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10
일본이란 나라의 첫인상
일본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웃이다. 하지만 일본은 어떤 나라일까. 간단한 숫자를 좀 살펴보자. 일본은 국민총생산 기준으로 미국에 이은 전세계 두번째의 경제대국이며 인구는 약 1억3천만으로 세계에서 10번째로 큰 인구를 가진 나라이다. 동경부근에만 3천만의 인구가 살고 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많은 한국과는 달리 인구의 절반이상이 독립주택에 살고 있으며 부자나라치고는 외국인이 별로 없어서 전체인구의 98.5%가 일본인이다. 전체 면적은 37만 8천 제곱킬로미터로 남한 면적의 거의 네배이며 전체 면적의 97%는 4개의 섬 큐슈,혼슈,홋카이도 그리고 시코쿠가 차지하고 있다. 일본은 전체 국토의 7-80%가 숲이나 산악지역이며 환경친화기술의 선두주자로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수출하고 있다.
일본은 물론 일제시대와 임진왜란등으로 우리나라에 상처를 준 나라이기도 하다. 친일파라는 말은 빨갱이라는 말과 함께 한국에서 양대 금기어 즉 누구도 듣기 싫어하는 단어에 속하는 말이다. 그런데 실은 친일파라는 말은 틀린 말이다. 민족배신자쯤으로 말해야 한다. 친일파가 나쁜 거라면 미국과 가깝게 지내야 한다는 친미세력도 똑같이 나라 팔아먹는 사람으로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 친일이 나쁜거라면 21세기에도 우리는 일본과 싸우고 일본을 배척해야 한다는 것일까? 친중이나 친미는 괜찮지만 친일은 나쁘다는 건 옳지 않다.
이 단어의 혼용은 실상 다분히 의도적인 것같다. 민족배신행위를 친일행위로 부르는 것은 깡패가 자기가 돈뜯고 다니는 것을 자치회활동이나 상부상조활동 쯤으로 부르는 거나 마찬가지다. 자치회 활동이나 상부상조 활동이 무슨 문제겠는가. 강제로 돈을 뺏아가는게 나쁜 것이지. 민족배신이 나쁜것이지 친일이 무슨 문제겠는가. 단어의 선택자체가 그 행동을 옹호하는 의미가 있다. 한국과 동맹관계라는 미국도 기밀을 한국에 넘겨줬다고 국가배신행위로 한국계 미국인을 처벌한다. 그렇다고 미국이 반한감정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친하게 지내자는 건 민족배신행위와 다르다. 물론 우리는 일본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 싸워서 좋을게 없다.
나에게 있어 일본하면 생각나는 것은 애니메이션과 만화다. 내가 대학교 다니던 80년대에는 불법복제 일본 애니메이션 비디오가 한국에서 돌아다녔는데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들을 좋아해서 열심히 그런 비디오를 구해서는 복사해서 보고 또 보고 했던 기억이 있다. 또 대학원시절에는 슬램덩크라는 농구만화가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농구는 전혀 못하는 주제에 나는 농구 만화는 열심히 봤다. 그때는 슬램덩크가 한 한국만화잡지에 연재되었는데 대학원생들이 돌려가며 잡지를 사서 모았기 때문에 캐비닛 가득히 그 만화잡지가 쌓여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것말고도 많은 일본만화를 탐독했다. 일본영화도 나는 좋아한다.
어쩌다 보니 그런 일본에 나는 살고 있다. 나는 이 이전에는 미국에 살았기 때문에 일본의 삶을 때로는 미국과 비교하게 되고 한국과 비교하게 되기도 한다. 일본은 참으로 한국과 비슷하다고 말해진다. 과연 건물이며 지하철이며 도로며 서로 다르면서도 어딘가 비슷하다. 일본을 오면 이게 한국의 과거인지 미래인지 헛깔린다. 어딘가 많이 비슷하고 한국에 전에 있다가 사라져버린 것까지 남아있다는 점에서 왠지 한국의 과거 같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과거 한국이 가난했던 시절 가졌던 것 보다 훨씬 품질이 좋기 때문에, 혹은 일본은 이미 변해서 과거의 그 자리에 있지 않은데 한국만 그 자리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래서 과거라기보다는 미래같다.
예를 들어 붕어빵이니 오방떡이니 하는 것을 보니 어린 시절 생각이 나는 것이다. 그런데 먹어보니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이 전혀 다르다. 말하자면 초호화판 붕어빵이랄까. 내 어릴 때 먹던거하고는 비할 수 없다. 지나가는 중고등학생들의 교복을 보니 옛날 한국에서 입던 교복이 생각난다. 단지 남학생들이 입는 교복은 모양은 비슷하지만 재질이 내가 입던 것보다 훨씬 훌룡한 것이다. 여학생의 교복은 보기 민망하리만큼 치마가 짮다. 그런걸 제외하면 역시 옛날 생각을 나게 하는 면이 있다.
아침이면 여기저기서 라디오체조 소리가 나온다. 그런데 그 음악이라는게 내가 어렸을 때 들었던 국민체조소리와 놀랍게 비슷하다. 약간 배신감이 느껴진다. 뭐 이런걸 이렇게 비슷하게 했을까. 음악이 나오고 이따끔 헛! 헛! 하면서 박자를 맞추던 그 음악이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학교에 가보니 미국에는 없던 교장선생님 훈시가 있고 아이들은 똑같은 란도셀 가방을 매고 줄지어 다닌다. 저 무거운 가방이 싼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돈으로는 20만원쯤하고 왠만하면 50만원까지 하며 비싼 것은 백만원까지 한다는 가방이다. 추억이 방울방울이나 이웃집의 토토로 같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에 나오는 일본은 과거의 일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다지 과거도 아닌가 보다. 일본의 모습은 그 영화에 나오는 것과도 그리 다르지 않다. 아니면 일본사람들은 과거의 모습이 마음에 들어 그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일본에 살기 위해서는 미국에서는 필요없던 것을 해야 하는 것이 있다. 우선 동사무소에 가서 외국인 등록이라는걸 해야 한다. 일본 내에서는 여권이 아니라 이 등록증이 있어야 신분증명이 된다. 예를 들어 운전면허 교환 같은 서류절차를 밟으려면 외국인 등록증이 있어야 한다. 비자도 좀 괴상하다. 내 비자는 분명 5년짜리 비자이지만 외국에 다녀오려면 출입국 허가를 따로 또 얻어야 한다. 여러 번 외국을 방문하자고 하면 다시 돈을 내야 한다니 속이 쓰리다. 온가족이 하니 그것도 수십만원돈의 등록비가 들고 시간이 든다.
연구소에 도착해서 사무실로 나가니 미국과 일본의 일차이가 확연하게 들어난다. 미국은 거의 혼자 살아남으라는 식이다. 비서는 대개 나에게 정보와 조언을 좀 줄뿐이다. 일본의 경우는 자세한 설명과 매우 세세한 보살핌을 준다. 일본에 온 한동안은 외국인을 위한 아파트에 머물렀는데 거기에는 가구는 물론 담요, 숫가락 밥그릇, 물끓이는 기계, 밥솥등 없는게 없다. 시청에 가서 등록을 해야 하는데 영어가 안통할지 모른다면서 비서가 따라온다.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했는데 전화를 하니 비서가 나와서 통역도 해준다. 친절함의 정도가 정말 미국과 다르다.
우리는 큰 딸인 예나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둘째인 경호를 유치원에 등록시켰다. 일본에서는 초등학교를 소학교라고 하는데 연구소에서는 주변에 어떤 소학교가 있는지 알려주고 수속을 위한 예약도 대신해주었다. 그냥 말로 해주는 게 아니다. 프린트물로 지도까지 상세히 곁들여있다. 필요하면 학교에 따라와서 수속하는 걸 도와주기 까지 한다. 연구소에서는 해마다 한번씩은 사람들은 나이별로 분류되어 지정된 장소로 나오라고 말해진다. 건강검진을 하는것이다. 외국인이라고 더 잘해주는 것도 없고 난 간섭은 안할 테니 네가 알아서 살라는 미국과 뭔가 잘 정돈된 틀속에서 보살펴주는 것 같은 일본은 과연 다르다.
슈퍼에 가서 물건을 사고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니 뭔가가 뉴욕의 맨하탄과는 매우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뭔지 딱잡히질 않는다. 그러고보니 슈퍼에서 돈을 낸 물건들을 카트에 실어놓은 채 자리를 비우는 주부들이 있다. 거리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있다. 세워 놓은 자전거들이 있다. 그 차이가 뭘까. 첫번째로 눈에 띄는 것은 주변이 모두 일본인이라는 것이다. 인종전시장 같던 뉴욕과는 다르다. 두번째로는 보다 안전하다는 느낌이든다. 누군가가 내 것을 훔치고 도둑질을 할거라는 느낌, 아이가 유괴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훨씬 적다. 일본도 도둑이 많다고 하고 아이들이 길에서 혼자 돌아다니면 위험하다고 야단이지만 그건 어디와 비교하냐의 문제다. 요즘 자전거를 훔치는 사람이 많다고 자전거도둑을 조심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일본인들이 뉴욕사람들보다 더 많이 이야기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맨하탄에서는 애초에 자전거 도둑을 조심하라는 말을 해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안전하게 느껴지질 않는다. 잠시잠깐이라도 길가에 열쇠를 잠그지 않은 자전거를 내버려 둔다면 그 자전거는 반드시 사라질 거라는 느낌이며 실은 자물쇠를 잠궈도 사라진다. 가게 앞에 열쇠 안 잠군 자전거를 세워놓아도 잠깐인데 큰일 안 나겠지 하고 생각할수 있는 일본과는 다르다.
저녁이 되니 온갖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 거리에 사람이 없고 불빛이 없다. 물론 일본도 번화가가 따로 있어서 그런곳은 사람이 있지만 왠지 한국과는 다르다. 한국인의 삶은 좀더 야행성이다. 한국에 비하면 일본사람들은 밤에 다니기 좋아하지 않는걸까? 한국과 일본의 시계는 서로 똑같이 간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보다 동쪽에 있는 나라다. 시계를 똑같이 맞춰놓은 탓에 동경지역은 한국에 비하면 해가 일찍뜨고 일찍 진다. 그래서 겨울이면 오후 5시만 되도 벌써 어둡다. 아침형인간이라는 책을 일본사람이 썼는데 일본은 아침형인간으로 살기 좋은 나라다. 한국처럼 일본도 저녁에 해가 늦게 진다면 자연스레 야간형인간이 되는 것일까?
그래도 일본의 저녁거리를 밝게 빛나게 하는 몇몇 가게가 있다. 바로 일본의 성인 오락실인 빠징코가게다. 크고 번쩍거리는 건물을 봤다 싶으면 빠징코 가게라고 생각하면 된다. 일본의 빠징코 인기는 보기에 좀 비정상적이라고 싶을 때가 많다. 사방에 널린 빠징코 가게의 수가 일단 그렇다. 일본은 빠징코가게로 뒤덮혀 있다. 빠징코가 불황을 맞으면 빠징코 기계의 LCD화면 교체수요가 줄어서 일본 전자산업이 불황을 겪을 정도라고 한다.
쇼핑센터에는 아이들을 위한 오락실이 있는데 거기엔 코인게임이라는 기계들이 있다. 하나에 10엔짜리 코인을 넣고 하는 게임이다. 그런데 이 코인게임장의 구석에 가보면 빠징코 기계가 있다. 단지 돈의 단위가 틀릴 뿐이다. 어른들 인기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애들도 미리 그런 세계에 빠지는 것에 상당히 너그럽다. 마치 빠징코 매니아를 길러 내는 장소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본사람 모두가 빠징코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오해다. 좋은 대학 나온 사람들중에는 빠징코를 한번도 안 가봤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느 나라나 빈부차이나 학력차이에 따라 문화적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일본에서는 평균적 문화와 엘리트 문화는 상당히 다르다. 한국의 그것보다 더 크게 차이가 나는 느낌이라 한국에 비하면 일본은 귀족사회라는 느낌이다. 한국에서 잘모르는 사람들이 ‘광적인 팬’ 같은 의미로 쓰기도하는 오타쿠라는 말도 일본의 엘리트 사이에서는 매우 나쁜 의미가 강하다. 잘모르고 농담삼아 나는 오타쿠라고 말했다가는 오해사기 쉽다. 다시 말하지만 대중문화와 엘리트 문화가 다른 것이다.
빠징코에는 일본적인 것을 찾는 형님을 모시고 딱 한번 가봤다. 들어가면 담배연기가 정말 지독하다. 일본사람들은 남녀가 모두 담배를 많이 핀다. 심지어 포대에 안긴 아이옆에서 담배피는 엄마도 본 적도 있다. 옆에 무시무시하게 많은 구슬을 쌓아놓고 빠징코를 하는 사람들을 보니 인상이 좀 무섭다. 할줄몰라서 순식간에 구슬이 없어지고 우리 형제는 빈털털리가 되었다. 피식웃으며 가려는데 주변의 일본인들이 손발을 휘저으며 가면 안된다고 난리다. 이게 뭘까? 그런데 말이 통하질 않는다. 뭐라뭐라고 말을 하더니 답답한지 자기 구슬 몇 개를 가지고 우리자리에서 뭔가를 한다. 금방 우르르 쏟아지는 구슬들. 순식간에 우리가 애초에 사가지고 들어간 것 보다 구슬이 더 많아진 느낌이다. 잘 모르는 초짜들이 기회를 코앞에 놓고 가버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빠징코 고수들. 갑자기 그들이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우리가 가버리면 그 자리에 앉아서 자기가 하면 될텐데 말이다. 얼굴은 무섭지만 착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자기 기계를 들여다보면서 남의 것까지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일본에 와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맑은 하늘과 푸른 숲이다. 일본은 섬나라고 생선요리가 유명하다. 그러나 자연히 한국과 비교하게 되는 나에게는 바다보다는 숲이나 나무가 더 인상적이었고 잘보존된 자연환경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동경주변밖에는 보지 못했으며 오끼나와는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바다로 치자면 일본보다 우리나라 동해안의 해변이 훨씬 아름답다는게 내 생각이다. 특히 동해안쪽에 가면 지천으로 널려있는 푸른 물과 하얀백사장이 동경주변에서는 보기 힘들다.
그러나 숲과 나무는 다르다. 일본의 숲은 매우 울창하고 나무들이 굵다. 사방에 널려있는 공원들에는 마구 밟고 다녀도 좋은 잔디밭이 많이 있다. 우리동네의 강변공원에 가면 축구장 네개가 하나의 잔디밭을 이루며 만들어져 있다. 주변의 신사며 작은 동산에만 가도 한국같으면 화제가 될만큼 굵은 나무들을 쉽게 찾는다. 초록이 푸른 계절에 일본의 산에 가면 정말 초록이 넘쳐 홍수가 난다는 표현이 절로 생각난다. 이 차이는 역사적으로 한국의 산하가 고통당한 이유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일본이 남쪽이다보니 나무가 좀더 잘자라는 이유도 있는 것 같다. 북한산처럼 바위가 들어나며 군데군데 나무가 있는 것도 좋지만 일본의 초록도 매우 훌룡한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하늘도 대단히 훌룡하다. 깨끗한 하늘에 뭉게구름이 보이고 아침 저녁이면 근사한 노을이 보이는 풍경은 대단히 근사한 것이다. 맑은 하늘을 보면서 산다는 것은 상당한 축복이다. 찌프린 하늘만 계속된다면 마음도 눅눅해 진다. 우리 동네에서 후지산까지 직선거리로 92킬로쯤 된다. 그런데도 날이 좋으면 후지산이 아주 잘 보인다. 공기가 그만큼 맑다.
우리나라도 내가 어렸을때만 해도 하늘이 이랬다. 소나기가 쏴하고 내리면 무지개가 뜨고 저녁이면 노을이 근사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비는 왠지 부슬부슬 안개처럼 내리는 일이 많고 하늘이 맑지가 않다. 선명한 푸른하늘에 뭉개구름을 볼 수 있던 날은 적어도 서울근처에선 찾기 힘든 것 같다. 이것은 한국의 공해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고 중국의 공해와 황사가 점점 더 심해져서 그렇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유가 뭐건 안타까운 일이다.
이렇게 일본에 와서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때때로 알게 된다. 예를 들어 가재가 있는 공원, 새들이 많은 하늘, 오소리며 원숭이가 야생으로 사는 산하가 그렇다. 요즘 크는 아이들은 한국에도 전에는 새가 많았다는 것을 잘 모를 것이다. 오사카 근처에 놀러가서는 인가가 꽤 있는 동네에서 야생 원숭이 무리가 수십마리 길을 차지한 것을 보기도 했다. 일본의 하천들에는 물고기도 많이 산다. 우리가 다 잃어버린 것들이라 부러운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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