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15
오늘은 최신의 기술동향을 알려주는 미래채널 MyF의 구글 AI에 대한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그 내용도 흥미로웠지만 그걸 보다 보니 하부구조와 상부구조라는 주제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인류의 문명을 포함한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은 하부구조에 의지하고 있지만 그것과는 독립되게 나타난 상부구조라는 생각입니다. 이는 새로운 생각은 아닌데요 제가 좋아하는 책인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의 저자 로버트 피어시그도 그의 책 릴라에서 하고 있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지금 저처럼 컴퓨터를 쓰는 사람들은 그것이 프로그램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자세히는 모르죠. 그저 대개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알뿐입니다. 그러니까 글을 쓸 때는 글에 집중하고 이 에디터의 몇몇 기능에 주목할 뿐 그것이 어떤 세부사항을 가지고 구현된 프로그램인가는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여기서 글을 쓰고 있고 웹서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상부구조에 머물고 있으며 그것을 떠받치는 하부구조가 바로 프로그램과 컴퓨터 하드웨어인 셈입니다.
이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관계는 컴퓨터 안에서도 계속 됩니다. 내가 쓰고 있는 프로그램도 실은 기계어라고 불리는 낮은 레벨의 언어로 만들어진 하이레벨 언어로 쓰여집니다. 그게 컴파일러가 하는 일이죠. 그러니까 하이레벨 언어를 다루는 프로그래머도 그 하부구조를 이루는 기계어를 모를 수 있습니다. 또한 기계어를 안다고 해도 그 사람은 그걸 구현하는 컴퓨터 하드웨어를 모를 수 있습니다. 마치 택시운전사라도 자동차 제조에 대한 사항을 모를 수 있듯이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독립된 구조는 이렇게 사방에서 발견됩니다.
이런 예를 무한히 늘어놓는 것은 가능하지만 지루한 일이죠. 하지만 피어시그가 지적한 예는 들어 볼만 합니다. 피어시그는 이 세상에는 물질-생명-사회-지성의 상부 하부 구조가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생명은 물질에 의지하지만 물질의 단계와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지게 됩니다. 좋은 예는 물질은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따라 균일하게 흩어지는 성질이 있지만 생명은 오히려 진화를 거쳐서 점점 더 복잡하게 되어가는 성향이 있다는 사실이겠죠. 이때문에 생명을 물질로 보면 이해가 가질 않게 됩니다. 마치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착각하는 사람처럼 생명이 물질로 되어 있다고 해서 생명을 그저 물질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완전히 본질을 놓치고 있는 일입니다. 피어시그는 이같은 관계가 생명과 사회의 관계속에서도 또 사회와 지성의 관계속에서도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충돌과 착각이 윤리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하죠.
상부구조는 하부구조에게 의지하지만 그것으로부터 독립된 존재라는 말은 아주 중요하지만 혼란스런 말입니다. 그 독립성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상부구조는 특정한 하부구조에게 의지하지만 실은 꼭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저는 글을 쓸 때 컴퓨터를 쓰지만 컴퓨터가 글의 핵심은 아니죠. 저는 종이와 펜을 쓸 수도 있습니다. 컴퓨터의 프로그램은 특정한 컴퓨터의 하드웨어에서 돌아가지만 실은 그 하드웨어는 전혀 다른 기계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하부구조와 상부구조를 혼동하는 것은 파도를 물로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림이 물감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파도는 물이라는 매개에서 생겨나는 현상이고 질서죠.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물질이라는 매개에서 생겨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햄버거를 먹어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인 것입니다. 물질적으로는 우리는 이미 예전의 우리가 아니죠. 모짜르트의 음악을 mp3 파일로 저장하건 레코드 판에 저장하건 모짜르트의 음악은 모짜르트의 음악이라는 사실도 같이 생각해 보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부구조와 하부구조간의 독립성에 주목하는 동시에 우리는 그 의존성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짜르트의 음악이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될 수 있다는 사실이 모든 하부구조가 동등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떤 것은 더 효율적이고 어떤 것은 말도 안되게 비효율적이죠. 지구상의 생명은 탄소를 기반으로 합니다. 생명이 물질로부터 독립되어져 있다는 말은 어떤 특정한 문맥에서만 옳은 것이고 실제로는 탄소의 성질에 기반해야 생명이 가능해지는 겁니다. 프로그램은 그 하부구조인 컴퓨터 하드웨어에대해 원리적으로는 독립적이지만 동시에 강력한 성능을 가진 하드웨어가 없다면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실제로는 실행불가능합니다. 요즘 쓰는 하이레벨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도 과거의 느린 컴퓨터에서는 돌릴 수도 없을만큼 비효율적입니다. 하지만 강력한 하부구조 즉 강력한 하드웨어가 있기에 현실적으로 사용가능한 편리한 언어가 된 것이죠.
반대로 하부구조도 상부구조에 의존합니다. 상부구조의 발현과 성공은 하부구조에 변화를 주게 됩니다. 엄청나게 좋은 컴퓨터 하드웨어가 있다고 해도 그걸 활용할 방법이 없다면 그런 컴퓨터는 쓸데없이 비싸기만 하므로 생산되지 않겠죠. 물질위에 발현된 생명중의 하나인 인간이 지구라는 곳의 환경을 크게 바꾸는 것은 상부구조와 하부구조간의 상호 의존을 보여주는 또다른 예입니다. 기술과 문화도 하부와 상부구조의 관계를 가집니다. 제국주의는 기술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증기기관을 만들고 기차를 만들 잠재력이 있다고 해도 그런 발명품을 사회적으로 사용할 문화가 없다면 그런 기술들은 발명되지 못하거나 버려질 겁니다.
지금의 서구가 가지는 경쟁력은 산업혁명때의 산업적 기술적 발달때문에 생긴 것이기도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그런 변화를 수용할 수 있었던 당시 사회적 상황이 그런 기술발전을 가져온 것이기도 합니다. 누구보다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나 최고의 문자체계인 한글을 가졌으며 당대의 최고 기술이었던 도자기 기술도 세계최고였던 우리가 나라가 망하는 역사를 겪었다는 것이 이걸 보여줍니다.
비슷한 문제는 사회는 개인의 합이라는 관점에서도 발견됩니다. 한 사회는 개인의 합이라는 말은 지금 이 글에서 말하고 있는 어떤 문맥에서는 틀린 말입니다. 그림과 물감을, 파도와 물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말하자면 사회란 개인들이라는 혹은 인간들이라는 매개위에서 벌어지는 현상인 겁니다. 물방울이 내가 파도를 만들었다고 하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지만 심오하게 아주 많이 틀린 말일 수도 있습니다. 파도란 물방울과 물방울 사이의 관계이며 사회도 개인과 개인들 사이의 관계니까요. 하지만 그 개인이라는 것의 특성과 상관없이 똑같은 사회가 가능하다고 말하면 즉 개인의 특성과 사회의 특성이 서로 독립적이냐고 말하면 다른 문맥에서는 이 말도 틀린 말이 됩니다. 똑같은 법을 도입하더라도 그것이 한국인이냐 독일인이냐 중국인이냐에 따라 가능한 것이 있고 불가능한 것이 있습니다. 결국 개인의 자질과 특성이 어떤 사회질서의 구현에 필수적인 조건이 되는 겁니다. 또한 특정한 사회질서가 특정한 특징을 가진 개인들을 양산해 내기도 하죠.
이 세상이 농업중심으로만 돌아갈 때 노동이란 곧 밭에서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시장이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출현하자 노동도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떤 노동은 시장의 상부구조에 관련되지만 어떤 노동은 하부구조에 관련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사실상 서로 다른 세계에 존재합니다. 기업합병을 한다던가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사고 파는 일과 쌀농사를 짓고, 석탄을 손이나 기계로 캐내는 사람들의 일은 서로 깊이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굉장히 독립적입니다. 이런 모순적인 말이 가능한 것은 같은 말을 어떤 문맥으로 하는가에 따라 그 뜻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존재는 어떤 질서이고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존재들은 서로 다른 스케일에 존재하는 질서입니다.
왜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가 이런 일이 생각났는가 하면 바로 이성이라던가 문명의 구조때문입니다. 21세기에서 우리가 말하는 인간이란 통상 사이보그입니다. 즉 DNA가 인간이 아닙니다. 물안에 파도에 대한 정보가 있는 것이 아니듯 지금 우리가 말하는 인간은 DNA 안에 있는 정보나 질서가 발현된 것이 아닙니다. 물과 파도의 관계처럼, 물질과 생명의 관계처럼 인간의 문명 혹은 이성은 인간이라는 매질위에 나타난 상부구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성을 가진 존재를 그냥 인간이라고 부르면 혼란이 생깁니다. 사회로부터 동떨어져서 성장한 인간은 침팬지보다 뛰어날 것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DNA 인간을 하부구조로 파악해야하고 그것을 인간이라고 부른다면 우리가 통상 인간이라고 부르는 문명화된 존재를 사이보그 1이라고 부를 필요가 있는 것이죠. 여기서 우리는 스스로를 DNA로 파악하는 실수를 해서는 안되는 겁니다. 이것은 살아있는 인간과 시체를 같은 것으로 보는 것과 같은 실수 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는 의존관계를 가지지만 동시에 독립적 관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자아나 진정한 나라는 것이 DNA로 만들어지는 인간 위에 나타난 상부구조를 말하는 거라면 그것들은 마치 유령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모짜르트의 음악을 적은 악보가 있다고 해서 종이와 잉크가 모짜르트 음악의 본질이 아니듯이 우리의 육체는 우리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본질은 육체라는 하부구조위에서 새롭게 눈뜬 상부구조입니다.
그러나 물론 하부구조의 특성은 그 위에 발현된 나라는 상부구조의 특성과 한계를 결정하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문명은 특정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문명의 찬란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플라톤, 공자, 부처, 예수등 수천년전의 인물들과 대화를 하고 여전히 그들에게 배웁니다. 인간이라는 상부구조는 원시인시대와 수천년전의 문자사용 시대의 시작 사이에서 눈떳습니다. 그리고 그 본질은 놀랍게도 여전히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원시인을 존경하지 않으며 수천년전의 인물들을 여전히 존경합니다.
이같은 현실은 오늘날 바뀌고 있습니다. 컴퓨터 언어에서 기계어가 있고 더 상위의 언어가 있듯이 오늘날 인공지능의 발달을 포함한 기술의 발달로 지성은 다시 하부구조와 상부구조로 분할되고 있습니다. 침팬지는 인간의 문명을 이해할 수가 없죠. 농사일만 아는 사람은 주식시장이나 정치를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제까지 인간의 이성은 문자문명과 인간의 DNA라는 하부구조위에 발현되어 왔습니다. 인간의 기억력과 정보처리능력같은 것의 한계는 바로 이 하부구조에 의해서 결정되며 따라서 인간의 이성도 한계를 가지게 되죠. 언어나 문자같은 대단한 발명품을 쓴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인공지능과 빠른 컴퓨터의 발달은 이 하부구조의 한계를 바꿉니다. 예를 들어 누구도 100개국어를 하고 도서관에 있는 책을 모두 읽을 수 없습니다. 그건 마치 지구상의 모든 도시의 길을 모두 외운 사람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네비가 보편화되듯이 인공지능의 정보처리 능력이 좋아지면 그런 인공지능과 결합한 인간은 그런 능력을 발휘할 수가 있습니다. 네트웍과 결합한 인간은 그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죠. 앉은 자리에서 지구 반대편을 실시간으로 봅니다.
이제 미래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 답은 자명합니다. 또다른 상부구조가 출현할 것입니다. 다만 침팬지가 인간 문명을 이해할 수 없듯이 그 상부구조를 현재의 우리는 이해하기가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습니다. 그것은 지금의 세계보다 무한히 추상적인 세계입니다. 요즘 세계가 코인경제때문에 휘청이고는 합니다. 저는 이 코인경제가 상부구조의 일부인지는 알지 못합니다만 상부구조의 출현이 이런 식으로 느껴질 거라는 것은 압니다. 평생 농사만 지어 쌀을 내다파는 일만이 노동이라고 생각한 농부는 주식거래나 먹방유튜버의 수익사업이 사기처럼 보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제까지의 세상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상부구조는 그렇게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상부구조는 언제 출현할까요? 그리고 그때가 오면 세계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저는 이 상부구조가 이미 출현했거나 아주 금방 출현하기 시작할거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금방이란 1-20년정도로 인류역사를 논할 때는 그냥 순식간이죠. 그 이유는 첫째로 인공지능을 포함한 정보관련 기술의 발전이 빠르기 때문입니다. 10년쯤 뒤면 지금보다 수십배 빠른 인터넷과 강력한 인공지능 서비스가 보편화될 것입니다. 그런 시대의 상업과 사업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먹방유튜버가 기괴해 보이지 않습니까? 이미 그렇게 되고 있지 않다면 앞으로는 훨씬 기괴한 사업가들이 출현할 겁니다. 대표적인 것이 코인사업가들이겠죠. 일론 머스크는 또 어떻습니까?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습니까?
둘째로 시대가 상부구조의 출현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든 경제든 환경이든 지금의 지구는 구세주가 필요합니다. 세계라는 하부구조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부구조란 더욱 강력한 지성과 질서입니다. 언제까지 침팬지를 연상시키는 이상한 단체들에 의해서 세상이 휘둘리는 것을 계속 볼 수 있을까요? 지구온난화도 사실이 아니고 지구는 평평하며 세계에 코로나가 퍼져도 세상에는 코로나가 없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대통령을 뽑고 총리를 지명하는 세상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요? 진정한 문명사회는 무엇이고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지구와 문명의 위기는 사실 발달된 기술의 결과입니다. 그 결과 에너지 소비량이 커졌고 인구가 증가했습니다. 대량살상무기도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낡은 질서안에서 만들어진 지성은 그 강력한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인간은 본래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할 능력이 있다면서 인간의 위대함을 말하는 인본주의를 찬양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은 로보트같고 인간은 조작가능하다는 증거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선거철이면 무의미해 보이는 말싸움이 계속되는 것에 좌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토론들이 중요한 사업들을 결정합니다. 숲에서 사는 침팬지는 안전하지만 날고있는 제트기 조정석위의 침팬지는 위험하죠. 기술의 발달때문에 인류의 현상태는 점점 그렇게 되어갑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지성도 축구선수나 가수의 영향력을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한발짝 뒤에서 보면 인간은 미쳐가고 있는 겁니다.
하부구조와 상부구조는 서로 독립적이며 구분되어야 하지만 또한 서로에게 의존합니다. 물방울 혼자서 파도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누군가 혼자서 이 상부구조를 만들어내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새로이 출현하는 이 상부구조는 확실히 현시대를 살아가는 하나 하나의 사람들에게 의존하고 또한 우리들의 삶을 바꿀 것입니다. 우리들은 열린 시야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 새로운 하늘이 열리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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