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부자나라가 되면서 한국안에 외국인들이 많아졌다. 한국국적을 새로 취득한 사람도 있고, 아직 외국인인 채로 일하는 사람도 있으며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고 해서 겉으로 보기엔 누구나 한국 사람이라고 여기지만 사실은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또 세계 여러곳에는 한국혈통의 사람들이 사는 곳이 있는데 미국, 일본은 물론 조선족이나 고려인같은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들도 한국에 오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시대에 단일민족 운운하면서 생김새로 사람을 구분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중요한 것은 생김새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생각과 문화다. 그들이 한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같이 살아갈 이웃이자 동료로서 어떤 신뢰와 친밀감을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화적 낯섬은 차별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차별이란 반드시 대단히 나쁜 사람이 하는게 아니다. 나는 일찌기 이스라엘에서 근무를 한 적이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친구에게는 아주 서비스가 좋다. 그래서 누군가가 차를 고치러 가는데 친구의 소개로 가면 가격이 반절로 줄어드는 일이 생긴다. 이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내가 내 친구에게 잘해주는데 뭐가 문제냐고 하겠지만 이 말은 그 친구의 영역을 벗어나는 사람들은 2배의 가격을 내는게 정상이라고 믿는다는 뜻이다. 결국 그 사람은 누군가에게는 바가지를 씌우고 있다. 나는 여기서 차별이 결코 흉악한 얼굴만 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차별은 보이지 않는다. 왜냐면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고 믿는 사람들을 주로 주목하고 그 이외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와 거래하고 누구와 밥을 먹고 누구와 휴가계획을 세우는가 하는 것은 당연히 내 자유다. 그런데 그 자유가 현실에서는 누군가에게 서러운 차별이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미녀나 미남에게만 관심을 주면 누군가가 그들보다 약간 못생겼다는 이유로 심한 차별을 당하게 된다. 내가 내 자식을 챙기는 것은 당연하지 않냐는 생각이 결국 차별을 만들어 낸다. 이런 일은 우리 주변에 흔하다.
생김새가 아니라도 세상은 서로 다른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사람들도 서로 돕고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각자 사는게 아니라 한국인으로 사는 것이다. 누군가를 평소에는 차별하고 천하다고 욕하다가 필요할 때가 되어서야 좋게 대하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 그 사람은 더이상 나를 가족이나 동료처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정도는 옆집 자식도 내 자식처럼 생각해야 내 자식도 보호받을 수 있다.
일단 차별과 불신이 생겨나면 유태인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싸움이 보여주듯이 멈추기가 거의 불가능하다.심하면 르완다에서 처럼 인종청소까지 벌어진다. 각 집단은 좋건 나쁘건 자신의 문화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변화하지 않으려고 한다. 상대방이 이미 적이 되었으므로 흩어지면 죽는다고 생각한다. 이런게 심해지면 한국인이 자국민을 죽이거나 견제하기 위해 외국군대를 불러오는 일이 생긴다. 선거에 지느니 나라가 망해도 되고 우리나라가 일본이나 미국의 식민지가 되는게 더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망국의 시작인 것이다.
과거에 이런 걸 보았던 나는 외국인을 한국에 들여오는 것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고 늘상 생각해 왔다.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한국 사회의 문화적 주체성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만 손님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라는 것이다. 한국 사람이 사는 법도 변해왔고 변해 갈 것이며 변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결정할 일이다. 그래서 사실 나는 남북한 통일이 되도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통일에 반대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문화가 이질적인 북한 주민들 2천만명을 갑자기 투표권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이 되게 했을 때 우리는 민주적으로 또다른 김일성을 지도자로 뽑고 민주적으로 또다른 북한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남북한 통일에 있어서 경제적 고려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북한을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남한의 문화적 정체성이 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문화적 이질감은 외국과 한국사이에서만 있는게아니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세상이 빨리 변하는데 문화적으로 뒤쳐진데 있을 것이다. 이제는 한국인끼리도 서로 매우 낯설 때가 있다. 사실 지금 스스로를 보수라고 부르고 반공을 부르짓는 사람들은 내가 보기에는 가장 북한 사람들과 문화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이다. 김정은 죽이자를 매일 외치는 사람이야 말로 언제든 김정은 만세를 부를 사람들이다. 그래서 탈북민들이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보게 된다. 보수는 종종 경제나 안보는 보수가 잘한다고 자부하지만 나는 그 말이 경제나 안보는 역시 북한이 강하다는 말만큼이나 어이없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이만큼 살게 된 것은 진짜로 민주적이었던 한국 시민들이 한국 사회를 민주 사회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결코 한두가지의 정책적 결단으로 지금에 이른게 아니다. 민주적이고 교육받은 시민들의 노력속에서 발전한 것이다. 박정희나 전두환같은 사람들이 지배하던 군사독재 시절이 지속되었다면 한국은 북한보다 잘 살 수 없었다. 보수는 입만 열면 친미를 말하지만 정작 문화적으로 미국적 혹은 국제적 보편성에 가까운 건 민주세력이다. 노벨상도 그래서 김대중이 받지 않는가.
우리는 포용력있는 문화적 힘이 필요하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게 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는 문화적 힘이 필요하다. 그것 없이는 외국인이던 우리 안의 외국이던 타인들과 함께 잘 살 수 없다. 짐승이 인간같이 문명 사회를 만들지 못하는 것은 그들은 인간처럼 거대한 집단을 만들고 협력하면서 살 수 없기 때문이고 그것은 인간의 언어와 문화가 그들에게 없기 때문이다. 똑같은 것은 인간들 사이에서도 통용된다. 문화적 힘이 강할 때 더 크고 합리적인 인간집단이 가능해 진다. 그것에 실패하면 좀 더 짐승에 가깝게 살아야 한다.
이에 비하면 혈통이나 생김새는 중요하지 않다. 겉으로는 멀쩡하게 생겼어도 실제로는 전혀 한국인이 아니라거나 심지어 인간도 아닌 존재들은 있을 수 있다.머리색깔이나 피부색깔이나 눈의 모양따위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낡은 기준이다. 대대손손 이 땅에서 살았다고 해도 반드시 한국인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문제는 문화와 생각이기 때문이다. 김구가 테러리스트라고 말하는 것은 반드시 불가능한 견해는 아니다. 일본 우익 중에는 그렇게 믿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스스로를 한국인으로 생각하고 한국인들에게 지지를 받기조차 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게 더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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