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단상
윤석렬이 12.3일 내란을 일으킨 이래 마음이 편한 날이 없었다. 무엇보다 나를 괴롭게 한 것은 현행범으로 잡힌 내란범을 즉각 체포 구금하는 것도 못하고 계속 그들의 헛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계몽을 위한 계엄운운하는 소리를 듣는 것은 모욕적이다. 현직 검찰총장이나 대통령직 대행이 법을 무시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도 모욕적이다.
그러나 모욕과 동시에 느끼는 것은 공포다. 마치 내가 살고 있는 집의 대들보에 누가 도끼질을 하고 있는 것같기 때문이다. 법치주의는 공화근의 기둥이다. 그런데 경찰이나 사법부를 포함한 행정부가 법을 무시하면서 시민들에게 꼬박꼬박 법질서 운운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모욕감과 동시에 공포가 든다. 그들 스스로가 법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법질서를 망치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때문이다. 만약 이 나라의 시민들이 민주적이지 않았다면 이 나라는 이미 내전상태로 들어가서 암흑으로 굴러 떨어졌을 것이다. 화염병과 식칼이 난무하는 가운데 정말로 사회적 혼란이 일어나고 그걸 핑게로 계엄같은 것을 실시해서 독재를 하려는 사람들이 득세했을 것이다. 외국인은 도망가고 경제는 마비되고 분노는 원한이 되어 치유불가능해졌을 것이며 일단 그렇게 되고 나면 그 상처때문에 다시 법질서가 자리잡기는 매우 힘들어 졌을 것이다. 그게 멀쩡하던 나라가 군사독재로 망해가는 순서니까.
이런 즉각적인 반응을 뒤로 하고 조금 더 뒤에서 문제를 보면 문제의 큰 원인중 하나가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미 세상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데 시스템은 단 한명의 인간 혹은 한 줌의 인간이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게 만든다. 군대의 사령관이나 경찰 수뇌부, 검찰 수뇌부도 그러하지만 헌재가 더욱 그렇고 대통령이 더욱 그렇다. 대통령이 미치니 나라가 당장 위기에 빠진다. 이제 헌재가 미치면 나라가 망할 판이다. 대통령 대행이란 자가 헌법까지 어겨가면서 헌법재판관을 임명안해도 5천만 국민은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한다. 판사 하나가 내란범을 풀어주라고 하면 내란범이 풀려난다.
이렇게 정보와 판단이 아주 좁은 길을 통과하게 만든 것은 독재시대의 잔재다. 그래서 민주적인 대통령이 자리를 맡으면 문제가 없다. 그들은 알아서 자신의 독단적 판단이 아니라 시스템이 일을 하게 만든다. 자신이 개인적으로 가진 지식과 판단은 결코 이 복잡한 국가의 일을 전부 판단할 수 없을만큼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만큼 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식하면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여긴다. 지금과 조선시대도 구분하지 못하면서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건 어리석은 것이다.
그런데 시스템이 일을 하게 한다는 것도 사실 문제가 있다. 그 시스템도 이렇게 고장나기 쉽다. 그냥 몇개의 부속에 해당하는 인간이 한번 작정하고 미치면 전체 시스템이 멈춘다. 썩었다고 해도, 멍청하다고 해도 설마 그렇게 까지 하겠어라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우리는 그것을 12월 3일 이후 계속 보고 있다. 계엄을 설마 하겠어에서 시작했지만 그걸 어영부영 따르는 군인이나 경찰수뇌부도 있고, 윤석렬만 미친게 아니라 그 내각의 총리며 장관도 다 미쳐서 나라가 엄청난 희생을 하고 있는데 정리하는 것을 막는다. 누가 내란을 옹호하겠어 싶지만 누구보다 여당이 지금 내란을 옹호하고 있다. 헌법을 무시하고 그들이 그렇게 어쩔 수 없다는 법도 무시한다. 3천원때문에 누군가의 생계를 끊어버리고 자원봉사 표창장에 대한 의혹때문에 한 가정을 풍지박살낼 때는 그렇게도 중요했던 법이 내란범앞에서는 휴지조각만한 가치도 없다.
결국 이같은 시스템의 약점은 무엇보다 불투명성에 있다. 들여다 보지 못하게 하니까 몇몇 사람들이 어둠뒤에서 헛짓을 해도 처벌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지금 윤석렬을 풀어준 판사와 검찰총장이 자신이 처벌받을 거라고 생각할까? 나라의 심장에 총질을 해대는 인간들이 처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게 지금의 시스템이다. 왜냐면 모든 일이 어둠속에서 행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일전에 사법개혁에 대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판례의 전산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누가 어떤 판단을 어떤 근거로 했는지를 쉽고 투명하게 찾아볼 수 있게 만들면 어떤 미친 판사나 검사가 계속 편향된 일을 하는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걸 외면하고 그저 공수처같은 것을 만들면 사법부가 깨끗해 질거라는 생각은 착각이라는 것이다. 왜냐면 우리가 지금 보듯이 법을 집행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고 따라서 어렵게 법을 만들어도 그법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쉽다.
법은 중요한 것이지만 그 법을 점점 더 복잡하게 만들면 좋은 세상이 온다는 것은 결국 법조인의 시각이다. 정치가들 중에 여던 야던 법조인이 많아서 이런 걸 당연히 여긴다. 그런데 법이 복잡해 질 수록 법가지고 장난치기는 더 쉬워진다. 결국 투명화, 전산화같은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면 사람들은 대중의 여론에 따라 모든 일을 판단하게 되니 위험하다고 말하겠고 그런 비판은 근거가 있는 것이지만 그렇게말하는 사람은 소위 엘리트의 부패는 있을리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대중은 분명히 어리석지만 엘리트는 똑똑하다고 누가 그러던가? 나는 한국의 엘리트 층만큼 어리석은 엘리트가 있는 선진국을 본 적이 없다. 한국이 이만큼 살고 있는 건 대중이 똑똑해서 그런 것이다. 그런데 멍청한 엘리트들이 자신이 뭘 하겠다고 한다. 대중이 멍청하다면서.
너도 나도 금요일이면 윤석렬이 파면될거라고들 한다. 진작에, 가능하면 2월달에 그렇게 되었어야 하지만 이제라도 그랬으면 싶다. 이 멍청이들의 난을 어디까지 보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공화국의 가치는 공화국 내부에서 벌어지는 어떤 의견 차이보다 크다. 그러니까 내가 싫다고 내란을 일으키는 놈을 봐주자는 사람은 아직 근대화도 안된 사람들이다. 그러면서 무슨 정치며 사회를 논하나. 대학입시에서 정답이 두 개인 문제가 생기면 그걸로 나라가 공평하지 못하다보면서 난리가 난다. 그런 나라에서 내란가지고 옳으니 그르니하고 시간을 끌고 있다. 참 괴로운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