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가장 큰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아주 작은 것들을 무수히 만납니다. 작은 호의, 작은 평가, 그저 부탁한다는 말을 잊어버리고 명령하듯 말한 작은 부탁, 누군가에게 옮긴 작은 말, 누군가에게 한 작은 거짓말, 누군가에게 건넨 작은 찬사. 이런 것들이 끊임없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워낙 많고 작은 것들이라 그것들을 모두 명확히 인식하고 평가할 수 없습니다. 언제 어느때에 어떤 문맥에서 그런 식으로 행동하고 이야기했는지를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다른 친구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특정한 친구를 만나기만 하면 머리를 잡고 누르는 버릇이 있는 친구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뜻 보면 친숙함을 표현하는 그 행동은 다시 보면 또한 그 친구를 무시하는 것같은 행동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작은 차이는 쉽게 어느 쪽이 어느 쪽인지 말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머리를 눌리는 그 친구는 그 모임에서 존재감을 잃게 되는 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렇게 살다보면 실은 이 작은 것들이 가장 큰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저는 그것들이 작다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곰곰히 생각해 보면 결코 작지 않은 의미가 들어 있는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이 작다라고 말해지는 이유는 주로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반복되어지기 때문입니다. 며느리가 여럿있거나 형제 남매가 여럿 있는 집이 있다고 해 봅시다. 그런데 가족 모임이 있을 때 우리 오늘 저녁에는 뭘 먹냐고 사람들이 늘상 한 사람에게 묻는 겁니다. 그들은 결코 들어내서 이 집에서 밥을 짓는 것은 너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치 관례처럼 당연한듯이 그렇게 묻고 밥때가 되어도 누구 하나 이번 식사는 이렇게 해결하자고 의견을 내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면 밥준비를 하는 것은 늘상 같은 사람이 됩니다. 이런 것도 일상에서는 작은 것입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으면서 지나가니까요.
이렇게 들어내놓고 지적하기 어렵게 일상에서 반복되는 것이 실은 우리에게 아주 무거운 짐이 됩니다. 사람들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 그 한 사람이 쓰러질때까지 당연한 것이 됩니다. 현실에서는 왕따같은 것도 극심한 경우가 아닌한 이건지 저건지 말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아마도 여기까지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는 본인이 아는 사람들 중에도 요령좋게 이리저리 핑게를 만들어 사람들을 쥐고 흔드는 사람들을 많이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별거 아닌 나이차이나 경력차이로 상대방을 무시하고 명령하듯 행동하는 사람들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집에 가면 다른 사람들에게 묻지도 않고 자장면 5개요라고 주문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런 행동을 대단치 않게 생각합니다. 지나고 나서 왜 그랬냐고 말하면 싫으면 말하지 그랬냐고 합니다. 작게 작게 지나가버리는 것이라 지나고 나면 그걸 지적하고 따지기도 어렵습니다. 기억도 서로 어긋납니다.
한 회장은 스스로를 매우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왜냐면 자기가 무슨 말을 하면 자기 회사의 직원들이 그걸 진심으로 아주 재미있게 생각하며 웃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꼭 그 직원들이 아부하기 위해 억지로 웃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회장님이니까 재미있는 건 재미있다고 말하고, 한번 칭찬할 것을 두번 혹은 약간 더 세게 칭찬한 것뿐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작은 차이들이 모이면 세상이 전혀 달라지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래서 예쁜 여학생은 못난이 여학생의 마음을 모르고 백인 남성은 흑인 남성이나 황인종 남성이 겪는 인종차별을 모릅니다. 그들이 느끼기에는 차이가 있다고 해도 작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작은 것이 큰 것이 되는 이유는 종종 그런 작은 행동들이야 말로 진심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진지하게 너의 작품은 굉장한데라고 말하면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런 말을 할까를 생각해 보기 마련입니다. 오히려 지나가듯 작년에 본 너의 작품을 기억한다는 말을 하면 우리는 내 작품이 그 사람에게 상당히 인상깊었다는 것을 믿게 됩니다.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심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대개 큰 것만을 기억합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어머니를 가정부나 요리사처럼 대우하면서 언젠가 한번 비싼 옷한벌을 사주거나 거금의 용돈 한번을 주고 나면 자신이 효자 효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수 많은 도움을 직장동료에게 받으면서도 그 도움이 어떤 것인지를 눈치도 채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주변 사람들을 이용만 하면서도 주변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은 하나도 없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들은 큰 것만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크고 작은 것은 관점의 문제입니다. 진짜로 큰 것은 작아보이고 그래서 종종 보이지 않습니다. 차분히 주변을 보는 사람만이 진짜로는 아주 큰, 이 일상의 작은 일들에 주목하게 됩니다. 나는 일전에 이혼을 한 부부를 알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그 부부의 이혼 사유는 남편이 바람을 핀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부부를 비교적 자주 접한 저로서는 남편이 바람이 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작은 것에 달린 것입니다. 그 부부의 아내가 사치를 부린 적이 없다던가,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이라던가, 바람을 핀 적이 없다는 것은 생각만큼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다른 부부를 보면 가사일을 어떻게 분담한다던가, 남편이나 아내가 재정적으로 가게에 얼마나 기여했냐라던가, 남편이 아내를 유럽여행을 시켜준 적이 있거나 몇백만원짜리 고급백을 사준 적이 있다던가 하는 것에 주목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중요한 것은 아내와의 데이트를 위해 준비한 남편을 알아준 아내의 작은 반응이라던가, 아내의 일을 세심하게 살펴서 아내가 친구와의 만남에서 체면이 상하지 않도록 약간 신경써준 거라던가, 모처럼 기분좋은 남편이 그 좋은 기분을 이어나가고 싶어하는 것을 알고 집안을 엉망으로 흐뜨러 뜨리는 것을 봐주는 아내의 사려깊음입니다. 나의 배우자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진심어린 작은 행동이 모든 것을 달라지게 합니다. 그것이 일이든 새로 나온 영화에 대한 평가이든 말입니다.
그러니까 가정폭력이나 불륜처럼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여러 사람들을 모아놓고 부부관계에 대해서 대중 재판을 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작은 것들에, 보이지 않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동네 사람이나 지인들을 불러다가 우리 부부관계가 이렇다, 이것에 대해서 너의 의견을 말해달라고 하는 사람은 그런 행동 자체로 스스로가 배우자로 실격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중요한 것이 말로 할 수 없는 작은 것에 있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둔한 사람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를 모르니까요.
우리가 크다고 생각하는 것은 생각보다 크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것은 우리가 아는 큰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작다고 생각하는 것은 종종 세상에서 가장 큰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거의 주목하지 못할 정도로 은밀한 것은 알고 보면 우리의 삶을 뿌리채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