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고 사는 일의 어려움 2
지난 번에 지키고 사는 일의 어려움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습니다. 그 글은 가진 것에 집착하고 익숙해지면 오히려 그걸 지킬 수 없게 된다는 글이었습니다. 이 글에 대해 질문을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 질문은 익숙해지지 않으면서 소유를 감사하게 누릴 수 있는 법, 비물질적 소유의 문제,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는 방법 그리고 일상에서 실천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것들에 대해서 몇자 써볼까 합니다.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첫번째 답은 일단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대개 우리가 이러저러하게 하면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의 선택이 미래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결정론적이지는 않습니다. 즉 스스로의 선택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곤란하지만 자기 선택만으로 미래가 결정된다고 믿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고,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건 우리가 우리를 지킬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이걸 계속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 모습은 나 이상으로 나를 둘러 싼 사람들 나아가 이 세계 전체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모습이 비록 이런 저런 불편한 것이 있고 아쉬운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름대로 괜찮은 모습이라면 우리는 아 내가 해냈구나 하는 생각이전에 세상에 감사해야 합니다. 나는 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럭저럭 살고 있는 것은 세상이 나를 지켜주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주 많은 것을 공짜로 세상으로 부터 받았습니다.
사람은 유한하기 때문에 커다란 상실앞에서 누군가를 원망하고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생기는 일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저도 제가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비극으로 제 삶이 온통 엉망이 된다면 세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인간인 이상 누구나 망가지는 한계가 있달까요. 하지만 다행히도 저는 그렇게까지 큰 비극들을 겪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그런 우리들은 세상에 대한 감사함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은 우리가 과거에 좋은 선택을 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또한 그 이전에 세상의 관대함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이게 전부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바로 가진 것에 익숙해지는 일에 빠져 듭니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우리의 이론에 지나치게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내가 지금의 나로서 나를 지키고 살 수 있는 것은 이러저러한 전략을 잘 따를 수 있는 나의 현명함 덕분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미래는 예측할 수 없고, 우리는 겸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진 것이 당연한게 아닐 때 우리는 가지는 일에 익숙해 지지 않고, 그걸 잃어버렸을 때도 덜 상처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그건 온전히 내 힘만으로 나에게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걸 말하고 났을 때 자기를 지키는 방법중에서 제가 아는 것은 물론 글쓰기 입니다. 글쓰기는 자기 성찰의 방법입니다. 인간의 기억력이란 아주 형편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성찰을 하지 않는 사람은 어제의 나와도 의견이 달라집니다. 어제의 나는 배우자에게 매우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이 사람을 위해서는 뭘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오늘의 나는 반대로 저 배우자에게 나는 과분한 존재이며 나는 억울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의 나는 계획을 세우고, 어떤 일을 시작함으로서 내일의 나에게 숙제를 줍니다. 그러니까 자기 성찰이 없는 사람은 계속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싸우게 됩니다.
그래서 글쓰기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차분히 혼자 산책을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자기를 생각해 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정말 중요한게 뭔지, 내가 정말 억울한 건지, 나는 행운아인지 운이 없는 건지를 생각해 보지 않고 즉흥적으로 느끼는 대로 판단하면 다시 한번 내일의 나와 싸우게 됩니다. 즉 내일은 다시 후회할 일을 하는 거지요.
꼭 글쓰기만이 방법인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부족한 기억력을 가진 인간이 조금 더 인간적이 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흔들릴 때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잡아주기도 합니다. 내가 매일 매일 하는 하루의 일과가 하나의 관행처럼 나를 잡아주기도 합니다. 내가 과거에 했던 말들이 나를 잡아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여러가지 형태로 표현하고 주변에 저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관되게 자기를 지키면서 어제와도 그렇게 다르지 않은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나의 환경이 나를 만들고 보존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내 환경을, 내 주변 사람을 잘 관리하는 일은 그래서 아주 중요합니다.
하지만 글쓰기는 자기를 기록하는 일중에서도 탁월한 데가 있는 방법입니다. 글을 쓰는 것은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내가 이렇게 변했구나하고 자기를 확인하는 일입니다. 자기를 확인하기 때문에 자기를 지킬 수가 있습니다. 이것도 습관이 되고 연습을 해야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글쓰기와 독서는 우리의 시야를 넓혀서 우리를 더 넓은 무언가로 보게 만듭니다. 뒤집어 말하면 그것들이 없이 우리는 점점 작아진다는 겁니다. 다리가 있어도 그걸 오랜동안 한번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다리는 망가질 겁니다. 자신이 그 다리를 잃었다는 생각조차 못할지 모르죠. 좁아지는 시야는 결국 우리로 하여금 뭔가를 망각하게 하고 그걸 잃어버리게 합니다. 결국 우리는 마치 한 마리의 짐승처럼 변해가는 것이지요.
글쓰기와 독서는 변화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말했듯이 인간은 부족한 기억력을 가지기 때문에 그것들이 없이 자신을 자세하게 살피는 일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행동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을 모르거나 자신의 불행과 상실이 어떤 방식으로 생겨나고 있는지를 자세히 살필 수가 없습니다. 천천히 자세히 살펴야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어떤 위화감의 원인을 알 수가 있습니다. 뭔가가 이상하고 잘못되어 있는데 그게 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고 나서야 우리는 변화할 수 있습니다. 말에 너무 집착해서 말의 의미만 너무 파는 것도 옳지 않지만 말의 의미에 대해 깊게 고민하는 일이 없이는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알 수가 없습니다.
자기를 지키는 방법의 정론은 이것이다라고 제가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저로서는 지금 떠오른 생각을 조금 적어보았습니다. 우리의 한계와 무지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가진 행운을 기억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마음이 잠들지 않도록 해야겠지요. 저는 글쓰기를 권합니다만 일단 정기적으로 생각에 잠기는 산책이라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화해시키기 위해서 말입니다. 어찌될지 몰라서 우리는 지금의 위치에 있고 또한 어찌될지 모르니 우리는 내일을 삽니다. 불안과 희망은 삶의 같은 측면에서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