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한 일본인 학생이 한국에 놀러왔다가 우리집에 머물고 간 일이 있다. 그 학생에게 한국이 일본과 뭐가 다르냐고 물었더니 그 대답이 이랬다.
"한국은 길가에 차를 세워두는 군요. 일본은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그렇다. 일본은 길가에 차가 세워져 있는 일이 기본적으로는 없다. 물론 일본도 시골처럼 인구밀도가 낮은 곳은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일본에서는 첫째로 자기 주차장이 있고 둘째로 불법주차의 벌금이 엄청나게 세다. 몇십만원이나 된다. 그러니까 노변에 차를 세워두는 일이 없다.
우리는 두가지 자명한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자동차는 면적을 가지고 있다.
둘째로 오늘날 한국에서 땅은 비싸다.
이러한 두가지 사실들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그 것이 가지는 의미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지금도 이 두가지 사실이 주는 모순들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 결과는 뭘까? 당연히 공공공간의 점유다. 도로공간을 침탈하여 집을 지으면 안되는 줄 알지만 그걸 차로 점유하면 별거 아닌 것으로 여기니 당연히 점유가 일반화 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현실을 외면할 수 있을까?
사실 자동차 한대가 차지하는 면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다. 일반도로의 폭은 3미터다. 그리고 가장 흔한 차중의 하나인 소나타의 길이는 4.82미터다. 이 두가지 사실로 부터 우리는 길을 달리고 있는 자동차는 대개 15제곱미터 이상의 면적을 차지 한다는 것 그러니까 5평가까운 면적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소나타보다 작은 차도 있지만 차중에는 소나타보다 큰 차도 있고 차라는 것은 문을 열고, 움직여 나가기 위해서 자동차 주변에도 면적이 필요하다. 그래서 자동차 한대가 5평의 면적을 차지한다는 계산은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주차장을 설계할 때 차량 한대당 차지하는 면적의 최소 기준은 19제곱미터로 5평이 넘는다.
그런데 한국에서 땅은 얼마나 비싼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명동의 네이쳐 리퍼블릭의 땅값은 2019년 현재 기준으로 1평에, 그러니까 3.3 제곱미터에 6억이 넘는다(링크). 면적이 51.3평에 불과한 이 장소의 임대료는 보증금 50억에 월세가 2.5억으로 1년이면 30억이다. 그러니까 그 땅에 자동차를 한대 가져다 놓을 장소를 사기 위해서는 땅값만 15억이 든다는 이야기고 네이쳐 리퍼블릭 기준으로 그 면적의 임대료를 생각하면 보증금 5억에 월세가 2천5백만원에 가깝다는 산수가 나온다. 이걸 생각하면 자동차를 타고 명동주변을 24시간 달리면서 명동에 머무르면 연료비를 고려한다고 해도 굉장히 이익일 것같다. 어쩌면 자율주행자동차가 나오는 시대에는 이런 걸 진짜로 시도하는 사람이 나올지 모른다. 소나타보다 훨씬 큰 2층버스같은 것이 계속 움직이면서 그 버스를 타고 쇼핑을 하라고 하면 억대의 월임대료를 아끼면서 명동 상가를 가지게 되는 셈이다. 이건 완전히 농담이 아니다. 자유주행기술과 전기차의 보급 그리고 비싸진 주거비용때문에 자동차 호텔이나 자동차 집을 말하는 사람은 꽤 있다. 지금 이대로 가면 이건 사람들보고 자동차에서 살라고 권하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주거비를 크게 아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움직이는 호텔
물론 앞의 계산들은 한국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기준으로 한 계산이지만 우리는 도시에서 땅 한평이 얼마나 비싼 것인가를 새삼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명동같지는 않지만 어디나 땅값은 비싸다. 하지만 불법주차 벌금은 우리나라에서 22년째 4만원을 유지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불법주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안일하다. 내 차를 골목길 같은 내 땅이 아닌 장소에 세우는 일에 대해서 누군가가 그것은 공공의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면 한국 사람들은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쩨쩨하게 굴지 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 정도의 면적을 차지하는 것이 정말로 별거 아닌 세상이라면 그냥 그 별거아닌 땅을 사서 자기 땅에 차를 세우면 되는거 아닐까? 그렇게 말하면 그 사람은 땅값이 얼만데 땅을 사라고 하냐고 버럭 화를 낼 것이다. 맞다. 내 말이 그 말이다. 땅값이 얼마인데 그게 별거가 아니라고 하는가 말이다.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미국의 경우는 땅이 워낙 넓다. 그래서 뉴욕의 맨하탄 같은 곳이 아니면 문제가 우리나라보다 덜하다. 하지만 불법주차벌금은 우리나라보다 몇배나 크고 소화전같은 곳 앞에 세웠다가 불이나면 소방관이 차를 파괴하고도 벌금을 내게 한다. 물론 맨하탄같은 곳은 섬이라 서울보다 공간문제가 심하다면 더 심하다 그래서 맨하탄에서는 차를 소유하는 일이 엄청나게 비싸다. 한달 주차비가 150만원이 넘는다. 이러니 골목길에 차를 세워놓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맨하탄에 살 때는 나는 차를 소유하지 못했다. 차값이 아니라 주차비때문이다. 사실 차값은 미국에서는 매우 싸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평상시에는 그냥 걸어다니거나 대중교통을 쓰고 멀리가야 할 때는 렌트를 했다.
일본이나 우리나라같이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은 모두 맨하탄에 사는 것과 어느 정도 비슷할 수 밖에 없다. 유럽만 해도 불법주차 요금이 우리나라의 4배가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직접 경험해서 알고 있는 일본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일본에서는 1962년이래 차고지증명제가 실시되고 있다.그래서 차를 소유하려면 기본적으로 자기 주차장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차를 소유하려면 주차장을 자기 아파트 계약하듯이 계약해서 빌려야 한다. 아파트의 주차장과 그 아파트에 사는 것과는 별개다. 우리나라처럼 아파트에 살면 그 밑의 공동 주차장 아무데나 차를 세워도 되는 시스템이 아니다. 주차장은 아파트와는 완전히 별개로 부동산에 연락해서 임대해야 하고 남의 집이 비어있다고 내가 거기 들어가서 잘 수 없듯이 남의 주차장이 비어있다고 해서 내가 그 주차공간에 차를 댈 수 없다. 그러니까 애초에 주차문제가지고 이웃간에 싸우는 일이 일어날 수가 없다.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자전거를 많이 타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자동차를 가지고 다니면 주차문제가 골치아프고 비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사람들은 유치원에 아이를 데려다 줄때나 가까운 시장에 갈 때는 자전거를 타는 일이 많다.
단독주택을 소유한 사람들은 집이 아무리 작아도 자기 주차공간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 차를 세운다. 그래서 일본에 가면 종종 차를 기가막히게 작은 공간에 세워놓은 모습을 보고 놀랄 때가 있다. 작은 단독주택부자에서 주차공간을 최대한 작게 할애했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일본은 유럽보다 불법주차 요금이 더 세다. 나는 내 친구가 불법주차때문에 70만원을 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정도면 일본에서 멀쩡해 보이는 중고차도 살 수 있을 정도다.
다시 말하지만 차는 면적을 가지고 있다. 그 면적은 결코 사소하지 않으며 사회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사회적 의미 중의 하나는 그것이 공공의 공간을 침탈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내가 한 계산에 따르면 자동차를 만대를 세우려면 5-6만평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말은 만대의 자동차가 공공의 공간에 주차될 때마다 그만큼의 공공의 공간이 점유당한다는 뜻이다. 만대의 자동차라고 하니까 엄청나게 많은 것같지만 한국에는 2천2백만대의 차가 있다. 2천2백만대를 한대당 5평으로 계산하면 면적이 1억천만평이 되는데 서울의 전체 면적이 1억 8천 3백만평이다. 자동차 한대 마다 나무 한그루를 심으면 거의 서울 면적과 비슷한 숲이 생기는 셈이다. 이래도 불법주차문제가 쩨쩨한 문제일까? 너도 나도 공공의 공간을 세평 네평씩 훔쳐도 되도록 내버려 두면 이 나라는 엉망이 될 것이다.
지금도 불법주차문제는 심각하지만 그것은 훨씬 더 심각해 질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는 빠르게 증가해 왔다. 앞으로 전기차 보급이 본격화되면 차를 소유하지 않고 렌트만 하는 것이 보편적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 말은 앞으로 자동차의 숫자가 줄어든다는 것일까? 나는 그 반대가 될 가능성도 크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자율운전과 자율주차가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차가 없는 사람중에는 운전이 무섭거나 어려워서 자제하는 사람이 많다. 또 운전이 피곤해서 운전을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자율운전기술이 발전하면 차의 운전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너도 나도 차를 사지 않을까?
세상은 이미 상당히 빠르게 변하고 있다. 테슬라는 전기차 양산에 성공해서 엄청난 수의 자동차를 팔고 있다. 그런데도 자동차가 면적을 가진 다는 사실에 대해 안일하게 대응하면 나중에는 이 모순이 누적되어 피해자가 많이 나올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갑자기 불법주차 요금을 열배로 올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주거 문화, 생활문화, 도시 설계, 직업문화등이 다 관련되어 있는 문제다. 그걸 생각하지 않으면 차를 쓸 수 밖에 없는 서민들에게 벌금만 잔뜩 물리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런 문제때문에 한국도 과거에 다섯차례에 걸쳐서 차고지증명제를 고려하였고 지금도 연구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시는 못하고 있다. 우리는 면적을 가진 자동차 시대에 빨리 적응해 나가야 한다. 자동차 댓수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진 후에는 문제해결이 점점 더 어려워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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