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국가란 무엇인가

마음주의적 복지국가

by 격암(강국진) 2011. 1. 14.

2011.1.14

복지국가라는 말이 요즘 세상에 가끔 오르내린다. 그런데 그 복지국가라는 것이 사람들이 좀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라면 약간의, 그러나 중대한 오해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닐까? 세상사람들이 복지국가라는 것을 말할 때는 주로 사회복지혜택을 많이 주고 노동시간은 짧아지는 그런 나라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틀린 것이 아니지만 맞지도 않다. 

 

논의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를 이야기하기 위해 먼저 결혼이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상황을 생각 해보자. 어떤 남자후배가 있는데 이 남자는 여자란 그저 섹스의 상대라고만 생각하며 그이외의 어떤 다른 가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좋은 결혼이란 제일 섹시한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다. 그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그건 옳은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하자 이 후배 말하길 그럼 못생기고 몸매나쁜 여자가 좋다는 말입니까라고 말한다. 그건 물론 맞는 말이 아니다. 누구나 이왕이면 예쁜 여자를 좋아하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좋은 결혼이란 제일 섹시한 여자와 결혼하는 거란 이야기는 맞는 이야기는 아닌데 틀린것만도 아닌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복지국가라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돈이나 노동시간같은 것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있다. 행복이란걸 반드시 돈이나 여가시간으로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은 대개의 사람들이 긍정하면서도 사회적으로 행복한 사회는 그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던져지면 사람들은 그 즉시로 무슨 중독환자처럼 돈과 노동시간이라는 문제같은 것에 매몰된다. 노동시간이 주당 얼마고 평균소득이 얼마고 탁아시설이나 노인시설등이 얼마나 있고 하는 식의 숫자들을 나열한 후 어디는 어디보다 복지국가라는 식으로 말하며 그러다보면 그 이외의 것들은 비현실적이고 낭만적 몽상이며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로 무시되게 된다. 그러나 좋은 결혼이란 제일 섹시한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비현실적이고 낭만적 몽상이며 별로 중요하지 않아서 무시해도 좋은 말일까? 

 

행복은 가치판단에 달린 것이다. 돈을 많이 받는가 안 받는가, 혜택을 많이 받는가 안 받는가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지만 시선이 거기에 고정되어 있다는 것은 그 답이 뭐건 간에 그 방향의 가치밖에는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으며 그럴 때 종종 우리는 종이위를 기어가는 개미가 넘어설 수 없는 선을 발견하듯 절대 넘어설 수 없는 벽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 벽은 보다 다면적인 시각으로 보았을 때 다시 말해 종이위에서보았을 때는 별거 아닌게 될 수도 있다. 

 

그럼 복지국가를 말하는 다른 방식은 뭘까? 나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회가 복지국가라고 생각한다. 나는 연금받아서 하루종일 할 일도 없이 집에 앉아있는 노인이 돈도 별로 벌지 못하면서 하루에 12시간씩 일하는 노인보다 불행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탁아소가 잘되어 있는 독재적 공산국가보다 탁아소는 별로 없지만 아이키우는 것이 만족스러운 자유국가가 있다고 믿는다. 지금부터는 모든 사람이 자기 마음이 하라고 시키는 것,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편의상 마음주의라고 불러보자. 그러면 내가 말하는 복지국가란 마음주의적 복지국가가 된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회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사람들은 그런게 될턱이 있나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거야 당연하지, 지금 우리가 하려는게 그거야 하고 너무 쉽게 생각한다. 불가능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지금 우리가 하려는게 그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개 착각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자유로운 세상을 추구하면서 물질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주의적 복지사회를 만드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난관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인류는 이미 자유시장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내면서 비슷한 종류의 관점변화를 가져왔다. 따라서 다시 한번 관점을 변화하는것은 당연히 가능하다. 멜서스의 인구론 같은 이야기이래 세상에는 자유주의의 논리가 퍼졌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진화론의 선구이며 따라서 비슷한 논리를 가지고있다. 세상의 시스템은 자유롭게 두었을 때 가장 최적화된 상태로 가장 빨리 수렴한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자유주의란 결코 언제나 당연했던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싸우고 주장하여 가장 행복한 사회, 사회적 이익이 가장 극대화 되는 사회는 자유가 있는 사회라는 믿음이 현대사회의 근간에 뿌리박게 된것이다. 자유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사회적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가 있는 사회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회와 다른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가. 이 점이 다시한번더 관점을 비약하기 위해서 중요하다. 자유가 있는 사회는 자기가 하고 싶은일을 하는 사회와 다르다. 사실 이름이 뭐가 되든 이 세상에 무제한의 자유가 있는 사회가 있을수는 없다. 사회는 여러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로운 사회란 실상 자유라는 이름을 가진 시스템이 있는 사회다. 시스템이 등장하고 그 시스템이 더 많은 수익성이란 이름으로 사람들을 구속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시스템이 점점 더 복잡해 질수록 사람들은 자유사회에 살지만 전혀 자유롭지 않은 세상에 살게 된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압력이 사람들을 극도로 짜증나게 만들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현대의 어두운 현실이다. 모든 사람이 자유를 갈망하므로 모두가 부자유스러워지는 사회랄까. 

 

그러니까 더 많은 자유가 있는 사회 즉 금전적으로나 노동시간적으로 더 많은 혜택이 있는 사회라는 식의 복지국가개념은 실은 시대에 크게 뒤진 것으로 현대에 와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돈과 여가시간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늘어날 때 그 효율성은 줄어든다. 국민소득이 3천불일때 국민소득이 만불이 된다는 것은 분명한 차이를 주지만 국민소득이 다시 만불이 늘어 이만불이 되어도 행복감은 조금만 늘어날 수 있다. 왠지 세상이 짜증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자유로 더 많은 부를 창출하려던 시스템은 결국 부자유한 시스템이 되고 만다. 사람들은 이제 월든같은 책에서 말하는 전원생활을 꿈꾼다. 부자유한 현대사회시스템에 진력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단순히 시스템에서 탈출하는 것으로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건 발전이 아니라 도피이기 때문이다. 부자나라의 사람들은 점점 돈많은 죄수처럼 자유로운데 자유가 없는 것처럼 느끼게 되었다. 

 

자유주의에 대해서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은 일이라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가장 자유로운 시스템이 가장 빠른 발전을 준다는 이익측면의 주장도 있다. 마음주의도 마찬가지로 윤리적이고 이익적인 측면들에서 논할 수 있다. 우선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은 일이라고 우리는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모든 것은 당신의 선택이며 자유입니다라고 말하면서,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그 사람을 돌봐주는 척 하면서, 그 사람을 완전히 포기하고 등져버리는 것이 쉽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진심이 없는 친절을 가장하고 복잡한 시스템뒤에 숨어서 누군가를 바보만들고 따돌리기란 쉬운 것이다.  현대인들은 매일매일 그런 상황에 처한다. 이 핑게 저 핑게로 내 문제가 해결되지 않다가 누군가가 쉽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고 때로 분노한다. 돈과 자유시간을 다른 사람들에게 준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세상에는 어둡지만 돈과 자유시간이 넘치는 노인들에게서 그 이유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보다는 다른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욱 윤리적으로 만족스러운 일이다. 마음주의는 개인을 독립된 원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주의는 우리가 모두 얽혀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자유라는 말로는 충분치 않고 모두가 자기가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도록 서로 도와야 하는 것이다. 마음주의는 다른 사람이 뭘 원하는지를 볼 것을 주문한다. 마치 자판기처럼 돈을 지불했으니 나머지는 당신 알아서 하라는 식이 아니라 말이다. 

 

게다가 생산성측면에서 봐도 마음주의에 따르는 것이 지금의 자유주의보다 더욱 우수하다. 자유주의는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실상은 자본주의사회가 종종 그러하듯 무한 경쟁의 세상을 만들어 낸다. 일찌기 칼폴라니는 거대한 전환에서 스스로 자기조정하는 자유시장이란 결코 존재하지않는 환상이라고 지적한바 있다. 다시 말해 자유주의는 사실 사기라는 것이다. 우리는 진짜로 자유주의를 시행한 적이 없고 언제나 우리의 이데올로기와 편견을 세상에 강요했을 뿐이다. 

 

추상적인 이야기보다 구체적으로 과학자에 대한 시스템을 이야기해 보자. 자유주의적 시각은 종종 이런 논의를 만들어 낸다. 한국에서 과학을 발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경쟁을 더욱 강화시키면 된다. 그러니까 더 많은 학생들을 이공계대학으로 유혹해서 무한경쟁의 테두리 안으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 연구원이나 교수들의 실적평가를 더더욱 엄격하게 해서 대학원생에서 교수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밤이고 낮이고 일하게 밀어부치는 것이다. 머리 하나보다는 머리 열개가 우수하고 자유경쟁을 통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기본가정이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근이 크고 채찍도 커야 한다. 모두가 배부르면 일하지 않을것이고 당근이 크지 않으면 일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1등이 모든 것을 먹는 시스템, 로또같은 시스템이나 미스코리아대회같은 시스템을 만든다. 1등에게는 모든 영광과 부가 돌아가고 나머지는 아사직전에서 헤맨다. 그들은 애초에 이 경쟁구도로 들어온 것을 후회하지만 탈출할 방법이 없어서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허덕이며 산다. 

 

자유주의가 가장 최고가 아니다. 마음주의적 주장은 이렇다. 결과는 반드시 경쟁에서 나오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나온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으면 큰 보상이 없어도 그저 먹고살 수만 있으면 사람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기 때문에 큰 관리나 평가가 필요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에 애초에 노동시간운운하는게 필요없다. 이럴때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오며 자유주의적 상황보다 우수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하루 24시간 일하면서도 자기는 지금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굳이 다른 일을 시키면서 채찍질하고 보상을 해서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것은 바보짓이다. 

 

자원은 한정된 것이기 때문에 마음주의적 복지시스템이라는 것도 기본적으로 지금의 복지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미묘하게 다를 뿐이다. 즉 1등이 모든 걸 차지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일정수준의 평가만 통과하면 별 큰 보상은 없지만 평생 그일을 계속할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득권은 오히려 소득이 준다. 예를 들어 이런 플랜을 따른다면 한국의 대학교수들월급은 앞으로 더이상 오르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들지도 모른다. 그대신 최대한 연구인력을 늘리고 그들에게 아무런 압력도 가하지 않는것이다. 즉 그저 먹고살수 있을 정도지만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면 연구를 하면서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사실 기존의 교수들은 강의 부담에서 거의 벗어날수 있으며 연구인력이 많아져서 연구환경이 좋아지고 무엇보다 그냥 하고 싶은 연구를 할수 있다. 1등에서 밀려나면 너무 끔찍하기 때문에 죽자사자 뛰면서 늙어가는 시스템에서 탈출할 수 있다. 

 

곁가지 이야기지만 그거 아는가. 미국의 사립대학교 교수월급의 세후 실수령액이 결코 한국 대학 교수월급보다 많지도 않다는거. 미국의 국민소득이 우리보다 훨씬 위라는 것을 생각해 보라. 실제로 회사로 가면 돈을 몇배로 많이 벌 수있지만 학계에 있다는 교수들이 미국에는 많다. 그들은 연구가 하고 싶어서 대학에 있는것이다. 

 

위에서 말한 시스템이 결국 우리가 보통 말하는 복지시스템과 비슷하다고 해서 내가 말한 차이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실은 그 차이는 엄청나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게 하는 것이다. 그 점을 기억하면서 자원을 배분하고 지출하는 것과 그저 더많은 혜택과 경쟁은 더 좋은것이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큰 차이를 만든다. 

 

나는 전부터 부자나라가 되려면 국민들이 돈을 더 원하는게 아니라 돈을 덜 원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역설을 믿어왔다. 모두가 자기이익만을 원하면 모두가 더 많은 이익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다. 같이 협동했을때 생길 수 있는 이득이 사라지고  이것은 죄수의 딜레마라고 하는 표현으로 요즘 여기저기서 이야기되기도 한다. 자유주의도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를만든다. 복지국가를 단순히 자원의 재분배로만 생각하면 더 많이 가지려는 싸움만 나고 결국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지는 권력투쟁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결국 삶에서 중요한 것이 뭔가에 대한 고민, 가치판단에 있어서 시각을 넓히는 방식으로만 장벽을 넘을 수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