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한옥마을에 갈 일이 있었다. 딸아이를 태워주었다가 기다려서 태워오는 일이었다. 차를 주차하고 전주천변을 약간 걷다가 한벽루에 올랐다.
한벽루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주저앉게 관리가 된 전주천변의 정자다. 차소리가 좀 흥취를 깨지만 천변의 경치를 굽어보는 맛이 있고 낡았지만 윤이나는 마루위에 주저앉는 느낌이 괜찮다. 나는 보온병에 가져간 커피를 마시면서 한벽루에서 잠시 책을 읽었다.
그러다가 다시 전주천변을 걷는데 어디선가 피리며 판소리 소리가 잔뜩 난다. 계단을 올라 다가가 보니 판소리 대회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오늘은 내일 있을 본선전에 예선을 하는 모양이다.
대회장에 들어가서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의 발표를 들었는데 일단 음악은 둘째치고 아이들이 귀여웠고 다들 한복을 입은 모습이 아주 멋져 보였다. 다양한 한복을 구경할 수 있던 것만으로 발표장으로 들어온 것을 후회하지 않을만했다.
판소리를 들으며 나는 판소리가 요즘 사람들이 듣는 유행가와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에 잠겼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금방 몇가지가 눈이 띈다. 첫째로 판소리는 북을 치는 고수와 함께 한다. 물론 고수가 없어도 판소리를 부를 수 있고 유행가도 반주없이 부르면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지만 판소리에 있어서 고수와 가수와의 관계는 더욱 깊어 보인다. 유행가는 녹음된 반주를 틀어도 되지만 판소리를 하면서 녹음된 북소리를 틀고 하는 것은 무리다. 판소리는 고수와 가수가 긴밀하게 박자를 주고 받는 공통의 연주다. 엉터리 노래도 고수가 뛰어나면 그럴듯하게 이끌어 줄법하다고 느끼게 한다.
이렇게 고수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도 고수는 결코 서양음악의 드러머 같은 일을 하지 않는다. 드러머는 모든 박자를 채워버리는 느낌이다. 그것은 화폭을 채우는 서양화같다. 하지만 판소리의 고수가 하는 것은 마치 하얀 종이 위에 죽죽 선을 긋는 일같다. 거기에는 여유분이 아주 많고 그 빈자리를 이번에는 판소리를 부르는 사람의 노래가 채운다. 판소리를 할때의 고수는 딱하고 북을 한번 두드리고 약간 북을 치고 나면 한동안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소리가 나지 않는 간격을 가수나 심지어 관객이 채워나가는 것이다. 판소리에서는 고수와 가수가 번갈아 가며 연주하고 서로를 끌어준다.
또 판소리는 말과 깊은 연관이 있다. 서양음악은 리듬이 아주 중요해서 그 리듬에 한국어 가사를 붙여서 불러도 좋은 노래가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잘아는 나비야 나비야 하는 동요 나비야도 실은 독일의 어린 한스라는 노래로 나비에 대한 노래가 아닌 아이의 성장을 그린 외국노래라고 한다. 그러나 판소리는 심하게 말하면 그저 이야기를 하는데 거기에 호흡과 박자를 더했을 뿐인 느낌이다. 그래서 영어 판소리란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아마도 판소리는 이야기꾼이 재즈연주를 하듯이 즉흥적으로 박자를 넣어 이야기 하던 것이 점점 더 노래의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서양노래나 요즘 유행가도 종류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아주 간단한 기본 리듬이 중심을 이루며 반복되는데 판소리는 그런게 없다. 소절마다 다 즉흥적으로 부른 것처럼 복잡하다. 그런 복잡한 노래를 어린 친구들이 부르는 걸 보면 참 장하다.
굳이 서양음악과 국악을 비교하고 뭐가 더 좋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서로 다른 것이니까. 다만 판소리를 듣다보니 우리의 음악이란 요새 유행하는 말로 해서 진정한 힐링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양음악은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고 우리로 하여금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오게 만든다. 유행가가 라디오에서 나올때 우리가 같이 노래를 부른다면 우리는 대개 그 리듬를 그대로 따라하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국악은 다르다. 우리는 별로 어렵지 않게 마치 합주하듯이 약간 약간씩 추임새를 넣으면서 노래를 따라갈수가 있다. 극단적으로 하면 계속 듣기만 하다가 얼쑤하고 한마디 하는 것만으로 마치 노래를 같이 부르고 있는 느낌이 난다.
서양음악은 좋지만 우리를 압도하고 국악은 우리를 상당부분 우리로 내버려 둔다. 그저 내키는 만큼만 음악에 맞춰주면서 내키는 만큼 기분좋게 음악에 참여할 수가 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좀 더 편하다. 전승되어져 오는 민요나 오래 대중에게 사랑받는 클래식 음악도 질리지 않게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역시 국악은 이런 면에서 좀 다른데가 있는 것같다. 요즘이 힐링이 필요한 시대라면 요즘은 국악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시간이 다되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차로 돌아와 시동을 걸고 딸 아이를 데리러 간다. 어쨌건 별로 고민하지 않았는데도 생각할 거리, 즐길 거리를 우연하게 만나게 된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푸른 초록도 아주 좋았던 즐거운 토요일 오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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