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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주 생활

곰소항 나들이

by 격암(강국진) 2015. 3. 23.

몇년전인가 부모님과 함께 변산반도와 곰소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때 사가지고온 곰소소금이 맘에 들었던 탓일까 아내는 곰소에 소금을 사러가자고 하곤 했다. 소금이 맛이 없어서 음식이 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주에서 곰소항까지는 차로 1시간 정도밖에는 걸리지 않는다. 거리는 60킬로가 조금 넘지만 그 중간 국도가 고속도로나 다름없는 길이기 때문이고 전혀 차가 막히지 않기 때문이다. 차가 막히지 않는 거리를 드라이브 하는 것은 즐겁기도 하다. 이것이 지방에 사는 즐거움이다. 여기에 중독이 되면 차막히는 대도시에 살기는 참 힘들어 진다. 10킬로 가려면 한시간 이상 걸리는 그런 곳 말이다. 





집밖을 나서보니 공기에 아직 차가운 기운이 남았다. 하지만 차안에 있으니 멋진 봄의 햇살이 산과 들에 비춰지는 모습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여기저기 초록빛을 볼수 있어 좋았다. 최근까지는 아직 꽃이 피지 않는 계절이라 초록을 드문 드문 볼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차가 해안에 가까워 질수록 초록이 짙어지더니 완연한 봄의 산과 들이 보였다. 차가 김제를 거쳐 곰소항을 향해 달려 가면서 초록빛 산이 보이고 짚단을 동그랗게 말아놓은 것들이 늘어서 있는 들판이 보였다. 





곰소는 소금으로 유명하고 그 소금으로 담근 젓갈로 유명하다. 젓갈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지난번 변산반도 방문때 식당에서 먹은 젓갈맛이 좋아서 이것저것 젓갈을 사가지고 왔었을 정도다. 오징어젓갈한 접시와 따뜻한 밥한그릇이 있으면 그것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네비에 곰소항을 치고 달리니 우리가 도달한 목적지는 현대식 회센터 건물이 보이고 말끔한 도로가 있는 장소였다. 몇년전에 다녀간 곰소항하고는 전혀 다르다. 소금과 젓갈을 사는 것 이외에는 점심을 먹는 것 정도밖에 일정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바닷가를 따라 잠시 산책을 했다. 바닷가를 따라 걸으니 뻘이 보이고 새가 보이고 등대가 보이고 먼 섬이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한가한 봄날의 바다다. 수없이 늘어선 회집이며 젓갈집의 주인들은 이런말을 들으면 섭섭하겠고 북적이는 시장통도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역시 한가한 바닷가가 조금은 더 매력이 있다. 





거리는 전과는 달리 깔끔하게 많이 정리되었다는 느낌이다. 요즘은 전국 어디나 10여년전에 비하면 훨씬 정돈된 곳이 많은데 그게 다 지자체가 하는 일일 것이다. 지방자치를 하니까 그 지역을 매력있게 만들고 관광산업을 부흥시키고 브랜드를 만들려고 하는 일을 한다. 그러다보면 여기저기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축제며 거리가 생겨나는 것이다. 곰소항에도 여전히 여기저기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여러가지 건물들이 계속 지어지고 있는 것이다. 곰소는 지금도 변화중이다. 


계속 길을 걸으니 점점 눈에 익숙한 가게들이 보이다가 드디어 지난번에 젓갈을 샀었던 가게도 보였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는 변산쪽에서 곰소항으로 오면서 먼저 만나게 되어 있는 가게만 봤었던 것같다. 그런데 이곳은 새로 생긴 지역보다 약간 흉해 보인다. 아마 경쟁때문에 그렇게 된 것같다. 





이번 여행길로 알게 된 것은 곰소에는 곰소소금만 파는 것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저질의 소금을 가져다 놓고 판다. 사람들은 소금을 사러 곰소까지 가고서도 곰소에서 사면 다 곰소소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이렇게 묻는다. '소금 한포대에 얼마인가요?' 그랬을 때 만오천원 하는 집이 있고 2만원 하는 집이 있으면 만오천원하는 집이 싸다고 소금을 사서 돌아가는 것이다. 관광객들의 태도가 이런 경우가 많으면 저질 소금을 가져다가 싸게만 팔면 제일 돈을 많이 벌 것이다. 


한 가게에 들어가 보니 조금 비싼 소금이 있길래 이건 뭐냐고 물었다. 이 소금은 간수를 다 빼서 바로 먹을 수 있는 좋은 소금이란다. 그렇다면 이 소금말고 다른 소금은 간수가 안빠지고 바로 먹을 수 없는 소금이냐고 물었더니 당황하면서 말을 흐린다. 그래서 소금포대들을 가만히 보니 곰소소금이라고 잘 써져 있는게 있고 곰소라는 말이 전혀 없는 포대들이 있다. 말하자면 곰소소금이라는 브랜드를 가지지 못한 소금인 셈이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그 가게는 산책을 하러 오는 중에 만난 건어물 가게골목에서 보던 물건들보다 다른 물건들도 모양이 좋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이런 가게는 관광객용 가게인 셈이다. 


우리는 발을 돌려서 아까본 가게로 돌아갔다. 주인 아저씨와 흥정을 하다보니 주인은 뜻밖에 전주에 산다고 한다. 곰소항까지 출퇴근을 한다는 것이다. 아저씨의 기분좋은 접대와 아내가 여기 물건은 확실히 마트 물건과는 다르다는 평가에 곰소에 온 기쁨이 다시 되살아 났다. 





건어물가게 골목입구에는 곰소어부식당이라는 곳이 있다. 아침일찍이라 손님이 없어서 인지 가게안을 들여다보니 주인아주머니가 얼른 들어오라고 한다. 우리는 칼국수와 백합죽을 먹었다. 진한 양념의 맛이 어느 것이나 배여있고 무엇보다 조개를 먹었다는 포만감이 느껴질 정도로 조개가 듬뿍 들은 음식들이 아주 좋았다. 전어구이 두마리도 상차림에 따라 나왔는데 맛이 좋았다. 곰소니까 그런지 오징어 젓갈도 준다. 오징어 젓갈의 맛도 역시 아주 좋았다. 곰소에 가도 아무곳에서나 젓갈을 사면 이맛이 나지 않는다. 


어디를 가든 여행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람이다. 우리는 사람을 피하려고 여행을 가고 사람을 만나려고 여행을 간다. 사람없는 해변을 걸으며 갈매기를 보는 기쁨은 피곤한 사람들로 부터 떠날 수 있는 기쁨인지 모른다. 그러나 또 여행길에서 만난 몇사람의 친절한 상인이며 지역민을 만나면 그 지역이 기억에 남는 좋은 곳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건어물가게의 주인이나 곰소어부식당의 주인들은 우리에게 좋은 선물을 한 셈이다. 그들 덕분에 불쾌한 가게의 기억에도 불구하고 곰소는 친절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 좋은 사람들이 사는 고장이 살기 좋은 고장이다. 


전주에서 달리니 가까워서 좋았고 가보니 가볼만한 좋은 곳이라서 좋았다. 우리는 곰소에 얼마지나지 않아 다시 오기로 결정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번에는 복어탕을 먹어보겠다는 약속을 지켜볼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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