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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와 차원의 저주 그리고 미래

격암(강국진) 2024. 9. 4. 18:56

오늘은 AI 강의를 준비하다 문득 든 생각이 있어서 언제나 그렇습니다만 그것에 관해 자유롭게 생각을 적어볼까 합니다. 제가 여러번 이야기하는 것중에 차원의 저주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시스템의 자유도가 증가하면 그 시스템이 가질 수 있는 상태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동전이 하나 있을 때 그 동전을 던져서 나오는 경우의 수는 2가지 이지만 동전을 열개 던지면 나올수 있는 경우의 수는 2^10가지 입니다. 동전을 서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할 때 말이죠. 이걸 차원의 저주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시스템을 이해하는데 혹은 묘사하는데 얼마나 많은 데이터가 필요한가 하는 것입니다. 그 시스템이 내부적으로 어떤 강력한 질서를 따르지 않는다면 앞에서 말한 것같은 차원의 저주가 적용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시스템을 보고 있을 때 그 시스템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엄청난 가능성 중의 하나인 상태에 있겠지요. 그러나 어떤 기적으로 지금의 시스템 내부에 어떤 강력한 법칙이 있어서 예를 들어 모든 동전이 같은 면을 보이는 법칙이 있다면 10개의 동전이라고 해도 가질 수 있는 상태의 수는 여전히 2개일 것입니다. 묘사하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시스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걸 생각해 봅시다. 어떤 사회가 있는 겁니다. 그 사회의 크기가 10명 100명 만명으로 증가할 때 그 사회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이해하려고 할 때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겠죠. 완전한 혼돈속에서는 그 사회의 크기가 증가함에 따라 우리는 지금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를 말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회는 붕괴할 수 밖에 없고 성장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런 사회의 정부는 자기가 어떤 정책을 펴야 하는지 모르게 된다는 뜻이니까요. 홍수가 났는데 가뭄대책을 세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언어를 발달시키고 성문법을 만드는 등의 노력을 통해 사회 내부에 질서를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거대한 국가 내부에서 서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만나도 뜻이 통하고 어느 정도 질서를 기대합니다. 질서가 없었다면 도저히 살아갈수 없었을 크기의 사회가 질서를 가지고 살아가 집니다. 차원의 저주가 만들어 내는 혼돈을 억누르는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그 핵심에는 문자의 사용같은 강력한 정보 기술이 있었습니다. 전체 사회를 관통하는 객관적인 법칙이 존재하니까 국가도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100개 라고 해도 2개의 가능성만을 가지는 동전을 던질 때와 6개의 가능성을 가지는 주사위를 던질 때가 다르듯 세상이 복잡해 지면 차원의 저주의 힘은 더 커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체 사회를 파악하기 위해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해 집니다. 우리는 컴퓨터를 쓰고 AI를 써서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라고 해도 데이터가 없는데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복잡함이 점점 더 증가한다면 그 복잡함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데이터를 만들어야 합니다. AI가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요구하는가 하면 최근에 만들어 지는 AI는 이미 실질적으로 인류가 만든 데이터를 거의 다 썼다고 할만큼 데이터를 써서 만듭니다. 그리고 데이터는 AI로 만들어 지지 않습니다. 데이터는 인간이 만들어야 합니다.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AI가 만든 데이터를 다시 AI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면 AI가 지능이 붕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건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말에 계속 귀를 기울인 결과 미쳐가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우리는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미래가 두 가지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는 저정보 소규모 사회입니다. 이 사회는 소박하고 단순하며 작습니다. 그래서 사회적 혼란을 억누르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성장도 억눌러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회가 성장하면 저정보 정책을 유지했다가는 다시 위태로워질테니까요. 또 하나는 고정보 대규모 사회입니다. 생산하는 정보의 양이 커서 이 사회는 큰 크기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성장은 언제나 탐욕스럽게 데이터를 요구할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장하기는 했는데 반대로 사람들이 강도높은 노동에 시달려야 합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수렵채집인의 집단은 저정보 소유모 사회에 해당합니다. 문명사회는 상대적으로 고정보 대규모 사회에 해당하지요. 문제는 수렵채집인의 집단은 역사적으로 유지가능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왜냐면 문명사회가 그들을 침략했으니까요. 즉 지구가 수렵채집인들로만 이뤄져 있엇다면 어쩌면 사람들도 고릴라나 코끼리처럼 생태계 내부에서 성장을 억제하면서 유지가능한 삶을 살수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일단 문명사회가 어디고 나타나면 그게 불가능해 진다는 겁니다. 문명 사회와의 경쟁에서 패배하니까요. 

 

물론 이것은 미래 예언은 아닙니다. 뭔가 다른 것이 등장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인간사회는 성장하면 할 수록 더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게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기계 문명 속의 현대인이 수렵채집인들보다 노동을 많이 한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꼭 그런 건 아니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적어도 입시 지옥, 취업 지옥 속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 그게 맞는 것같기도 합니다. 수렵채집인들의 사회에는 그런 게 없으니까요. AI 시대가 오면 인간은 할일이 없어서 심심할거라는 주장도 있는데 그 시대가 반대로 강도높은 노동의 시대일 수도 있습니다. 이건 우울한 예언이지만 예언은 본래 맞는게 아니고 그냥 데이타와 차원의 저주라는 입장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습니다. 이런 예언이 의미가 있다고 해도 발전을 중단할 수도 없습니다. 그건 수렵채집인의 삶을 유지하자는 말과 비슷한 이야기니 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