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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왜 죽었는가?

격암(강국진) 2025. 3. 27. 10:45

제주의 이미지가 나빠지고 관광객이 줄어 들었다면서 제주시가 그에 대한 대책을 내놓았다고 하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 대책이라는게 할인을 해준다던가 드라마 촬영지 홍보 행사를 한다던가 하는 식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유튜브 동영상에 보니 다수의 사람들은 제주도 이미지가 나빠진 것은 중국인들 때문이며 중국인 무비자 문제부터 해결하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제주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제주도에 대한 수 많은 비판을 인터넷에서 접하면 안타깝습니다. 육지 사람들이 제주도를 왜 좋아하는 지를 정작 제주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제주는 본래 아주 오랜동안 신혼여행때가는 고급 여행지였습니다. 한때는 한국에서 5성급 호텔을 찾으면 제주도에 밖에 없었을 때도 있었을 정도입니다. 아마 서울에는 있었을런지도 모릅니다만 다른 곳에는 없었습니다. 내가 이 사실을 아는 이유는 제가 신혼여행을 무주의 티롤호텔로 갔었기 때문입니다.

 

1997년에 결혼한 저는 해외로 신혼여행을 갈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찾아보니 한국에서 신혼 여행을 갈만한 곳은 제주도 밖에 없는 겁니다. 신혼여행의 첫날밤을 허름한 국내 모텔에서 지내고 싶지 않았기에 신혼여행은 제주도라는 뻔한 선택이 싫었던 저는 찾고 찾아서 무주의 티롤호텔로 갔었습니다. 당시로서는 문을 연지 얼마되지 않았던 티롤호텔이 신혼여행을 갈만한 거의 유일한 호텔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후에 점점 더 해외로 여행을 많이 갔습니다. 당시에도 제주도에 갈 바에는 외국에 간다는 말이 나오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07년에 제주도에 올레길이라는게 생기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영감을 받아서 서명숙씨가 추진한 올레길은 한국 관광에 있어서 굉장한 전환기를 마련합니다. 지금 전국 곡곡에 존재하는 산책길들은 다 이 올레길의 성공에서 영감을 받았거나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겁니다. 

 

문제는 걷는게 아닙니다. 문화의 변화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관광이라고 하면 유명한 장소들의 리스트를 만들고 바쁘게 거기가서 사진찍는 것이었다면 올레길을 걷는 여행은 웰빙 여행이었고 치유의 여행이었습니다.  일단 그렇게 여행 문화가 바뀌자 제주도 여행은 비싼 호텔에 가고 비싼 음식을 먹는 소비적인 여행이 아니라 저렴하고 건강하게 여행하되 자주 자주 가는 여행이 되었습니다. 제주도 올레길을 여기 저기 걷겠다고 제주도에 자꾸 가는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더이상 제주는 신혼여행의 섬이 아니라 치유의 섬이 되었습니다. 이 둘은 전혀 다릅니다. 신혼여행은 워낙 특별한 이벤트라서 소비성으로 흐르기 쉽지만  치유의 섬은 말하자면 살고 싶은 섬에 가는 겁니다. 실제로 그래서 제주도로 실제로 살러 가는 사람도 많이 늘었고, 제주도 한달살기 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소비성의 여행이 놀이동산에 가거나 카지노에 가는 것같은 거라면 치유의 여행은 살러가는 겁니다. 자기를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이웃을 만나는 겁니다. 매일 매일 먹는 밥을 먹듯이 평범한 것 안에서 행복을 찾는 겁니다. 

 

그런데 멍청이같은 정치가때문인지, 제주에 살기때문에 제주의 매력이 뭔지 모르는 현지인들 때문인지 제주가 인기를 얻자 뜻밖에 제주는 제주도를 놀이동산과 카지노로 만드는 것이 발전이라고 여기는 것같아졌습니다. 숲이 사라지고 외국인들을 끌어모으려고 안간힘을 끈 결과 중국인들이 엄청나게 들어오고 아예 중국 자본이 만든 놀이 동산이며 호텔이 들어섰습니다. 올레길의 인기이후 제주 살이가 나빠지지는 않았을 텐데 조금 살림이 좋아지자 돈에 미친 사람이 된 것처럼 보입니다. 5성급 호텔을 잔뜩 짓고, 놀이동산과 볼거리 관광지를 만들면서 제주도는 점점 더 치유의 섬으로부터 멀어져 갔습니다. 당연히 부동산 투기의 섬이 되었고 생활비도 관광비도 잔뜩 올랐습니다.

 

라스베가스같은 곳도 물론 매력적인 곳입니다. 그러나 제주도가 라스베가스가 될 수도 없고 될 필요도 없습니다. 제주도가 오래 오래 살기 좋은 섬이 되면 자연히 그 살기 좋은 섬에 사람들이 왔을 겁니다. 그런데 마치 요리를 모르는 사람이 요리에 강력한 조미료를 범벅해서 요리의 맛을 없애버리듯이 제주도를 개발한 겁니다. 저는 중국인이 제주를 망쳤다는 식으로 그걸 표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누가 그걸 망치건 제주인의 삶을 지킬 수 있는 방향으로 들어온 돈을 써야 했을 텐데 돈 좀 들어온다고 누가 자기 고향을 다 밀어버리고 카지노같은 곳으로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좀 더 긴 호흡과 안목으로 개발했어야 했습니다.

 

과거에도 한번 이상 제주는 망했습니다. 해외여행이 흔해질 거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제주는 망했었지요. 그걸 다시 살린게 올레길이었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었는데도 제주는 같은 일을 반복했습니다. 제주를 다시 호화판 여행지로 만든 겁니다. 제주를 다시 살리고 싶으면 먼저 제주를 정화해야 합니다. 무분별한 개발을 멈추는 정도가 아니라 이미 한 개발도 되돌리는 것이 필요할 겁니다. 단순히 제주도에 여행오는 사람의 숫자나 올해의 관광수입을 늘리는 것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지속가능하고 행복한 삶을 생각해 봐야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주도의 이미지는 더욱 나빠지기만 할 겁니다. 문제는 제주가 가장 돈을 잘벌고 관광객이 많았던 때로 돌아가는게 아닙니다. 그런데 제주도의 대책이란 걸 보면 여전히 이런 말을 탁상공론으로만 여기는 것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제주도의 영광은 다 그 탁상공론같았던 올레길에서 나왓습니다. 바닷길 걷기만 하는 사람이 제주도에서 무슨 돈을 쓰겠냐고 그런 탁상공론은 하지 말라고 그때도 그러는 사람이 있었을 겁니다. 그 사람들은 지금도 같은 말을 하고 있겠지요. 참 학습이 어렵습니다.  

 

제주도는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을 모르는 무식한 투자로 망했습니다. 자본은 제주로 들어와서 한탕하고 나가면 그만이지만 제주가 계속 지속적으로 좋은 섬으로 남자면 그 한탕의 유혹에 저항해야 합니다. 그걸 막는 건 첫째가 정치인이고 둘째가 제주도민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제주의 모습을 보면 그 한탕에 제일 먼저 열광한게 정치인이고 제주도민인 것처럼 보입니다. 타지인인 저도 제주가 아까운데 제주토박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제주가 안 아까운가 봅니다. 천천히 돈을 벌면 그건 제주도민의 것이 되겠지만 한탕으로 돈을 벌면 그건 그냥 외부로부터의 자본이 가져가는 것이 됩니다. 이런 것쯤 모르는 사람이 없을텐데 탐욕에 눈이 먼 사람들이 제주를 망치는게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