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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교육에 대하여

교육과 놀이

by 격암(강국진) 2023. 1. 3.

23.1.3

우리는 여러가지 일들을 여러가지 이유로 한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학교나 회사에 가서 뭔가를 한다면 그것은 그 장소에 걸맞는 행동을 하러 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 환경이 우리의 행동을 거의 대부분 결정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여가시간이라는 것은 우리가 누구인가를 알아 보는 중요한 기회가 된다. 여러분이 시간이 있을 때마다 뭔가를 계속 하고 있다면 그것이 여러분이 원하는 것이다. 외부로부터의 압력이 사라지고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때 우리가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내부에서 나오는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과 오늘날의 교육이라는 것을 합쳐서 생각하면 우리는 한가지 질문을 하게 된다. 과연 오늘날의 교육은 우리의 여가시간을 즉 우리 자신을 바꿀까 하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교육이라고 하면 거의 순수히 직업훈련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래서 교육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출세하고 돈을 벌 수단을 얻는 과정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각이 강하면 강할 수록 교육은 우리 자신과 분리되게 된다. 즉 교육이란 망치나 톱같은 도구를 얻는 과정이지 우리 자신을 바꾸는 행위가 아닌 것이다. 보통 이런 것을 인성교육이라고도 하는데 오늘날에는 이런 말에는 세뇌같은 껄끄러운 부정적 인식이 붙어다닌다.

이 문제는 되돌아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심각하다. 여가시간이 우리 자신을 나타낸다는 말은 여가 시간을 다양하고 즐겁게 보내는 사람이야 말로 풍요로운 자기를 만든 사람이고 잘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기성세대는 무엇보다 이런 것을 배울 기회를 아이들에게 줘야 할 것이다. 바로 자기 자신을 키울 기회말이다. 조각난 퀴즈 답같은 사실이나 수식을 외우는게 아니라 스스로를 확장시키고 키울 기회가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꼭 필요하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그냥 바쁘기만 하다. 그래서 일찍부터 직업훈련으로 빠져들어서는 유치원때부터 뭐는 월급이 세고 뭐는 약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판이다. 그러는 가운데 교사의 권위는 오히려 약해져서 이제 학교 선생님을 스승으로 삼아 삶을 배운다는 식의 사고를 하는 사람은 드물다. 선생님들 스스로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삶을 가르치려고도 하지 않고 그걸 스스로 배울 기회도 주지 않는다. 그 결과는 20살, 30살, 40살이 되었는데도 마치 10살 같은 어른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 키덜트들은 여가시간에 뭘할까? 어린이같은 일을 한다. 왜냐면 그들의 욕망은 그 시절에서 그리 많이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이 과연 유치원이나 초등학생 이후 진정으로 얼마나 성장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있다. 지금의 중년이나 노년층이라고 해서 그들의 딱딱해진 껍질 안에 어린애를 숨겨두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적인 성장이란 쉽지 않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렇게 뭉뚱그려버리지 말고 다시 교육과 놀이에 대해 생각해 보면 우리는 같이 여가시간을 보내면서 노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며 여가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은 노는 것이지 교육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극히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특별히 정해진 것이 없는 여가시간에 모여 자유로이 대화를 나누고 여러가지 행동을 하는 것은 인간적인 교류이며 우리는 바로 그런 교류를 통해서 인간적으로 성숙해 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런 여가시간의 어울림은 서로를 표현하는 시간이 되고 그 안에서 우리는 보다 일반적이고 보다 강력한 인간을 배울 수도 있다. 이런 어울림의 대표는 가족의 시간이다. 아이는 부모와 같이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공놀이를 하면서 어른과 교류하게 된다. 그리고 어른답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느끼고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굉장히 교육적인 시간이지만 이것은 결코 교과서에 나와 있는 어떤 규칙을 외우는 일과는 다르고 표면적으로는 뭘 배우는 시간이라기 보다는 그저 즐겁게 노는 시간처럼 보일 수 있다. 

우리가 저명한 인물들이 쓴 자서전을 통해서 배우게 되는 것도 이런 만남의 소중함이다. 그들은 어떤 멘토와의 주말시간이나 피크닉 시간을 잊지 못하여 그걸 자신들의 회고록에 남기고는 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그런 여가시간을 통해 오히려 더 많은 성장을 이뤄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자유로운 시간에 들어나는 그 위대한 인간의 모습에서 자신이 살아갈 길도 배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성세대가 어린 세대를 위해 힘써야 할 일은 되도록 어른 스러운 사람들과의 접촉할 기회를 더 많이 줘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현실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거꾸로 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아이들은 철저히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그저 교과서를 외우는 기계처럼 키워진다. 그들이 학교에 일찍가고 더 늦게 집에 돌아올 수록 그들의 교육은 어떤 의미에서 더 크게 망가지고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배운 사람들의 문화란 이 글의 문맥에서 말하자면 놀이 문화다. 즉 우리가 놀 때 뭘하는가가 우리의 배움을 표현해 준다는 말이다. 당신에게 자유로운 시간이 있다면 당신은 사색에 잠기는가? 술을 마시는가? 클럽에 가는가? 음악을 듣는가? 모여서 저질스런 농담을 하거나 잘난체를 하는데 쓰는가? 영화를 보는가? 멋진 풍경을 찾아 산이나 바다로 가는가? 미디어가 보여준 누군가처럼 멋지게 소비하기 위해 유명한 장소를 찾는가? 

언젠가 한국 사람은 개처럼 굴기 위해 성공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 잊혀지지 않는다. 한국인에게 성공의 증거란 바로 법을 어기고 종업원이나 택시운전사 같은 사람에게 갑질을 하면서 개처럼 굴어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며 그러니까 우리는 그렇게 되기 위해 성공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배움과 놀이의 문화가 얼마나 처참한가를 말해주는 한가지 방식이기도 하다. 자신을 아무도 모르는 외국같은 곳에 가게되면 갑자기 윤리며 체면이며 다 잊어버리고 개처럼 구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여가시간에 자기를 표현한 것이다. 자기를 표현했으니 아름답다고만 말할 것이 아니다. 그런 행동은 그나 그녀는 인간적으로는 어린애에서 조금도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단순히 성장하지 못했다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내 삶이란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몰라서 불안감에 고통받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해야할 일, 지켜야 할 규칙은 많고 그래서 삶이 고통스러운데 이게 다 뭘 위한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뜻이다. 어린애가 어른의 옷을 입고 있으니 그럴 수 밖에 없다. 진정한 자기는 아직도 초등학생인데 어느새 몸은 커서 어른이 되었고 때로 결혼해서 배우자도 있고 혹은 아이도 있어서 부모까지되고 보면 속으로는 황당해서 비명이 나올 지경일 것이다. 

이걸 많은 사람들도 느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린 아이나 청년들에게는 그런 걸 추구할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 것같다. 학교같은 교육기관은 배움을 주는게 아니라 오히려 삶과 생명을 빼앗아 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세상 별거 없으니 열심히 일해서 돈이나 많이 벌라고, 그게 전부라고 가르치는 것같이 보이는 것이다. 왜냐면 계속 교과서에만 머리를 처박으라고 말하고, 어른들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개인적 만남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암시하는 것같기 때문이다. 

배움과 교육은 뭘 어찌하든 쉽지 않은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어울림의 시간, 놀이의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이 너무나 깊이 잊혀지는 것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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