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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소통의 문제

소통에 대하여

by 격암(강국진) 2011. 9. 29.

11.9.29

소통은 어렵다. 우리는 때로 누군가의 앞에 서있는 우리 스스로를 서로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외국인처럼 느낄 때가 있다. 누가 옳고 그른 가를 떠나 소통에는 기본적인 개념들에 대한 공유가 필요하다. 여기서 친구라고 말하면 저쪽에서 그걸 친구로 알아들어야 친구가 뭔지 이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진정한 소통은 참을성과 시간 그리고 운과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들은 언제나 희귀한 것이다. 

 

어린 왕자에 보면 왕자와 여우가 사귀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서둘러 바짝 다가가 앉지 않는다. 매일 조금씩 다가서서 앉는다. 사귐이 그래야 하는 이유는 두 사람, 두 존재는 서로 다른 경험에 기반한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두 존재가 준비도 없이 바로 바짝 다가 앉으면 원하지 않는 불필요한 다툼과 오해의 씨앗이 뿌려진다. 그 오해는 두사람을 원수로 만드는 균열을 키워간다. 예를 들어 많은 부부가 결혼하고 서로를 미워하게 된다. 그들도 결혼전에 서로의 공간을 가지고 각자 살 때는 즐겁게 만나던 사람들이었지만 말이다.  제대로 공존하는 관계가 되지 못할 때 붙어서 산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감옥이 되는 일이 되고 만다. 

 

그래서 관계에는 항상 적당한 거리라는게 있다. 자식과 부모라도 그렇고 이웃끼리도 그렇고 사제지간도 그렇다. 모든 종류의 인간관계에는 이미 준비된 만큼에 해당하는 적당한 거리라는게 있다. 그 거리보다 멀어지면 서운하고 그 거리보다 가까워져서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이야기하면 이번에는 상처가 생긴다. 그 준비는 시간이 지난다고 꼭 저절로 되는 것도 아니다. 노력도 해야하고 다른 사람과 공존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운도 따라야 한다. 태어날 때부터 같이 살아온 가족들간에도 오해와 미움과 불신이 만들어 진다. 그저 식사 한두번 하고 마음에 있는 말 주고 받으면 간단히 관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소통이 필요하다. 

 

나는 그것을 요즘 인기있는 한국의 연예프로그램에서 그러니까 라디오 스타라던가 무릎팍도사라던가 하는 프로그램들같은 것들에서 느낀다. 요즘 사람들은 뭔가를 까발리고 찔러대는 것을 진실에 대한 탐구라고 너무 굳게 믿는 것같다. 사람들이 진실게임하듯이 너도 돈이 좋지 않은가, 너는 저 사람을 질투하지 않는가, 너는 섹시한 여자에게 성욕을 느끼지 않는가 하고 추궁하고 서둘러 답을 캐내어 돌아간다. 

 

확실히 자신의 내부소리를 너무 감추는 것은 위선일지 몰라도 모두를 몰아부쳐서 진실탐구를 하는 행위가 진정한 소통은 아니다. 서로 서로 물어뜯는것같은 대화가 밝혀내는 것이 반드시 진실의 전부는 아니다. 그건 그저 인간은 똥을 싸는 존재일뿐이라는 자신의 선입견을 계속 추궁해서 확인하는 작업같은 것이다. 확실히 인간은 모두 똥을 싼다. 당신은 상대방을 이리저리 추궁한 끝에 너도 똥싸지라는 말에 자백을 받아낼지는 모르나 똥을 싼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진실의 전부는 아니듯이 당신은 사실 당신이 보고 싶은 모습만 본것이다. 소통은 우리가 미리 단정한 것을 증명하는 소송이 아니다.  우리가 뭔가를 서둘러 단정지어 버리면 마땅히 봐야할 다른 것들을 보지 못하게 된다. 

 

옛날에 한 남자가 있었다. 이 남자는 참을성이 전혀 없는 자기 여자친구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헤어졌는데 나중에 자기의 전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를 사귀는 이야기를 듣고는 충격을 받는다. 이 여자가 그렇게 참을성이 많을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이 남자는 참을성이 없다라는 것이 그 여자친구의 성격이라고 너무 빨리 단정지었던 것이다. 실제로는 그것은 자신과 그 여자와의 상호관계속에서 만들어 졌던 것이며 따라서 그가 그녀를 다른 방식으로 만났더라면 그녀는 다른 사람처럼 행동했을 것이라는 점을 완전히 무시했다. 

 

생각해 보면 사람뿐만 아니라 사물이 이렇다. 같은 것도 우리가 그것에 어떤 방향에서 어떤 속도로 접근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주고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우리가 서둘러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하는 식으로 빨리 판단하는 것은 사물과 사람이 가지는 관계라는 측면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사물의 가치를 대부분 혹은 전부 날려버릴 수 있다. 목마른 자에게 한잔의 물은 가장 맛있는 음식이다. 물은 그냥 물이 아니다. 마약환자에게 마약은 쾌락을 주지만 그 사람을 죽이는 물건이다. 내가 뭘 원한다는 사실이 곧 그 물건이 가치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자기가 누구인지 모를 때 어떤 물건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의 단정짓기에게는 브레이크가 없다. 극단적으로는 이렇다. 너는 원자고 나도 원자다. 우리는 원자가 뭔지 안다. 그러면 너에 대해 나는 알건 다 안것이다.  조금 더 좋다고 해봐야. 너는 인간이고 인간은 이러저러한 존재고 너는 이러저러한 스펙을 가지고 있으니 너에 대해 알건 다알았다고 하는 식이다. 현대의 아반테는 이런차고 기아의 모닝은 이런 차다. 스펙 쭉 보면 끝이다. 마치 이런 식이다.

 

소통을 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특히 어떤 사람의 정신세계가 탐구할 만큼의 깊이가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어렵겠는가. 평생을 니체만 공부했는데도 니체를 잘 모르겠다고 하는 학자도 있다. 우리는 자기 자신도 잘 모르는데 남을 어떻게 잘알겠는가. 자기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데 무슨 소리를 할 것이며 그 말은 또 어떻게 이해되어 어떻게 돌아올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스미디어를 통해, 혹은 수많은 사회적 상황에서 우리는 사람들을 그야말로 무더기로 만나고 있다. 이것은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짓인가. 너무나 많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현대의 비극중 하나다. 그 난리법석의 광란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혹은 서로를 모두 믹서로 잘게 갈아버리는 것같은 일을 한다. 자르고 분석하고 하는 동안 우리는 나에 대해서도 너에 대해서도 더더욱 알 수 없게 된다. 이력서 위에 있는 정보가 그 인간에 대해 뭘 말해 줄 수 있는가. 현실이 그런 것처럼 이력서나 혹은 재빠른 인간평가가 세상을 좌지우지한다면 세상은 하향평준화하게 될 것이다. 모두가 껍데기만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래보이는 것과 정말로 그런 것의 차이는 한없이 줄어들어서 무슨 철학적 분석이 필요한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판단을 빨리하는 것은 기성세대가 젊은 사람들을 볼 때도 그렇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젊은이들은 세상을 둘러보고 세상에 스승이 없음을 한탄한다. 그들은 기성세대를 너무 빨리 너무 쉽게 판단해 버린다. 아 다 똑같네. 저 사람은 다 알겠어. 그건 다 알거든요. 아 이건 잘 모르는시는 군요. 제가 한수 가르쳐드릴까요. 그들은 너무 빨리 이렇게 말한다. 

 

초등학생인 조카에게 그 애의 할머니 즉 나의 어머니는 때로 이것저것을 묻는다. 그 아이가 핸드폰 설정법이나 인터넷 쓰는 법에 있어서 할머니보다 뛰어난 점이 있기때문이다. 그러나 조카는 종종 너무 나간다. 티브이며 라디오에서 들은 허접한 지식을 줄줄이 늘어놓으며 자신이 뭐든걸 다 안다고 생각하는것처럼 보인다. 아직 진짜로 해본 것은 별로 없으면서 벌써 대학도 졸업하고 직장생활도 다 끝내고 은퇴한 할머니처럼 노회하다. 리모컨 버튼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은 원래 이렇다. 사는게 원래 저렇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래서 70년이상 세상을 살아오고 사람을 만난 할머니에게 어느새 가르치려 드는 태도를 취한다. 가르치려 들어서 건방지다는 게 제일 큰 문제가 아니다. 그녀는 그런 태도를 취함으로써 배움의 기회를 잃는다. 그게 제일 큰 문제다. 그 아이가 어쩌면 가장 만나고 싶은 스승이 눈앞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너무 빨리 너무 많이 세상을 느끼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 하지만 요즘에는 아이만 그런게 아니라 어른도 그런 사람이 많다. 사람들은 멈춰서고 자세히 보고 천천히 느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판단이 기괴하다. 임대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두번 돌아볼 가치도 없고 하버드 나왔으면 굉장한 사람 인것이며 BMW 타는 남자면 기꺼이 호텔에 따라갈 값어치가 있다. 이런 식인 것같다. 전보다 과속으로만 흘러가는 세상이 사람들을 모두 똑같이 만들고 무감각하게 만든다. 

 

이런 시대에 소통은 항상 가치가 있는 것인지소통이 가능한 것인지 매번 묻게 된다 인터넷 블로거는 이렇게 말한다결국 고전으로 돌아가 옛사람과 소통하는 길로 가든지 아니면 현대인들에 대해 비아냥을 날리면서 사는 방법밖에는 없다고나는 아직 소통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그런 면에서 나는 낙관주의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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