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5
여기저기에서 잊을만 하면 듣게 되는 말이 있다. 그것은 한국은 어차피 내수시장이 작아서 수출에 의존하여 살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은 흔들릴 수 없는 사실로 보이며 어떤 가치판단이 들어가 있지 않은, 이데올로기가 없는 말처럼 보인다. 수출만이 살길이다라는 말은 박정희시대부터 지겹게 들어온 말이 아닌가. 오늘날도 우리는 삼성이나 현대자동차. 엘지가 외국에 수출을 얼마나 했나 하는 것에 대해 듣고 민감하게 반응하며 걱정도 한다. 수출만이 살길이라고 듣고 배웠으니까. FTA에 대한 반대 시위, SSM의 골목길 점령이 사회현안으로 떠올라도 우리는 그것을 수출의 문제로 연결시키지는 않는다. 수출은 좋은 것이고 수입은 나쁜 것으로 그 둘은 서로 다른 문제인것처럼 이야기 되며 세계화의 물결이 어떻게 SSM의 문제에 까지 이르고 영어중심교육에 까지 이르게 되는지에 대해 연결해서 생각해 보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그렇기 때문에 문제다. 수출만이 살길이다라는 말은 모든 이야기가 그러하듯이 나름의 가치판단이 들어있다. 여담이지만 밥을 안먹으면 죽는다. 그러나 밥만이 살 길이다라고 말하면 문제가 있다. 사는게 밥만으로 되는게 아니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억누르고 그저 밥만 태산처럼 먹으면 행복해 지는 것처럼 이야기가 몰려나간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아니 밥이 전부가 아니야 라고 말하면 그것에 대해 누군가가 그럼 밥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물을지 모른다. 물론 밥을 안 먹고는 살지 못할것이다. 하지만 흑백처럼 전부 거부하는게 아니라 다른 방향도 있다는 것이다.
밥의 경우는 문제의 단순성때문에 그리고 돈과 정치권력이 끼어들지 않기 때문에 쉽게 상식적인 답이 나오지만 수출은 그렇지가 않다. 수출만이 살 길이다라고 말하는 것에 누군가가 수출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면 바로 그럼 우리나라가 수출 안 하고도 살 수 있다는 말인가 하는 대답이 나오고 논의는 금방 진흙탕이 되고 각종 이권에 연결된 언론이며 지식인들이 괘변을 늘어놓아 뭐가 뭔지 알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모든 복잡한 지식을 내려놓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 국민소득이 10만불이 된다한들 그것이 반드시 우리가 더 행복해 진다는 것을 의미할까? 세계의 10대 회사가 모두 한국에 본사를 가지는 시대가 온다고 해도 그게 과연 행복을 의미할까? 수출중심의 국가가 아니라 내수중심의 국가가 되려면 흔히 1억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떠돌지만 우리는 5천만이라서 내수가 크지 못하다는 말인가? 크지 않다 크다라는 것은 질문이 잘못되었다. 충분히 크지 못하다는 것은 얼마나 부자가 되기 위해 충분히 크지 못한가를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는 아마도 인권을 싹 무시하고 인간 장기 판매를 합법화하거나 하면 돈을 좀더 벌 수 있을것이다. 누구도 그러자고는 안한다. 과연 우리사회가 수출중심의 국가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면서 당연히 그렇게 할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중에는 당연하지 않은 것이 없을까?
수출을 잘하기 위해 외국에 파는 물건이 더 싼것은 당연하다. 수출을 잘하기 위해 국내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수출을 잘하기 위해 국민들은 더 싸고 질좋은 외국물건이 있어도 수출기업을 보살펴 주는 것이 당연하다. 수출기업이 망하면 한국이 망하니 그들을 공적자금으로 살리는 것이 마땅하며 그들이 불법을 저질러도 그들이 망하면 한국이 망하니 그건 좀 봐줘야 한다. 그들은 한국을 빛내는 영웅이니까. 이렇게 하나둘씩 수출이라는 목표에 매달리는 동안 한국국민들은 일종의 세금에 시달리고 생활수준은 떨어진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직구를 할까. 나는 세계 어떤 다른 나라에 직구같은 이상한 형태의 소비가 있는지 모른다.
수출의 문제는 단순히 직접적인 경제문제, 자국민들의 소외문제뿐만 아니다. 수출중심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자급자족할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 남들의 취향, 남들의 가치판단에 매달린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밥만이 살길이다의 예에서 밥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밥먹지 말자고 하는 뜻이 아닌것처럼 수출을 포기하고 내수만 보자라고 하는게 아니다. 정도가 있다는 것이다. 수출을 통해 돈을 버는 사람들의 욕망이 지나치면 그건 결국 나라를 팔아먹는 행위가 되고 말며 지속가능한 성장이 아니라 미래를 팔아 한몫챙기고 나중에는 나라를 뜨겠다는 사고 방식이 된다.
나는 이미 다른 글에서 한국대학이 가장 미국적인 대학이 되는 위험성을 말한적이 있다. 전국 방방곡곡을 표준화하여 지역적 다양성을 잃었을때 창의력은 상실되고 외부로부터의 항방에 나라전체가 망할 수도 있다라고 말한적이 있다. 그때도 말했지만 지금도 말한다. 이것은 모두 다 연결되어져 있는 것이다.
국가로서의 자기 정체성, 도시지역사회의 정체성, 골목주민 공동체의 정체성, 각가정의 정체성, 개인의 정체성은 모두 열려있는 것인 동시에 닫혀 있는 것이다. 수출만이 살길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서울사람들이 우리동네에 투자하게 만드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말하는 사람과 같은 입장에 있으며 자기 나름의 가치판단은 전혀 없이 외부로부터 지령을 받는 로보트가 되는 사람과 같은 입장에 있다.
우리 사회는 극빈과 전쟁직후의 극단적 충격속에서나 할 수 있는 구호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했다. 남만 부러워하는 사람은 행복해 질 수 없다. 그런 삶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한국이 자기 것을 모두 잃어버리는 순간 한국은 선진국으로 재탄생하는게 아니라 도덕적 파괴, 가치판단의 실패로 필리핀이나 남미국가같은 가난한 국가가 될것이다. 인디언들이 멸종하다시피한 것을 기억하라.
뻔한 사실을 다시 상기하자. 우리 나라 사람이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건 이제 더이상 돈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돈을 더 벌기 위해서라도 돈돈돈 하는 이야기를 억눌러야 한다. 이 세상에는 가난한 나라가 많다. 그나라 사람들은 돈을 싫어해서 가난할까? 그렇지 않다. 그들도 우리만큼 돈을 좋아한다. 다만 한민족은 전통의 윤리적 가치가 돈을 넘어서는 면이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자본주의가 돌아간 것이다. 무한 경쟁, 돈만을 가치로 하는 이기적 행동결정만 있다면 우리는 지금만큼도 부자가 되지 못했다. 한국인의 근면성이나 자식교육에 대한 열정을 순전히 욕망으로 설명하는 것은 오류다. 전통의 가치판단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존재한 것이다. 그걸 잊어버린다면 앞으로 자라나는 세대는 순수히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옳다는 말밖에 모르게 될 것이다. 돈이 안되는 건 왜 해야 하는지 잘 모를 것이다. 그들의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사회의 현장은 그렇지 않으니까.
우리나라 사람들 아니 그보다 대기업이 뒤에 있는 기득권 세력이 뒤에 있는 언론들이 좋아하는 이야기가 세계 1등하기, 세계적 선진국인 미국같은 곳에서 뭘 했다는 이야기다. 노벨상 한번 받는 것이 정말 소원인데 아마 돈으로 파는 것이었다면 진작에 사왔을 것이다. 한국 사람이 미국에서 교육받고 미국에서만 활동하면서 미국에 좋은 일만 잔뜩해서 노벨상을 받아도 노벨상이라면서 좋아서 미칠지경일 것이다. 미국 미식축구리그에서 한국계 선수가 잘나가도 갑자기 한국의 영광으로 떠들지 않는가.
수준이 매우 낮다. 수준이 낮은게 문제가 아니라 그 어둠속에서 어리석음이 뭔가를 썩게 한다. 그 옛날 군부독재시대에 우리 뭉쳐서 외화좀 벌어보자며 국민단합을 주장했던 그 구호가 아직도 문신처럼 한국인들의 이마에서 지워지질 않는다. 이젠 좀 각자가 개인으로 자기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자기와 자기 가족의 행복도 좀 생각하면서 살아보자. 남의 욕망에 몸바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할때다. 수출은 중요하지만 수출 수출하다가는 수출도 못하게 된다. 결국 우리의 취향과 욕망이 우리의 소비가 되고 우리의 소비가 우리 나름의 제품을 만들게 하며 그 제품이 수출도 되게 하는 법이다. 수출만 외치다가는 외국인들 취향만 생각하다가 망하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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