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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주장은 미국의 패배선언에 가깝다.

격암(강국진) 2025. 4. 3. 15:27

1. 트럼프의 상호관세 주장, 그 이면

최근 세계 경제가 크게 요동치고 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이 무역에서 계속 손해만 봐왔다며 "공평한 무역"을 주장하고, 상호관세 도입을 들고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외국 제품이 미국에 관세 없이 들어오는 동안, 미국 제품은 높은 관세 장벽에 부딪혀왔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미국이 세계 무역에서 손해만 봐온 걸까요? 미국은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이었습니다. 강자와 약자의 무역에서 정말로 강자가 손해 보는 거래를 했다는 말이 사실일까요? 트위터를 보다가 어떤 한국인이 “그간 참 미국이 관대했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2. 국제 무역의 수혜자는 누구인가

국제 무역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본 건 결국 미국입니다. 왜냐하면 힘이 세고, 규칙을 설계할 수 있는 주도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여행, 문화, IT, 금융 서비스 산업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려왔고, 전 세계로의 직접 투자로도 돈을 벌어왔습니다.

이걸 남의 일처럼 말하지 말고,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로 생각해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우리가 베트남에 공장을 세우고 거기서 생산한 물건을 가져온다고 해서 베트남만 이득 본 걸까요? 오히려 공장을 세운 쪽, 자본을 가진 쪽이 더 큰 수익을 올립니다. 그게 자본의 논리입니다. 과거 맥도날드에서 나눠주던 싸구려 장난감이 인도네시아의 청소년 노동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면, 이 체계는 결코 후진국에게만 이득이 되는 구조가 아닙니다. 그런 점을 무시하고 미국 대통령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부 한국인의 태도는 오히려 이상해 보였습니다.

 

3. 고부가가치 산업과 무역의 분업 구조

경제의 핵심은 비싸게 팔릴 수 있는 것을 많이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생산성이고, 높은 임금을 가능하게 합니다. 선진국은 높은 생활비와 임금 구조 때문에 생산성이 낮은 노동집약적 산업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부가가치가 낮은 공장은 후진국으로 이전하고, 자신들은 고부가가치 산업에 집중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책을 써서 한 달에 천만 원을 벌고, 양배추를 키워서 백만 원을 번다면, 나는 당연히 책만 쓰고 양배추는 사먹는 게 효율적입니다. 그게 양배추 농부를 위한 배려에서 하는 거래는 아니듯이, 선진국의 산업 구조도 그런 논리로 움직여 온 것입니다.

 

4. 고부가가치의 불평등한 혜택

문제는 고부가가치 산업의 이익이 사회 전체로 고르게 확산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미국이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고 해서 모든 미국인이 더 잘 살게 된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금융, IT, AI 개발 같은 산업은 일자리를 대량으로 창출하지도 않습니다. 신발공장 노동자만큼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제조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에게는 지금의 체계가 오히려 박탈감으로 다가옵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배경입니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 책임을 외국에 돌리고 있습니다.

 

5. 미국의 소비, 그 이면의 진실

미국은 고부가가치 산업을 유지하면서, 중국과 같은 국가로부터 싼 물건을 수입함으로써 생활 수준을 유지해왔습니다. ‘Made in Japan’을 지나 ‘Made in China’가 미국 가정의 쇼핑몰을 채웠고, 그로 인해 미국인의 가계 지출은 줄어들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국제 무역의 논리가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기 시작하면서, 평등이라는 원칙이 내부적으로만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같은 나라 안에서는 소득 불균형을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복지가 필요하지만, 국가 밖에서는 그런 평등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미국이 자급자족 경제로 돌아선다면, 생활비는 장기적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습니다. 계란 만드는 사람과 금융업 종사자 사이의 소득 격차가 너무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금 미국에서 이런 변화가 시작되고 있으며, 물가 상승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6. 분배 없는 성장, 그 결과

결국 고부가가치 산업의 이익을 어떻게 분배하느냐가 선진국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합니다. 이 산업은 해당 사회의 교육, 인프라, 제도 위에서 작동합니다. 그런데 미국은 이런 분배에 인색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이민자는 많지만, 사회복지 시스템은 취약합니다. 의료비와 교육비로 파산하는 일이 흔하죠.

그러다 보니 정부는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 기업에게 세금을 더 걷고 싶어 하지만, 이 기업들은 복잡한 구조로 해외에서 세금을 줄이는 데 능숙합니다. 아일랜드에 자회사를 세워 절세하는 애플의 사례는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7. 미국의 기술적 우위는 여전할까?

더 걱정스러운 건 이제는 미국의 기술 우위도 예전만큼 확실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세계 대학 순위에서 중국의 대학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AI·반도체·배터리 같은 전략 산업에서도 중국이 미국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트럼프의 등장은 일종의 ‘패배 선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은 더 이상 예전처럼 세계 질서를 일방적으로 주도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8. 국가에서 기업으로: 권력의 전환

지금의 변화는 어쩌면 국가가 주도하던 세계에서 기업이 주도하는 세계로의 전환일지도 모릅니다. 과거에는 토지를 가진 지주가 권력을 가졌다면, 산업이 발전하고 상업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권력의 중심도 이동했습니다. 마치 교황의 권위에서 세속 군주의 권위로 넘어갔듯, 지금 우리는 국가에서 초국적 기업으로 권력이 이동하는 전환기에 있습니다.

 

9. 세계 정부의 필요성

이 모든 혼란은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누가 세계적인 정책을 만들고, 누가 세금을 걷고, 누가 그것을 분배할 것인가?” 국가의 경계는 흐려지고 있지만, 세금과 책임은 여전히 국가 단위입니다. 기업은 국경을 넘나들지만, 복지는 그러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언젠가는 세계 정부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 인류를 대상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조세를 걷으며, 혜택을 분배할 수 있는 새로운 주체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변화는 강대국 시민들, 특히 미국인에게는 좋은 뉴스가 아닐 수 있습니다. 양반과 쌍놈이 사라지면, 가장 가난한 양반도 사실은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론: 트럼프의 주장은 세계 변화의 징후다

트럼프의 과격한 주장은 단순한 감정의 분출이 아닙니다. 그것은 미국이 더 이상 예전처럼 살아갈 수 없다는 자각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 자각은 세계 전체가 새 질서로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누군가는 그 변화의 방향을 두려워하고, 누군가는 희망으로 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멈출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