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 살렘으로부터의 편지 8
독립기념일 - crazy night!
5월 10일!
이스라엘 국민으로서는 경축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독립기념일이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독립기념일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보면 얼마나 중요한 날인지 금세 짐작이 가실 거예요. 하지만 어쩌면 우리에게보다도 더 소중하고도 귀한 날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겐 36년이었지만 유대인들에겐 2000년이라는 긴 세월 후에 다시 찾게 된 나라였으니 말입니다.
독립기념일이 되기 일주일도 더 전부터 작은 이스라엘 국기를 달고 다니기 시작하더군요. 어떤 차들은 두 배로 경축하기 위해서인지 두 개씩 달고 다니기도 했어요. 기념일 3일 전부터 매일 하루에 한 번 묵념 시간이 있어서 모든 차들은 도로에 멈추어 서고, 모든 일상적인 행동이 멈춰진 채 온 나라가 이 나라를 세우고 지키느라 노력한 사람들을 위해 묵념을 가졌답니다. 독립을 기념하는 갖가지 행사가 치루어 진 것은 말할 것도 없지요.
그러나 이방인인 저희는 그저 그런가 보다 할 뿐이었지요. 다만 그 날이 휴일이니 그 전날 저녁에 미루어 두었던 남편의 연구실 동료들의 저녁 식사 초대를 하기로 했답니다. 그런데 저녁 식사를 마칠 때쯤 창 밖으로 엄청난 불꽃놀이 광경이 보이더군요. 사실 불꽃놀이는 그 전날 밤에도 있었는데, 놀라서 행사장을 찾아 나섰을 때는 이미 불꽃놀이는 모두 끝난 뒤여서 허탈하게 집에 돌아왔던 터라 다시 나가 볼 엄두는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작년에도 이즈음 이스라엘에 왔었다는 재미동포 방문객 한 사람이 지금 쟈파 거리에 가면 면도용 크림이 공짜인 데다 뿅망치로 누구의 머리든 때릴 수 있다고 하는 거였어요. -쟈파 거리는 서울의 명동에 해당하는 예루살렘의 중심지랍니다.- 무슨 소린지 확인해 보기 위해 우리는 예나의 뿅망치를 들고 손님들과 함께 시내로 나갔어요. 하지만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곳곳이 봉쇄되어 있더군요. 어찌어찌 어렵사리 중심지로 갔더니 거기에 정말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어요.
중심지 지역은 차량이 전면 통제되어 있어서 차를 세우고 북적북적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거리로 들어섰는데, Oh, my God!!! 마치 눈이 온 것처럼 사람들은 모두 허연 거품을 뒤집어 쓰고 있었어요. 거리에 들어서자마자 우리 일행도 거품 세례를 받아서 얼마 가지 않아 모두 눈사람처럼 되었답니다. 거리 곳곳에는 스프레이용 거품과 뿅망치를 파는 잡상인들이 노점을 벌이고 있었고, 길거리에는 다 쓴 스프레이통들이 뒹굴어 다녔어요. 얼마 동안 거품을 대책없이 맞고 있다가 길거리에 버려진 스프레이통 중에 아직 거품이 남아 있는 걸 주워 들고 복수혈전에 나섰지요.
그저 옆을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에게 거품을 뿜어대는 순간, 저도 모르게 아이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짖꿎게 생긴 남자아이들은 한 번 거품을 맞으면 엄청난 양의 거품으로 복수를 하기 때문에 사람을 잘 골라야 했지요. 하지만 뿅망치는 도저히 칠 수가 없었어요. 아무래도 머리는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손님 중의 한 사람에게 뿅망치를 넘겼는데, 그 사람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망치가 부러졌어요, 세상에! 사실 그 망치는 그 전에 누가 밟아서 금이 간 거였는데 그걸 모르는 다른 사람들은 그의 무자비함에 깜짝 놀랐답니다.
여하튼 그처럼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어른 아이의 구분 없이 그처럼 즐겁게 낄낄거리는 모습은 이스라엘에 와서 처음 보았기 때문에 너무 재밌고 신기했어요. 하지만 나중에 물어보니 그 풍습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예전부터 전해져 오는 것도 아니라더군요. 약 20년 전에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도 모르게 생겨나서 지금은 경찰들이 도로 통제를 해 줄 만큼 굳어졌지만 이런 어린애 장난 같은 행사를 보는 눈이 곱지만은 않은 것 같았어요.
“they are crazy!"
이 행사를 싫어한다는 한 유대인 아줌마는 이렇게 말했지만 글쎄요, 적어도 제게는 너무너무 재미있는 밤이었어요. 그 crazy night가 말이에요.
이스라엘로 부터의 편지 9
어젯밤 이스라엘의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결혼식은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중요하고 의미 있는 행사이지요. 이스라엘에 와서 처음으로 결혼식에 가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마치 제가 결혼을 하는 것처럼 들뜨지 뭐예요. 솔직히 그건 좀 과장이지만, 여러분에게 들려 줄 이야기가 하나 더 생겼다고 생각해서인지 마음이 더 신나고 즐거워진 건 사실이에요.
결론적으로 결혼식이 어땠느냐고 물으신다면 아주 유쾌하고 재미있었다고 대답할 수 있어요. 신부의 집 자그마한 정원에서 열린 결혼식은 외국 영화에서 보는 그런 풍경과 과히 다르지 않아서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답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 결혼식하고는 몇 가지 점에서 아주 큰 차이점이 있었어요. 우선 시간이요. 우리는 결혼식을 보통 대낮에 하잖아요. 그런데 여기의 결혼식 시간은 평일 저녁 7시 반. 사실 예식은 8시도 훨씬 넘어서 시작했으니 모두들 정상적인 하루 일과를 끝내고 예식에 참가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시간의 차이가 가지는 의미는 단순히 시간이 다르다는 것보다는 훨씬 크다고 할 수 있어요. 주말 한낮의 결혼식 때문에 나들이 계획을 망쳐 보신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아마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연휴 중간에 결혼하는 사람들, 축복을 받으면서도 적잖이 핀잔도 들어야하잖아요. 남의 휴가를 망치는 셈이니 말이에요. 평일 저녁에 결혼식을 올리면 이런 문제점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두 번째는 분위기인데요, 정원 구석구석 놓여진 테이블과 의자, 조명, 음악, 한쪽 구석에 준비된 칵테일 바... 그야말로 외국 영화에서 보던 파티 분위기였어요. 웨이터들이 집어먹기 좋은 음식들(김밥과 초밥도 있어서 저희는 그것만 엄청 먹었어요... ^*^ )을 쟁반에 들고 돌아다니고, 사람들은 와인을 들고 웃고 담소하는 모습... 너무 여유롭고 즐거워 보였어요. 공간과 시간에 제약이 없으니 가능한 일이겠지요. 예식에만 잠시 참가하거나, 사진만 찍거나, 또는 밥만 먹고 가는 손님들이 대부분인 우리 나라의 결혼 예식 현실을 생각하면 부러운 광경이었어요. 하지만 준비를 한 신랑 신부에게는 무척 번거롭고 힘든 준비 작업이었다고 해요.
세 번째는 그야말로 우리와는 다른 예식 풍경이에요. 신부의 동생들이 장미꽃잎을 뿌리고 간 다음, 신부와 신랑이 손을 꼭 잡고(!) 천천히 걸어서 입장하는데, 그 뒤를 양가 부모께서 따라 들어가시더군요. 예식이 진행되는 장소에는 네 기둥을 세워 하얀 차양을 만들었는데 그 네 기둥을 신랑 신부의 형제들이 잡고 서 있었어요. 결국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 온 가족이 다 예식 장소에 나란히 서 있게 되더군요. 결혼이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 온 가족의 행사라는 느낌이 들어 보기에 아주 좋았어요. 그래서인지 신랑과 신부의 표정 또한 떨거나 경직된 느낌은 전혀 들지 않고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어요. 사회 겸 주례인 랍비가 주례사를 하고 경전을 읽고, 증인을 세우고 하는 과정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엄숙하고 진지했답니다.
여기까지는 여타 서양의 결혼식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마지막 순서, 신랑 신부가 유리잔을 깨뜨리는 풍습만은 이스라엘 고유의 결혼 풍습이라고 할 수 있었어요. 이 풍습은 2000년도 훨씬 더 전에 로마가 이스라엘을 침입하여 모든 사원을 다 없애고, 유대 민족이 전세계로 뿔뿔이 흩어지고 난 다음, 우리의 사원이 파괴되었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자는 뜻에서 행해져 온 거래요. 결혼식 때 유리잔을 깨뜨리는 것은 가장 기쁘고 행복한 날에도 잊지 말자는 결의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미 독립이 되고, 이스라엘 사원이 재건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풍습은 여전히 남아 있답니다. 아픈 역사를 절대로 잊지 말자는 뜻에서겠지요.
또 기억에 남는 사실은 신부는 웨딩드레스를 입었지만 신랑은 그저 깔끔하고 새 것인 것 같은 캐주얼 남방에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는 사실이에요. 이 나라에서는 턱시도를 사거나 빌리는 것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었지만 저는 좀 다른 생각이 들거든요. 무엇을 입든 그것을 받아 들일 수 있는 사람들의 열린 마음 때문에 그런 옷차림이 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우리 나라 사람들은 턱시도가 아니라도 적어도 양복 정장 차림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너무 평범하게 입어서 종종 신랑이 누구인지 구별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보기에 썩 나쁘지 않았어요.
예식이 끝나자 드디어 뷔페식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어요. 저는 김밥이랑 초밥을 너무 많이 집어 먹어서 과히 많이 먹진 못했지만 꽤 훌륭한 음식이었어요. 이 식사만 해도 옆에 있던 친구 말이 우리가 낸 부조금 정도는 될 거라고 하더군요. 부조금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여기선 부조금을 사람당으로 내더군요. 우리는 주로 가구당으로 내잖아요. 신랑이 예나 아빠 동료이니 예나 아빠의 이름으로만 내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 몫까지 두 사람분을 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잠깐 동안 나는 결혼식에 가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치사한 한국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도 싫을뿐더러 이스라엘의 결혼식을 볼 수 있는 이런 귀한 기회를 놓칠 수도 더더욱 없었어요. 결과적으로 안 갔으면 정말 후회할 뻔했어요. 그래서 도대체 그게 얼마냐구요? 예나 아빠 연구실 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함께 부조금을 냈는데 한 사람당 125세켈, 그러니까 우리 나라 돈을 4만 원이 좀 못 되는 돈이에요. 저흰 250세켈 냈으니 많이 냈지요? ㅜ.ㅜ 하지만 식사는 정말 훌륭했어요.
저녁 식사가 끝나갈 무렵이 되자, 사람들이 춤을 추기 시작하더군요. 음악은 파티가 시작될 때부터 예식이 진행되는 잠깐 동안을 제외하고는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호텔 캘리포니아 같은 옛날 팝송들이 많이 나와서 저도 전혀 부담이 없었어요. 덕분에 춤추기 좋아하는 예나는 저녁 내내 춤을 추다 밤이 되자 아주 넉다운이 되었답니다. 신랑 신부를 중심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심지어 배가 남산만한 임산부들까지 흥겹게 춤을 추는 걸 보고 이게 정말 파티구나 싶었어요. 모두가 정말로 즐기고 있었거든요. 이런 댄스파티가 자정 너머까지 계속된다니 평일 저녁에 결혼식을 하는 것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저희는 열한 시가 좀 안 되어서 먼저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때까지도 파티 분위기 한창이었으니 다들 오늘 출근은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어요.
신랑 신부는 오늘 하루 푸욱 쉬고, 내일쯤 그리스로 신혼여행을 가다고 해요. 결혼 당일날 식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공항으로 달려가는 우리들보다 훨씬 여유 있는 스케줄이지요. 우리는 결혼 휴가가 훨씬 짧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쬐끔 부러운 건 사실이었어요.
하지만 결혼식에 온 덕분에 우리 나라 결혼 풍습에 대해 이 곳 사람들에게 열심히 설명하다 보니, 함 파는 풍습, 청실홍실 이야기, 신랑 발바닥 때리기 등 우리네 결혼 풍습이 얼마나 흥겹고 독특한지 새삼 느끼게 되었어요. 번개불에 콩 볶듯 하는 결혼식 자체는 문제지만 결혼 풍습은 우리 나라 쪽이 훨씬 더 자랑할 만하다는 걸 알게 된 거지요.
톡톡 튀는 젊은 세대들이 이런 우리 풍습을 계승하면서도 여유롭고 즐거운 결혼식 문화를 좀 창조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램, 이스라엘의 결혼식을 다녀온 오늘의 결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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