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일본 미국 이스라엘

미국 이야기 3 : 하나님은 미국을 사랑한다.

by 격암(강국진) 2010. 2. 25.

하나님은 미국을 사랑한다.

 

나는 평소에 아내로부터 화를 잘 낸다고 핀잔을 받는다. 병이랄 정도는 아니라 해도 우울증도 가끔 겪는 것 같다. 가끔은 만사가 귀찮질때가 있다. 그런데 하루는 책을 읽다가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에 대해 읽게 되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조금 더 해보니 더욱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세로토닌이란 물질이 두뇌에 적으면 동물들은 폭력적으로 변하게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세로토닌을 흡수 못하게 유전자적으로 쥐들을 조작하자 쥐들이 폭력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세로토닌이 없으면 마음의 평정이 없어지며 시중에 나와있는 우울증 치료제의 대부분은 사실 이 세로토닌 부족을 해결해 주는 약들이란다. 이 세로토닌이란 물질은 심지어 사회적 활동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원숭이 사회에서는 폭력적이면 더 높은 위치를 점할것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세로토닌의 양을 증가시켜준 원숭이는 거꾸로 높은 사회적 위치를 점했으며 암컷원숭이로부터 인기도 좋아졌다는 것이 아닌가.

 

아하. 나는 퍼뜩 깨달았다. 나야 말로 세로토닌이 부족한 원숭이가 아닌가. 나의 생활습관이나 타고난 몸이 세로토닌 부족을 겪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깨달음은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 나는 스스로를 화를 잘내고 우울한 남자, 여자에게 인기없는 남자 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진짜 내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건 단지 세로토닌이 부족했을 뿐이다. 잘못된 것은 세로토닌이다. 본래의 나는 문제가 없는 것이다. 나는 무죄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생각이 바뀌자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행동이 바뀌었다. 내 머리안의 세로토닌 수준이 변하지 않아도 그럴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실은 평화로운 마음을 가지는 것 자체가 세로토닌의 양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 나는 열심히 돼지고기를 먹고 참선을 하고 일광욕을 하자고 결심했다. 내 몸안의 세로토닌의 양에 신경을 쓸 것이다. 

 

종교적인 경험담을 들으면 어떤 면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음악을 듣다가 혹은 병이나 사고를 겪는 가운데 어느 순간 내가 신의 자식이구나 하는 확신, 신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확신이 드는 순간 나 자신이 누군가에 대한 생각이 바뀐다. 나는 신의 창조물이다, 나는 신과 연결되어 있다. 신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생각이 바뀌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그런 생각이 우리의 행동을 바꾼다. 인색한 구두쇠가 한순간에 매우 마음 넓은 자선가로 변한다. 불평불만이 사라진다. 기도를 하고 고행을 한다.

 

미국은 부자나라이면서도 매우 신앙적이라는 점에서 특이한 나라다. 2002년의 퓨 그로벌 애티튜트 프로젝트가 전세계 44개국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민소득과 종교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은 거의 정확히 반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조사에서 일본은 12%의 사람만이 종교를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고 한국은 25%의 사람이 그렇다고 말했다. 반면에 가난한 남미국가나 가난한 아시아국가, 아프리카의 국가에서는 종교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해서 브라질에서는 77%의 사람이, 인도네시아에서는 95%의 사람이 세네갈에서는 97%의 사람이 종교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재미있게도 이 조사에서 유달리 예외적인 두 나라가 있는데 이중의 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에서는 59%의 사람이 자기에게 종교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이는 캐나다에서 30%, 이탈리아에서 27% 그리고 프랑스에서 11%의 사람만이 종교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 것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숫자다. 다른 예외적인 한나라는 베트남으로 베트남은 가난하지만 오직 24%의 사람만이 종교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스라엘은 이 조사에 포함되지 않았다.

 

미국의 달러지폐를 펴면 우리는 신을 믿는다라는 좌우명이 씌여져 있다. 이것은 미국의 공식 좌우명으로 1956년에 미국 의회에 의해서 결의된 것이다. 그 이전에 미국의 좌우명은 흔히 여럿으로 이뤄진 하나라고 생각 되어 졌었다. 미국의 지폐에 우리는 신을 믿는다는 좌우명을 써넣는 것은 1955년에 법에 의해 정해졌는데 이때 미국 의회는 이렇게 말한다.  최근 제국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인 공산주의가 자유를 공격하고 파괴하려고 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이 적절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나라가 신을 믿는 한 우리는 번영할 것이다.’ 이것은 거의 종교국가에서 나올 소리처럼 들리지만 물론 미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으며 이 때문에 무신론자들은 이를 지폐에서 지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이 어떤 결실을 맺을런 지는 알 수 없다. 2003년의 갤럽조사에 의하면 90%의 미국인은 미국 돈에 이 같은 좌우명을 써넣는 것에 찬성했다고 한다. 2006년 미국대통령 조지 부쉬의 형제인 젭 부시가 주지사로 있는 플로리다에서 우리는 신을 믿는다는 구호는 주의 좌우명이 되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도 물론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미국은 비 종교국가다. 헌법에 의해 미국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으며 종교에 의한 통치는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1990년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미국 성인 중 86.4%가 스스로를 기독교인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2007년의 조사에서도 여전히 전체 성인 중 78.4%가 스스로를 기독교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미국 종교 집단 중 가장 커다란 규모를 가진 것은 백인 신교정통파로 전체인구의 26.9%를 차지한다. 미국의 개방성과 적응능력을 지켜주는 것이 자유의 여신이라면 미국사람의 생활에 질서와 목표를 주는 것은 기독교의 하나님이다. 미국인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이들로 생각하고 있는 것 이다.

 

그럼 기독교는 어떤 종교인가. 기독교는 유대교, 이슬람교와 함께 아브라함의 종교라고 불리우는 유일신교다. 구약의 하나님은 죄를 저지르면 벌을 주는 하나님이다. 처음 창조된 인간인 아담과 이브는 행복하게 살았는데 하나님의 말을 어기는 죄를 저지르고 낙원에서 쫒겨 나서 죽어 흙이 되는 운명에 처한다. 즉 인간은 신에게 죄를 지어 불행하게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아 벌을 받는 이야기는 구약의 창세기에 계속 나온다. 인간은 교만하고 죄를 지어서 하나님은 홍수로 사람들을 죽이고 바벨탑을 부시고 사람들을 흩어 놓는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죄지은 자들에게 무서운 처벌을 내린다.

 

전에도 말했듯이 우리가 신화나 이데올로기를 위대한 정체성에서 시작하는 경우 그 신화의 끝은 악과의 싸움으로 끝나는 일이 생기기 쉽다. 하나님은 완벽하기 때문에 현실은 천국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은 무엇때문인가. 인간을 유혹하는 악때문이다. 아담도 이브에게 속았고 이브는 뱀에게 속았다. 인간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악이 잘못된 것이다. 악의 문제를 해결하면 우리는 행복하게 살수 있다. 악의 존재는 일신론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문제다.

 

실은 악의 존재는 서양의 신학자들에게 설명하기에 골치아픈 문제였다. 나이젤 워버턴은 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한 10가지 성찰이란 책에서 악의 존재에 대해 서양 철학자와 신학자들이 시도한 설명들을 소개하고 있다. 몇 개의 설명들은 저자 스스로도 그다지 강조하지 않을 만큼 궁색한 것이다. 예를 들어 악이 더 큰 선을 위해 존재한다는 설명이 그렇다. 비참한 전쟁과 기아는 고난을 이겨내게 하는 영웅이나 성자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참한 고난이 하나님이 나를 위해 준비해준 것이라는 설명은 무한정 반복하기엔 세상에 너무 비참한 악이 많고 설득력이 떨어진다.

 

나이젤 워버턴이 생각하는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악은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만들었다. 따라서 악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설명이 그럴듯한가 하는 것은 물론 개인적 선택의 몫이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악의 존재를 충분히 설명해 주지는 못하는 것같다. 왜 신은 기적을 통해 우리를 구원해 주지 않는가? 왜 기적이 때때로 신에 의해 행해진다면 기적은 그렇게도 드물고 참담한 악들을 외면하는가. 어쨌거나 골치가 아프지만 악은 존재한다. 존재해야 한다.

 

이 때문에 기독교 같은 유일신 종교를 믿는 사람은 선악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경향이 있다. 신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과 악의 싸움에 있어서 선의 편에 서서 악과 싸우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가 번성하는 미국에서 선악구도가 분명한 이야기가 흔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선악의 싸움 이야기를 무엇보다도 할리우드 영화에서 쉽게 발견 할수 있다. 서부영화가 흥행하던 옛날부터 스타워즈나 슈퍼영웅의 영화에 이르는 오늘날까지 그렇다. 미국에서 크게 흥행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존웨인이나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같은 선한 영웅들이 악당들과 열심히 싸우고 있는 것이다. 영웅은 모든 어려움과 유혹에도 불구하고 선의 편에서서 악과 싸워 이긴다. 가장 중요한 싸움은 친구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악과 싸워 이기는 것이라는 메시지는 미국에 가득차 있다.

 

그러나 인디언을 인간을 위협하는 맹수 같은 단순한 악으로 그리는 많은 서부 영화가 보여주듯이 선악구분이란 때로 좀 위험한 것이다. 선을 강조하는 문화는 결과적으로 악을 강조하게 되고 사랑을 강조하는 문화는 결과적으로 미움을 강조하게 되기 쉬운 것같다. 자기와 틀린 것을 악으로 말하게 되기 쉽다. 선한 자들을 사랑하는 만큼 악은 미워해야 한다. 신이 하나이듯이 정답도 하나이기 때문이다. 단지 미국은 인간의 자유에 대한 확고한 전통과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이런 피해가 상당부분 상쇄되어 왔다.

 

하지만 종교적 축복이나 효험이 또 시민들의 상호 신뢰에 기반해야 하는 자유에 대한 믿음이 언제나 완벽해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은 전세계에서 최고로 많은 사람들을 감옥으로 보내는 나라다. 2006년 기준으로 7백만의 사람들이 감옥에 있거나 보호감찰상황이거나 가석방상태다. 미국에는 전세계 인구의 5%가 살고 있지만 수감된 사람들만 따지면 전세계 수감자의 4분의 1은 미국에 있다. 1998년 통계에 따르면 전체 20대 흑인들 중의 3분의 1은 수감되어 있거나 보호감찰 상황이거나 가석방 상태다.

 

미국은 정신병질환자도 많다. 미국 국립 정신건강원에 따르면 2005년에 조사한 결과 전체 미국 18살 이상의 성인 중 넷 중 하나는 정신병질환을 가진 것으로 진단된다고 말한다. 외국의 자료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나 이것은 잠정적으로 전세계 1위의 수준이다. 미국 전체 인구의 약 6퍼센트 그러니까 17명중 하나는 매우 심각한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어서 정상 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이며 캐나다와 미국에서 15에서 44살의 사람들에게 정신질환이 신체 장애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미국 성인 중 열 명중 하나는 조울증 같은 정서장애를 가지고 있다.

 

2005 8 31, 뉴올리언즈에 카테리나 태풍이 불어닥쳐 도시의 80%가 홍수로 물에 잠겼다. 태풍이 지나고 난 후 도시는 대규모의 폭력과 약탈의 장소로 변했다. 태풍이 오기전에 경찰병력중의 3분의 1은 지역을 이탈했고 그들 중 다수는 순찰차를 타고 그렇게 했다. 몇몇 경찰은 카테리나 태풍이 지나고 난 후 차량절도로 체포되었다. 태풍이 온 다음날은 도시 전체로 약탈이 번져서 도시에는 총을 든 약탈자들이 돌아다녔으며 도시엔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경찰도 약탈에 일부 참여했으며 경찰이 6명의 약탈자들을 사살하기도 했다. 루이지아나의 주지사는 연방경비군을 투입하면서 질서유지를 위해서는 총기발포를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세계적 선진국가로서도 사랑의 종교가 어느 다른 나라보다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나라로서도 그런 현실은 그다지 자랑스러울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

 

미국처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이 없는 나라에 기독교가 널리 퍼질 경우는 어찌 될까. 기독교는 서구의 종교로 그것이 서구문화와 자유민주주의의 수입의 창구가 될 것으로 흔히 기대된다. 하지만 기독교의 확산이 반드시 자유민주주의의 확산을 가져올 것인지는 알 수 없지 않을까. 한국에서 일부 기독교인들이 타 종교를 사탄이라 부르고 절에 불을 지르고 단군상 목을 자르는 일을 가끔 저지른다고 한다. 이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권리에 대해 우리나라가 미국만큼 철저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일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들이 진짜 하나님이 뭔지에 대해 제대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언제나 가능하다. 다시 말해 그들은 진짜 기독교 철학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수 있다. 불행히도 그 진짜 하나님을 기독교신자를 자처하는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은 아닌 것같다.

 

합리주의적인 미국이지만 사실 세상을 논리와 분석만으로 살수는 없다. 진짜 중요한 것은 대개 논리적 분석 너머에 있다. 논리와 분석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것들은 그 자체가 가치를 만들어 내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오히려 그런 행위가 가치를 파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예를 들어 사랑에 빠진 두 연인에게 사랑이란 두뇌에서 이런 저런 화학물질이 반응한 결과이며 이런 저런 진화의 결과 생겨난 두뇌의 반사작용이라고 설명한다면 혹은 은밀히 행해진 최면의 결과라고 한다면 사랑의 가치는 오히려 사라지는 듯이 보일것이다.

 

사람이 세상을 사람의 머리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야 하지만 또한 동시에 사람 머리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도 중요한것같다. 그리고 그 인간이성의 한계너머에 있는 것에 대한 믿음이 가치를 만들어 낸다. 논리나 과학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예술작품이 그렇고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이 그러하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그렇다. 논리적으로 이해해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너머에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모든걸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가치적 진공상태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예를 들어 생명을 모두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생명의 가치를 존중할 필요를 못느낄지도 모른다. 미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지만 그 윤리와 인생관은 기독교가 확실히 지배하는 나라다. 미국의 합리적 이성의 한계 너머에는 기독교의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