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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주 생활

일상 만들기

by 격암(강국진) 2015. 3. 23.

15.3.23

외국에서 돌아오고 정착에 시간을 들이는 동안은 여러가지 일로 바쁘며 또 모든 것이 새롭기 마련이다. 따라서 뭘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일들을 진행하기는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너무 빨리 변하고 분명 다음달에는 이런 일을 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건 마치 홍수처럼 나를 덮쳐서는 나를 이리저리 밀어대고 이따금 기진맥진하게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마치 홍수가 끝나고 물줄기가 약해지듯이 변해간다. 그래서 작고 큰 것들이 고정되고 나는 이런 저런 것들을 앞으로도 오랜동안 반복하게 될 것들의 후보로 생각하면서 시도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사나 생활의 터전을 옮기는 큰 의미중의 하나는 이렇게 일상을 파괴하고 재구축하면서 좀 더 괜찮은 일상을 다시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아뭏튼 이제 그런 일상의 재구축을 위한 시도를 조금씩 늘려가야 한다. 

 

예를 들어 가까운 도서관에 회원증을 만들고 1주일이나 2주일에 한번은 책을 반납하고 새로운 책을 빌려오는 것은 나의 일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또 저녁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것도 적어도 당분간은 나의 일상의 일부분이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나 둘씩 일상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언제 글을 쓸 것인가라던가 언제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할 것인가 같은 것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두지 못한 상태다. 아직도 집안에는 내가 고민해야 할 자질구레한 것들이 많다. 

 

하지만 그냥 바쁘기만 해서는 바쁜 가운데 게을러지게 된다. 바빠서 책을 읽을 시간이 별로 없을 것같지만 그래도 굳이 도서관을 들려서 책을 구해 온것은 그런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다. 바쁜 것같지만 사실 가져오면 어찌저찌 들여다보게 되고 독서를 위한 시간을 내게 된다. 나는 앞으로도 공부할 시간, 연구하고 글쓰고 수학공부를 할 시간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심심할 시간도 만들어야 한다. 그 정도는 되어야 일상이 안정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오븐을 쓰는 일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오븐을 가지게 되면 나는 통밀빵을 집에서 구워보고 싶었던 것이다. 통밀빵은 기본적으로 밀가루에 이스트를 넣고 반죽하여 굽는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간단한 빵이다. 간단하지만 끼니로 먹기에는 보통 파는 식빵보다 훌룡하다. 든든하고 속에 부담이 안된달까. 나는 간단하면서도 그 풍미가 나와 우리가족의 입맛에 맞는 통밀빵을 구워보고 싶었는데 시도해보니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간단했다. 인터넷에서 구한 레시피에 따라 대충 만들어 구워도 맛있는 빵이 만들어 진다. 앞으로 좀 더 만들어 보면 더 좋은 빵을 만들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의 수준에서도 그리 아쉬울 것은 없는 빵이다. 

 

 

 

 

 

오늘은 빵을 굽기 시작한 것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본격적으로 빵파티를 벌렸다. 주말이라 집에 있는 아이들과 함께 아침부터 통밀빵을 굽고 피자를 만들어 점심을 먹었다. 집에서 만든 빵과 피자로 탁자를 덮고 올리브 기름 그릇을 놓고 커피를 만들어 상을 차리니 내가 만들었지만 왠지 고급 이탈리안 음식점에 간듯한 느낌이 났다. 아이들이 좋아하고 아내도 기뻐해서 빵굽기를 해보겠다는 생각은 좋은 생각이었던 것같다. 나는 가능하다면 빵을 굽는 일을 내 일상의 일부분으로 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안정될런지는 모르겠다. 말하자면 월 수 금에는 빵을 굽는 다던가 토요일에는 빵을 굽는다던가 하는 식의 일상이 만들어 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또 어떤 빵을 굽게 될 것인가 하는 것도 앞으로 조금은 바뀔수 있지 않을까. 나는 대학시절 기타코드 몇개를 배운 것을 평생 고맙게 생각하며 산다. 덕분에 가끔 반주를 하면서 노래를 불러 볼 수 있다. 빵을 굽는 것이 그런 재산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빵굽기는 기다림을 많이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나는 빵을 발효시키는 동안 북쪽창으로 난 독서대로 가서 책을 읽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요즘은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읽고 있는데 솔직히 그다지 재미에 빠져서 정신없게 읽게 되지는 않는다. 밋밋한 책이다. 내가 독일이며 이탈리아의 역사와 예술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이 클 것이다. 그나마 내가 다녀온 로마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 조금 더 괜찮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혀지는 책은 아닌 것같다. 그저 빵굽는 시간에 읽는 책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책은 길고 두권이나 된다. 앞으로는 뭔가 달라지기를 기다리며 나는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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