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타인과의 대화
기술의 발전은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방식을 바꾸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전화기가 없던 시절에는 손으로 쓴 편지같이 느린 수단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생각날때마다 다른 사람에게 생각을 전달하기 보다는 훨씬 더 필요한 정보를 보내려고 노력해야 했을 겁니다. 이같은것은 반드시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닌데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필요한 용건이 무엇이고 대화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좀 더 긴호흡으로 생각해 보고 소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연애편지로 소통하며 연애하던 커플이 매순간 메신저로 소통한다고 해서 꼭 더 좋은 것은 아닙니다. 대화가 빠르고 흔해지니까 아무 말이나 하다가 오해가 생기거나 정말 중요한 이야기는 못하고 불필요한 잡담 이어가기만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AI는 타인과의 소통과 대화를 어떻게 바꿔가게 될까요?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데이터이며 기억력일 것입니다. AI가 믿을만해지고 내 개인 기기에서 돌아가기 때문에 정보 유통문제도 없어지면 우리는 자연스레 AI에게 우리의 사적인 정보를 관리하게 시킬 것입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AI는 우리가 타인과 나눈 대화나 통화를 모두 기록하고 기억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을 습관화할 것입니다. 왜냐면 첫째로 그것이 쉬워질 것이고 둘째로 그것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상을 기록한다고 하면 지금은 우리가 직접 일기를 쓰거나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거나 혹은 사진을 찍거나 하는 방식으로 기록해야 합니다. 사진을 찍는 것은 기록 문화를 아주 편리하게 한 측면이 있지만 여전히 상당히 신경써야 하는 일입니다. AI가 발전하면 이 부분부터 쉬워지겠죠. AI가 우리의 조각난 정보들을 기록하고, 사진을 찍고, 필요하다면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이번 여행은 어땠는지에 대해서 에세이를 써서 남기기도 할 수 있을 겁니다. AI가 개인용 사진가이자 전기작가가 된달까요.
그리고 우리는 그 정보들을 남김없이 모아서 관리하는 일을 소중히 여길 겁니다. 왜냐면 무엇보다 그런 정보들과의 소통은 바로 나 자신과의 소통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그런 일이 충분히 쉬워지면 그 가치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내가 무슨 말들을 했고, 누구와 만나서 어떤 일이 벌어졌으며, 여행때 어디에 다녔고 어떤 평가를 줬는지등 매 순간의 생각들을 더 많이 기록하고 싶을 겁니다. 왜냐면 그런 정보가 많이 있을 수록 세상 살기가 편해진다는 것을 느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분석력과 기억력때문에 우리의 체험이 의미없이 매일 매일 사라져 갔다면 그런 데이터를 기록하기 쉬워지고 나중에 찾아보기 쉬워지면 하루 하루를 사는 만큼 그 정보가 채워져 간다는 것이 느껴질테니까요. 뒤집어 말하자면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힘들게 살고 있는 시대입니다. 모두가 그럴 시간과 능력이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이 무의미하게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어떤 분들은 망각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면서 그런 데이터 수집이나 누적을 좋지 못한 것으로 말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게 꼭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문명인으로 사는 것보다 수렵채집인으로 야생에서 살아가는 것이 좋다는 주장처럼 주류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의 전부가 아니라면 대부분을 이루는 것은 결국 기억입니다. 그러니까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우리 자신이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들의 기록들을 소중히 여기게 될 것입니다.
사실 AI가 아니더라도 데이터의 수집과 보관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이미 기계와 결합하여 한 몸이 된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모두는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이런 걸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의 pc 하드디스크에 있는 파일들이 어느날 모두 사라지는 겁니다. 이런 일은 가끔 일어납니다. 저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의 체험을 영혼이 파괴되는 것같다고 말한 사람은 결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20년동안 찍은 가족 사진과 동영상을 저장한 파일이 날아간다던가 십수년동안 직장생활하면서 기록해 왔던 업무와 관련된 서류와 논문들, 내가 20년간 쓴 글들이 한번에 날아가는 일이 생기면 그건 그냥 아쉬운 정도가 아닙니다. 잠이 안오고 눈물이 날것같은 정도의 충격입니다.
또 많은 사람들은 요즘 스마트폰을 한시도 손에서 떼지 못합니다. 대중 목욕탕까지 들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라서 그걸 굳이 금지해야 합니다. 이것은 유튜브를 보거나 인터넷 기사를 읽거나 메시지를 읽거나 하는 일 때문이랄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 스마트폰이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아주 많은 정보를 우리는 이제 기억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전화번호를 기억하는 일도 드물어 졌습니다. 주소도 그렇습니다. 링크나 검색이나 통화기록속의 이름이 그것들을 대신합니다. 즉 스마트폰이 가진 정보들이 계속 나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그걸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것이고 타인이 그걸 가져갈 경우 대단히 곤란하다고 느끼는 겁니다.
그런데 AI의 발달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일을 훨씬 더 쉽게 해서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데이터를 누적시킬 겁니다. 물론 내가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내 말이 녹음되는 것은 기분나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정보는 끝없이 누적될 겁니다. 내 AI는 물론 상대방의 AI에 의해서 말이죠.
그렇다고 할 때 사람들의 인간관계는 결국 달라질 것입니다. 그것은 좀 더 확률통계적인 분석에 기반하고 더 긴 기억력에 기초한 것이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나에게 지속적으로 뭔가를 요구하고 피해만 입히고 있다는 사실이 긴 기억력에 의해서 보다 분명해 질 것입니다. 아니 그전에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 패턴을 스스로 보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를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는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한 사람은 지난 몇년간 자신이 어머니와 몇번의 통화를 했는가 그리고 그게 무엇때문이었던가에 대한 통계를 보면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가계부를 꼼꼼히 적어서 소비를 기록하고 그걸 분석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AI가 그걸 쉽게 하면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분명해 질 것입니다. 그리고 뭐가 핵심이 아니고 뭐는 핵심인지가 잘 들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콩나물값을 아낀다고 하다가 어느날 몇십만원짜리 소비를 하는 일을 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본래 기억력도 나쁘고 자기 평가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AI는 통계에 기초해서 현실적인 우리의 모습을 알려줄 것입니다. 우리가 뭘 잊었는지, 우리가 누구에게 정말 의지하고 있는 것인지, 누가 우리를 해치고 있는지를 알려줄 것입니다. 얄팍한 말과 약속으로 유권자를 속이는 정치가들을 보면 우리는 그들에게 속아넘어가는 유권자들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는 그렇지 않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어느 정도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인간의 타고난 지능이나 기억력은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반대도 사실이지만 집단의 판단은 언제나 뛰어난 개인의 판단보다 훌룡하지 않습니다. 소통에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사기꾼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이게 분명하다고 하면 그걸 믿는 사람들이 전체 사회를 아마추어들의 난장판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사실 현대는 과학의 시대이고 객관적 정보의 시대인 것같지만 그것은 정보가 누적되고 분석된 특정분야만 그런 것입니다. 저는 일찌기 우리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글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문자 문명 이전의 신화의 시대를 살고 있는 거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얇팍한 기억력을 믿으면서 그것들이 보여주는 세상이 진짜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걸 글로 기록하고 앞뒤를 일관성있게 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의 기억력이 보여주는 사적인 세상은 앞뒤가 안맞고 신비주의적인 힘이 넘쳐나는 문명 이전의 신화 시대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기억력은 그만큼 형편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까지는 기록과 분석의 힘은 사적인 세계에는 대개 크게 침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그게 힘들고 개인적인 만족감 이외에는 큰 보람이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매일의 일을 기록한 10년짜리 일기를 가지고 있어도 심지어 그걸 쓴 나도 그걸 모두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그안의 진실이 뭔지를 찾아내기는 힘듭니다. 조선왕조실록같은 것을 만들기도 힘든데 그걸 분석하기는 더 힘들다고 하지요. 국가의 일도 그런데 그걸 개인이 자신에 대해서 하려고 하면 더 비현실적이 되는 것이 당연하지요.
AI가 이걸 바꿉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술의 도움을 받아 우리의 삶을 좀 더 쉽게 되돌아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이제 내가 한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의 평판과 가치를 긴 시간속에서 증명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인간이나 나라는 존재를 좀 더 크고 긴 시공간속에서 파악하게 될 것입니다. 문자의 등장이래 구술문화속에 살던 인간보다 문자문명속에 살던 인간도 그런 일을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다룰 수 있는 정보의 양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AI를 통해서 이제 문자 문명에서 다룰 수 있었던 것보다 더욱 더 많은 정보를 다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크고 긴 시간과 공간속에서 자신을 파악할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AI 시대의 시민이 언젠가 뒤를 돌아보면 지금의 우리는 기억상실증에 빠진 야만인처럼 보일 겁니다. 현대는 어리석은 일을 끝없이 반복하고 또 반복되는 거짓말이 통하기도 하는 시대로 보일 겁니다. 말하자면 늑대가 나타났다는 거짓말을 계속 하는 양치기가 있는데도 과거의 일을 잊고 계속 놀라고 계속 그 양치기의 말에 주목하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시대로 보일 겁니다. 데이터에 기반해서 좀 더 긴 기억력을 가지게 된 AI 시민들은 훨씬 더 사려깊게 행동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계속 과장해서 말을 하면 사람들은 점점 더 나의 과거에 기반해서 나의 말을 축소해서 들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 것도 모르면서 자신있게 뭔가를 아는 척하면 기록에 의거해서 사람들은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것입니다. AI 시대에 사람들은 서로 서로 정보를 주고 받는 센서들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으로부터의 정보가 경험상 판단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에 대한 신뢰도는 조절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정확히 AI 패러다임이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집단지능이 향상되는 것입니다.
AI는 나와 타인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한 정보도 누적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그 누적시킨 정보로 어떤 언론사가 지속적으로 편파적이고 거짓을 말해 왔는지도 더 잘 인식할 수 있게 되겠죠. 우리는 요즘도 달러 환률이 1200원이면 나라 망한다고 했던 언론사가 1400원이면 더 좋다라고 말하는 기록을 이야기합니다. 비일관적으로 재판하고 기사를 쓰는 판사나 기자는 그런 모습들을 더 극명하게 들키게 될 것입니다.
결국 더 많은 데이터는 더 높은 수준의 문명화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시대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은 지금의 우리를 구석기 시대의 인간처럼 보이게 만드는 문화적 차이를 가진 존재일 것입니다. 배고파도 슈퍼에 진열된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짐승과 문명화된 인간의 차이입니다. 왜냐면 그 음식이 내것이 아니고 그런 반문명적인 행동을 하면 길게 봐아서 어떤 결과를 가지게 될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시대로 갑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지금의 우리가 야만적으로 보일 것입니다. 기술 때문이 아니라 생각과 문화때문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