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8
연구소를 퇴사한지 이제 2년 반이 넘었다. 나는 요즘 직업의식과 꿈의 가치를 새삼 느끼고 있다. 내가 가수라던가 내가 학자라던가 내가 운동선수라던가 내가 경찰이라던가 하는 그것 말이다. 이렇게 자신이 뭘 하는 사람이다라고 의식하는 것은 자연스레 그에 준하는 행동을 요구하게 된다.
예를 들어 내가 연예인이나 권투선수라면 그래서 몸무게 조절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면 나는 그런 직업의식때문에 항상 먹는 것에 신경을 쓰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작가라던가 학자라고 해도 마찬가지고 가수라던가 도공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어떤 것이든 뭔가를 진지하게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그 일은 우리에게 자기 절제를 요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자기 절제는 직업이 뭔가에 따라 꿈이 뭔가에 따라 서로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전혀 다른 부분도 있다. 그것은 물론 필요로 하는 기능이 다르기 때문이고 세상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과학자로서 요구되어지는 것은 그럼 뭐였을까? 최신의 과학적 진보를 따라가는 일이 그 중 하나 일 것이다. 논문을 읽거나 세미나를 참석하는 일 그리고 동료 과학자들과 소통해서 최근에 화제가 되는 일이 뭔지를 알아두는 것이 과학자로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일중의 하나다. 또 자신이 가진 장점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과학자라고 하나로 말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과학자로서 만능인 사람보다는 여러가지 일에 특화된 사람들이 더 많다. 예를 들어 크게 분류하면 실험물리학자로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이론물리학자도 있는데 이론물리학자의 주된 무기는 수학이나 프로그래밍같은 능력이다.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그냥 실험기술이나 그냥 수학이 아니고 거기에도 전공한 기술이 있다. 그런데도 뭔가의 이유로 과학자들은 자신의 전공 기술에서 멀어진다. 예를 들어 이론물리학자인데도 한동안 수학을 멀리하거나 프로그래밍을 멀리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러면 마치 준비운동하듯이 문제를 풀고 프로그램을 짜봐서 감을 잃지 않도록 하는 일이 필요하다. 어렵게 얻은 자기 주무기가 엉망이 되어서는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더 근원적이 것도 있다. 과학자는 대중적 이미지가 과학에 대해서 많이 아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과학자로 산다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이 아는것이 아니라 자기 논문을 쓰는 것이다. 이 둘은 연관되어져 있지만 결코 같지 않다. 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과 소설을 잘 쓰는 사람은 서로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과학자는 창의적인 감각을 잃지 않도록 자신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비록 그런게 정확히 뭘 요구하는지는 애매하며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래서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이젠 뭘 해야 하나를 가지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지만 말이다.
과학자의 삶을 말하는 방식은 여러가지지만 그중 하나는 이거다. 우선은 뭘 풀어야 할지 몰라서 끙끙댄다. 그러다 겨우 문제를 잡았다 싶으면 그걸 못 풀어서 끙끙 대며 어느날 돌파구를 찾아서 그걸 풀면 아주 기쁘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이 지나가면 그걸 논문으로 쓰고 논문심사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해야 하고 하는 잡일이 생기고 그게 모두 끝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이번에는 무슨 문제에 시간을 써야 할지 가지고 끙끙대게 되는 것이다. 과학자의 삶이란 어떻게 말하면 아주 짧은 희열의 순간을 위해서 자기를 오랜동안 학대하는 것에 가깝다. 그것은 매우 고된 일이지만 그것이 그 사람을 지켜주기도 한다. 그 순환에서 빠져나온 지금 나는 그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고 미련은 없지만 때로 그 과정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럼 지금 나는 누구이고 나는 뭘하는 사람일까? 크게 보면 나는 과학자의 순환을 반복하는 것같기도 하다. 내 인생의 전반기는 과학자가 되고 과학자로 살고 여러가지 문제를 풀고 희열을 느끼는 것으로 보냈다. 그리고 그 기간이 지나고 나는 이제는 뭘 하면서 내 시간을 써야할까로 끙끙대고 있다.
그런데 끙끙댄다고 하지만 답은 어느 정도 나와있다. 나는 사실 지금은 작가로 살고 싶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는 작가가 직업이 되기가 힘들다. 좋은 글을 쓰는 것도 힘든 건 말할 것이 없다. 그래서 나는 짧은 책이지만 책을 출판했음에도 아직도 나는 작가입니다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일이 없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게 나는 작가다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오늘 문득 그건 현명하지 못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베스트셀러를 쓴 적이 없다거나 출판을 한 적이 없다고 해서 나는 아직 작가가 아닙니다라고 말하거나 생각하는 것은 자기를 관리하는데 있어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나를 작가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내 생활의 자세는 달라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 자세의 차이가 생활의 작은 부분들에서 내 하나 하나의 판단에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나는 보다 확고한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이다.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되건 다시 다른 인생을 찾게 될 때까지는 이제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야 할 것같다. 피하지 말고 확실하게.
나는 작가다.
이게 내 꿈에 대한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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