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것과 규칙
세상이 위험하다고 여길 때 우리는 흔히 더 많은 규칙을 만든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앞에서 교통사고가 나면 초등학교 앞에서는 속도 제한을 하는 규칙을 만들고 빵을 먹고 식중독이 생기면 빵에 유효기간을 표시하라고 한다던가, 어떤 검사를 통과해야 빵을 팔 수 있다는 규칙을 만든다. 누군가가 어떤 것이 위험하니 규칙을 만들자고 할 때 사람들은 대개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는 논리를 이기지 못하는데 일이 그렇게 흘러가는 주된 이유는 앞에서 든 것처럼 교통사고나 식중독같은 어떤 비극적인 일이 실제로 벌어졌을 때 다음번에는 그걸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공감대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아주 많다. 우선 어떤 비극이 슬픈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일어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져보았는가 하는 것이 있다. 하나의 비극도 크다는 말은 쉽지만 국가적 단위에서 법을 만들 때 확률을 따지지 않고 하면 비용이 너무 커진다. 비용을 따지는 것이 매정해 보일 수는 있어도 사람은 돈때문에 언제나 죽는다. 돈을 무시하는건 어딘가에서 바로 그 돈이 없어서 죽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게다가 더 일반적인 문제들이 있다. 통신과 교통수단이 발달함에 따라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점차로 넓어져 왔다. 반대로 말하자면 세상이 좁아진 셈이다. 지구 건너편에서 유괴가 일어났다고 해서 우리 동네도 유괴를 조심하자는 식의 생각은 세상이 이렇게 좁아졌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지구 반대편과 이곳을 분리된 곳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 국내라고만 해도 이미 온갖 나쁜 일들이 날마다 벌어진다. 부산의 패륜아 사건이나 대구의 학폭사건은 과연 서울 사람들이 신경써야 하는 것일까 아닐까? 서울에서 일어난 대형 마약 사건이나 불륜 사건은 부산이나 대구 사람에게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아닐까? 세상이 좁아지고 인구는 늘었으니 나쁜 일은 많아졌고 세상이 더 위험하게 느껴지게 된다. 그러므로 규칙은 계속 늘어난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는 역설적으로 윤리적 주체성이나 가치 평가를 하는 능력을 잃게 된다. 규칙이 없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좋은 일일 수는 없다. 실제로 세상이 위험하다면 우리는 많은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규칙은 변하지 않고 너무 많아지기 쉬워서 현실과 규칙 시스템이 맞지 않기 쉽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시스템에 억압된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규칙이 없을 때 인간의 행동은 개인적인 가치판단이나 최적화에 의해서 결정된다. 즉 여러가지 가능한 행동중에서 어떤 행동이 가장 가치있는 판단인지를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중요한 것은 지키지만 그러기 위해 어떤 것은 포기한다. 즉 최적화를 하는 것이다. 사람을 구하러 강으로 뛰어들어야 할 때는 몸이 물에 젖는 문제는 포기해야 한다.
그런데 복잡한 규칙의 시스템 속에서는 사람들은 점차 자기가 할일을 스스로 경중을 파악해서 하기 보다는 규칙을 지키는 것이 내가 할일의 전부라고 생각하게 된다. 규칙을 어긴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하고 규칙을 어겼다는 판정을 받지 않은 사람은 죄가 없다. 이런 관점에서는 강에서 사람이 빠져 죽는 걸 봐도 그걸 구하는 것은 손해다. 왜냐면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벌을 받는다는 규칙은 없고 그냥 못봤다고 해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이 물에 젖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는 규칙같은 것은 있다. 나라가 망할 것같아서 시위에 나간다고 하는 사람에게 누군가가 교통 법규만 따지는 것을 보면 우리는 이런 심리를 다시 느끼게 된다. 일의 가치평가와 경중이 없고 그저 규칙을 지키는가 마는가가지고 꼬투리 잡기만 한다.
규칙이 많은 시스템 속에서 사람들은 점차 무책임해진다. 사람들은 점차 일을 하는 것은 시스템이고 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눈앞에서 친구가 굶어도 음식을 줘야 하고 그 친구를 도와줘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시스템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굶는 친구 앞에서 자기만 도시락을 먹는 학생은 가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왜냐면 자기 도시락을 혼자서 먹는 학생은 규칙을 어긴게 없기 때문이다. 굶는 학생을 도와야 한다면 그건 적절한 법이나 시스템이 있어서 그런 것들이 해야 하는 일이지 내 일이 아니다.
결국 시스템을 키울수록 우리는 관심을 시스템에 집중시키고 인간은 잊게 된다. 그러니까 좋은 나라를 만드는 일의 핵심은 좋은 법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더 많은 법을 만들고 더 시스템을 키운다. 좋은 교육도 마찬가지다. 더 많은 제도를 만들고 대학입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이러는 가운데 좋은 사람이 좋은 나라, 좋은 교육을 만든다는 생각은 점차로 희미해지고 심지어 무책임한 주장이라고 까지 여겨지게 된다. 우리는 더 열심히 법을 만든다. 그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아이가 길에서 죽게 생겼는데 그런 아이를 구하기 위한 위원회를 소집하고 예산을 마련하겠다는 식의 발상이 생겨난다.
규칙이 안전을 보장해 준다는 생각은 다른 문제도 있다. 사람들은 많은 규칙속에서 살면서 점차로 불확실성에 대해 잊게 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규칙을 지키는 일이라는 생각은 세상일은 예상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엘리베이터는 고장없이 항상 움직여야 하고, 버스는 제 시간에 정거장에 와야 하며, 월급은 제 날짜에 통장에 들어와야 한다. 사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기계적 시스템은 불확실성을 적으로 여긴다. 그래서 그걸 최대한 없애려고 하고 없앴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저 내 할일을 기계적으로 정확히 하면 된다. 그러면 예측한 결과가 정확히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배운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실은 이렇게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많은 것이 불확실하고 그래서 우리는 그걸 확률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은행직원은 고객을 속여서는 안되고 따라서 그 사람이 권하는 상품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엉터리라고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위험해 보여도 건물이 무너질리가 있냐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현대 사회는 두 가지 힘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다. 하나는 규칙성을 지키려고 하고 불확실성을 몰아내려고 하는 힘이다. 이 힘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규칙의 시스템을 만들려고 하는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발생한다. 또 하나는 불확실성을 발생시키는 힘이다. 이 힘은 사회가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곳이 됨에 따라 발생한다. 모든 것은 한계가 있고 인간이 만든 시스템의 한계너머에서 이 불확실성이 발생한다.
나는 예전에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산불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산불이란 사고다. 그래서 예전에는 산불이나면 그걸 무조건 껐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불을 끄는 일을 계속하다보면 숲이 점점 더 무성해 진다. 그리고 어느해에 사람이 막지 못한 산불이 나면 그 규모가 어마어마해진다. 즉 산불이라는 불확실성을 막으려는 노력이 거꾸로 어떤 때는 거대한 재앙을 불러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자연적으로 생긴 산불은 끄지 않는다는 원칙이 생겼다고 한다. 작은 산불을 자꾸 인위적으로 막으면 거대한 재앙이 생기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을 자꾸 막으려는 노력 나아가 불확실성을 잊으려는 노력이 있을 때 일어나는 일은 앞에서 말한 거대한 재앙과 비슷하다. 규칙을 지키면서 전혀 사고 없이 살다가 어느 날 거대한 재앙이 일어난다. 모든 규칙을 지켰기 때문에 안전하다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느새 규칙만 지키면 내 할일은 다 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복잡해지고 현실과 맞게 되지 않은 규칙들도 사람들은 지켜야 한다. 규칙은 규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태도를 유지하다보면 왜를 묻지 않게 된다. 이 규칙이 왜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니까 사거리에 차도 사람도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지만 교통신호는 지켜야 한다. 이런 일에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점차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왜를 묻기를 포기한다. 그건 그냥 규칙이니까 그렇다. 왜 사법부는 이렇게 돌아가고 회사는 이렇게 돌아가고 교육은 이렇게 돌아가는가? 그건 그냥 규칙이다. 이유는 알기 어렵다.
뭔가를 정확히 하려는 노력이 우리는 더 큰 불확실성에 빠뜨릴 수 있다. 왜냐면 사실 무한히 정확한 것은 있을 수 없는데 그게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꾸 어떤 작은 세계안에 우리를 집어넣기 때문이다. 그 작은 세계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바깥 세계 속에 있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우리가 보지 못하던 그 불확실성이들어나는 순간 너무 큰 사고가 나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반성이 아니라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은 참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의 반대도 사실이다.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 반성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세상이 온다. 시스템, 규칙, 제도 따위에 너무 매몰되면 안된다. 첫째로 더 잘하려고 할 수록 그 시스템이라는게 커지고 복잡해 지는데 나중에는 그걸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렇게 된다. 그러면 간단한 일을 너무 복잡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잊게 된다. 둘째로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판단하고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감정이 둔해진다. 어린 아이가 길에서 울고 있는데 아무도 돌봐주지 않았다면 그건 나의 책임이고 우리의 책임이다. 그 책임이란 좀 제대로된 제도를 만들어 둘걸이라는 뜻이 아니고 그런 걸 따지기 전에 당장 아이를 돌아볼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규칙을 만드는 일은 이런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그건 너무 자주 잊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