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유지가능한 삶
유지가능하지 않은 것은 모순을 누적시키고 결국은 계속될 수 없다. 주식 투기나 다단계 판매 사업같은 것도 성공할 때만 보면 그 성공이 영원할 것같다. 그러니까 거기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지가능하지 않은 것은 결국 언젠가 파국이 생긴다. 이럴 때 과거에는 이랬다는 생각, 이런 건 원래 이렇다는 생각은 위험해 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람의 습관이나 선입견이란 잘 바뀌지 않는다. 게다가 그것이 하나의 사회나 국가의 문제이고 보면 그것은 거대한 관성을 가지게 된다. 그러니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상황이 다른데도 다른 사람들이 옛날처럼 행동하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것을 따라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제 막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단계이거나 선진국이 된 한국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 사실이었던 것도 계속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빠른 성장시대가 끝나고 저성장 시대가 왔을 때 과거의 관습을 유지하면 어딘가에 큰 무리가 따르게 될 것이다. 한국이 10%의 고성장을 했던 시기는 2000년정도까지였다. 그 이후에는 5-6% 정도의 성장을 했고 2010년 이후에는 대개 3%도 안되는 성장을 했다. 이젠 미국과 별차이가 없고 일본보다 약간 더 높은 성장을 할 뿐이며 심지어 2023년에는 일본보다도 경제성장률이 낮았다.
그런데 지금의 청년들을 키운 것은 1960년대 이후 태어나서 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90년대정도부터 세상에 뛰어든 베이비붐 세대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0%때였던 시대다. 베이비붐 세대는 강력한 가족관계속에서 자라났고 야망을 가지라는 말을 들으면서 컷다. 다시 말해 대학가고 서울로 가라는 말이다. 그때는 자식도 부모에게 순종했지만 부모들도 종종 다수의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을 키우는 것이 가장 큰 인생의 과제인 것처럼 살았다. 이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손주봐주고 자식에게 돈을 주고 반찬을 주는 사람들이다. 저학력층이 많은 그들은 자식을 대학교육을 시키는 것에 온 힘을 다했다. 한국이 부자나라가 된 것에는 이런 교육열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 세대를 부모로 둔 베이비붐 세대는 한국의 경제발전과 맞물리면서 훨씬 더 부유해진 직장인으로 컸다. 그리고 그들은 상대적으로 인생을 즐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는 고학력자들이었다. 그들도 상당 부분 부모에게 배운대로 했는데 그것은 사랑을 부모에게 갚기보다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그들도 사교육비를 엄청나게 썼다. 아이들에게 비싼 것만 골라먹였다. 기죽지 말라고 옷도 비싼 것만 입혔다. 그들은 배운게 많은 만큼 사치하는 법도 알았다. 외국경험도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상당수가 아이들을 소비에 중독되게 만들었다. 어릴 때부터 어학연수도 가고 해외여행도 가는 단군이래 최초의 젊은 세대는 이렇게 만들어 졌다.
나는 지금이 오버슈팅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자라난 청년들에게는 문제가 생겼다. 만약 삶의 순환이 노인에게서 장년으로 그리고 청년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면 그리고 과거의 추세가 계속되려면 요즘 젊은이들은 베이비붐 세대보다 훨씬 더 취직이 잘되고 훨씬 더 고소득을 올려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키울 아이들은 우주여행이라도 가야할 판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제성장도 느려졌다. 요즘 청년들은 부모에게 기대지 않으면 그들의 자식을 자기보다 호강시키기는 커녕 자신이 자라날 때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기도 힘들다.
나는 최근에 맞벌이를 원하지 않는 여자는 결혼을 피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30년전만 해도 아내가 맞벌이를 하는 것을 남자들이 오히려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어느새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한국 남성들의 7-80%는 맞벌이를 당연시하고 원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그들이 기대하는 생활수준을 지키기 위해서는 맞벌이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생겼을 것이다.
우리의 눈높이는 너무 올라갔다. 한국 사람들이 말하는 보통의 삶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 하나 하나를 보면 그렇게 이상하지 않지만 그 모든것을 다 갖춘 사람이 보통 사람이라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9급공무원 시험이 너무 힘들었는데 그걸 합격해서 공무원이 된 다음에 자신이 받는 월급에 충격을 받아서 그걸 관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들은 그들이 누리던 생활 수준과 자신이 주관적으로 고생한 정도를 생각하면서 자신이 유지가능한 삶을 꿈꿨겠지만 그 기대치와 현실이 너무 다른 것이다. 그러다가 SNS를 보면 해외여행에 고급차에 풀빌라에 고급음식에 대한 포스팅이 넘쳐난다. 결혼할 때는 서울에 전세집이라도 구해야 한다고 하고, 식을 올리려면 이정도는 들어야 한다는 말이 넘쳐나는데 그걸 자신이 하려고 하면 까마득하다. 그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박봉의 월급을 모아서 그 돈을 언제 모을 수 있냐를 생각하면 직장 나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보다 그 돈을 안쓰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한국에서 말하는 보통사람이란 성적이든 유산이든 1%쯤 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 그런데도 보통 사람인 척 하려는 사람들은 남들이 보는 데서는 여유로운 척 하고 안 보는데서는 죽도록 고생해야 한다. 허세때문이다.
나는 외국에서 오래 살았다. 미국에도 일본에도 살아 본 적이 있고 유럽에서도 살아본 적이 있다. 그런 내 경험으로 보면 우리가 아는 오래된 부자나라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부자였기 때문에 그런 생활에 익숙하고 보수적이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있고 부유하다는 것은 상대적이며 그들도 세계의 가난한 나라에 비하면 사치스럽게 소비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한국에 있는 오버슈팅이 없다는 느낌을 준다. 그들은 그들의 조부모와 부모를 보면서 자신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유럽에 비하면 신흥부자인데도 맨하탄의 유명고층빌딩인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1931년에 지어진 것이다. 성장의 기울기가 다르다. 그러니 기대치가 다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한국은 좋게 말해서 전세계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라중에 가장 진취적인 나라다. 그리고 그건 100년전은 커녕 50년전인 1977년에 1인당 국민소득 천달러를 겨우 넘긴 나라라는 사실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경험적으로 세상은 빠르게 성장해 왔다. 미래는 다를 것이다. 1960년대에는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백불대였다. 이런 대단한 경제성장을 한 나라는 세상에 없다. 그리고 나는 한국인의 진취성이 꺽이지 않기를 바라고 그 진취성이 단순히 이런 과거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하지만 모든 한국인이 똑같은 것도 아니고, 과거와 지금이 같은 것도 아니다. 우리는 이제 지속가능하게 살아가는 태도도 배워야 한다. 거품을 끄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그 중의 하나는 직업에 대한 중독이다. 아마도 급격하게 경제가 발전하던 20세기에 일자리는 많은데 노동자가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한국사회는 직장에서 일을 하는 것의 가치를 반복적으로 크게 강조했고 이것은 특히 여성의 사회진출과 관련되어서 더욱 그랬다. 그래서 이제 사람들은 살기 위해 직장에 나가기 보다는 직장에 나가기 위해 사는 것같아졌다. 즉 직업을 자신의 핵심적 정체성으로 여기면서 직장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의 가치를 폄하하게 되었다. 직장과는 상관없는 삶의 가치를 말하기 보다는 직장에서 일을 하는 것이야 말로, 직장에서 성공하는 것이야 말로 인생을 값어치 있고 재미있게 사는 것이라는 믿음이 아주 깊어졌다. 살기 위해 직장에 나가는 것인지 직장에 나가기 위해 사는 것인지를 고민했을 때 대답에 확신이 없으면 직업윤리에 지나치게 중독된 것이다. 이는 바람직 하지 않다.
지속가능한 삶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또 하나는 지방에서의 삶이다. 사람많은 곳에서 북적이면서 돈을 펑펑 쓰며 사는 것이야 말로 가치있는 삶이라는 생각이 많은 한국인의 머릿속에 아주 깊이 박혀 있다. 그러자면 결혼을 하지 말거나 맞벌이를 해야 하고 아이는 낳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노인이 많고 인구밀도가 작은 지방같은 곳에서 사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모두 서울로 수도권으로 와야 한다. 그곳만이 가치있고 재미있는 삶이 있는 곳이니까 말이다.
적어도 모두가 이런 생각에 빠져서는 안된다. 어쩌면 한국에서는 블루오션이 지방일 수 있다. 모두가 서울 서울하기 때문이다. 지방에 기회가 널려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사고에 빠져서 그것만 추구하는 것이 모두에게 답은 아닐 것이다. 물론 지금도 미래에도 수도권에서 성공적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그게 모두는 아닐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개척하지 못하면 삶은 점점 더 수렁에 빠져들 것이다. 수도권에서 평범한 월급을 받는 사람이 아이를 둘쯤 낳아서 남들이 시킨다는 사교육비를 들여가면서 키우고 남들이 시킨다는 온갖 체험 학습 시키고 가족 여행도 가면서 살다보면 은퇴할 쯤이 되었는데 그 아이들이 말썽꾸러기로 커서 부모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 파산하기 쉽다. 저축도 없고 아이들도 자립하지 못할 것이다. 서울가서 집사면 부동산투자로 돈을 번다는 것도 있는 사람들 이야기다. 사람들은 이미 이런 생각이 비현실적이라는것을 알기 때문에 아이도 낳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어느새 그저 돈돈하게 되었고 유명세만 쫒게 되었다. 적어도 그런 메세지에 너무 중독되어 있다. 그런 삶이 유지가능할 수가 없다. 살면서 한번 야망을 쫒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유지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유지가능한 삶, 허세가 없는 삶에 대해서도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