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는 혜택도 아니고 병을 유발하는 것도 아니다.
복지의 역할에 대해서 그걸 국가가 국민에게 주는 혜택이나 병을 유발하는 제도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니까 나라가 부자가 되면 국민들에게 줄 수도 있는 것이 복지이고 복지 제도가 지나치면 병을 유발하여 국민들이 일하고자 하는 의욕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복지병에 걸린 나라는 국민들이 게으른 탓에 경제가 나빠지고 발전이 없어지게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건 국민을 고용인 심하면 머슴 정도로 여기는 관점이다. 즉 월급을 안줘도 일해야 할 사람인데 집안에 돈이 많아지면 좀 더 줄 수도 있지만 보상을 너무 많이 주면 버릇이 나빠져서 일을 안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인간이 왜 부유하게 사는 걸까? 그건 생산 기술이 발달해서다. 21세기 사람이 17세기나 10세기 사람보다 부유하게 사는 주요 이유는 기술이 발전해서지 그때보다 사람들이 더 열심히 노동을 해서가 아니다. 더 뛰어난 생산기술 때문에 더 많은 것이 생산되어지고 그래서 그걸 소비하며 살게 된 것이다. 공장생산이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근대화 이래 인간의 생산력은 특히 크게 증가했다. 세계의 인구가 80억이 되었는데도 그들이 다 먹고 남을 만큼의 식량도 생산한다. 누군가가 굶는 것은 분배가 없었던 탓이지 생산해 낼 수 있는 음식이 없어서가 아니다. 과거의 왕이나 귀족이 누리지 못하는 것들을 오늘날의 보통 사람들은 누리며 살고 있는 이유는 누군가가 관대해서가 아니라 생산 기술이 좋아져서다.
그런데 생산력이 좋아지면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근대화이래로는 사람들은 분업에 기초해서 모든 것을 생산하고 있다. 그런데 생산력이 너무 좋아지니까 언제나 물건을 지나치게 만들게 된다. 경제학의 기초원리라고 여겨지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물건이 지나치게 만들어 지면 즉 공급이 수요보다 너무 많으면 물건 값이 떨어지고 결국 공급도 줄어든다고 말한다. 그러나 공급이 줄어드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첫째로 공급이 줄어든다는 말의 현실적 의미는 회사의 매출이 떨어진다는 것이거나 회사가 망한다는 것이다. 이런 일은 경제난으로 여겨지면서 막아야 할 일로 여겨지며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어떻게 해서든 생산된 물건을 더 많이 팔려고 하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다. 즉 공급을 줄이는게 아니라 소비를 늘리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것이 잉여생산의 소비문제다. 둘째는 기술이 점점 발달하기 때문에 생산력은 점점 증가만 한다는 것이다. 어떤 물건이 다른 물건에 의해서 대체되기 때문에 생산이 줄어드는 경우는 있어도 그런 경우가 아니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물건들을 생산하는 능력이 점점 더 좋아지기 때문에 생산이 늘어나기만 한다. 한국인들의 소원은 한 때 끼니마다 쌀밥을 먹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쌀이 남아돈다. 식생활이 바뀌어서 전처럼 밥만 먹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품종개량과 농기계의 발달등으로 농사는 전보다 쉬운 일이 되었다. 그래서 국민의 단지 몇퍼센트만이 쌀을 생산하는데도 그 쌀이 너무 많이서 처리가 곤란하다. 요즘은 비만이 사회 문제가 되었다. 인간의 기술은 이미 이렇게 좋다.
그래서 경제학의 근본문제는 잉여생산의 소비다. 즉 늘어난 생산력으로 인해 다 소비할 수 없는 물건이 생겼는데 이걸 어떻게 소비할까가 문제다. 생산된 것을 단순히 폐기하는 것을 소비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댓가를 주고 그것을 먹거나 사용해야 그것이 시장경제에서 소비라고 여겨질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그걸 다써도 남을 만큼 생산된 물건은 어떻게 소비되어야 할까? 결국 두가지 방법밖에는 없다. 하나는 새로운 소비시장을 바깥에서 찾는 것이고 또 하나는 기존의 사람들이 물건을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이다. 즉 외수 시장을 개척하던가 아니면 내수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으면 공급을 줄이는게 아니라 수요를 늘릴 방법을 찾는다.
역사적으로 식민지 시장 개척이나 개발도상국의 개발은 이때문에 진행된 것이 크다. 왜 서양인들이 배를 보내서 무력으로라도 통상조약을 맺으려고 하고, 가난한 나라에 청바지와 코카콜라를 보내서 자본주의에 중독되게 만들려고 할까? 왜냐면 그들은 소비하기에 너무 많은 물건들이 있어서 소비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을 근대문명의 생산물에 중독되게 만들고 그것을 더 얻기 위해 노동하도록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소위 생산성이 높은 산업에 집중하면서 느긋하게 살아도 된다. 반면에 노동집약적이고 생산성이 낮은 산업에 종사하는 개발도상국의 노동자들은 이제는 죽도록 일해야 된다. 그것은 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말해지지만 일단은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일단 근대화 사회로 변하면 예전방식대로 농사를 짓거나 사냥을 하며 살겠다는 생활방식은 더이상 따를 수 없다.
그러나 식민지를 개척하고 외부시장을 개척하는 일도 무한히 계속될 수는 없다. 세계가 유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생산성이 높은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가장 고급 인력이 필요하며 그것은 더 많은 교육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때문에 내수를 증가시키는 복지사업이 꼭 필요하다. 즉 복지 사업이란 자본주의의 잉여생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지 누가 누구에게 혜택을 주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지식을 쌓고 새로운 산업을 개발하지 않으면 개발도상국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선진국의 기술 우위는 떨어지게 된다. 그러면 쉽게 돈을 버는 선진국의 관행은 끝나게 된다. 그래서 선진국일 수록 더 많은 돈을 교육과 기술 개발에 쏟아야 한다. 미국의 예를 들면 그들은 각종 금융, 문화 산업등으로도 돈을 벌고, 자본의 직접적 해외 투자로도 돈을 번다. 한국의 문화상품이 미국을 포함한 선진구들에서 반복적으로 인기를 얻는 일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며 미국이나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걸 막기 위해서 미국이나 일본등의 선진국들이 투자를 해왔고 그 투자가 바로 복지인 것이다. 사회적 인프라에 투자하고, 교육 시설에 투자하고, 의식주를 살펴서 사람들이 뛰어난 인재로 성장하는 것을 장려하는게 복지다. 은퇴한 노인이라고 할 지라도 누군가의 생활수준이 지나치게 떨어지면 대개 그들은 사회적 비용을 크게 발생시킨다. 그들이 범죄자가 될 수도 있고, 그들을 돌보기 위해 누군가 다른 사람의 생활수준이 떨어질 수 있다. 노후를 스스로 준비하기 위해 젊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투자를 안할 수도 있다. 복지는 혜택이 아니다. 선진국이 계속 선진국으로 있기 위해 필요한 것이고,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이 되려고 한다면 필요한 것이다. 부자가 되고 나면 복지 혜택을 주는게 아니라 복지제도라는 투자가 있기 때문에 그 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것이다. 신발공장같은 걸 더 열심히 돌려서 부자가 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복지는 혜택도 아니지만 병을 유발하지도 않는다. 복지 혜택이 너무 많아져서 국민들이 일을 안하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람들은 언제나 더 많은 것을 소비하고 싶어한다. 즉 돈이란 아무리 많이 있어도 부족하고 오히려 많으면 많을 수록 돈을 더 벌고 싶어한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자기를 돌볼 수 있고,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복지제도를 만들면 사람들이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은 적어도 언제나 사실이 아니다. 그것이 언제나 사실이라면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의 사람들을 소비에 중독되게 만드는 일이 성공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즉 수렵채집으로 문명 이전의 상태처럼 살던 사람들이 콜라 한병 마시는게 소원이었으면 콜라 한병 마시고 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일단 소비를 시작하면 날마다 콜라를 마시게 되도 이번에는 자동차가 가지고 싶고, 아파트가 가지고 싶어하게 된다. 더 열심히 일하면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은 소비에 중독되고 결국 사회전체가 노동에 중독되게 된다.
선진국에 흔히 보이는 성장의 둔화는 사람들이 게을러져서가 아니다. 성장의 한계때문이다. 경제가 발달하면 생산력은 점점 좋아지는데 그러면 어떤 방법을 써도 내수던 외수던 증가하는데 한계가 있다. 교육비를 천만원들이면 1의 생산성을 얻는다고 해도 교육비를 1억들이면 반드시 10의 생산성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즉 새로운 산업을 개발하고,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일의 투자효율이 점점 떨어질 수 있다. 그러니까 선진국 사람들은 점차로 모험적인 일은 안하려고 하게 된다. 문화산업이나 연구개발은 성공한 사람들은 굉장한 주목을 얻지만 평균적으로 보면 소득이 매우 낮은 산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취가 없다. 그러니까 사회적인 혜택에도 불구하고 선진국 학생들이 대학원에 안가려고 하고, 가수나 예술가가 안되려고 하는 것이다. 경쟁이 이미 너무 높은 걸 알기 때문이다.
복지병이란 환상이다. 복지를 월급처럼, 노동자에게 주는 보상인데 적게 주면 줄수록 회사에는 이익인 어떤 돈처럼 여겨서는 안된다. 복지는 그보다는 연구개발비에 가깝다. 연구개발비를 안쓰면 회사는 분명 돈을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계속 연구개발을 안하면 회사의 경쟁력은 결국 떨어지게 되고 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돈을 많이 버는 회사가 되거나 그런 회사로 남아있고 싶으면 연구개발비를 많이 쓸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복지병이란 연구개발비를 많이 썼더니 직원들이 게을러졌다고 말하는 주장이 된다. 그게 말이 되는가. 연구개발비를 많이 쓰면 직원들은 기본적으로 더 할 일이 많아진다. 다만 그것이 반드시 수입의 증가로 온다는 보장이 없을 뿐이다. 즉 연구개발을 중단하면 반드시 망하지만 천문학적인 연구개발비를 쓴다고 해서 반드시 새로운 매출 증가가 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복지도 마찬가지다. 복지제도가 발달하면 반드시 산업이 발전하고 경제가 부흥한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복지가 없으면 나라가 길게 보면 망하는 것은 맞다.
선진국들은 복지병으로 국민들이 게을러 져서 망하는게 아니라 새로운 산업을 개발해 내는데 실패하기 때문에 망하는 것이다. 새로운 산업이 없으면 성장할 수 없고 그러면 국민들이 활력을 잃게 된다. 낡은 산업속에서 경쟁만 심해지기 때문이다. 만약 성장성이 좋은 새로운 산업이 나타난다면 그 산업에 뛰어들 수 있는 국민들은 이미 생활수준이 높다고 해도 기꺼이 새로운 산업에 뛰어들어서 전보다 더 열심히 일할 것이다.
새로운 산업이 나타나지 못하는 것은 모두의 책임이지만 굳이 말하자면 정책을 담당하고 지식개발의 첨단에 있는 정치가들이나 고급 지식인들의 책임이 더 크다. 그런데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그들이 손가락을 국민에게 돌리고 국민이 게을러서 복지병에 걸려 있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새로운 비전이 있고, 새로운 산업이 있으면 사람들은 얼마든지 신명나게 미친듯이 일할 것이다. 그런 변화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거나 심지어 그런 변화를 낡은 시각속에서 가로막고 있는 것이 기존의 시스템에서 가장 혜택을 보고 있는 그들이면서 국민이 게으르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국민은 직원이 아니고 복지는 보너스나 월급이 아니다. 복지는 연구개발비같은 것이다. 문제의 원인은 우리의 낡은 발전에 대한 비전이나 새로운 산업을 개발해 내지 못하는것에 있는 것이지 사람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복지는 기본적으로 잉여생산의 소비를 위해 내수를 증가시키려는 목적도 있다. 따라서 연구개발비를 없애는 회사에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복지를 줄이거나 쓸모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얼마 가지 않아 경제가 망하게 된다. 똑똑한 독재자 리더가 경제를 살린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그런 건 사실이라고 해도 농업중심의 가난한 나라에서나 통하는 이야기다. 지식 중심의 현대 국가는 그런 발상이 통하지 않는다. 경제는 국민이 살리고 그 국민이 경제를 살리는데 필요한게 복지다. 사회의 소득을 소수의 개인들이 독점하게 되면 결국은 모두가 망한다. 군사독재가 계속 되었으면 삼성이나 현대나 LG도 지금처럼 큰 회사가 될 수 없었다. 누가 제대로된 사회를 만들었는가? 국민이 만든다. 그래서 세금이 있고 복지가 있고 부의 분배가 필요한 것이다. 뛰어난 국민이 있어야 위대한 회사도 나오고 유지된다. 복지를 혜택이나 병을 일으키는 것을 봐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