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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AI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격암(강국진) 2025. 1. 14. 11:04

소버린 AI라는 단어와 함께 한국이 AI 분야에서 뒤쳐지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있다. 이같은 주장은 당연히 부정하기 어려운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1990년정도부터 AI를 공부했던 나로서는 그러므로 우리도 열심히 하자, 미국처럼, 중국처럼 하자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이런 주장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면 AI 분야에서 한국이 선두를 차지하게 되는게 아니라 한국이 가진 작은 희망마저 불태우게 되기 쉽다. 

 

일단 부정적인 입장에서 말해보자면 사실 한국이 AI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나같은 오래된 AI 연구자 세대로서는 쓴웃음이 나오는 이야기다. 도대체 한국이 이제까지 AI 분야에서 뭘 했길래 AI 분야에서 선진국이 된다는 것인가? 20년 정도 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AI와 관련된 해외학회에서 나는 한국인을 만난 적이 거의 없었다. 이번에 노벨상을 받은 홉필드라던가 힌턴같은 사람들이 열심히 활동하던 시절에 한국은 AI의 불모지였다. 그런데 갑자기 한국이 AI의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는 자신감은 어디에 나오는 것일까? 중국처럼 사람도 많고 경제규모도 크다면 또 모른다. 돈도 사람도 없는데 한국이 왜 AI 선진국이 되어야 할까?

 

이같은 말은 한국이 AI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말이라기 보다는 그게 무슨 뜻인지 그리고 한국의 장점은 뭔지에 대해 고민하고서야 희망이 보일 것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하는 걸 우리도 하자는 식으로 접근하자면 그건 마이크로 소프트가 윈도우를 파니까 우리도 우리 OS 만들자고 하는 것보다 더 말이 안된다. 다시 말하지만 돈도 사람도 없다. 왜 제프리 힌턴이 AI의 아버지로 불리냐 하면 그 사람은 물론 그와 연관된 사람들이 지금 세계 AI 분야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오랜 연구속에서 얻은 경험이 세계 AI 분야를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AI 분야를 무시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닌텐도 게임기 만들면 우리도 만들면 된다고 하는 말은 오만이다. 마찬가지로 k pop이 잘나가는걸 보고 베트남이나 태국이나 필리핀이 우리도 금방 할 수 있다고 말하면 한국인은 그걸 오만으로 느낄 것이다. 왜냐면 k pop은 긴 역사 위에서 성공하게 된 것이지 공식 몇개 가져다가 쓰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말은 오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AI도 그렇게 여기는 건 아닌가? 이 말이 우리는 우리의 LLM을 만들 필요가 없다던가 AI 연구를 하고 인프라를 만드는데 투자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다만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AI 선진국이 뭔지 더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강점이 뭔지 고민해야 한다. 섣불리 우리도 슈퍼컴퓨터 만드는데 돈을 다 태우자고 하거나 노벨상급 인사를 불러 오기 위해 돈을 다 태우자고 하면 그나마 있는 희망도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AI 선진국이란게 뭘까? 내 답이 꼭 옳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나는 한국이 가진 희망은 대중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인터넷의 역사에서 보면 초기에는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했던 때가 있었는데 그건 물론 뛰어난 엔지니어와 정부의 적절한 투자덕분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한국의 대중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즉 한국의 대중은 도구를 주면 그걸로 재미있는 것들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좋다. 즉 대중의 참여가 인터넷을 기반으로 문화를 만들고 그것이 미래를 열어간다는 것이다. 반대로 정부에서 대기업에서 이제 우리가 결정하는 방향으로 힘을 모으자고 하면 망한다. 한국의 엘리트는 그다지 똑똑하지 않다. 똑똑한 인재이건 경험있는 인재이건 외국에 더 많다. 

 

그러므로 나는 AI 선진국이라는 의미를 AI 대중화가 많이 된 나라로 여겨야 한국에게 경쟁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AI 대중화란 결코 단순히 대기업이 만든 AI를 대중이 많이 쓴다는 의미만 있는게 아니다. 지금은 여러가지 이유로 AI의 사용이 매우 제약되어져 있다. 이걸 이렇게 표현해 보자. 지금은 문자로 말하자면 누군가 몇몇 글쟁이가 글을 쓰면 대중은 그걸 그대로 외우는 식으로만 글을 사용한다. 그게 아니라 대중이 직접 글을 쓰는 시대가 문자가 대중화된 시대다. 연구소에서 AI 개발자들이 AI를 독점적으로 개발하려고 하지 말고 AI를 써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대중에게 개방해야 한다. 그러면 대중은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AI 문화를 만들어 갈 것이다. 대중이 AI 개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코딩 교육이나 AI 지식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게 아니라 개발환경의 개선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별다른 공부없이 AI 개발을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이걸 위해서도 물론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건 구글이나 테슬라나 openAI를 이기기 위해 더 좋은 AI를 만드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는 우리가 무슨 문제를 풀려고 하는가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 뛰어난 AGI가 나오면 그게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나라 같은 곳에서 더 많은 AI 투자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우리는 당장 AI를 쓸모있게 써야 한다. 언제 무슨 소용이 될지도 모르면서 AI 개발에 돈을 쓰면 민간 자본이 투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의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면 어설프게 라도 포털 서비스를 하고, 메신저 서비스를 하고, 인터넷 쇼핑을 해야 사람들이 인터넷이라는게 도움이 된다 싶어서 인터넷에 더 많은 돈이 투자된다는 뜻이다. 최고의 인터넷 서비스를 위해 돈만 들이고 있는데 그게 실제로는 뭘 할지 모르면 좋은 서비스가 나오기 전에 돈이 떨어지고 만다. 한국같은 작은 나라는 특히 이 점을 주목해야 한다. 말했지만 우리는 돈도 사람도 없다. 사람들은 휴머노이드 로봇이나 AGI같은 것을 떠들지만 그래서 우리가 좀 더 신경써야 하는 것은 오히려 팔란티아같은 AI 솔루션을 만드는 방향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쓸모 있어지는 때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걸릴 것이다.  

 

우리는 문제중심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그걸 AI로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 대중 중심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기업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가 풀어야 할 문제를 AI로 풀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AI 에어컨이니 하는 말에 익숙하다. 이런 건 기존의 에어컨에서 온도 조절을 하는 부분을 AI로 해결하겠다는 뜻이다. 이게 대중의 문제일까 기업의 문제일까? 기업의 문제다. 이미 있는 서비스, 이미 있는 기계, 이미 있는 산업에서 하던걸 AI를 써서 좀 더 잘하겠다는 것이다. AI 챗팅봇으로 고객응대를 한다던가 하는 것도 기업의 문제를 풀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는 결국 에어컨을 사고 어떤 회사의 서비스를 쓰면서 그 안에서 AI를 쓰게 된다. 공장 노동자를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대체하는 것도 기업의 문제를 푸는 것이다. 

 

대중 중심적 문제는 뭘까? 예를 들어 헤드헌팅을 생각해 보자. 만약 회사들과 사람들의 이력서를 기반으로 빠르게 사람들에게 직업을 찾아주는 AI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이건 헤드헌팅 회사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쉽게 일자리를 얻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푸는 것이다. 세금처리나 각종 법률 문제를 해결해주는 AI는 어떤가? 이것도 대중의 문제를 풀고 있는 것이다. 건강관리나 노인들 상담을 해주는 AI는 어떤가?

 

회사 위주로 AI가 발달하면 AI는 그 발전이 제약된다. 왜냐면 회사는 대개 스스로의 이익 모델을 망가뜨리지 않는 차원에서 AI를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금의 비지니스 모델을 폐기하고 완전히 새로운 비지니스를 시작하지 않는다. 마차회사는 아예 자동차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더 좋은 마차를 만들려고 할 뿐이다. 혹은 회사의 이익구조를 개선하려고 할 뿐이다. 대중 중심으로 AI가 발달하면 우리는 훨씬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우리의 문제를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새로운 산업의 등장일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기업들을 오히려 위협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인터넷이 발달하자 공유경제 사업이 나오게 되었다. 호텔이 인터넷을 쓴다고 에어비엔비 서비스를 하게 되는게 아니다. 빈 방을 가진 사람들이 인터넷 서비스가 발달하자 연결을 통해 호텔 비지니스를 대체하는 사업을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AI를 쉽게 쓰기 어렵다. 그러나 사실 AI는 굉장히 쉽게 쓰게 만들 수 있다. 이 말은 누구나 AI를 써서 문제의 해결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코딩을 모르고, 딥러닝이니 강화학습이나 트랜스포머같은 말 몰라도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AI가 존재하는 것이다. 어떤 환경속에서 AI를 쓰면 그게 대중에게 도움이 되고, 대중이 직접 더 자유롭게 AI를 개발할 수 있으며, 대중들을 이어줄 수 있는지 그런 부분을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AI 문화가 만들어 지면 다른 것도 더 잘 될 것이다. 킬러앱이 등장해야 기술이 잘팔린다. 아직은 AI의 킬러앱이 없다.

 

정부중심, 대기업중심으로 AI를 개발하는 것만 신경쓰면 돈만 잔뜩 날리고 별로 결과는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사람도 돈도 외국에 훨씬 많기 때문이고, 우리는 그간 AI 분야에서 쌓아온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컴퓨터로 말하자면 프로그래머는 금방 키울 수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컴퓨터 공학을 아는 사람 나아가 컴퓨터 철학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건 코딩하는 법을 공부하는 것과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