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윤석열 정권을 만들었는가? 2
23.2.8
두달쯤 전에 나는 무엇이 윤석열 정권을 만들었는가 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에서 나는 민주당과 보수당을 오고가는 민심을 공동체 정신과 욕망 사이의 방황으로 파악했다 (보수당이란 지금 현재 국민의 힘이지만 보수당은 워낙 이름을 자주 바꿔서 이 글에서는 그냥 보수당으로 부르기로 한다). 즉 지난 몇십년간의 한국 정치를 보면 공동체 정신을 잊고 욕망으로 달려나가는 보수 정권의 기간이 비참한 결과를 만들어 내면 공동체 정신을 소중히 여기는 정권이 탄생하고 그런 정권 속에서 다시 정치적 사회적 안정이 생겨나면 사람들은 다시 투기나 급진적 개혁같은 욕망에 불타오르면서 보수 정권을 만들어 내는 일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21세기 내내 경제를 살린 것은 민주정권이었고 경제가 폭망한 것은 보수 정권이었다. 모두가 욕망을 자제하지 않을 때 모두가 같이 망한다. 지금 윤석열 정권이 시작하자마자 그 역사가 반복되고 있듯이 말이다. 그런데 나는 같은 주제에 대해 약간 다른 측면을 오늘은 써보고 싶다. 윤석열 정권을 만들어 낸 것은 바로 정치와 타협의 실패라는 것이 이 글의 요지다.
우선 우리는 윤석열이라는 대통령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보수정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리 좋지 않다는 것에 주목해야 겠다. 윤석열은 지금의 여당인 국민의 힘에게 조차 낯선 사람이며 만약 5년전쯤으로 시계를 돌린다면 문재인 정권에서 검찰총장을 했던 사람이 국민의 힘의 후보로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수던 민주던 믿지 않았을 것이다.
윤석열은 야당인 민주당과 불화한다. 야당대표를 만나주지도 않는다. 게다가 여당인 국민의 힘과도 그리 좋은 사이는 아니다. 국민의 힘의 당대표인 이준석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이 한가지 예고 새로운 당대표 선거에서 계속 목소리를 내고 분노까지 표출하며 대통령의 탈당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다른 예다. 윤석열은 한마디로 정치를 하고 있지 않다. 여에게든 야에게든 벼랑끝 협박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보수는 왜 이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었을까?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윤석열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이유는 보수당이 매우 무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대선에 이길 가능성이 전무한 정당이란 그 존재감이 미미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보수당은 사실상 이미 20년이상 대선에서 이길 수 있는 '정치인'을 가지지 못했다. 공화정에서 정치란 다양한 입장과 미래에 대한 예측을 가진 사람들을 화합하게 하고 공동체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조정능력을 말한다. 군대나 경찰이나 검찰이나 국정원으로 내 뜻과 다른 사람을 공격해서 무력화시키는 것을 우리는 정치라고 부를 수는 없다. 이러한 정치행위는 당연히 나름대로의 전문분야다. 그러므로 오랜 경험과 한국 사회에 대한 광범위한 이해를 가져야 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보수당안에서 오랜 정치를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게 아니다. 보수당이 대선에서 이길 수 있는 정치인을 가지지 못했다는 점은 그들의 과거 대통령을 나열해 보면 알 수 있다. 이명박 박근혜가 과연 정치인일까? 윤석열이 과연 정치인일까? 그 이전까지 가보면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이다. 김영삼을 제외하면 보수당은 타협과 협상에 대한 경험도 이해도 없는 사람들 뿐이다. 그리고 그 김영삼도 민주진영에서 보수가 데려간 인물이다.
따라서 보수당은 설사 그들이 올바른 결론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결론을 설득할 과정에 대해 이해도와 전문성이 떨어진다. 이명박은 기업인이었고 서울시장을 하면서 불도저 처럼 일을 밀어부쳤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그랬다. 총리나 장관도 만나기 힘들었던 대통령인 박근혜가 제대로 된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고소 고발로 사람들을 협박하고 말도 안되는 청와대 이전건으로 사람들을 스트레스 주는 윤석열은 어떤가. 이들의 의도와 애국심을 따지기 전에 이들은 기본적으로 민주적 절차나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나 경험이 부족하다. 따라서 되는 일도 없고 작은 일이 커지기만한다. 따라서 비선 정치가 이뤄지고 토론은 실종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민주당의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과 그들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 더 극명해진다. 그들은 공적 분야에서 오랜간 일하고 정치인으로서의 경력도 길다. 문재인만 해도 인권변호사였고 청와대에서 일했으며 노무현 사망이후 민주당에서 정치인으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세월을 거쳤다. 보수 정치인 중의 누가 이런가? 그런 과거를 가진 사람을 뽑으면 그 정권이 불통 정권이 될 것은 뻔한 일이다. 심지어 당과 소통도 불통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런 무능이 국민 모두에게 나쁜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나쁜 교통법규가 아예 교통법규가 없는 것보다는 더 좋은 것이듯 아무리 민주당의 정치적 무능을 비판한다고 해도 정치적 경험과 이해가 없는 정권이 불도저처럼 밀어부치는 것은 더 나쁘고 더 무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처럼 복잡한 사회에서 여러 사람의 사정을 들어보고 그것을 절충하려는 노력이 없이 일을 진행하면 작은 일이 점점 더 커지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있었던 강원도 레고렌드 보증 지불 거부 사건도 그렇고, 화물 노조에 대한 탄압도 그러하다.
하지만 이를 가장 극명하게 나타내 주는 분야는 외교다. 국내에서야 힘으로 밀어부치는 일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해도 외국 언론이 한국 정부 말을 들을 것도 아니고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강대국이 즐비한 외교무대에서 협상과 타협에 대한 이해도 기술도 부족한 사람이 뭘 하겠는가? 보수의 외교는 외교가 아니다. 그들의 외교는 한마디로 센 나라 찾아서 절대 충성을 맹세하는 일의 반복일 뿐이다. 그런데 다른 나라가 그런 다고 한국을 봐줄걸로 생각하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것이므로 결국 이런 건 외교라고 할 수 없다. 타국이 자기 이익을 무한히 추구하는 장소에 가서 술사주고 인사하고 돈 가져다 바치면 그만 만족하고 우리에게 잘해줄거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들은 바보 같은 나라 하나 찾았으니 빼먹을 수 있을 때 더 많이 빼먹겠다고 할 뿐이다. 보수의 외교는 마치 외교권을 일본에 빼앗겼던 조선말엽의 외교와 같다. 즉 외교의 포기고 국권의 포기다.
물론 앞에서도 말했듯이 국내의 일도 그렇다. 정치적으로 무능하다는 말은 보수당이 정말 아무 일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흔히 보수당이 부자의 정당이고 재벌을 위한다고 비판하지만 부자도 보수정권속에서 가난해진다. 가난한 사람만 더 살기 힘들어지는게 아니다. 재벌도 회사사정이 힘들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이번에 현기차가 미국에서 제재를 받을 때 우리 나라 정부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이 나왔던 것만 기억해도 이런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의사협회가 친보수적인 행보를 지난 정권때 했었지만 과연 의사대부분에게 보수당이 좋은 당인가? 그럴리가 없다. 교육이건 노동이건 여성이건 농축산이건 어느 분야도 보수는 쓸모가 없다.
왜냐면 그들은 정치적으로 무능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복잡한 사회속에서 답을 찾아나가는데 그들은 전혀 경험도 없고 의지도 없다. 윤석열은 대선때 그냥 각분야의 전문가를 뽑아다가 전권을 주고 일하게 하겠다는 게 자기의 비전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자기 자신의 미래비전이 없다는 뜻이다. 이런 식으로 뭐가 될 걸로 생각한다는 것은 현대 사회가 얼마나 복잡한지 경험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한국 사회는 군대나 기계처럼 움직여주는 대상이 아니라 각자의 의지를 가지고 무질서하게 사방으로 튀어나가려는 사람들의 집합이다. 여기다 대고 뭘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고함이나 치면 뭐가 되는 일이 있을까? 그러니까 보수대통령밑에서는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고생한다. 지난 대선이전에 여성문제로 많은 민주당의 인사들이 수난을 겪었다. 하지만 과연 보수당이 여성평등을 이룩해 줄 정당인가?
그런데 모두에게 좋지 않은 대통령은 그럼 왜 당선될까? 나는 보수당의 정치적 무능을 말했지만 이번에는 한국 사회의 정치적 무능을 말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이런 경험없는 엉터리 대통령이 당선되는 이유는 여러 이익집단들이 합의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보수당이 정치적으로 무능하고 경험이 없다고 말했지만 사실 정치란 애초에 불가능에 도전하는 일이다. 사람들이 같이 일을 할 때 모두가 만족하는 일은 매우 드물고 사람들은 항상 자기의 일이 제일 시급하다고 주장하고는 한다. 그덕분에 좋은 뜻으로 모였다고 해도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한쪽이 다른 쪽을 끝없이 이용해 먹기만 하는 일은 얼마나 일어나냐의 문제일 뿐 늘상 일어난다. 그게 그런게 아니라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서 민주주의는 과정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정치에 실패했을 때 그 결과는 최악으로 간다. 그러니까 500만원 받는게 부족하다고 불평하면서 250만원 받는 선택을 하는 식이 되는 것이다. 노무현과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부동산 정책의 실패가 그들의 문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러면 보수정권이 서면 사회정의가 이뤄진다는 말인가? 전세계에서 가장 지지를 받지 못한 대통령인 윤석열이 대통령인 지금의 상황이 누구에게 행복한 상황인가?
나는 앞의 글에서 이런 바보짓을 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욕망에 눈이 먼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서로 공동체 정신을 생각하며 살기보다 욕망에 충실하며 자유롭게 사는 것, 규칙이고 법이고 없는 세상이 좋은 사람들이 윤석열 정권을 만들었다. 이번 글에서 내가 말하는 것은 이런 바보짓을 하게 만드는 사람은 절충과 정치를 모르는 극단주의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 생각으로는 너무 억울하다. 그래서 이런 더러운 꼴을 보느니 다 같이 망하자고 그게 좋겠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때로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고 자처하면서도 세상을 20세기 중반쯤으로 되돌리는데 열심이다.
앞으로도 대선은 있고 총선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대한민국은 미래가 있을 것이다. 그 미래에도 한국에는 여러가지 모순이 있고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가 실패하면, 타협이 실패하면 우리가 더 살기 힘들어 진다는 것을 잊으면 안될 것이다. 삶이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을 잊은 극단주의자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지 못할 때 우리는 다시 정치가 뭔지도 모르는 아마추어들이 칼을 들고 휘두르는 것을 보는 나라에 또 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