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아고라

PSM님에게

격암(강국진) 2024. 9. 30. 02:23

PSM님에게

보내주신 글은 잘 읽었습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사람들이 흥분하는 것만큼 현실적이지 않으며 AI에 대해서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가져야 하는 생각이 우리가 그걸로 뭘 할까라는 문제의식이라는 말씀이 먼저 기억에 떠오르는 군요. AI시대와 통계의 문제를 언급하신 것도 생각납니다. 그걸 읽고 나니 다시 몇자를 쓰고 싶어서 컴퓨터에 앉아 봅니다. 

3번의 만남속에서 우리는 아주 여러번 AI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만 AI란 결국 어떤 대상에 대한 데이터입니다. 데이터를 모아서 그걸 활용하기 쉽게 컴퓨터로 특별한 모습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지요. 그럼 왜 데이터를 모아서 쓰는가? 그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그건 친구를 사귀는 것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PSM님을 몇번 만나면서 님에 대해 몇가지를 알게 되고 아 이분은 이런분이구나라고 알게 되는 만큼 님에 대해 편하게 느끼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어떤 대상, 어떤 환경, 어떤 시스템에 대한 지식 즉 데이터를 통해 그 대상, 환경, 시스템에 대해 편하게 느끼게 되는 거지요. 아래에서는 이 대상, 환경, 시스템을 그냥 하나로 환경이라고 부르겠습니다. 

AI에게 이 환경은 AI를 만드는데 쓰이는 데이터를 생산하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강국진이라는 저 개인의 데이터를 모아다가 AI를 만든다면 그 환경이란 강국진이라는 개인이 되는 것입니다. 강국진에 관한 데이터로 AI를 만드니까요. 바둑이라는 게임에서 데이터를 얻어다가 알파고 같은 AI를 만든다면 이 환경이란 바둑이라는 게임입니다. 인간의 언어활동에서 데이터를 얻어다가 챗GPT같은 LLM AI를 만든다면 이 환경이란 인간의 언어활동을 말합니다. 자동차의 주행기록을 통해 AI를 만든다면 이 환경이란 교통시스템을 말하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컴퓨터의 프로그램을 짜주는 AI를 예로 든다면 이 경우 이 AI는 컴퓨터 자체에 대한 데이터로 만들어지는 것이며 우리는 이런 AI를 통해 컴퓨터에 대해서 편해지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지식이나 경험이나 데이터를 통해 상대에 대해서 알아가고 더 편해지게 되는 과정은 AI를 만들기 이전부터 계속 되어오던 일이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개인적으로는 친구를 사귈 때도 같은 일이 있죠. 그리고 과학자도 자연이라는 대상에 대해서 많은 기록과 지식을 알게 되면서 과학을 발전시키게 되죠. 과학자는 특히 자연에 관한 그 많은 경험들, 지식들 속에서 자연법칙이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중력법칙이나 관성의 법칙같은 거 말입니다. 그렇게 법칙을 발견하면 자연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자연에 대해서 더 편해지게 되죠. 그냥 산처럼 많은 데이터를 가진게 아니라 그걸 응축시켜서 간결하게 표현한 법칙이 있는 거니까요. 과학이 발전하면 자연을 개발의 대상으로 여기고 자연법칙을 이용해서 여러 기술을 개발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이때문입니다. 

이런 문맥에서 말하자면 AI가 이전의 친구 사귀기와 다른 점은 데이터가 너무 많아서 그 안에서 법칙을 발견하는 일을 인간이 하는게 아니라 컴퓨터의 모델 최적화라는 과정을 통해서 한다는 점입니다. 과학자는 과학법칙을 인간의 직관을 통해서 얻죠. AI는 컴퓨터 최적화과정을 통해서 만들어 집니다. 그래서 저는 과학법칙처럼 AI를 지식이라고 부릅니다. 

많은 데이터를 응축해 놓은 AI라는 지식을 가지면 우리는 그 AI을 만드는데 쓰인 데이터가 나온 대상과 편하게 소통할 수 있습니다. 바둑을 몰라도 바둑 AI가 있으면 바둑이라는 게임을 아주 잘 할 수 있는 것처럼, 법률데이터를 가지고 만든 AI가 있으면 뛰어난 법률가처럼 법률게임을 잘할 수 있게 되고, 의료데이터를 가지고만든 AI가 있으면 뛰어난 의사처럼 질병진단게임이나 치료게임을 잘하게 되는 겁니다. 

이걸 보면 알지만 첫째로 AI는 그냥 하나의 뛰어난 지능을 가진 존재라기 보다는 뭐뭐에 관한 지식입니다. 그래서 가치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제가 님에 대해서 아는 것과 님이 저에 대해서 아는 것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지니까요. 회사가 소비자에 대한 지식을 가지는 것과 소비자가 회사에 대한 지식을 아는 것도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지지요.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누가 무엇에 대해서 아는가가 다른 겁니다. 

둘째로 우리가 AI를 피할 수 없는 이유는 지금의 세상에는 너무나 복잡한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복잡해서 그걸 옛날 방식으로 공부하기에는 너무 지식과 데이터가 많으니까 그 데이터들을 모아다가 AI를 만들어서 그 AI의 대상이 되는 것과 잘 소통하려는 거지요. 오랜기간 바둑을 배우지 않아도 바둑 AI를 써서 바둑 고수가 되는 것처럼 우리의 능력을 AI를 써서 늘리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AI는 인간의 지능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님의 글에도 나와있듯이 인간이 타고난 능력은 현대 사회처럼 복잡한 것에 대처하기 에는 부족합니다. 인간은 현대사회같은 인위적인 환경에서 살도록 진화했던게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AI가 필요한 겁니다. 

질문이 있어야 답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 어떤 대상에 대한 데이터를 모아다가 AI를 만들려고 하는지. 앞에서 말한 것처럼 AI는 여러가지 형태로 만들어 질 수 있고 그에 따라 누구에게 편하고 유리한 것인가가 달라지기 때문에 이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대형 회사들 중심으로 AI를 만들면 그들은 소시민의 개인적 문제들보다는 공장을 돌리고 많은 소비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회사들의 입장에서 AI를 만들 겁니다. 

세상에는 휴머노이드 로봇이나 뭐든지 아는 슈퍼지능을 가진 AI에 대한 말들이 많습니다. 아시겠지만 저는 이런 현실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왜냐면 그런 식으로 AI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떤 문제를 AI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가라던가 AI의 한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감추기 때문입니다. 그냥 뭐든지 해주는 마술램프같은 것으로 AI를 인식하고 그것이 기업에게 좋을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좋다는 식으로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좋은 것으로만 여기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건 AI에 대한 불필요한 공포를 만들거나 맹신을 만드는 일입니다. 

AI는 소통에 대한 것이고 AI는 데이터에 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우리 사회가 어떤 곳인지를 바꿔갈 것입니다. AI의 힘이란 결국 데이터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사람들은 이미 데이터의 가치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데이터를 쌓아갈 때 우리는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그 데이터를 기억하고 분석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나에게 내가 누구인지를 더 잘 알려줄 것입니다. 결국 나는 내가 기억하는 것이고 내가 그 기억속에서 인식하고 발견하는 것이니까요. 

AI는 잘 활용되어지면 우리로 하여금 훨씬 더 편하게 서로 소통하게 만들 수 있는 기술입니다. 그 편한 소통이 새로운 미래를 열어갑니다. 그러나 무조건 좋은 미래는 아닙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님에 대해 모든 걸 아는데 님은 저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면 저만 님에 대해서 어떤 지배력을 가지게 되겠지요. 이것이 두려워서 서로 소통하는 것을 끊어버린다면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진짜 친구가 되려면 서로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무엇이 위험한가를 알면서도 또한 신뢰를 키워서 소통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AI의 좋은 힘이 발휘되겠지요. 그래서 AI가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AI를 이해하고, 사람들이 서로를 믿고 협력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신과 같은 AI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좋은 사회를 저절로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게 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간의 만남은 즐거웠습니다. 잘 참여해주신 것에 대해서 다시 감사드립니다. 기회가 되면 언제 또 뵙게 되면 좋겠습니다. 행운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