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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본 미국 이스라엘

일본에 사는 사람의 생각 : 한일 역사인식의 기본

by 격암(강국진) 2012. 10. 9.

12.10.9

요즘 일본이 중국과 한국 모두와 동시에 영토분쟁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자연히 일본은 과거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일본 쪽에서는 이미 충분히 여러번 사과했다 같은 말이 나오는 모양입니다. 개인적으로 일본사람을 만나보면 소수의 존경할 만한 분들이 있고 소수의 거슬리는 사람이 있으며 대다수 그저 역사에 대해 무지하고 대중매체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뉴라이트 계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니까요.

 

역사논쟁에는 수많은 주제가 있을수 있으며 과거에 대해 일본천황이 사과를 하는가 안하는가 같은 문제도 한가지 쟁점중의 하나지만 본래 기본이 흐트러지면 말단에 해당하는 것을 제 아무리 잘해도 소용이 없기 마련입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지만 한일 역사를 논하는데 있어서 두가지 기본적인 입장이 꼭 기억되어야 하지 않나, 거기에 항상 주목해야 하지 않나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소수의 일본인이 이 블로그를 보는 일도 있었는데 일본인이시라면 그 분들도 이런 점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첫째로 일본정부나 일본천황이 사과를 하는가 안하는가가 핵심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사회가 과거의 역사에 대해 한국사람이나 중국사람들이 공감할수 있는 인식을 가지는 것 (그래서 불행한 과거가 반복되어질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일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공공연히 과거의 전쟁이나 식민지 운영은 아시아를 위한 것이었다는둥, 일본이 조선을 삼키지 않았으면 중국이나 러시아가 어차피 그랬을거라는 둥,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아서 조선이 발전한 거라는 식의 생각을 하고 있다면 백번이고 천번이고 일본천황이 사과를 한다고 해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사과했지 않느냐라는 식의 일본의 반문이 의미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일본사회를 대표하는 사람들의 사과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며 우리는 일본 사회가 과거의 비극을 반복하는 일이 없도록 과거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가질 것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독도문제만 해도 그 독도가 어떻게 일본의 땅이라는 주장을 할수 있게 되었는가 하는과정을 본다면 일본이 저렇게 나올 수 없다는 점이 한국인을 분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은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일본의 주장을 일본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역사인식과 같은 것으로 느끼는 것이며 그것은 다이오유다이를 둘러싸고 일어난 분쟁에 있어서 중국인들이 느끼는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일본의 일부 지식인들도 인정하고 일본사회에 각성을 촉구했다고 들었습니다. 마음에도 없고 실질적으로 사회적 분위기의변화도 없는 머리숙이기는 백번했다고 해도 의미가 없는 것이죠. 

 

두번째로는 우리는 역사를 논할 때 사실 과학을 하고 있는게 아니며 궁극적으로는 각자가 역사에 대해 믿는 믿음을 비교하는 것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과 증거도 물론 중요합니다만 그러나 역사가 물리학이나 수학처럼 증거에 의존해서 증명되는 것으로 생각하면 역사논쟁의 본질이 훼손되고 결국 쓸데없는 말장난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역사 논증은 결국 궁극으로 가면 믿음의 문제가 핵심입니다. 내가 나를 어떻게 믿는가, 너는 나를 어떻게 믿는가가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여기 폭행 피해사건이 있다고 해봅시다. 어떤 사람이 폭행을 당해서 한달간 병원신세를 졌습니다. 그럼 피해보상문제가 나올텐데 거기에서도 중요한 문제중의 하나가 그 폭행사건을 통해 그 피해자가 뭘 잃어버렸는가 하는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폭행범이 피해자를 두고 말하길 내가 폭행해서 병원에 입원을 안시켰다면 이 노숙자는 길에서 얼어죽었을 것이다. 사실 나는 폭행사건을 통해 이 사람에게 이득을 준 것이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극단으로 가면 피해자가 나는 그때 내 사업이나 연구에 있어서 연애에 있어서 결정적인 국면에 들어가고 있었고 이 폭행사건만 아니었다면 세계최고의 부자나 노벨상을 받을 연구를 할 수도 있었는데, 정말 평생 행복하게 함께 살아갈 여자와 결혼할 수도 있었는데 그게 날아갔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 피해가 천문학적이라는 것이죠. 

 

한일간의 역사논쟁의 본질은 결국 한민족의 자립능력은 어느 정도나 되었는가, 한민족이 일본의 침략이 없었다고 할 때 더 번영했을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가해자인 일본의 국민들중 적어도 일부는 과거에 그랬듯이 지금도 한민족의 역사에 대해 가능성을 낮게 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결국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더라면 러시아나 중국에 흡수되고 망했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역사를 말하면서 통계, 확률, 법칙을 논하는 일은 늘상 일어나는 일이지만 공평히 말해서 역사는 모르는 것입니다. 20년전에 삼성이 소니보다 커질수 있다라고 누가 말한다면 사람들은 비웃었을 것입니다. 해방이후의 한국인들을 보면서 한국이 오늘만큼 성장할수 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비웃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보면 일본이 오히려 후진국처럼 보이는 일도 많습니다. 과거에 지금은 무식한 사람들만 많은 한국이지만 언젠가는 정치적으로 한국이 일본보다 앞설 수 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비웃었을 것입니다. 한국이라는 사회의 잠재가능성을 믿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많은 한국인들도 안 믿었을 것입니다. 이건 믿음의 문제일 수 밖에 없습니다. 역사적 사실도 봐야하지만 세부사항으로 끝없이 들어가서 증명으로 나아가려고 하는데에 빠져서는 본질을 놓칠수도 있습니다. 

 

과거에 대한 피해보상 문제따위를 넘어서 어쩌면 더 중요한 측면도 있습니다. 한일역사논쟁이란 결국 한국과 일본의 공존을 위한 것이며 과거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현재와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친구로 잘 지내자는 것이죠. 그런데 서로 친구하자면서 '야 우리 이제 사이좋게 지내자. 내가 다정하게 굴테니까 너는 내 가방이나 잘들고 다녀. 넌 원래 남의 가방이나 들고 다니는 놈이잖아.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들은 황당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즉 조선은 어차피 중국의 식민지였으며 내버려뒀어도 망했을거다 조선은 스스로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고 과학을 발전시키는 일같은 것은 하지 못했을거다 같은 조선에 대한 인식을 유지하면서 우리 친구로 지내자라고 말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지독한 모욕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것을 넘어 침략의 지속입니다. 지금 현재 침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우리도 무의식중에 다른 나라에 하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잘 기억해야 합니다. 다른 나라에 대해 정당한 존경심이 없이 그 나라에 접근하는 것은 그 나라에 대한 침략입니다. 한류열풍이 분다는 요즘 우리는 더더욱 이걸 기억해야 합니다. 아니면 우리도 다른 나라를 문화적으로 침략해서 그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한국과 일본의 공존이란 한국 사회의 구심력과 일본 사회의 구심력을 유지하면서 공존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의 구심력은 물론 상당부분 우리 정체성, 우리 역사를 보는 시각에서 나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누군가가 한국인 모두에게 한국인은 절대로 사회를 유지할수 있는 사람들이 못된다라는 것을 설득할수 있다면 한국사회는 그순간 와해될 것입니다. 한국인들이 한국을 믿지 않으니 모두 언제 도망갈까, 언제 이 나라를 빨리 팔아넘겨서 일본인이나 미국인이나 중국인이 될까만 고민하겠죠.  

 

과거의 침략에 대해 조선인 열등론을 가지고 접근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의 구심력을 와해시키는 침략행위입니다. 한중일의 평화로운 공존이란 그저 야 이제 우리 과거는 잊고 잘살아보자는 선언을 하는게 아니고 한중일 국민들이 모두 자기 사회의 구심력에 대해 걱정하지 않으면서 평화를 유지할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공통의 역사를 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사실 무리한 개방과 소통을 안하는게 서로를 위해 좋습니다. 분노와 침략의 역사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웃집과 친하게 지내기로 결정하면서 동시에 사실 너희 엄마는 너희 아빠에게 과분해. 너의 아빠는 이혼당하는게 당연해라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것을 평화로운 공존, 이웃과의 친목도모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 유럽연합의 중심은 히틀러가 있었던 독일입니다. 독일인들이 과거 세계대전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하는가는 널리 알려져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에 평화가 있고 공존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독일이라고 해서 말을 하기로 하자면 과거의 역사에 대해 왜 말할 것이 하나도 없겠습니까. 히틀러가 하는 말이라고 해서 왜 진실이 1%도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역사를 쓰지 않습니다. 그게 상대에 대한 모욕이며 공존을 깨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본에 사는 재일교포나 한국인들은 일본에서의 본격적 한류의 시발점이라고 하는 배용준이전과 이후 한국인을 바라보는 일본인의 눈이 전혀 다르다고 말합니다. 한국인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가 바뀌자 한일간의 공존이라는 것이 가능해 질 수 있는 기본이 생겼습니다. 결국 두 공존하는 존재사이의 거리란 서로가 서로의 존재에 대해 가지는 공경심의 정도만큼 가까워 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가까운 거리가 한 쪽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원인이 될것이고 결국 폭력이 없어도 침략이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뉴라이트 계열의 시각은 자기비하고 결국 한일 공존을 어렵게 만들것입니다. 본래 공존은 두 동등한 존재가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중일은 물론 지금도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가까운 거리로 공존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그것에 꼭 필요한 상호 존경심이 충분히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점점 더 사람과 정보가 국경을 쉽게 넘는 시대가 되자 총성없는 전쟁을 하는 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중국의 소위 동북공정도 점점 힘을 더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뉴욕대에서 본 한 중국인 교수는 미국인에게 한국도 중국이라고 말하고 다닌다고 하더군요. 

 

결국 핵심은 대중의 인식이고 서로간에 대한 믿음과 존경입니다. 그게 안되면 무슨 법칙이건 증거건 다 소용없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총성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과 함께 이 점을 기억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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