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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키워드 여행

2013년 제주의 봄 0 : 들어가며

by 격암(강국진) 2013. 4. 2.

위미리의 올레길을 걸을때도 우도 바닷가의 하얀 홍조단괴 바닷가에 앉아 있을때도 같은 생각이 났습니다. 여행이 일상같으며 일상이 여행같다고. 


예를 들어 그리 자세한 정보를 머리에 넣지 않은채 우도 해변가를 차를 타고 돌면 구비 구비 괜찮은 해변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여기에 멈춰서서 시간을 쓸까 아니면 좀 더 운전하면 더 괜찮은 곳이 나올까 하는 생각이 납니다. 게을러서건 그런걸 좋아하지 않아서건 그다지 많은 정보를 머리에 넣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켠 구석에 어디가 추천받던 곳이더라라는 생각도 좀 납니다. 그리고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제한된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제한 된 시간동안에 대개 최고로 좋은 걸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우도에 대한 것이건 제주도에 대한 것이건 우리는 사실 아주 일부밖에 모릅니다. 그 일부도 사실 대부분 남의 눈을 빌린 간접경험인 추천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두가지 일중의 하나를 합니다. 


하나는 더 좋은 곳이 나올까봐 자주 좋은 곳을 지나쳐서 다른 곳으로 다른 곳으로 움직여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진짜 좋은 시간을 가질 시간은 모두 길에서 허비하고 여행이 끝나버리고 맙니다. 


또하나는 남의 추천을 의지하여 최고로 좋다는 곳을 향해 전력질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까지 가는 동안 길가를 보지 않습니다. 거기까지 가는 동안의 길을 즐기지 못할 뿐 아니라 너무 마음에 들고 아름다운 곳이 나와도 그 추천지로 가겠다는 생각때문에 그걸 모두 포기해 버립니다. 여행은 의외성을 거의 전부 잃어버립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도 어쩌면 그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삶이란 제주도나 우도보다 훨씬 더 큰 세상에서 일어나는 것이기에 우리는 더더욱 세상에 뭐가 있는지에 대해 무지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종종 위에서 말한 여행자와 같은 일들을 합니다. 좋은 곳이 나올까봐 자꾸 자꾸 움직이기만 합니다. 이곳이 좋다는 생각이 들어도, 거기에 머물만큼 머무르다가 자연스레 이제 다른 곳에도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전에, 자꾸 다른 곳에 가면 더 좋을꺼야라는 생각을 합니다. 


무엇보다 마치 제주도에 왔으니 제주도에서 가장 예쁘다는 곳에 가봐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인생과 세계라는 시공속에서 능력이 되는 한 가장 멋진 것을 봐야지 라는 생각에 매달립니다. 그런데 그 가장 멋진 것이라는 기준이 대개 좋게 말해 '객관적' 기준이요 나쁘게 말하면 남의 기준입니다. 


그러니까 현재로 행복해도 여기 저기서 이곳이 좋다고 누가 말하면 그리로 마음이 달려가 버립니다. 그리로 가지 못해서 안달이 납니다. 그래서 일상의 일생길에서 길에 놓여져 있는 것을 볼 여유가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니다가 초죽음이 되어 귀향길에 오르는 여행자처럼 피곤하고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들중 일부는 바쁘기만 했지 생각해 보면 여행이 별로 재미없었다고 생각할 것이고 일부는 남들이 말하는 유명한 곳은 다 가봤으니 좋은 여행이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어느쪽도 정말 좋은 여행을 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좋고 나쁜것은 어떤 이야기, 문맥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어떤 폭포나 어떤 해변이 좋다던가 나쁘다던가 하는 것은 사실 거의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폭포나 해변을 어떤 식으로, 어떤 이야기 속에서, 어떤 문맥속에서 만나는가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걸 다 떼어내고, 그런 걸 느끼고 볼 여유나 능력도 없이 여행을 하면 제 아무리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에 가도 그저 와 좋네하고 끝입니다. 


아마 우리 인생도 그렇겠죠. 인생이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를 이루지 못할때 운이 좋아 남들이 굉장하다고 말하는 것을 하게 되더라도 그 사람은 그저 와 좋네하고 끝일 것입니다. 소위 남의 기준이라는게 나쁜 것은 단순히 그게 남의 기준이라서가 아니라 주로 어떤 문맥이나 이야기의 일부를 떼어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된장국 끓이는데 쑥을 넣는게 좋다는 것인데 케익만들면서 거기에 쑥을 집어넣으면 엉망이 되겠죠. 도대체 남이 어떤 경로를 통해 그걸 체험해서 그게 좋다고 하는 지를 알아야 남의 경험이 도움이 됩니다. 그렇지 않을때 백해 무익이 되는 것이죠.  


이번 제주 여행길에서 여러가지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예를 들어 올레길에 유난히 많았던 개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개들이 무슨 세계적 명견도 아니고 그 개를 올레길이나 위미리라는 문맥에서 떼어서 따로 말하자면 그저 평범한 개에 불과합니다. 누구도 그 개만을 보러 제주도에 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행에서 그 개들의 모습은 매우 아름다웠던 많은 장소들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 개들이 없었으면 허전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수년후 제주를 생각했을때 우리를 반겨주고 따라오던 그 개들은 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될거라는 느낌이 듭니다.


제주도 4박 5일 여행을 잘 다녀와서 제주도 여행에서 좋았던 곳의 사진을 몇장 올리려고 해보니 왠지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 하면서 이 글을 써보니 이유를 알겠더군요. 제가 뭔가를 선택한다면 그것이 여행의 문맥과 이야기를 파괴하는 것이 되며 그렇게 해서 한장의 사진으로 떨어져 나간 그것은 별거 아닌 것이 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주 여행이 좋았기에 그 여행을 파괴하는 것을 주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분류만 시도하고 여행 사진을 되도록 전부 올려보도록 할까 합니다.


여행의 간단한 일정은 이랬습니다.


3월 28일 제주도 도착, 위미리 하얀 캐슬 숙박.

3월 29일 5번 올레길 걷기. 산방산 탄산온천. 

3월 30일 우도 방문. 황토마을 숙박

3월 31일 사려니 숲길 걷기, 대명 리조트 숙박

4월 1일, 제주도를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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