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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국가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

by 격암(강국진) 2024. 8. 14.

한번은 한 지인인 의사가 의사가 의사가 되는데 정부가 무슨 도움을 줫는데 의사에게 이러니 저러니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때는 의대생 정원문제로 의사단체들이 강력하게 항의하는 때였고 정부는 의사들에게 의료현장으로 돌아오라고 명령운운하는 때였다. 나는 자유 국가에서 의사들에게 뭘 하라고 명령운운하는 것은 의사를 무슨 부하직원다루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태도가 꼴불견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사가 의사가 되는 데 정부가 무슨 도움을 줬냐는 말에는 이런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사회나 정부가 의사가 의사되는 것과 관련이 없다면 애초에 의대정원을 늘리니 마니 하는 것에 대해 의사들이 뭐라고 할 자격이 있을까? 치킨집의 수나 공대생 정원때문에 치킨집 사장이나 공대생들이 모여서 데모하는 일은 없다. 의사들이 고생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의사들이 직업안정성과 높은 사회적 대우를 받는 현실은 상당부분 정부가, 사회가 시스템에 의해서 그걸 보장했기 때문이다. 만약 누구나 의대생이 될 수 있고, 의대정원이 완전 자유라면 의사는 소수의 사람들만을 제외하고는 지금보다 훨씬 더 못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일반 시민들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다. 따라서 의사가 의사로 일하는 것이 완전 자유로 행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의사가 내가 의사가 되는데 세상이 나에게 뭘 해줬냐 다 내힘으로 한 것이다라고 말하면 그것은 매우 잘못된 상황인식이다.

 

이것은 한가지 질문에 대한 한가지 예다. 그 질문이란 나는 혹은 우리는 어떻게 지금의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하는 것이다. 내가 예로 든 의사는 말하자면 의사는 자기의 힘만으로 지금의 의사로 살고 있다라고 하는 설명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한 말은 그런 이야기 혹은 이론은 반드시 옳지 않다고 지적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지적은 반드시 의사에게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역사 논쟁이 시끄럽다. 독립기념관 관장으로 새로 취임한 사람이 잘못된 역사관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치욕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다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반드시 그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실은 현정부를 지지하는 보수 세력이 친일적 매국적 세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나도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런 사람중의 하나다. 그런데 어쩌다 이런 일이 있을까? 나라를 팔고 친일을 해서 뭐가 그렇게 개인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앞에서 말한 질문에 있다. 그것은 우리는 어떻게 지금의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 하는 질문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현재의 보수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한마디로 사회 공동체에 고마워하는 생각이 없다. 즉 그들은 대한민국에 고마워 하지 않는다. 자신이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탓이며 조선과 고려등 옛 날로 부터 내려온 문화적 누적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군사쿠데타에 분노하지 않고, 그들이 지지하는 정치가들이 본인이나 그들의 자식을 불법적으로 병역면제 시켰다는 것에 분노하지 않는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은 매국노로 보이지만 그들은 애초에 국가 자체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매우 희미하다. 물론 이같은 말이 그들이 자신이 한국 국적을 가졌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그들은 그들이 국가나 사회 공동체에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매우 희미하다. 그러니까 전쟁이 나면 지킬 나라가 없다. 이 나라가 나에게 뭘 해줬다고 그걸 지킨다는 말인가? 외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굳이 한국어를 가르치고 한국 정체성을 가지라고 말할 생각이 없다. 한국이 뭘 해준다고 한국인이 되라고 한다는 말인가.

 

보수라는 사람들이 어떤 역사관을 가졌는지 즉 우리가 어떻게 지금의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에 대해 어떤 설명을 가졌는지를 이야기하기 전에 그들과는 반대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자. 민주적인 사람들은 역사의 흐름이 한 두명의 리더때문에 만들어 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노무현이나 김대중을 존경하는 사람도 노무현이 외국의 어떤 가난한 나라에 가서 정치를 했으면 그 나라를 한국만큼 부자로 만들고 발달시켰을 거라고는 믿지 않는다. 민주적 리더는 그저 맨 앞에서 선 사람일 뿐 전체 역사의 주인공은 민중이고 대중이다.

 

그러므로 민주적 사관을 가진 사람은 우리가 지금의 이런 모습이 된 이유를 대중의 움직임에서, 문화에서 찾는다. 우리가 가진 생각도 전부 우리가 만든게 아니라 사실은 조금씩 조금씩 사회가 우리에게 던져준 것을 우리가 자신의 것을 약간 더해서 합쳐서 만들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의 내가 된 것은 크게 말하면 온 세상의 모든 것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하나의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고 오랜 예전부터 이어지면서 존재해 온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 빚졌고 따라서 전쟁이 나면 이 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어도 그걸 지켜서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필요가 있다. 내 앞에서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죽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지금의 내가 된 것이다.

 

다시 보수로 돌아가 보자. 이런 대중이나 문화의 영향력을 무시하는 한국 보수는 역사를 몇명의 리더와 힘의 논리로 이해한다. 즉 몇명의 우두머리가 역사를 만든 것이고, 그때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집단이나 사람이 역사를 만든 것이다. 힘과 개인으로 역사를 보면 문화적 정체성따위는 없다. 그러니까 필요하다면 한국의 전통문화따위 다 버릴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어를 버리고 모두 영어를 쓰는 일도 할 수 있다. 우리의 언어따위 중요하지않다.

 

그리고 일제시대에 역사가 일본에 의해서 만들어 진 것은 당연하고, 전두환 시대에는 전두환에 의해 역사가 만들어 진 것은 당연하다. 그때는 그들이 강자였으니까 말이다. 대중은 무의미하다. 그들은 돈을 제외하고는 강자에 맞서서 지켜야 할 것을, 뭔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을 보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가장 강해서 승자처럼 보이게 된 사람들이다. 역사는 그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해된다.

 

이런 이해가 만들어 내는 태도가 있다. 그걸 설명하기 위해 이런 예를 들어 보자. 만약 누가 나의 어머니는 몸파는 창녀라고 욕을 한다면 나는 매우 화를 낼 것이다. 화가 나는 이유중 가장 중요한 것중의 하나는 나의 어머니와 나는 긴밀한 인관관계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 이웃에 살던 여자가 몸파는 창녀라고 말하는 것과 내 어머니가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어머니는 내가 지금의 내가 된 큰 이유중 하나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는 조선여자는 예전에 다 몸팔던 사람들이었다는 말에도 별로 화를 내지 않는다. 그리고 본인이 화를 내지 않는 것을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태도로 생각한다. 그 이유는 그들은 본인의 정체성과 조선이나 대한민국이 가진 연결을 거의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조선이나 대한민국이 나에게 뭘 해줬나. 한국인은 전부 원숭이라는 말을 해도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보수지지자들이 아주 좋아하는 말이 조선놈들은 어쩌고 하는 말이다. 그들은 스스로 조선놈을 비하하면서도 화가 나지 않는다. 자신을 조선인, 한국인과 강하게 연결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전세계적으로 보수나 우파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이와는 반대로 문화적 정체성이나 혈연을 강조한다. 즉 외국에서는 보수란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이유는 내가 우리 조상의 자식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일본보수는 나는 일본인이라서 이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영국보수는 내가 영국인이라서 이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외국의 우파는 이민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뜨내기이며 자기 나라에 대한 권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는 한국에 노동자가 없으면 외국인을 천만명쯤 들여오면 된다는 식의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누군가가 한국인이라는 국적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 국적따위가 뭐가 중요하다는 말인가. 필요하면 천만명이 아니라 5천만명에게도 줄 수 있다. 그러니까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다가 싸게 쓸 수 있으면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와야 한다. 최저임금제같은 걸로 일단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이면 모두 평등하게 대접받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반대다. 그들은 사회적 제도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지금의 내가 된 것은 사회제도나 대중때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수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한다. 그러니까 한국의 대중은 이승만이나 박정희나 전두환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삼성의 이병철이나 현대의 정주영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한국은 그들에게 해준 것이 없는데 그들이 한국 대중을 부자로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만약 가난한 동남아에 박정희가 갔으면 한국이 아니라 그 나라가 지금쯤 부자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다.

 

개인이 한국에게 빚을 진게 아니라 한국이 개인에게 빚을 졌다. 이건 보수가 아니라 봉건제다. 즉 몇몇 사회적 승자를 왕가의 혈통같은 것으로 생각해서 우리가 이렇게 살게 된 것은 모두 그들의 조상덕분이니 이 모든 것이 사실은 그들의 것이다라고 믿는 것이다. 나라를 팔아먹든 망해먹든 이건 그들의 개인재산같은 것이니 우리가 화를 낼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김대중이나 노무현이나 문재인은 승자로 보지 않을까? 왜냐면 민주적 대통령은 그들이 믿는 이야기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민주적 대통령은 발전에 대해 내 탓이 아니라고, 대통령 탓이 아니라고 말한다. 대중과 문화에게 공을 돌린다. 보수는 이걸 위선이라고 생각하고 나라를 망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나라는 말하자면 박정희의 개인 소유물인데 그걸 빼앗아서 모두가 나눠먹자는 도둑놈의 심보라고 생각한다. 삼성은 이씨 가문 개인 소유인데 주식회사 논리대로 하자는 것은 도둑놈의 심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누가 맞는 것일까? 나는 물론 민주적 역사관을 믿지만 그것이 당연하다던가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철학은 그렇게 증명되는 것이 아니고 자연법칙처럼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들어맞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다만 개인적, 권력 지향적인 보수의 역사관이란 역사관이라고 하기도 미안할 정도의 원시적인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만약 이 세상이라는 것이 그저 몇십명쯤 되는 수렵채집인 마을이고 역사라는 것이 한 10년정도를 말하는 거라면 뛰어난 리더가 역사를 움직이는 것도 맞을지 모른다. 한명의 뛰어난 사냥꾼이 온 마을을 먹여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가 길어지고 세상이 복잡해지면 어떤 개인도 역사의 주역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아주 긴 역사를 말하고 있으며 세상은 이미 예전부터 복잡했고 지금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노벨상 수상자 한명 데려오면 과학발전이 이뤄지고, 무슨 정치가 한명이 뛰어나면 나라가 쑥쑥 발전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소수의 사람들이 나라를 망칠 수는 있다. 하지만 발전시킬 수는 없다. 뛰어난 비전을 가진 사람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있어야 뭘 할 수 있다.

 

우리가 친형제라고 생각한 사람이 어머니를 돕지 않고 옆집 사람을 돕는데 왜 그러냐고 물었다고 하자. 이 질문에 대해 우리가 형제라고 생각한 그 사람이 왜 내가 어머니를 더 도와야 하지? 옆집 여자랑 그 여자랑 뭐가 달라?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분노할 것이다.

 

보수는 왜 매국노나 친일파같을까? 왜냐면 그들에게는 지킬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자신이 대한민국에게서 뭘 받은게 없다고 생각한 사람은 나라를 팔아먹는다던가 친일을 한다던가 하는 생각이 없다. 오히려 이 나라가 나를 착취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를 착취하지 않는 외국이 더 좋은 나라라고 생각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 모든 사람이 같은 답을 가질 리도 없고 같을 수도 없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 질문에 대해 멈춰서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생각을 안하고 무의식적으로 행동하면 본인의 행동대로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에 대해 고마워해야 하고, 뭘 자신의 힘으로 성취했다고 여겨야 하는지에 대해 조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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