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자전거를 탔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건강을 위해서 가끔 타시라고 자전거를 사드린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 자전거를 잘 못타셨다. 암수술이후에는 몸의 평형감각이 많이 떨어져서 자전거를 타시면 자꾸 넘어지셨다. 한때는 누구보다 건강하고 수영도 잘하셨다던 아버지는 본인이 이제는 자전거도 탈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셨을 뿐이다. 자전거는 몇번 넘어져서 찌그러졌고 아버지의 본격적인 투병기간동안 아무도 타지 않는 가운데 먼지만 쌓였다.
지난주에는 그 자전거를 전주로 가져왔다. 바퀴에 바람을 넣으니 특별한 문제는 없다. 이 자전거는 삼천리 자전거 선데이 라는 모델인데 소위 아줌마 자전거라고 불리는 것이다. 즉 앞에 바구니가 달렸고 프레임이 낮아서 올라타기는 쉽지만 날렵하게 생기지는 않았다. 일본에서 살던 우리는 이런 자전거에 익숙하다. 일본에서는 가장 대중적이고 흔한 자전거다.
자전거 한대가 생기고 나니 아내와 함께 삼천변을 달리고 싶어서 자전거를 한대 더 사기로 했다. 한국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아직은 소수다. 그래서 롯데마트같이 큰 쇼핑몰이 집근처에 있는데 그 마트에 자전거 판매점이 없다. 일본에서는 그런 곳에는 반드시랄만큼 큰 자전거 판매점이 있는데 말이다.
겨우 검색으로 가게를 찾아 자전거 구경을 하려고 간 우리 부부는 당황하고 말았다. 말하자면 미니밴같은 것을 사러갔는데 레이싱카만 있는 느낌이랄까. 여러가지 멋지게 생긴 자전거들이 가게를 채우고 있었지만 우리맘에는 그리 들지 않았다. 우리는 앞에서 말한 아줌마 자전거로 불리는 그런 자전거를 사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 자전거는 무엇보다 평균적으로 저렴하다. 둘째로 도시생활에 적합한 자전거다. 도시의 길은 비포장도로가 아니며 어차피 사람과 신호등이 있어서 자전거는 속력을 내기도 어렵고 내서도 안된다. 차도로 내려가서 자동차들 사이를 빠르게 달리는 사람들이 꼭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보통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속 60킬로미터밖에 달릴 수 없는 도로에서 서킷용 레이싱카가 달리는게 보통은 아니듯이 말이다. 우리는 모두 전문가가 아니고 전문가가 될 필요도 없다. 자전거 생겼다고 꼭 전국일주 여행이라도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자전거 가게를 채운 자전거는 대개 아주 날렵하게 생기거나 마운틴 바이크다. 비포장도로를 달릴 것도 아니며 속력을 낼 생각이 아니라면 그런 자전거들은 실상 불편한 자전거들이다. 일단 자전거를 탔을 때 취하는 자세가 나쁘다. 빠르게 달리거나 균형잡기 어려운 곳에서 타는 것을 전제로 하는 자전거니까 그렇다. 자동차로 말하자면 일반도로에 나온 레이싱카나 비포장도로 전용 자동차인 것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아줌마 자전거라고 부르는 자전거는 보통 투어링 자전거라고 부르는 자전거와 비슷하다. 무게가 있고 바퀴가 커서 빠르게 달리는 것은 아니라도 일단 속력이 나면 쉽게 일정한 속력으로 달린다. 튼튼하고 짐도 싣을 수 있다.
자전거의 비교는 개개인의 사정에 달린 것은 물론 특히나 가격에 많이 의존한다. 좋은 자전거는 비싸다. 그러니 싸면서도 잘타려면 자기의 상황에 맞춰야 한다. 갓난 아기를 가진 애 아빠가 티뷰론 같이 내부공간이 좁은 자동차를 사는 꼴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굳이 길게하는 것은 집앞의 공원을 걷거나 높이가 2백미터도 안되는 동네 앞산을 가면서도 고급 등산복으로 입고 밖으로 나서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이 자전거의 소비에서도 보이기 때문이다. 폼이 나니까 실질은 무시해 버린다. 그런데 등산이던 자전거타기건 이런 허세들이 생활화, 대중화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신시가지쪽에서 삼천을 건넜다. 오늘은 진북터널을 건너는 것이 목표다. 차로는 몇번 지나다녔지만 그 터널을 자전거를 타고 건너도 괜찮은가를 확인하고 싶었다. 전주는 삼천과 전주천 두개의 하천이 남북으로 도심을 지난다. 삼천은 전북대 부근에서 전주천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하천이다. 그리고 삼천과 전주천 사이에는 하천을 따라서 동산이 하나서 있다. 그 동산이 전주의 동서를 구분시키고 있다. 동산이 막은 것을 몇개의 길이 지나는 식이다. 진북터널이며 이온터널은 그 동산을 관통하는 터널이다.
전주의 서쪽에는 내가 사는 새로 생긴 주거지인 신시가지가 있고 전주의 동쪽에는 널리 알려진 한옥마을이 있다. 이것이 약간 아쉬운 점이다. 한옥마을과 신시가지가 쉽게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반면에 남북으로 강을 따라서는 길들이 많다. 따라서 연결이 쉽다. 진북터널은 상습적으로 차가 막힌다.
자전거를 타고 나가보니 평상시에는 무심하게 봤지만 인도쪽에 자전거 도로를 따로 만들어 놓은 것이 눈에 띤다. 전주는 자전거 타기에 그리 나쁘지 않은 도시다. 자전거 도로도 잘 되어 있지만 삼천변과 전주천변을 따라서는 특히 잘되어 있다. 그러니까 남북방향으로 자전거를 타고 움직인다면 신호등도 없이 평탄한 길을 기분좋고 빠르게 움직일 수가 있다.
다만 도시에 기본적으로 차가 좀 많다. 나도 자가용을 가지고 있으니 자가용을 가지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시의 눈으로 보면 차가 없는 쪽이 훨씬 좋아보인다. 신시가지쪽은 그래도 괜찮지만 삼천을 건너가면 사람들 복잡하게 사는 모습이 좋기도 하고 때로 마음이 심난하기도 하다. 시장터같다. 그런 면은 자전거 타기의 쾌적함을 줄인다.
진북터널을 기분좋게 지나서 전주천변으로 가기위해서는 지하도로 내려갔다 올라와야 했다. 계단옆으로 자전거를 밀면서 내려갈수 있게 평평한 경사로를 만들어 두었지만 경사가 너무 급하다. 지나는 아주머니가 자전거를 가지고 그 지하도로 내려가는 사람을 처음봤다는 듯이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좀 뒤뚱거리기는 했다.
일단 전주천변의 길 위에 자전거가 올라가자 길은 평탄하고 강변의 나무며 햇볕이 보기 좋았다. 그러고 보면 여기어디서는 자전거를 빌려주기도 한다고 들었다. 전주천을 타고 쭉내려오다가 전주 기전대학교 앞에서 천변길에서 벗어나 신시가지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오늘은 가벼운 탐색정도니까 이정도면 충분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한동안은 오르막길이었지만 그러고 나면 계속되는 완만한 내리막길이라서 자전거타기는 매우 수월했다. 그냥 앉아만 있어도 자전거는 앞으로 나간다. 오는 길에는 제과점에 들려서 식빵과 커피번을 사가지고 왔다. 집에 와보니 한 9킬로미터쯤 달린 것같다.
아버지가 생각나게 하는 자전거다. 아버지는 결국 내가 전주에 집을 얻기 전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전주의 새 집에 와보신 적이 없다. 어머니만 쓸쓸한 마음에 요양차 여러번 다녀가셨을 뿐이다. 이 집에 아버지를 모셔보지 못한 것은 두고 두고 내 마음에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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