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글모음/젊고 지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

격암(강국진) 2025. 3. 26. 11:06

도움이 되는 조언이 뭘까? 사람들은 흔히 조언을 맞고 틀리고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것도 조언을 판단하는 한가지 중요한 기준이지만 이런 판단은 사실 조언의 다른 중요한 면을 무시하게 한다. 그래서 조언을 하거나 들을 때 우리는 어떤 조언이 도움이 되는지 마는지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조언을 틀리고 맞는 기준으로만 보는 사람들은 흔히 맞는 정보라면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되도록 많은 조언을 듣되 그 조언들이 사실적으로 옳은가 틀린가하는 것만 판단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각각의 조언내지 정보를 따로 따로 생각하면서 마치 시험답안 채점하듯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사실적으로 옳은 조언은 모두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학교 시험같은 지극히 인위적인 환경이 아니고서는 일은 이런 식으로 펼쳐지지 않는다. 모든 사안들은 서로 연결되고 그 연결이 의미를 만든다. 마치 따로 떨어져 있으면 별 쓸모 없는 볼트 하나가 엔진의 중요한 부분에서 없어지면 엔진이 멈춰서는 의미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하나 하나의 사실은 그 사실이 다른 사실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사용되어지고 해석되어질까에 따라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내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볼트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절대적으로 중요할 수 있다. 

 

그래서 조언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체적인 맥락을 살피고 지금의 맥락에서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다. 살빼려는 사람에게 음식은 도움이 안된다. 운전자는 뒷쪽에서 접근하는 트럭을 보면서 전체적인 차량의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다른거 빼고 신호등만 보면서 빨리 밟으라고 하는 것은 도움이 안된다. 말단 사원의 입장에서는 어떤 일을 끝내는 것만이 중요해 보일 수 있지만 회사의 입장이나 상사의 입장까지 고려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 일을 넘어서는 중요성이 있을 수 있다. 그런 메타인지적 관점의 차이를 이해못하는 사람의 조언은 도움이 안된다. 

 

그런데 전체적인 맥락을 안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로 심지어 그 일을 하는 본인도 그걸 모르는 때가 대부분이다. 내가 대학을 가는 의미는 무엇일까? 내가 취직을 하는 이유는 뭘까? 내가 결혼을 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런 대단한 것이 아니더라도 오늘 저녁에 술한잔할까 말까같은 사소한 판단에서도 생각해 보면 여러가지 맥락의 가치가 있고 종종 그것들은 서로 충돌한다. 그러니까 술을 마시면 내 정신건강상 좋은게 있지만 대신에 내일 아침에 그 댓가를 치러야한다던가, 내 당뇨에는 좋지 않다던가하는 식의 댓가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중요한 판단으로 갈 수록 생각해 볼 것은 더욱 많아지고 내가 그것을 어떤 문맥에서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며 그 답은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물며 타인이 남의 일을 보면서 그 일을 어떤 맥락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알까? 안다고 해도 그 일을 실제로 하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를 잘 살피는 일이 쉬울까? 객관적인 것도 그렇지만 내가 물리학이나 어떤 이성에 대해서 열정을 가진다는 주관적인 맥락을 타인이 정말 진심으로 느낄 수 있는가? 그걸 대화를 통해 알아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나에게 조언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불확실한 생각을 불확실하게 설명하는 수고를 꼭 해야 할까? 그래서 남에게 조언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러워야 하는 것이고 어쩔 수 없을 때나 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 조언을 한다는 것이란 그것 자체가 내가 너보다 훨씬 더 이 일에 대해서 잘아니 나의 권위를 인정하라는 주장이나 마찬가지다. 내 말을 따랐다가 일이 잘못되면 내가 책임지겠다는 정도의 생각이 없이 마구 던질 일이 아니다. 생각없는 초등학생이 대학교수에게 수학에 대해서 떠드는 일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소통의 가치에 대한 말을 너무 들어서 그것의 비현실성은 잘 자각하지 못한다. 즉 여러 사람이 동등한 입장에서 최대한 정보를 나누고 서로를 납득시켜가면서 일을 한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소모적인 일로 몇몇 제한적인 경우에나 가능하고 필요한 것이다. 실제로는 어떤 일을 할 때는 주도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과 보조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따로 있어야 한다. 보조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은 주도적인 사람을 믿는 한에는 그 사람의 행동에서 일일이 이유를 묻지 말아야 한다. 안그러면 칼도 한번 안잡아본 사람이 프로 요리사 옆에서 왜 이걸 이렇게 자르냐, 왜 오늘 저녁은 소고기가 아니라 닭이냐, 왜 설거지는 지금하느냐 같은 무수한 질문만 퍼붓는 일이 생긴다. 그래서 동창회같은 작은 친목회에도 총무같은 대표가 있어서 연락을 맡는 것이다. 꼭 그 사람이 가장 뛰어나서가 아니라 일을 전담하다보면 경험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사람이 상당부분의 판단을 전담하는 것이 효율적이라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흔히 내가 말하는 말은 옳다 그르다만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퍼붓기를 좋아한다.  지금은 그런 조언이 도움이 안된다는 말을 들어도 이해를 하지 못한다. 사실적으로 옳은 이야기니까 많이 들어두면 옳다는 것이다. 조언을 하는 것이 상대방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생각을 하는게 아니라 내가 조언을 하려고 하는데 그걸 듣지 않는게 나를 무시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남에게 이러니 저러니 조언하기 좋아하는 사람치고 조언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데도 조언이 가지는 의미를 모르거나 모른 척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자신만의 문맥으로 그 문제를 보고 있고, 설사 그것이 옳다고 하더라도 그걸 그렇게 봐야 한다고 단언할 사람은 스스로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조언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문제를 특정한 문맥으로 보게 만드는 일의 위험을 무시한다. 예를 들어 나이 드신 노인들이 젊은이들에게 내가 평생 결혼생활해 보니까 이런게 좋다 저런게 좋다라고 조언하는게 젊은 사람들의 귀에는 터무니 없을 때가 있다. 왜냐면 그들은 이미 젊은 시절이 지났고 노인으로서 살면서 자기의 가치관에 따라 자기의 문맥에 따라 조언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실적으로 옳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이미 노인이라는 사실을 성찰하지 못하고 노인의 입장을 인간 전체의 입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그런 조언을 하는 경우 그런 조언은 도움이 되질 않는다. 젊은이가 나이가 들어서 노인이 되었을 때 세상이 똑같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모두 죽는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죽기 직전의 사람이나 죽은 사람의 입장에서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건 아니다. 

 

요즘은 세상이 점점 더 빠르게 변하고 복잡해지고 있다. 예전처럼 일가 친척이 한 마을에서 농사짓고 살던 시대가 아니다. 그래서 더더욱 조언의 이런 측면이 중요해졌다. 청년들이라면 모두 이런 조언이 도움이 된다는 식의 보편론이 통하지 않는다. 통하는게 있다면 메타 조언이랄까. 즉 방금말한 것처럼 조언에 대한 조언 정도로 더욱 더 깊은 곳에 있는 말을 하는 것이나 어느 정도 보편적으로 옳을 것이다. 두 대의 자전거가 달리는데 왼편에 있는 사람이 오른편에 있는 사람에게 일일이 페달을 어떻게 밟아야 하고, 핸들을 지금 꺽어야 하고 하는 식으로 조언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같은 길을 나란히 달리는 두 대의 자전거라도 미묘하게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자전거를 조종하는 사람은 각자의 균형감각과 판단으로 자전거를 타야 한다. 그런데 서로 다른 관심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남에게 조언을 던지는 일이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그것은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오히려 치명적인 위기를 불러 올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화나 조언이란 모두 소용이 없는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우리는 이따금은 자극이 필요하고, 또 순순히 사실의 확인과 수집을 위한 대화도 필요하다. 산에 가본 사람이 아직 안가본 사람에게 몇가지 참고 사항을 말해줄 때 그것이 전부 쓸데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글에서 말하는 것의 반대편 극으로 가서 어리석은 일을 하는 것이다. 다만 조언을 받건 조언을 해주건 우리는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그걸 하는가를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문화는 몇백년전의 단순하고 변하지 않던 세상의 관습을 물려 받았다. 침팬지가 제트기를 조종해서는 안되고, 유치원생이 회사를 운영해서는 안되듯이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서로 대화하고 조언을 주고 받는 일은 그 나름의 기본적 이해가 필요하다. 내가 뭘 들어야 하는지, 내가 뭘 말해해야 하는 지를 바로 지금의 환경을 생각하면서 해야 한다. 이 환경이란 지금도 언제나 그렇지는 않지만 종종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환경이다. 그래서 도움이 되는 조언과 되지 않는 조언의 기준은 과거와는 달라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