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게시판과 AI
인터넷 게시판이라는 것이 처음 생겨났을 때 많은 한국 사람들은 그것에 열광했다. 인터넷 게시판은 누구나 글을 써서 자신의 생각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해 주었다. 그것은 분명히 어떤 면에서는 기존의 언론보다 더 좋은 것이었다. 물론 단점도 많다. 하지만 인터넷 게시판은 더 빠르게 더 구체적인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장소였다. 언론사가 중간에 서서 정보를 걸러 내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일반론적으로 인터넷 게시판과 언론중 어느 쪽이 더 좋은가 하는는 질문이 아니다. 게시판은 또 하나의 정보채널이다. 정보 채널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 나쁠게 없다. 그리고 인터넷 게시판의 인기는 언론이 얼마나 자기 역할을 효율적으로 하는가에 달려 있다. 즉 언론이 믿을 만하고 그것으로 충분하면 사람들은 인터넷 게시판에 달려 갈 필요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언론이 엉망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람들은 인터넷 게시판이 훨씬 더 믿을 만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국 인터넷게시판의 인기가 세계 어디에서 보다 좋았던 것은 뒤집어 말하면 한국의 언론 수준이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뉴욕타임즈와 조선일보를 나란히 읽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새로운 미디어는 새로운 스타를 부른다. 인터넷 게시판도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좋은 작가인데도 책을 쓰지 못하고, 좋은 평론을 할 수 있는데도 언론에 칼럼을 싣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특히 한국에서 더 그랬던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그들에게 새로운 미디어가 생기자 그들은 새로운 미디어인 게시판에 그들의 작품을 올리고, 칼럼을 올렸다. 당장 그걸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도 다른 사람에게 평가받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퍼뜨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낡은 미디어에 의해서 억압받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방송과 신문을 장악한 사람들이 골라낸 메시지를 퍼뜨리는 유명 작가나 칼럼리스트들을 보면서 그들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생각은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이는 나중에 새로 생긴 SNS나 유튜브 같은 미디어에서도 똑같이 반복된 일이다.
새로운 미디어가 새로운 정보채널이 되고 새로운 스타가 나타나서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컨텐츠를 공짜로 제공하는 일이 생겨나자 인터넷 게시판의 인기는 점점 더 뜨거워졌다. 게시판은 점점 더 좋은 컨텐츠, 더 정성들인 컨텐츠를 제공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때 인터넷에 올라온 소설중에는 나중에 영화화가 된 것들도 있는데 그런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정상적인 경로로는 등단할 수 없었다. 그 당시는 소설가나 시인이 되려면 일단 신춘문예같은 데에서 당선되어어야 하던 시대다. 방송국, 신문사, 출판사를 지배하는 사람들을 통과하지 않고는 누구의 글도 대중을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대중은 낡은 이야기가 지겨웠고 새로운 이야기들이 좋았다. 대중이 원하는 것을 기존의 시스템이 외면하고 있는데 새로운 미디어가 열리자 세상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류열풍은 상당부분 이런 변화에 힘입고 있다.
그러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이 많아지니까 관리의 문제가 나타났고 인기있는 게시판에는 같은 패턴의 일들이 반복되었다. 인기가 있으니까 이제는 그걸 노리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런데 인터넷 게시판을 도배하거나 기존의 사람들과 싸움을 하고, 비방을 하는 일이 많아지니까 어떤 글이 가치가 있는지를 알기가 힘들어 졌다. 즉 인기 상승 이후에는 정보 검색이 필요해 진 것이다. 사이트가 인기를 얻으면 그 사이트를 장악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 싸움이 격렬해 지면 사이트가 망하는 경우가 많이 생겼다.
이때문에 본래는 자유롭게 글을 올리는 것이 전부였던 인터넷 게시판에 여러가지 방법들이 추가되었다. 관리자의 권한이 강해지고, 추천과 비추천 시스템이 생겨났다. 실명제를 쓰는 곳도 생겼다. 지금도 많은 게시판에 가면 추천많이 받은 글, 조회수가 높은 글, 댓글이 많은 글 같은 것을 각각의 기준에 따라 순위로 나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관리자가 직접 추천할만한 글을 찾아 공지처럼 띄워주는 관리자 추천 시스템도 있다. 이는 모두 악플러와 게시판 도배를 하는 사람들과의 싸움 속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런 장치들이 없으면 게시판의 인기는 떨어진다. 질낮은 글들, 매너없는 글들이 도배되면 좋은 활동을 하는 방문객이 소리없이 사라지고 새롭게 유입된 사람들이 게시판의 주인을 자처하면서 게시판을 엉망으로 만든다.
그런데 이같은 과거의 일들을 지금와 돌아보면 결국 이런 변화는 추천시스템의 발달이라고 할 수 있고, 또한 정보 분석 문제가 심각해 졌다고 말할 수도 있다. 새로운 미디어인 인터넷 게시판이 인기를 얻자 정보가 폭증하고 늘어난 정보들 속에서 내가 원하는 컨텐츠를 찾기 힘들어 졌다. 추천이나 댓글이 시스템의 규칙이 되니까 이제는 그 규칙들을 잘 이용해서 악성글을 퍼뜨리는 전문가가 생겨난다. 그게 바로 댓글부대의 전설이다. 나는 이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분명 새로운 시스템속에서 자기 입맛에 맞는 컨텐츠가 마구 퍼져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이 시간과 자원을 쓰고 조직화되고 다수의 아이디로 게시판을 어지럽히면 그저 평범하게 글을 쓰고 읽는 개인들은 무력화되기 쉽다. 인터넷 게시판이 오염되고 무력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기성 언론이 걸은 길을 반복하는 것처럼. 정보채널은 권력과 관련이 있고 그래서 모든 성공한 정보채널은 비슷한 일을 겪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터넷은 처음에는 정말 자유로운 해방구같았다. 일베나 극렬페미같은 사람들이 악을 쓰는 곳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지적이었고 너그러웠다. 하지만 인터넷은 오염되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해방구는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었고 좋았던 옛날을 기억하는 사람들 중에는 요즘에는 갈 곳이 없다면서 푸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인터넷 게시판 뿐만 아니라 트위터나 페이스북같은 SNS나 유튜브같은 미디어도 같은 길을 걸었다. 새로운 스타, 새로운 컨텐츠, 인기를 노리고 악화되는 경쟁, 추천 시스템의 발달 같은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다시 매력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좋은 컨텐츠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게 되고 도배를 하고,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자극적인 컨텐츠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관심을 받는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가 싫어서 그 미디어를 떠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러면 악화가 계속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컨텐츠를 걸러 주는 것을 컨텐츠로 한다. 그 사람이 열심히 유튜브 컨텐츠를 추천하거나 영화를 추천하거나 남의 글을 추천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다.
AI는 새로운 미디어다. 지금은 주로 로봇을 떠올리면서 만들어진 인간으로 AI를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만 AI는 새로운 미디어와 적어도 깊은 연관이 있다. AI가 하는 일이 바로 대량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컨텐츠의 양산이 쉬워지면 질수록 사람들은 그 안에서 정말 가치있는 컨텐츠를 찾아낼 방법을 고민하기 마련인데 도저히 추천시스템이나 관리자 추천같은 것으로는 한계가 있을 때 사람들이 의존할 수 있는 것은 결국 AI다. AI는 소위 제목장사 하는 사람들이나 도배를 하는 사람들을 걸러줄 수 있을 것이다. AI는 쓸데 없이 길고 복잡하기만한 인터넷 논쟁을 정리해서 그것이 내가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는지, 뭐가 핵심 논쟁 주제인지를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AI는 내 개인 취향을 살려서 나에게 관심있을 만한 컨텐츠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추천 시스템에 AI는 이미 쓰이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컨텐츠를 보여주거나 구글 뉴스에서 추천 뉴스를 보여주는 것도 이미 모두 AI다. 하지만 이것은 아직 생성형 AI 혁신 이전의 이야기다. 아직 추천시스템에 생성형 AI가 제대로 쓰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것이 AI 역사에 있어서 진정으로 중요한 방향일 것이다. 게시판 글 추천 시스템에 관련된 기능이 AI의 역사 운운할만큼 중요한 거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세상의 핵심은 정보다. 그래서 새로운 정보 채널을 뚫어도 그걸 차지하려는 사람들때문에 다시 그 채널이 오염된다. 그런데 그 오염을 막을 수 있을 만한 강력한 무기가 있다면 세상에 정보가 흐르는 속력은 달라질 것이다. 세상이 바뀔 것이다. 그런데 AI라는 새로운 기술이 이 일에 투입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미 개인의 pc에서도 돌아가는 소형 AI들이 나오고 있고 AI pc니 AI 스마트폰이니 하는 기계들도 나오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은 AI 에이전트라고 불리는 개개인들이 쓰는 AI들로 가득 찰 것이다. AI를 가정부나 공장직원같이 일하는 휴머노이드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이 AI들이 직장이나 가정 내에서 일하는 것에 그 쓸모가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처음에는 AI도 내 컴퓨터 안의 요정처럼 국소적인 일만 할 것이다. 내가 이미 가진 데이터를 가공하는 일같은 거 말이다. 하지만 더 큰 쓸모는 소통에 있다. 외부에서 데이터를 구해오는 일에 있다. 컴퓨터의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다. 컴퓨터도 처음 등장했을 때 프로그램에 의해서 인간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해주는 기계라고 했지만 결국 컴퓨터의 진정한 힘은 인터넷의 등장이후 컴퓨터들이 인터넷으로 연결된 이후에 발휘되었다. 지금도 자기가 직접 프로그램을 짜서 컴퓨터에게 뭘 시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에서는 다운로드로 그걸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머도 자기 하나를 위해서 프로그램을 짜기 보다 인터넷에 연결된 수 많은 사람들을 위해 그걸 하는 것이 보다 보람찬 일이기에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지게 되었다.
AI 에이전트는 인간대신 쓸모 있는 정보들을 걸러 줄 수 있다. 단순히 걸러주는게 아니라 그것들에 대해서 보고서를 써줄 수있고 종합해 줄 수 있다. 내가 자주 가는 사이트나 블로그나 유튜브 채널에서 컨텐츠를 전부 검토해보고 그 중에서 내가 주목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모아다가 나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을 잘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이미 큰 발전들이 있어왔고 그래서 오픈 AI가 searchGPT라는 서비스를 개발중이라는 말만으로도 구글의 주가가 떨어지는 것이다. AI가 정보 필터로 작동하는 세상이 무섭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복잡한 세상에서는 원하던 원하지 않던 정보 필터가 없이는 아무 것도 직접 볼 수 없다. 즉 AI를 쓰고 있지 않은 사람도 일종의 필터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은 결코 그 복잡한 세상의 정보를 모두 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을 직접 보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장 두꺼운 필터를 쓰고 있는 사람이다. 세상은 본래 직접 볼 수 있을만큼 단순한 곳이 아니다.
AI는 모든 정보채널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고 아마도 그렇게 할 것이다. 낡은 미디어도 AI를 통해 새로워 질 수 있을 것이다. 악플러나 게시판 도배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댓글조작같은 것으로 여론조작이 가능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걸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다. AI는 게임의 법칙을 바꿀 것이다. 새로운 미디어에서도 물론 새로운 도전이 있겠지만 우리는 AI로 청소한 인터넷의 진상에 놀라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 눈에 보이던 세상이 갑자기 크게 달라 보이는 현상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왜냐면 앞서 말한 것처럼 AI를 쓰지 않고 있는 지금도 우리 눈 앞에는 필터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우 한줌의 사람들이 마치 국민 여론이 이렇다 저렇다라고 난리를 피우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의 눈을 가려서 보이지 않게 만든 세상의 진실이 그 필터가 벗겨지면 단숨에 들어날 수도 있다.
AI는 결코 혼자서 모든 일을 하고, 인간이 필요없어지게 만드는 발명이 아니다. 새로운 미디어는 새로운 스타를 만든다. AI가 청소해서 새로워진 정보채널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까지 누가 억압되어지고 있었는가를 알아보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 지를 보다 분명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열심히 자신의 생각과 정보를 새로운 채널을 통해 흐르게 만들 것이다. 그렇게 개인들이 지능적인 망을 통해 연결될 때 전체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지능적인 사회가 될 것이다. 말도 안되는 재판, 말도 안되는 헛소문, 말도 안되는 경제정책, 말도 안되는 범죄들의 진상이 들어나게 될 것이다.
AI는 여러가지 일들을 하겠지만 결국 가장 가치있고, 가장 중요하며, 가장 AI 다운 일은 정보 분석이다. 내가 테슬라에 투자하고 싶은데 이에 대해서 믿을만한 정보들을 모아서 보고서를 쓰라고 한다던가, 내가 정한 사이트들에서 나오는 정보중에 내가 좋아할 만한 정보들을 나에게 알려달라던가, 요즘 학교의 현실이 어떤지에 대해서 1페이지 짜리 보고서를 써달라고 한다던가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왜냐면 그것이 판단의 근거가 될 정보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만간 선거를 하러가기 전에 이 후보에 대한 정보를 모아서 보고서를 써달라고 말하고 그걸 읽고 판단하는 세상에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정보들의 궁극적인 소스는 다시 인간이 될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는 인간의 의견들을 모아서 다시 인간의 의견을 만드는 일을 반복하되 그 사이에 생겨나는 온갖 노이즈를 걸러 주고 복잡한 정보들을 정리해 주는 일이 AI의 일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킬러 컨텐츠는 포르노와 인터넷 게시판의 컨텐츠들이었다. 둘 다 다른 곳에서는 구할 수 없는 정보들이었다. 요즘은 AI가 붐이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의 AI의 비지니스 모델이 뭔지를 불확실하다고 한다. 돈만 쓸뿐 돈이 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AI를 대중화할 킬러 컨텐츠가 필요하다. AI의 킬러 컨텐츠도 결국은 정보고 인간일 것이다. 누군가가 AI를 희미한 인터넷의 이미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인터넷도 현실의 희미한 그림자다. AI는 현실찾기를 위한 도구가 될 것이다. 신문이 귀했던 예전에는 신문을 보지 않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요즘은 공중파 방송만 보고 있으면 바보가 된다. 인터넷에 있는 정보가 없는 경우가 있어서다. 그런데 세상이 복잡해 지자 인터넷도 무력화되기 시작했거나 이미 그렇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 그것은 AI를 통하지 않고서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 방법이 없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