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생활도 이제 한달이다. 하지만 나는 전주한옥마을에 가지 않았다. 그렇기는 커녕 신시가지에서 삼천이나 전주천도 건너가기 싫어했다. 그 이유는 다리를 건너면 삶이 빨라지고 번잡해지기 때문이다. 갑자기 인구밀도가 급증하는 것이 느껴지면서 차가 느려진다. 아이들 옷때문에 시장에 갔다가 기겁을 하고 돌아온 이후 나는 차가 막히는 곳에는 안가기로 했다. 엉뚱한 생각이지만 전주에 슬로한 곳이 있다면 오히려 우리집 주변이 아닌가 싶다.
오늘은 모처럼 심하다싶을 정도로 따뜻한 날이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한옥마을에 갔다. 한옥마을이 슬로시티가 아니라 삶이 바쁜 도시가 되었다는 비판을 최종적 결론으로 하고 한옥마을을 찾지 않는다는 것도 공평한 일은 아니다. 게다가 오늘은 평일이니 관광지라지만 얼마나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전주한옥마을은 평일 점심에도 사람이 넘쳤다.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울 수 있을 정도니까 지옥같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지만 이미 사람도 차도 넘쳐나게 많았다. 하지만 모처럼 북적이는 곳에 가서인지 그정도면 방문은 즐거웠다. 그 활력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날씨가 좋아서 꽃이 피고 사람이 여기 저기 시끌벅적하니까 좋은 것도 있었다.
아침에 재미있는 삶에 대해 써서 그랬겠지만 나는 전주 한옥마을에서 재미있는 생각들의 격투기를 보고 온 느낌이다. 그것을 격투기로까지 표현한 이유는 사실 한옥마을은 더이상 슬로 시티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 보다는 여러가지 사람들이 여러가지의 것을 늘어놓고서 경쟁하는 컨테스트 장소같은 느낌이다. 경쟁의 종목은 뭐든지 재미있고 좋으면 그만이라는 무제한 이종격투기 같은 것도 있고 나는 이것이 바로 한국적인 삶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하는 한국적 삶의 핵심을 논하는 종목도 있다.
언젠가 한옥을 구경하면서 나는 한옥의 핵심은 기와를 쓴다던가 목재를 쓴다던가 하는게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오히려 그 핵심은 공간의 구분같은데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런 내 생각대로라면 한옥식으로 공간을 구분하는 콘크리트 집이 전통 한옥집이고 기와집에 나무 마루를 했지만 침대에 소파에 장롱등 서구 가구를 들여놓고 서구식으로 쓰는 집은 서양집이다. 결론은 과거의 것에서 지금의 우리에게 뭐가 쓸만한 아이디어인가, 뭐가 계승할만한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 있다. 사용되지 못하는 것은 진짜 문화가 아니다.
뭐가 한국적 삶의 핵심인가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어차피 과거의 한옥과 똑같은 것을 만들 수도 없고 만들어도 소용이 없다. 왜냐면 그 한옥이 존재하는 마을도 그 한옥에 사는 사람도 과거의 마을이 아니고 과거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뭐가 달라도 달라진다. 그런데 뭐를 유지하고 뭐를 변화시킬까가 문제다. 껍데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적당히 흉내내는 것이 진짜라고 생각하는 것이 항상 옳기만 할 수는 없다.
전주 한옥마을에 가면 사람들의 여러가지 해석이 전시장처럼 늘어서 있다. 나에게 참 좋은 생각이라고 공감이 갔던 것중의 하나는 한복 대여점들이었다. 한복이란 입어서 아름다운 옷이다. 당연한 말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우리는 이제 한복을 거의 안입는다. 그런데 한옥마을에서는 한복을 대여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거리에서 심심치 않게 한복을 입고 다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다. 염색한 머리에 운동화를 신고 서양식 화장을 했더라도 한복을 입은 사람들은 멋져 보였다. 조금더 인기를 누려서 한옥마을에 가면 온통 한복입은 사람만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주 한옥마을이라는 공간에 가면 한복을 입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게임의 법칙이 설수 있다면 그건 정말 멋진 일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번잡하게 가게가 늘어서 있는 곳도 나쁘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좁은 골목을 따라 나있는 가게들과 집이 더 좋았다. 애초에 차가 다닐만한 길이 아니니까 좁은 대로 저절로 차없는 거리가 되는 느낌이다. 구불구불한 골목은 구불구불하기에 더 좋다. 상상력을 자극해 준다. 천천히 사는 것의 가치를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뒷골목에서 본 꽃나무가 있는 한옥에서는 그 바빠보이는 한옥마을에서도 다시 여유와 고요함을 약간은 느낄 수가 있었다. 구부러진 것의 미덕이랄까. 여유가 없는 현대인은 너무 직선이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점심으로는 베테랑이라는 집을 들러 6천원짜리 칼국수를 먹었다. 메뉴라고는 냉면접시에 담겨 나오는 쫄면과 칼국수가 전부인 집이다. 반찬 그릇은 플라스틱이고 칼국수 그릇은 스텐그릇이다. 물은 탁자위 주전자에서 직접 따라 마시는 가게다. 초라하지만 나는 그래서 좋았다.
들깨가 잔뜩 들어있는 따뜻한 국물이 일품이었던 칼국수는 우리동네에서 4천원에 한그릇인 짜장면에 비하면 싸다고 할 수 없는 음식이었지만 나름대로 과거를 잊지 않고 존재하는 맛을 보여 주고 있었다. 베테랑 칼국수의 국물맛 같은 것이 한옥마을을 지키는 수비수의 역할을 하는게 아닐까. 언젠가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한옥마을이 우리 것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버리면 이런 칼국수도 한옥마을에서 먹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폼내지 않고 실속을 지키고 있는 것같고 인기도 아주 높아 보였다.
한지 사진과 책갈피를 만들어 파는 가게도 인상적이었다. 디지털 사진을 한지에 인쇄하면 아주 멋진 액자를 만들 수 있다. 한지 책갈피도 아주 고급스럽다.
한옥마을에 처음 가본 것은 아니지만 새삼 사람들이 뭘 걱정하는지 잘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희망도 봤다. 나는 한국 사람들의 창의력과 열정을 느끼기도 했다. 전주 한옥마을은 문화적 용광로 같다. 물론 용광로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말수도 있지만 우리가 조금만 더 창의적이고 열린 마음을 가진다면 그리고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과거의 것에서 오늘날 귀중하게 쓰일 것을 녹여내어 그 핵심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새로운 답을 찾는데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짮고 간단한 전주 한옥마을 방문동안 언제나 그렇지만 사람이 희망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 뭐가 진짜로 가치있는가를 느끼고 실천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에게 희망이 있을 때 그들은 결국 재미있는 것, 가치있는 것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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