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19
드라마 료마전을 보면서 나는 개항기의 일본이 개항기의 조선과 닮아 있을 뿐만 아니라 21세기의 한국과도 닮아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얼마나 닮아 있을까? 이 글은 료마전을 보면서 쓴 감상의 연장선으로 생각되어야 한다. (http://blog.daum.net/irepublic/7887942)
얼마전에 본 한 티비 프로그램은 현대자동차가 세계의 굴지 자동차 메이커로 떠오르고 있지만 한국의 자동차 부품산업은 세계속에서 거의 존재감이 없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왜 그럴까?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현대로 통일되다 시피했지만 그 이전에도 그야말로 일본 막부시대 번주들이 땅에 금그어놓고 각자 왕처럼 굴던 때와 같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자동차 부품산업이란 기본적으로 중소기업이 자동차 부품을 만들어 삼성자동차에도 현대에도 기아에도 부품을 납입할 수 있어야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브랜드에만 독점 납품하는 경우는 그 기업의 무리한 요구가 있어도 그걸 뿌리칠 수가 없다. 그런데 한국이 그랬던 것이다. 부품회사가 표준화된 부품을 만들어 파는게 아니라 특정 대기업에 매여서 거기에만 납품을 한다. 이것은 정확히 번을 벗어나기만 하면 탈번이라고 해서 목숨까지 위험한 중죄로 치는 막부시대를 닮아있지 않은가?
이것이 자동차만 그런가. 내가 알기로는 소프트웨어 산업도 이런 것으로 알고 있다. 대기업들이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면 어떻게 할까. 중소기업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쓸까. 그래서 어느 기업이 삼성과도 거래하고 포스코와도 거래하고 현대하고도 거래할까? 한국에서는 그냥 소프트웨어 회사를 각자의 대기업이 만든다. 그 기업의 첫번째 임무는 물론 내부거래나 마찬가지인 모기업의 소프트웨어 문제의 해결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경쟁이 의미가 없어진다. 안그래도 내수시장이 작다는 한국에서 각자 금그어놓고 시장을 갈라가지면 경쟁이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 이 회사들이 군더더기가 될수 있다. 내가 집이 필요하다고 건설회사를 만들어 집짓고 나면 건설회사는 이제 뭘하겠는가. 이제 모기업에서 주는 일거리가 없으니 밖으로 나가야 할판인데 그런 기업이 한둘이 아니니 이제 과당경쟁상황이 되는 것이다. 국내에 일거리가 부족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본 막부시대 하층민들의 삶이 끔찍했듯이 이런 현실이 소비자에게 악몽이라는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자동차 부품이 아주 비싸서 불평이 많다. 왜 안그렇겠는가. 순정부품이 아니면 어디 살 곳도 없는데. 외국에서는 순정부품이라는 말자체가 없다고 한다. 부품이 표준화되어 어느 회사차를 샀다고 해서 당연히 그 회사 부품만 써야 한다는 생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료마전을 보고 쓴 소감에서 개항기의 일본에 대해 나는 이렇게 말했다. 번으로 나뉘어 일본이라는 개념이 희박하고 일본이라는 정체성이 희박했던 일본이 살아남는 길은 쇄국을 주장하는 양이도 개항을 주장하는 개국도 아닌 자기 정체성강화로 일본사회를 탄생시키는 것이었다고. 어떤 의미로는 개항이전에 일본사회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본이 아닌 번이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업들은 한국에 벽을 쳐놓고 저희들끼리 번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여기가 아니면 저기라고 모두 줄을 세운다. 한국이라는 정체성은 허울좋은 것이고 실은 각 대기업만을 중심으로한 집단들이 나라를 갈라서 세력싸움을 벌인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 한국의 자동차 부품산업, 한국의 서비스산업이란 이런 상황에서 좀 과장했을때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이란게 없으니까. 막부시대에 번의 단순합이 일본이 되지 못하듯이 대기업에 상관없이 존재하는 하나의 시장, 하나의 집단이 존재하지 않을때 거기에는 사실상 한국이 없고 대기업의 총합이 있을뿐이다. 그들은 자기 기업에서 일하던 연구인력이 퇴사를 했을때 이직도 금지하는 법까지 만들었다고 들었다. 그게 한국의 현실이다.
막부시대와 현대 한국의 유사점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물론 여기에 한국의 기업들보다 더더욱 큰 외국기업이 나타나면 이야기가 다르다. 허울좋은 한국이 있지만 거기에 진정한 한국사회라는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외국기업앞에서 쇄국이냐 개국이냐를 놓고 우왕좌왕하다가 망할뿐이다. 칸칸이 나눠서 지배하는 구조가 있으면 외국기업에게 각개 격파당할 뿐일 것이다. 그들이 점점 더 많은 영향력과 소통을 하게 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며 대책없는 개국이 한국사회를 초토화시킬것이라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아마 몇몇 대기업에 종사하는 사람, 거기서 나오는 이야기에 세뇌된 사람들은 오히려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더욱 우리 기업에 충성해서 우리 기업이 한국 사회를 지키게 해야 한다고. 간단하게 말해 삼성이 한국을 완전정복해서 모든 가능한 자원을 모두 차지하게 되면 한국이 지켜질수 있다는 식, 삼성이 무너지면 한국은 식민화된다는 식의 발상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일본개항기의 조선개항기의 실패한 지식인들의 사고나 마찬가지다. 막부체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사람들, 동학운동같은 움직임의 의미를 보지 못하고 양반 사회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사람들이 위험한 시대이니 우리를 중심으로 더욱 뭉쳐라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실은 그 시스템이 일본이나 조선이라는 사회의 실체를 흐리게 하고 그 바탕을 갉아먹고 있는데 말이다.
답은 한국사회의 근본역량을 키우는 것이며 실질적으로 신분세사회, 막부시대나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묶어놓는 현실을 혁파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만큼 이런 저런 명분으로 사람들을 얽어매는 권위주의사회가 없다. 선후배 따지고, 나이 따지고, 깃수따지고, 사제지간따지고, 따지고 따지고 따져서 사람들은 자기자리에서 꼼짝달싹하지 못하며 그걸 무시하는 사람들은 마치 막부시대의 탈번하는 무사처럼 중죄로 다스린다.
한국에 아이폰을 도입한 KT를 삼성이 아주 괘씸하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가? 북한의 김정은이 정권세습을 하는 것은 이상하지만 삼성의 이재용이 삼성을 승계하는 것은 당연한가? 한국바깥에서는 그렇지 않다. 마이크로 소프트를 빌게이츠 아들에게 세습시킨다던가 소니나 도요타를 현재 회장 아들에게 세습시킨다는 발상은 농담거리도 못된다.
이런 의미에서 말하면 한국에는 한국이 없다. 우파든 좌파든 지식인들 사회에서 조차도 그렇다. 우파는 친일의 역사가 싫어서 역사성을 탈피하려고 광분하는 편이고 좌파는 섣부른 객관성논리에만 몰입해서 한국 사회의 근본을 튼튼히 한다는 말만 나오면 그걸 민족주의로 폄하하는 일이 많은 것같다. 그리하여 우리는 프랑스나 독일이나 핀란드의 시스템만 도입하면 좋은 나라가 될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뿌리 없고 자기 정체성 없는 나라를 만들자고 주장하기는 대부분의 우파나 좌파 지식인이 매한가지다. 하지만 우리가 있고 나야 좋은 우리가 있다. 한국 사회라는게 실체가 없는데 거기서 정의가 뭐고, 올바른 분배가 뭔가.
물론 이 세상일에 100%란 없다. 한국 사회가 실체가 없다는 것은 과장이다. 무엇보다 광화문을 채운 촛불집회에서 우리는 한국 사회란 것의 실체를 본다. 그렇기에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촛불집회의 힘을 한국사회의 힘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만한 집단은 현재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 하는 사람중에는 없는 것같다. 그들은 개화파가 쇄국파 욕하고 쇄국파가 개화파 욕하듯 서로가 얼마나 말도 안되는 존재인지 얼마나 허접한 존재인지를 헐뜯느라 바쁘다.
나는 개인적으로 노무현과 김대중이 그래서 더욱 그립다. 한반도 평화정착에 신경쓰고 권위주의사회를 청산하려고 했던 그들은 분명 올바른 길을 걷고 있었다. 그들의 이런 저런 흠집을 잡는 사람들치고 좁쌀만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느낌이다. 신자유주의니 파병이니 FTA니 뭐니 떠들지만 이 세상에는 그런 논의를 넘어서는 논의도 있다. 노무현과 김대중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더욱 긴 역사적 평가가 필요한 것이겠지만 막부시대의 종말이라는, 진정한 한국사회의 탄생이라는 과업을 그들이 완성하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한국사회는 그런 과업이 완수되기까지는 말도안되는 일이 계속 벌어질 것이며 외세가 한번 나라를 흔들 때마다, 내부적 정쟁이 나라를 불바다로 만들 때마다 무수한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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