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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제의 모순

격암(강국진) 2024. 8. 5. 14:17

지방 자치제는 시대적 요청이다.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중앙에서 전국에 대한 정책을 실시하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일은 자기가 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멀리 앉아서 간섭해 봐야 좋을 게 없다. 사람들은 유명세와 권력을 바라기 때문에 자치를 하지 않으면 중앙을 위해서 변방을 아무렇지도 않게 희생시키는 정책이 나오기 쉽다. 그냥 모두 한국이라는 테두리로 감싸서 한국이 잘되는 일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중앙이 변방을 식민지처럼 착취하는 일이 벌어지기 쉽고 이런 일이 계속 되면 변방은 죽어가고 결국 나라 전체에 문제가 생긴다. 

 

이걸 알기 때문에 박정희 시대때부터 수도이전이니 국토균형발전이니를 말해왔지만 이유는 뭐가 되었건 수도권집중은 멈추질 않았다. 30년전에는 없던 지잡대라는 말이 보편화되어서 수도권 바깥의 대학중에서 아주 소수의 대학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다 그냥 잡스런 대학으로 불리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출산율이 기록적으로 나쁘다고들 하지만 그것도 평균이다. 즉 지방만 보면 더하다. 왜냐면 지방은 이미 젊은 사람들을 빼앗기고 노인만 남았기 때문이다. 지방소멸의 시대가 된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젊은이가 자라면 수도권으로 가는 일을 너무 오래동안 해와서 그게 당연한 줄 안다. 그래서 서울의 강남에서 태어나서 거기서 죽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자기가 나고 자란 고장에서 죽겠다는 고향에 대한 애착을 가진 사람들이 거의 없고 강남 사람이 강남에 집착하는 것을 기이하게 본다. 하지만 우리나라만큼 자기 고향을 무시하는 나라를 나는 본 적이 없고 일본같은 나라와 비교하면 아주 차이가 크게 난다. 일본에서는 말하자면 동네에서 장사하고 사업하는 사람들이 알고 보면 어릴 때부터 소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사이인 경우가 많다. 고향을 떠나지 않거나 돌아오는 사람이 아주 많다. 고향이 없는게 정상은 아닌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 정착한다는 것은 여러가지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태어나서 자란 도시를 떠나면 어떤 식으로든 더 비용이 들기 마련이다. 그런 비용에도 불구하고 더 성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게 정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럴까? 전국 1등하는 친구가 대도시로 가서 성공하여 더 잘살았다고 해서 모든 학생들이 고향을 등지고 타지에서 적응하는 것이 정상이고 최선일까? 만약 한국에서 나이가 들면 모두 미국으로 유학가고 돌아오지 않고 미국에서 정착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할 때 이것이 망국적 흐름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걸 큰 물에서 성공해야 행복하게 산다고 응원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그렇다. 하버드나 MIT를 나와서 뉴욕에서 살면서 세계적인 인물로 성공하는 한국인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모든 젊은이들이 미국으로 유학가서 미국에 정착하려고 한다면 대부분의 한국 젊은이들은 그저 싸구려 인력으로 미국 좋은 일이나 시키지 결코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할 것이라는 말에 반박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모든 지방 젊은이들이 서울로 유학가서 수도권에서 사는 시대를 정상으로 본다. 지방소멸은 중앙에게 식민지처럼 수탈된 식민지가 망하는 것이다. 

 

그럴 수록 지방 자치는 더더욱 중요하다. 그러니까 중앙의 식민지로 살지 말고 자기 나름대로 독립해서 살라는 것이 지방자치다. 문제는 시대에 걸맞는 지도자와 지방을 발전 시킬 젊은이들과 자본이 이미 지방에 없는 것같다는 것이다. 제일 심각한 것이 사상이다. 즉 중앙을 쳐다보면서 스스로를 식민지 국민처럼 생각하는 지방 사람들의 사고 방식이 있는 한 특히 그런 사람들이 지방 자치 정부를 차지하는 한 그들은 형식적으로는 지방자치를 하면서 사실은 지방을 수탈하는데 앞장서는 조선 총독부 총독같은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산 사람들은 부산에 대한 애향심이 있어야 한다. 부산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자치권을 가진 자기만의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믿어야 한다. 그런게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부산 사람들은 많겠지만 서울 출신의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부산의 부자들, 부산의 유지들은 중앙을 쳐다보고 부러워하고 자신들도 서울 부자처럼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지 부산의 가난한 사람들과 같은 고향사람들로서 같이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자치권이니 애향심이니 하는 추상적 단어들은 결국 부산 시민들이 하나의 공동체 정신을 가지는가 아닌가로 나타난다. 부산에 살지만 자기가 이득을 본다면 기꺼이 부산을 팔아먹을 사람들은 애향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한국을 외국에 팔아먹는 매국노와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부산 사람들이 부산대가 지잡대가 되었는데 얼마나 분노하는가? 얼마나 이거 큰일이라고 생각하나? 서울대가 잡스런 대학이 되면 한국인들은 큰일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가? 한때 부산의 번화가였던 서면이 요즘은 텅텅 비어간다고 한다. 나는 두 가지만 생각해도 이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첫째는 젊은이들이 없다. 좋은 대학도 일자리도 없으니 그렇다. 둘째는 부자들이 이제는 해운대에서 더 서쪽으로는 잘 안간다. 해운대에서 더 동쪽으로 가면 지상천국같은 거대한 빌딩들이 들어서고 화려한 가게들이 서지만 서쪽은 버려진 느낌이다. 이건 결국 부산의 중산층이나 빈민층을 부산 사람들이 외면한 결과가 아닐까? 보통의 젊은이, 보통의 시민들을 무시한 결과가 아닐까? 부자들은 땅투기하고 외부의 자금도 끌어다가 더 쉽게 돈을 벌 기회를 노리지만 그 결과 부산은 점점 리조트같아진다. 물가는 올라가고 부동산가격은 서울을 넘어서는 곳도 생긴다. 멋진 건물들을 보면 감탄이 생기지만 인도네시아의 발리같은 리조트를 만들듯 외국인 손님 끌어다가 장사하고 대부분의 지역민들은 가난하게 사는 지역을 만들 셈일까? 대학이나 청년의 일자리가 아니라 공항이나 카지노나 거대한 쇼핑몰같은 것에만 신경쓰는 모습을 좀 멀리서 보면 결국 그거다. 부산을 싹 밀고 거기에 부자손님받아 장사하겠다는 미래를 멋지다고 하는 사람이 정말 애향심이 있는 사람일까? 

 

나는 제주도를 보면서도 너무 안타까웠다. 제주도는 둘레길 열풍이 불때만 해도 대안적 삶을 제시해 줄 수도 있을 것같은 지방이었지만 그런 기회를 스스로를 불태우는데 써버린 것같다. 더 많이 개발하고, 외국인들에게 땅을 팔고, 숲은 깍아 버리고, 물가는 올린다. 그러면 단기적으로 돈을 크게 벌 사람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나는 제주에서 살다가 죽겠다고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좋은게 아니다. 기회가 있을 때 공동체를 키우고 관관산업말고 다른 산업도 키우고 대학도 발전시키고 하면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생활비가 오르는 것을 억제하면 좋았을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일본이나 동남아에 가는게 제주도 가는 것보다 싸다고 제주를 다 욕한다. 

 

그런데 이정도의 생각을 하는게 지방에서 흔해 보인다. 노인들이 지배하고, 후진국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지배하는 지방에서 자치제를 실시하면 그 자치단체는 독립적으로 발전하는 지방을 만들어 가는 게 아니라 투기하고, 손님끌 리조트같은 걸 만들어서 장사를 하려고 하고 궁극적으로는 스스로를 망한 리조트처럼 되게 해서 소멸하는 길을 걸어가려고 하는 것같다. 나는 지방자치는 시대적 요청이라고 적었지만 이미 너무 오랜간 식민지 상태에 있었던 지방은 스스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병이 깊은 것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걸으라고 손을 놓으면 바닥에 쓰러져 버리는 것같다. 

 

지방에 희망이 있다면 지방은 인구가 작고 오염되지 않은 땅이 넓으므로 새로운 개혁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와서 살고 싶은 땅을 만들려면 가장 진보적이고 개혁적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미래산업이나 미래기술따위를 수용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앞선 지역의 노하우를 배우되 그걸 그대로 따라하지 말고 더 진보적인 정책을 써서 세상에 없는 지역을 만들어 내고 대안적 삶의 방식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로 치면 지방은 벤쳐다. 수도권과 같은 방식으로 경쟁력이 있을리 없다. 

 

그런데 이런 개혁을 이룰 사람도, 그걸 지지해줄 지역기반도, 그걸 추진할 자원도 모두 부족한 것같다. 백종원이 지역에 내려가서 축제 음식 이렇게 하면 안되고, 재래시장 이렇게 운영하면 안된다고 가르쳐 주는데도 그것에 저항하고 욕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게 바로 지역 자치의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더도 드물지만 그 리더를 이해할 지역민도 드물다. 그러면서 소멸되어가는 지역을 한탄만 한다. 누군가의 동정에 기대어 살아볼 생각처럼 보인다. 내가 안타까워 보인다고 한 제주도나 부산이 지방 자치 단체중 성공한 사례로 여겨지니 실패한 경우는 이미 사망직전 이라는 이야기다. 

 

우리는 이 모든 걸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리석은 탐욕으로 화를 불러 들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식민지 착취를 당연히 여기면 그 착취가 끝날 때 중앙도 망하거나 많은 댓가를 치룰 것이다. 어쩌면 지방이 살아날 방법이 이미 없고 지방이 완전히 망하고 아주 비싼 댓가를 치루고 난 뒤에야 새로운 가능성이 생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