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진정한 그리고 완전한 패배
요즘 트럼프의 무역전쟁을 보면서 이건 말이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건 결국 미국 소프트파워의 패배이자 체재 경쟁의 패배입니다. 트럼프는 지금 미국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있습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외치는 트럼프는 실상은 미국이 위대하지 않다는 것을 가장 크게 외치는 미국인입니다.
돌아보면 중국을 세계 시장에 받아들이고 성장시켰던 과거에는 결국 한가지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건 공산국가인 중국의 성장은 결코 미국을 따라 잡을 수 없을 거라는 믿음입니다. 왜 그런가? 미국이 대표하는 자유 민주주의라는 사상이 중국의 경제적 성장이 커질 수록 점점 더 중국을 잠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중국은 부유해지면 질 수록 정치적으로 불안정해지고 결국 세계적 슈퍼파워의 힘을 가지기 전에 사회적 불안정으로 망하게 될 것입니다. 적어도 미국 사람들은 이렇게 믿었을 것입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이것은 북한이 지금처럼 주체사상운운하면서 김일성 일가를 왕처럼 모시고 그러면서도 세계적 경제 대국으로 자라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면 부유해지면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민주국가로 변신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25년 현재 중국이 미국을 위협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압니다. 미국은 중국을 두려워 합니다. 전면전을 한다면 무역전쟁이든 무력전쟁이든 미국이 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건 결국 상호파괴입니다. 미국의 정신은 중국을 파괴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중국인들은 미국인들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영화들이나 드라마가 중국인들이 중국사회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 하지 않습니다. 비록 총칼로 하는 무력전쟁은 아니지만 경제전쟁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통하니까 힘을 쓰겠다는 겁니다. 이건 말로 지니까 주먹을 쓰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과거에 있었던 두 가지 사건을 돌아봅시다. 하나는 일본과 맺었던 프라자 합의이고 또 하나는 소련의 붕괴입니다. 1985년에 미국은 플라자 합의를 해서 당시 경제력의 정점을 달리던 일본을 주저 앉혔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는 아니었지만 본래 하청업자가 하청주는 사람보다 부자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당시에는 일본의 경제가 너무나 성장해서 미국을 위협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의도적인 개입을 통해 그걸 힘으로 누를 필요가 있었다는 것은 역시 미국에게 자랑스런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사건은 역시 미국은 경제적 강국이라는 자신감을 주었을 것입니다. 즉 미국이라는 나라를 대체할 나라가 없기 때문에 경제전쟁으로 밀어부치면 어느 나라건 미국에게 양보하지 않을 수 없다는 믿음이 강해졌을 것입니다.
1991년에는 소련이 붕괴합니다. 이제 미국의 자신감은 정점에 달했을 것입니다.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이 끝난 일은 미국으로 하여금 미국 주도의 세계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책도 인기를 얻었었죠. 이 책은 미국주도의 세계질서가 역사의 종착점이라고 말하는 것같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신감이 중국의 성장을 방관하도록 했을 것입니다. 일본도 눌렀고 소련도 붕괴시킨 미국이 뭐가 두려우랴 싶었겠죠.
특히 중국의 경우에는 일본과 소련 모두의 약점을 다 가지고 있는 나라였습니다. 당시로서는 중국은 미국보다 훨씬 경제규모가 작을 뿐만 아니라 체제도 공산당이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중국 유학생을 받아들여서 미국의 삶을 체험 시키고 중국 경제가 발전하면 결국 미국을 위협할 정도로 중국이 크기 전에 중국이 알아서 붕괴할 거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사실 중국이 부패로 망한다는 이야기를 저만해도 개인적으로 적어도 20년전부터 들었던 것같습니다. 그때 이미 중국 부자들은 이미 돈을 해외에 빼돌렸다는 말이 돌았고 중국 본토에 다녀온 중국계 학자들은 중국은 가망이 없다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할리우드 영화와 코카콜라, 청바지가 들어가면 중국은 망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중국이 안 망했습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것은 중국이 미국 문화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한국 영화가 수입금지되는 중에도 미국 영화는 얼마든지 수입되었습니다. 그리고 중국 사람들은 중국을 미국처럼 만들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정신적 패배입니다. 훨씬 더 부자이며 세계 유일의 슈퍼파워라는 유리한 입장에 있는데도 미국은 중국인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얻어내지 못했습니다. 중국인들은 미국인들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기서 서구의 오만을 봅니다. 서구 사람들은 혹은 미국 사람들은 그들의 문화가 동아시아 사람들을 정신적 식민지로 만들거라고 간단히 믿었던 것같습니다. 미국이 얼마나 자유롭고 풍요로운 나라인가 감탄하면서 모든 나라 사람들이 미국인이 되기를 갈망하고 스스로 그들이 사는 나라를 미국처럼 만들려고 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정말 미국을 따라하기만 했다면 그들의 이상향인 미국을 위협할 수는 없었겠지요. 그게 일본에서도 중국에서도 안됐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힘으로 주저앉혔고 지금은 중국을 그렇게 하려고 노력중입니다. 한중일이 있는 극동지역은 물론 세계의 많은 다른 나라들도 몇천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들입니다. 그들은 그 나라들의 정신적 문화적 저력을 무시한 것입니다.
아시아 지역에서 절대적 힘을 발휘하는 소프트 파워는 한중일의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자랑스럽고 묘한 입장에 있습니다. 미국 문화를 두려워 하지 않는 중국이 한한령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할리우드 영화는 두려워 하지 않는 중국이 충무로 영화는 두려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체재를 뒤흔들 힘을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는 겁니다. 사실 한국의 민주화를 그린 1997같은 영화나 변호인같은 영화는 정말 많은 중국인들을 뒤흔들었습니다.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 드라마 중에는 응답하라 1988이 있는데 그 드라마에도 데모하는 학생이 나오죠. 나쁘지 않게 그려집니다. 중국정부는 중국청년들이 BTS같은 가수에게 빠지는 것이 두렵습니다. 중국정부는 중국인들이 미국화되는 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만 중국인들이 한국문화의 팬이 되는 것은 두려워 합니다. 그래서 거꾸로 김치나 한복을 포함해서 모든 한국 문화가 사실은 중국 문화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다시 이야기를 미국으로 돌리면 트럼프가 전세계를 대상으로 무역 전쟁에 들어간 이래 전세계가 중국보다 미국을 더 미워하는 것같은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유럽과 캐나다에서는 테슬라 자동차가 불타고 있다고 하더군요. 이런 분위기는 미국의 설득력이 사라졌다는 것 즉 미국의 소프트파워가 마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이 사실은 무역수지나 신기술 개발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비전에 대한 설득력이 없어졌다는 것은 미국을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이나 풀어야 할 문제가 없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제적 봉쇄는 소프트파워의 측면에서는 반대되는 효과를 냅니다. 중국이 한한령을 발동시킨 이래 한국의 문화산업은 오히려 탈중국화하고 세계화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한령이 고맙습니다. 중국의 경제규모로 보았을 때 중국이 한국에게 문화 장벽을 쌓지 않고 버틸 힘이 있었다면 한국은 중국화했을 겁니다. 결국 중국시장이 중요하니까 한국은 중국 시장에 맞는 작품들을 만들려고 하다가 창의력을 잃고 시들었겠죠. 한국은 중국돈이 무서웠는데 중국이 스스로 한국과 거리를 둬 준 것입니다.
지금 트럼프가 하고 있는 것은 전세계를 탈미국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세계가 미국화된 상태가 너무 당연하니까 그런 상태라는 것을 굳이 의식도 못했는데 그런 상황이 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소프트파워의 쇠락은 트럼프 탓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남아있는 미국에 대한 얼마되지 않는 호감조차 가장 빠르게 불살라 버리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미국이 가진 가장 강한 힘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미국의 인기가 떨어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세계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고 합니다. 사실 유럽이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몰락하고 등장한 것이 미국 주도의 자유민주주의였습니다. 영원한 성장을 말하는 아메리칸 드림이 세계를 뒤덮었죠. 그것은 훨씬 더 전통적 격식에 빠져 있고 계급적이었던 유럽보다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꿈을 따라 많은 유럽의 지식인들이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민자들이 지금의 부유하고 강한 미국을 만들었습니다. 즉 유럽의 소프트파워가 쇠락한 것이 결국 미국의 시대를 열었던 것입니다. 설득력이 떨어지니까 서로 싸우다가 폐허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대통령이 스스로 미국이 위대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미국을 미워하게 만들고 사람들에게 중국보다 미국이 더 문제라는 말도 하게 만듭니다. 아무도 미국인을 부러워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위대함을 찾겠죠. 즉 아메리칸 드림을 대체할 수 있는 새시대의 비전을 찾으려고 할 겁니다.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을 지탱해 온 힘, 세계가 미국을 성장하게 돕도록 만드는 힘이었습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보면 미국의 소프트파워가 꺼지는 것이 제일 큰 문제인 겁니다. 헐리우드와 디즈니가 힘을 쓰지 못하는 시대의 미국은 약할 겁니다.
트럼프가 미국의 소프트파워를 완벽히 결단낸다면 세계는 혼돈에 빠질 겁니다. 이건 한국에게는 기회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미국인처럼 살고 싶은 한국인 대신 한국인처럼 살고 싶은 다수의 미국인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물론 소프트파워가 전부는 아닙니다. 한국이 미국같은 슈퍼파워가될 수는 없습니다. 되서도 안됩니다. 하지만 마침 세계는 AI 혁명중에 있습니다. 영국은 한국만큼이나 작은 섬나라였지만 산업혁명때 세계를 지배하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일은 더욱 알 수 없는 것이죠. 그래도 소프트파워가 지금보다 훨씬 더 중요해 질거라는 것은 말할 수 있습니다. AI 기술에 기반해서 움직이는 세상에서는 연결과 소통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친숙함과 신뢰는 엄청난 힘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