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에 대하여
나는 두 권의 책 (철학을 하지 않는 닭,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을 출판한 적이 있고 예측상으로는 이번 달 안으로 새로운 책 (무엇을 바꿀 것인가)를 출간할 예정이다. 이렇게 몇권이나 책을 쓰고 나니 출판에 대해 몇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중의 하나는 과연 출판이 비지니스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출판은 비지니스다. 수지가 맞질 않으면 출판사는 직원 월급도 줄 수 없고 인쇄도 할 수 없다. 그런데 비지니스로 출판을 접근하게 되면 아무래도 소비자의 수요에 따른 공급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자전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자전거를 생산해서 파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사고 방식으로 접근해서 만들어 내는 책이 과연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요즘 생성형 AI가 보여주는 능력을 생각하면 아주 중요한 문제다. 한편의 글도 써지려면 나름의 핵심적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그 아이디어를 잘 발달시키고 전달해야 좋은 글이 되는 것이지만 아무리 글솜씨가 좋아도 하고 싶은 말, 전달하고 싶은 핵심적 아이디어가 없으면 그냥 겉만 번지르르한 글이 될 뿐이다. 뭔가 문장 문장을 읽으면 많은 정보가 있는 것같은데 다 읽고 나면 생각하게하고 뭔가 배웠다는 느낌이 드는게 하나도 없다. 그 안에 내가 공감해야 하고 공감하라고 주장하는 메세지가 없다.
이게 왜 AI 시대에 더욱 중요한 문제냐 하면 AI가 이런 메세지없는 글은 잘 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 나는 책을 읽다가 저자가 knowledge라는 단어의 역사적 발전에 대해 쓴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 궁금해서 AI에게 knowledge라는 단어의 역사적 발전과정에 대한 에세이를 써보라고 했더니 전문가가 아닌 내가 보기에는 대학교수가 쓴 글처럼 멋지게 써줬다. 양자컴퓨팅이 뭔지에 대해 책을 쓰고 싶은가? AI에게 그게 뭐냐고 물어보면 멋지게 답을 해준다. 이런 걸 모은 걸 책이라고 하자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걸 왜 돈주고 사봐야 하는가? AI는 더더욱 책이란 무엇이야하는가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독자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것을 듣고 싶어하지만 사실 독자가 들어야 하는 것은 괜찮은 작가로 부터 나온 들을만한 이야기다. 다시 말해 출판업에서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소비자의 수요나 요구가 있으니 그걸 생산해서 준다는 논리가 통하는게 아니라 반대로 이게 생산되었으니 이걸 소비하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이게 매우 오만한 자세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첫째로 이 이야기는 극단적으로 단순하게 말한 것이다. 사실 전적으로 이럴 수가 없다. 둘째로는 좋은 책이란 본래 그런 거라는 것이다.
이런 예를 들어보자. 멀리서 한국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는 친구가 나를 방문했다. 뭘 먹어야 할까? 그럴 때 우린 단순하게 말하면 두 가지 태도를 취하게 된다. 하나는 친구가 원하는 음식이다. 또 하나는 내가 추천하는 음식이다. 친구가 먹을 거니까 친구가 원하는 음식을 주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한국에 대해서 모르는 친구가 뭘 선택할까? 그게 정말 가장 좋은 음식일까? 한국이라는 지역에 대해서 잘 아는 내가 음식을 선택해서 여기서는 이걸 먹어보고 가야 한다고 하는게 더 옳지 않을까? 내 경험상 이 양극단중 하나를 택하는 것은 극단적이지만 단순하게 말하면 후자가 옳다. 손님은 이 지역을 모른다. 내가 주도해서 이것저것 추천해주는 것이 옳다.
책이란 무엇보다 작가의 정신이나 내부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바깥 세상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그건 그런 내적 세계에 비춰진 바깥 세상이다. 작가는 자기 안에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하다 싶은 이야기를 고르고 그걸 다듬고 다듬어서 책을 만든다. 그래도 좋은 책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책이란 하나의 거대한 빌딩같아서 여러가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비자인 독자가 원하는 것을 네가 원하니까 들려주겠다고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면 엉뚱한 곳을 헤매기 쉽다. AI 이야기를 하는데 AI는 언제 의식을 가지게 되는가같은 질문은 흥미를 끌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으면 말하는 사람도 재미없고, 듣는 사람도 배우는게 없다. 애초에 이런 질문 자체가 기초적인 혼돈위에서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미국이나 일본에 가서 여기서 최고의 김치는 무엇인가요라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 최고의 김치를 찾을 곳이 애초에 잘못되어져 있다. 우리는 한국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자꾸 미국과 일본에 머물고 있다.
음악이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영감의 산물이듯이 책도 그렇다. 책도 엄밀하게 말하면 작가가 쓰는 것도 아니다. 작가도 고치고 고치다가 보면 자신도 모르는 책을 완성하게 되는 것도 크다. 그래서 아이를 낳을 때 이런 저런 아이를 낳아줬으면 해요라고 요구할 수 없는 것처럼 작가에게도 그런 요구는 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이 계획하고 아는 대로의 책을 쓰면 그것은 정말 최악이다. 창작이란 그걸 하는 작가에게도 흥미로운 것이어야 한다. 이걸 이렇게 저렇게 하다보니 이런 결과가 나오는 군 흥미롭네 하는 식어야 그 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없이 장수만 채우는 글은 읽을 가치가 없다. 책이란 그 자체가 내가 아는 것을 쓰는 것이라기 보다는 연구의 산물이다.
이렇게 책이란 어떻게 보면 땅에서 뽑아내는 것같이 그냥 발견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주문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제대로된 출판이란 책은 작가가 쓰고 그걸 정말 약간만 다듬고 포장해서 출판사가 적절한 독자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홍보 유통만 시켜야 한다. 독자의 요구에 맞는 책이 잘 팔릴 것이므로 출판사는 수요에 맞는 책을 생산하고 싶은 생각이 많겠지만 바로 그런 생각이 얇팍한 책들을 양산하게 하고 길게 보면 책을 읽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런 책들안에는 저자라는 인간이 없다. 참고서나 백과사전처럼 무미건조한 지식을 나열했을 뿐으로 진짜 중요한 메세지가 없기 때문에 왠지는 몰라도 많이 읽었는데 배운게 없다. 어디다 쓰는지 모르는 잡지식뿐이다. 그런 책을 계속 읽다보면 사람들은 점점 독서라는게 이렇게 의미가 없는 것이로군 하고 생각하게 될 뿐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자본주의 논리는 주도권을 거꾸로 가지게 한다. 즉 소비자가 왕이고 그 다음에는 출판사가 자리하며 작가가 권력 서열의 맨 밑에 있게 되기 쉽다. 왜냐면 작가가 책을 쓰면 일단 출판사가 나중에 읽고 그걸 평가하고 수정을 요구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돈을 주고 읽게 되는 것이 독자다. 권력은 언제나 나중에 읽는 사람이 더 크다. 학생이 선생님에게 숙제검사맡을 때를 보면 이걸 알게 된다. 작가가 1년동안 고민해서 만든 문장도 잠깐 보고 이건 별로네, 이건 없어도 되겠네라고 말할 수 있는게 바로 출판사 편집자고 최종 소비자인 독자다. 그들은 그럴 권리가 있다. 출판사는 계약을 했고, 인세를 준다. 소비자는 책값을 냈다. 하지만 이런 권력관계가 꼭 책을 더 좋게 만들지 않는다. 의사와 환자중 환자는 소비자지만 그렇다고 환자가 원하는대로 치료하는 의사가 있다면 그건 엉터리 의사다.
출판사의 존재 자체가 혹시 쓸데 없는 것은 아닐까? 웹튠이나 웹소설을 생각해 보자. 웹튠이나 웹소설은 무료로 서비스 글을 제공하고 뒷 부분에 대해 돈을 받는다. 그리고 편집인이 끼어들기 보다는 작가와 독자가 직접 만난다. 작가와 독자는 인터넷에 연결된 스마트폰이나 PC 그리고 플랫폼 소프트웨어를 통해 만나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소비하고 그 중에는 스타가 되는 사람도 있고 많이 팔리는 웹튠이나 웹소설이 나오기도 한다. 즉 시스템이 있고 소비자가 있고 나름 맛집 평가처럼 평도 있으니 팔리는 컨텐츠도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편집자의 역할이 없거나 축소된다는 것이다. 출판사나 편집자가 이걸 그려라, 이걸 써라, 이래야 출판된다고 하지 않는다. 그냥 작품이 독자를 만나고 독자가 인정하면 그걸로 좋다. 이것도 물론 독자가 작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스템이지만 그래도 최소한 출판사라는 중간 플랫폼을 통과하지 않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작가가 좀 더 자유를 가질 수 있다.
사실 내가 보기엔 AI의 발달 때문에 편집의 기능은 출판에서 별로 의미가 없어질 것같다. 어느 정도는 AI가 그걸 할 수 있고 어떤 의미에서는 더 잘한다. 만약 책을 홍보 하는 것까지 AI가 할 수있다면 출판사라는 중간 시스템은 빼고 독자와 작가가 직접 만나는 출판 시스템이 만들어 지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런 시도는 전자책을 이용해서 이미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대단히 성공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AI의 발달같은 새로운 환경이 만들어 진다면 그 결과는 또 다를지 모른다.
책을 만들고 유통하고 소비하는 것도 시대의 변화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요즘은 책이 너무 많다. 그래서 오히려 좋은 책이 나오기 힘든 시대다. 내가 이글에서 약간 시도했듯이 그것에 대해 어떤 설명을 붙일 수도 있지만 더 큰 범주에서 말하면 책이라는 미디어를 통한 소통이 시대적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면도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AI의 시대에 책이란 무엇인가를 우리는 고민해야 할 것이다. 쓰는 것도 그렇지만 읽는 것도 그렇다. 전에는 두꺼운 책을 다 읽어야 그 안에 내가 원하는 이야기가 나오는지를 알았지만 이제는 AI가 읽고 내가 원하는 것만 설명해 줄수 있다. 이것만 봐도 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젠 짧은 보고서가 더 좋은 시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