남들보다 뛰어난 한가지에 주목하기 마련이다. 빌딩을 가진 사람이라던가, 너무나 훌룡한 몸매를 가진 사람이라던가, 명성을 가졌다거나 뛰어난 머리를 가졌다거나 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부러워 한다. 나도 때로 남이 부럽다. 부자가 부럽고 잘생긴 사람이 부럽고 유명한 사람이 부럽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 하나에 주목하다보면 우리는 삶의 균형을 망각하게 된다. 즉 돈이 많으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된다고 생각하거나 잘생긴 사람은 세상에 걱정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명문대를 나온 사람은 세상이 너무 쉽기만 할 거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이같은 관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과학과 환원주의가 넘쳐나는 세상이라서 더욱 강화되었다. 요즘 세상에는 모든 것이 그저 평범한 사람은 매력이 없어 보인다. 반면에 뭐하나만 뛰어나면 세상이 알아주고 크게 성공할 수 있다고 여겨지며 그것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도 할 것이다.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기계처럼 조직되고 그 기계안의 특별한 부품으로 작동할 수 있는 사람은 그 특별한 재능 하나로 모든 개인적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일반적으로 옳지 않고 보려고 하면 이런 생각을 부정하는 예를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유명하고 돈 많은 사람들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성공한 연예인이나 기업가들이나 운동선수들인데 그들중에도 계속 행복하게 사는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그 이유도 분명하다. 그들은 행운과 재능과 노력이 합쳐져서 아주 큰 성공을 거뒀지만 대개 자신의 성공을 관리할 재능은 가지지 못했다. 그러니까 노래를 잘하는 가수든 축구를 잘하는 축구선수든 혹은 신생 벤쳐를 세워서 큰 부자가 된 사람이든 그들은 성공한 다음에 문제가 생긴다. 자신의 성공을 관리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게 안되서 무수한 사람들이 배신당하고 사기당하고 투자에 실패하고 건강을 잃고 사람이 변했다는 말을 듣는다. 특정 이름들을 거론하고 싶지는 않지만 부모나 가족이 문제를 일으켜서 누구나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하고 돈을 벌었는데도 빚쟁이가 되었다거나 불쌍하게 살았던 사람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돈을 많이 벌었는데 그 후에 그걸 사기당해서 날렸다라는 식의 이야기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일부일 뿐이다. 우리가 멀쩡하게 살 때는 모르지만 얼굴에 사마귀가 생긴다거나 탈모가 생긴다거나 발가락이 아파서 걷기 힘들어진다거나 하는 하나의 문제만 몸에 생겨도 우리의 신경은 모두 그곳으로 간다. 전국에서 손꼽히는 유명인에 부자라도 자식 문제 하나만 있으면 이 모든 걸 다 줘서라도 조용히 자식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남들이 볼 때는 그 사람이 좋은 옷입고 유명한 것만 보이지 그 사람 발가락이 아픈 건 잘 안보인다. 남이 가진 좋은 걸 부러워하는 마음은 크지만 남이 아픈 건 그렇게 공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 문제에 이르면 그것은 반대가 된다. 즉 내가 가진 좋은 것은 금방 익숙해지고 내가 가진 아픈 손가락은 점점 더 참을 수가 없게 된다. 산해진미만 쌓아 놓고 먹고 사는 사람이 라면이나 먹고 사는 사람보다 꼭 더 행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삶은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달에 천만원 버는 남편도 아내에게 늘상 다른 남편과 비교당하며 거지 취급 당하고 살 수도 있고 백수로 살아도 아내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사는 경우도 있다.
남과의 비교란 무의미하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여러모로 옳은 말이지만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비교해서 남의 인생이 내 인생이 되는 것도 아니고 행복과 성취감이란 주관적인 것이니 남과의 비교란 무의미하지만 우리가 스스로 조절할 수 있고, 보편성을 지닌 측면이 삶에 있다면 우리는 남과 비교하면서 남들의 삶을 참고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중의 하나가 바로 삶의 균형이고 열대박이 한쪽박을 못이긴다는 메세지는 그걸 말하고 있다.
어떻게 해도 살다보면 예상치 못한 일은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가 없다. 내 발 한쪽이 날아갔고 그걸 다시 붙일 수 없다면 삶은 계속 되어야 한다. 하지만 발이 아직 붙어 있다면 우리는 발의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걸 잃는 것은 큰 손실이다. 그런데 삶의 어느 한 쪽면에만 집중하다 보면 특히 대박을 쫒아서 살다보면 우리는 점차로 소중한 것들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건 내 발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요즘에는 워낙 삶이 복잡해 지기 쉽다. 부모를 너무 사랑해도 입시 공부에 바쁜 고등학생은 거기에 집중하다보면 부모란 돈을 주고 음식을 주는 기계처럼 생각하기 쉽고 무엇보다 언제나 변하지 않고 그냥 거기에 있는 자연법칙처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건 당연한 것이고 나는 일단 눈앞의 시험공부에만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부모도 대개 그렇게 하라고 시킨다. 그런데 이런 식의 태도는 사실 위험한 것이다. 친구든 부모든 자식이든 건강이든 외모든 명성이든 청춘이든 기회든 뭔가를 날리고 나면 사람들은 후회한다. 열대박을 쫒아서 미친듯이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면 결과도 없이 뭔가를 망쳤거나 바로 그 대박과 하나의 쪽박을 뒤바꾼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나면 대개 잃어버린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열심히 좋다는 것을 위해 뛰었는데 지난 몇십년간을 뒤돌아보면 뭔가를 더 얻은게 아니라 전체적으로는 뭔가가 자꾸 상실되었다는 생각만 들게 된다.
물론 누구도 미래는 알지 못하고 비극과 실패는 이따금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대박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열대박도 한쪽박은 이기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삶은 알 수 없는 것이니 한 대박에 모든 걸 걸고 성공해서 행복하게 죽을 때까지 산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대박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내 경험에 따르면 대개 시야가 좁다. 그 사람이 모든 걸 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 대박도 실은 좀 뒤로 물러나서 보면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다. 고등학생에게 서울대 합격은 인생을 걸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겠지만 1년 재수한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서울대 졸업장이 만능의 마법도구같은 것도 아니다. 시야가 좁은 사람이 생각하는 대박은 그렇게까지 대단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그걸 위해 인생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면 나중에 손해 본 것같은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요즘 나는 다가올 AI 시대는 모두가 노동자가 아니라 사장처럼 사는 시대라는 말도 많이 한다. 노동자는 남이 시키는 일을 하는 부속품처럼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특정한 기능이 우수하면 훌룡한 노동자가 된다. 그런데 기업을 관리하는 사장은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제품이 좋으면 회사가 꼭 살아남는게 아니다. 회사는 여러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어서 그 중의 하나만 잘못되면 돌아가지 않는다. 그게 사람일 수도 있고, 자본일 수도 있고, 홍보일 수도 있고, 경쟁사로부터의 위협일 수도 있다. 인재를 가진 다른 회사가 부러울 수는 있지만 모든 걸 걸어서 인재 한명만 데려오면 회사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다가올 시대에는 열대박이 한쪽박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을 더욱 기억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