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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키워드 여행

한국에서, 사바에서 돌아오다.

by 격암(강국진) 2011. 8. 3.

한국에 가서 우리 부부의 양쪽 가족을 만나는 가족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불교에서는 괴로움이 많은 세상을 사바라고 부르는데 이번에 돌아올때 드는 생각이 그것이더군요. 이제 사바세계를 떠나는구나. 그렇다고 여행이 나빴다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즐겁게 먹고 마시고 여러 친인척들과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재미있는 것도 많았고 아이들도 즐거워서 막내는 왜 우리는 한국에 안사냐고 울음을 터뜨릴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특별히 사람 많이 만나지 않고 단조로운 일상을 유지하는 일본의 내 생활이란 역시 산에서 사는 사람의 일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아내는 가끔 혹시 내가 언젠가 산으로 가서 출가하려고 하냐는 근거없는 반농담을 하는데요. 그럴리가 있냐고 말하지만 실은 이미 산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가족은 좋은 것이고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가족은 매년 한국으로 돌아가서 양가의 친척들을 만납니다. 특히 양가 부모님을 만나는 것이 여행의 목적입니다. 이런 방문은 물론 우리가족에게도 매우 큰 즐거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 댓가가 없는 공짜 여행은 아닙니다. 벌써 12년정도를 매년 한번이상 가족동반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에 살던, 미국에 살던, 일본에 살던 말입니다. 그 여행은 때로는 우리 가족의 몇달 생활비에 버금갈때도 있습니다. 사실 비용이나 시간으로 말하면 한국에 사는 가족이 매년 가족동반 해외여행을 한다는 것이니 우리 가족이 무슨 재벌도 아니고 그게 쉬울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가족을 만나고 그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것이 소중한 것같습니다. 때로는 그대신 베니스나 라스베가스나 파리 여행을 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도 말입니다. 


이렇게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족관계지만 사실 한국에 가면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이 관습화 되어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지금도 나쁘지는 않고 특별히 저혼자 대안이 만들어 지는 것도 아니라서 크게 저항도 하지는 않습니다만 사실 친인척모임이란게 모이면 주로 먹고 마십니다. 덕분에 1주일정도 여행하면 매일 매일이 과식과 과음의 연속이고 돌아올때는 몇킬로그램이나 몸무게가 늘어나게 됩니다. 요번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한동안 못먹어본 음식들, 대접해 주겠다면서 맛있는 곳으로 데려가 주시는 친인척들의 정성과 마음은 고맙습니다만 이러다보니 그 떠들썩한 1주일을 지내면 절간을 탈출해서 방탕하게 쾌락을 즐기다가 속세를 서둘러 떠나는 파계승같은 느낌이 드는 면도 있습니다. 그렇게 한달만 살면 병원에 갈것같더군요. 


물론 한국에 오랜만에 가기 때문에 그런것도 있습니다. 아니 그게 압도적으로 클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인상은 많은 사람들이 제 일상보다는 훨씬 많이 먹고 마시면서 서로 서로 많이 부대끼면서 산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뭐랄까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그렇게 하고 있다는 느낌인데 실은 그런 일상생활의 패턴이 알게 모르게 굉장한 스트레스를 주는 생활이 될것같아 보입니다. 한국에 40대 돌연사가 많다는 이야기가 나온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만 그런 생활이 스트레스가 아닐런지. 


아내는 사람들과 떠들썩하게 지내지 않고 둘만 보내는 일이 많은 우리 생활을 단조롭다고 불평할때가 많습니다. 확실히 그런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산다면 사람들을 만나지 않기 위해서 엄청나게 노력하면서 살아야 할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가지 행사가 있거나 하면 외국에 있는 것처럼 절대 갈수 없는 이유가 있기는 힘듭니다. 일이 미칠정도로 바뻐서 한가로운 내 개인의 시간따위는 전혀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나는 한가롭게 아내와 찻집에서 수다를 떨거나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산책을 하고 싶으니 돌잔치나 결혼식이나 제사 모임이나 동창회나 직장모임에는 못가겠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나 정말 바쁘거든이라고 말하면 거짓말이 됩니다. 


그러나 할수 있다고 해서, 이 모임 저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하면 제가 가진 에너지는 금방 소진되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침착히 생각해 볼 시간도 가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당연히 글을 써보는 사치도 누리지 못할 것이며, 부부만의 시간을 가지는 사치가 가장 먼저 희생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제는 그런 시간들이 사소한 것, 공적인 일들에 비하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적인 것으로만 여겨지는데에 있습니다. 실은 삶의 즐거움의 대부분은 거기서 나오는 것같은데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 세상의 많은 관습이란 다같이 행복하게 살기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그 관습이 사람들을 억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본래 저희 가족모임은 그냥 집에서 하는 것이었지만 제가 주장을 해서 매년 풀장이 딸린 펜션으로 가족모임을 갑니다. 그래야 아이들을 풀장으로 보내고 어른들끼리 제정신으로 서로 얼굴이라도 볼수 있는 분위기가 되기 때문이고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는 즐거움과 친근한 가족을 보는 것을 한꺼번에 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안면도를 다녀왔습니다. 이천의 설봉산 산길을 걷고 도락이라는 한정식집에 간적도 있었습니다. 부산 처가에 가서는 근사한 광안리 바닷가를 방문할 기회도 있었습니다. 마침 처제집의 돌잔치도 끼고 해서 이러저런 호사스러운 식사들을 많이 즐길수 있었고 요즘 나가수로 유명한 김범수 콘서트도 아내와 두처제 그리고 장모님을 모시고 다녀왔습니다. 부산 근교에 있는 여의가라는 찻집을 가보기도 했습니다. 생각하고 느끼고 즐길일이 아주 많은 여행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여름 여행을 하시고 나면 항상 한국에 좋은데가 참 많더라고 감탄하십니다. 저로서는 실망이 되기도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만 전반적으로는 어머니의 생각에 동조하는 편입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모아 한국문화 탐방을 한 소감은 기회가 되면 또 적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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