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지역에는 5일마다 열리는 오일장이 3개가 있다. 양평장, 용문장 그리고 지평장이 그것인데 양평장은 끝나는 숫자가 3과 8일인날, 용문장은 끝나는 날이 5와 0인 날 그리고 지평장은 끝나는 날이 1과 6인날 열린다. 지난 주말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양평에 있는 리조트에서 1박을 했다. 리조트를 떠나는 날이 용문장이 열리는 날이었으며 어머니가 김장용 고추를 사고 싶어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용문장을 방문했다.
용문역 앞에서 열리는 용문장에는 여러 사람들이 나와서 온갖 것들을 팔고 있었다. 호떡을 사먹었는데 3개에 2천원이라고 한다. 한국 물가로는 어떨지 모르나 일본에서는 호떡하나에 4천원 5천원하기도 하기 때문에 횡재한 느낌이었다. 그밖에도 가마솥에서 닭을 튀기는 사람이며 여러가지 전을 부쳐서 파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한쪽에서는 장터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 뻥이요 하는 목소리가 퍼지면서 뻥튀기 장사가 뻥튀기를 만들고 있다. 찰옥수수로 만들었다는 옥수수 튀긴것을 5천원주고 한봉지 샀다. 욕심같아서는 앉아서 먹고 마실 장소가 더 있었으면 했지만 워낙 장소가 좁아서 그런 것을 만들 틈은 없었던 것같다. 시장에서는 많은 물건들을 팔고 있었는데 워낙에 식물이름, 과일 이름에 둔한 나에게는 많은 것들이 듣도 보도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었고 편찮으신 아버지 때문에 오일장 구경을 그리 길게 할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웠다.
어머니는 근래에 보기 드물게 매우 기뻐하셨다. 마치 디즈니랜드에 온 아이처럼 오일장 나온 물건들을 아주 기쁘게 생각하면서 구경하시고 흥정을 하셨다. 홈플러스나 이마트같은 대형마트에 다니는 어머니는 그런 곳에 이미 많이 다니셨지만 그것은 어딘지 모르게 치마저고리 아래에 운동화 신은 것처럼 불편한 상태였다는 것을 나는 새삼 느꼈다. 사람이 생각하고 사는 방식이라는 것은 실로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며 적어도 우리 어머니같은 고령의 세대에게 익숙한 거래의 장소란 장터의 정서였던 것이다. 괜히 깍을 생각없어도 이리저리 말해보고 장사치는 손해본다면서 파는 그런 것 말이다. 인간과 인간사이의 거리가 더 멀어보이는 통상의 상거래는 어머니에게 어색한 것이다. 껍데기만 빌려왔으므로 거기에 거래의 기본인 신뢰가 어떻게 있을 수 있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굳이 전통의 것이라고 해서 옹호할 생각은 없다. 가격도 맘대로고 지저분하고 위험한 재래장을 미화하기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가지는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에게 뿌리 내려져 있는 상거래의 형태는 재래장이며 5일장은 아주 소중한 전통 문화라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형태의 상거래는 우리가 개발하고 발전시킨 형태라기 보다는 다른 나라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누군가가 호텔에 들어가서 숙박을 한다던가, 상점에 들어가서 물건을 산다는 것은 언뜻보면 지극히 단순한 행위인것 같지만 실은 하나 하나가 일종의 복잡한 게임과 같다. 거기에는 손님역할을 맡은 사람이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고 호텔이나 상점주인을 맡은 사람이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다. 거래의 상식들과 기대들이 지켜질 때 그런 형식들이 힘을 발휘한다. 파는 사람, 사는 사람이 모두 행복해 질 수가 있다. 그런데 그렇지가 못하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운동화 신고 치마저고리 입은 것처럼 뭔가 어울리지가 못하게 되어 불편하다. 우리는 이제 완전히 서양화가 된 것같지만 그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우리는 서양의 것도 완전히 우리 것으로 하지 못했고 우리 것도 잃어버려서 매사가 어딘지 모르게 좀 부족한게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몸과 마음만 불편한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그렇다. 오일장은 매우 소박한 형태의 상거래다. 고정된 상점을 차지하고 앉아서 장사를 하는게 아니며 길가에 앉아서 물건을 파는 것이니 말하자면 밑천을 아주 싸게 들이는 장사다. 오일장에 가서 에어콘이나 예쁘고 젊은 유니폼을 입은 상점직원이나 쇼핑 카트를 찾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좋지만 결국 공짜가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니 밑천 많이 들여서 인테리어며 부동산비용을 많이 들이는 가게보다 오일장은 서민에게 더 가까운 장사다.
또한 오일장은 자연스레 우리의 음식문화를 전수하는 자리가 된다.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가 들고 나와서 파는 것들이란 바로 할머니가 키우고 먹는 것들이다. 김장을 담궈야 하니 김장거리를 들고 나와서 판다. 오일장에서는 원칙적으로 뭐든지 팔지만 독일식 쏘세지를 파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지평 막걸리같은 우리 것을 파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런 것들은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에서는 종종 무시되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우리의 식생활은 전통과 단절되고 만다. 이런 전통차가 있고, 이런 나물도 있다는 것이 잊혀진다.
그것은 낡은 것이기에 오히려 미래적이기도 한 장사다. 한국은 그저 화려해 보이는 가게들을 열어서 비싼 가격으로 물건을 파는데 중독되어 있어서 이런 소박한 형태의 거래가 멸종되어져 가지만 언제나 그럴 수는 없다. 그건 어느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경제팽창만 하던 우리 사회의 특이함 때문에 생긴 착시다. 단순히 소중한 것이니까 지키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질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오일장같은 것은 소중한 수단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장사는 여러 형태가 있어야 한다. 격식차리고 비싼 레스토랑이 있어야 한다면 길거리에서 사먹는 꼬치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길거리 음식도 매우 소중한 문화다.
오일장을 보면서 나는 미국이나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벼룩시장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벼룩시장은 초라하지만 그 자체가 일종의 선진국 문화다. 그것은 단순히 상거래가 아니라 어떤 사람들에게는 레저활동이기도 하다. 파는 사람들은 큰 돈을 벌 생각을 하고 거기 나와서 물건을 파는게 아니다. 파는 일이 즐겁고 장소만 차지하는 물건을 없애면서 푼돈이라도 번다는 사실이 즐거우니까 하는 것이다. 구경하는 사람은 당연히 구경이 즐거우며 세계의 오래된 도시에서는 벼룩시장이란 유명한 관광자원이 되어 있다. 벼룩시장이란 길거리 음식처럼 그 사회를 사는 사람에게 아주 소중한 형태의 문화인 것이다. 그런 것이 사라질 때 생활의 만족감도 같이 사라질 수 밖에 없다.
한국에는 벼룩시장 문화같은 것은 없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오일장이 있다. 외국의 벼룩시장은 우리가 배울만한 문화지만 그래도 우리것이 아니다보니 아직은 좀 어색하다. 그런데 오일장은 다르다. 오일장에서는 왠지 오일장에 참가하는 손님들이며 가게 주인들이 인간적으로 더 가까워 질 수 있을 것같은 공간이다. 친숙함 때문이다. 많은 한국사람들은 오일장같은 것을 경험하면서 크거나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렵같은 작품을 통해 그 정서를 습득하면서 컷기 때문이다.
물론 오일장이 훌룡한 문화유산이라고 해서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홍콩영화는 경극이라는 중국전통을 발전시켜 인기를 얻었었다. 우리도 전통을 이어가되 그것을 더 발전시켜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야 할 것이다.
자영업자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많다는 우리나라지만 우리나라에는 마치 1-2년전에 외국의 상점이나 식당을 그대로 복제해서 들여온 듯한 가게가 가득하다. 그리고 그 가게들은 한결같이 비싸다. 일본에 사는 내입장에서 보면 국민소득이 훨씬 낮은 한국에서 가격은 일본보다 더 비싼 가게가 그렇게 많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다. 그런 가게들은 망하기도 잘한다고 한다. 비싸니 개업할때 잠깐 반짝한 걸 제외하면 사람들이 계속 찾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가는 가게가 될수 없는 것이다. 오래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에게 내려온 오일장같은 문화가 더욱 소중하게 생각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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