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10
입시철이 다가 오고 있다. 고등학생들은 수시 전형 응모를 준비하는 계절이며 이 시기는 오늘날의 대학에 있는 혼란이 더 뼈져리게 느끼지는 시기인 것같다. 아는 사람은 다 알만한 이야기이며 처음하는 이야기도 아니지만 그 혼란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잠깐 써볼까 한다.
이 문제의 기원을 앤서니 크론먼은 교육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19세기의 독일과 남북전쟁 이후의 미국이 대학을 개혁한 이래 전세계 모든 대학은 변화해 왔다. 그 이전의 대학은 자세히 전문화되지 않았고 대학은 취업을 위한 지식을 배우기 보다는 전인교육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곳이었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대학의 개혁이래 대학은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고 보관하는 장소가 되었고 그러기 위해서 전문화된 장소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과거와는 달리 요즘 대학의 교수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설명해야 한다거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대학밖의 사람들도 대학교수를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앤서니 크론먼은 우리가 이것을 되돌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대학의 이러한 측면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어쨌건 그것은 과거이니 지금의 대학만 걱정하면 되지 않겠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오늘날에도 대학과 전공을 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의 대학은 주로 취업을 위한 곳이며 고도로 전문화된 지식을 얻기 위한 곳이라고 단언하는데 그런 견해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직업과 전공의 선택에 대해 말할 때 나는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지고는 한다. 프로축구선수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축구를 얼마나 잘해야 하는 것일까? 백분율로 따져서 상위 10%쯤 되면 프로축구선수가 될 수 있을까? 말도 안된다. 축구를 직업으로 삼아서 축구의 전문가로 살아가는 사람의 숫자로 판단하면 상위 1%도 사실 부족하다.
그러니까 대학에 축구전공학과라는 것이 있다고 해보자. 이 학과는 장차 축구를 직업으로 해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 가는 취업을 위한 학과다. 그런데 당신이 이런 학과에 들어가는데 당신의 축구실력은 상위 30%쯤 된다고 하자. 이건 말이 안된다. 당신이 그저 축구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가는 것이 아니라면 당신이 축구학과에서 보낸 시간은 시간낭비일 것이다. 당신은 프로축구선수라면 누구나 가지는 기술과 기초적인 체력도 가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에는 정말 누구나 대학에 간다고 할 정도로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가고 있다. 70% 이상의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한때는 이것이 80%를 넘었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대학이 정말 취업만을 위한 곳이며, 어떤 전문화된 분야의 지식을 배우기 위한 곳이라면 현실은 이상하다. 현실적으로는 하나의 전공학과는 그 분야의 상위 1% 학생만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이상함에 대해서 물론 독자는 여러가지 설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할 수 있다. 그 일부는 아래에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설명에도 불구하고 남는 위화감은 있다. 그 설명이 알고보면 설명이 다 안된다. 오늘날의 대학에는 해결되지 않은 채 오히려 심화되는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졸업한 물리학과를 생각해 보자. 그리고 물리학과를 물리학을 배우고 물리학자가 되기 위한 곳으로 생각해 보자. 물리학을 전공하고 물리학자로 사는 것은 프로축구선수가 되는 것보다 쉽기만 할 것같은가? 일단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노력해도 김연아 선수처럼 피겨를 타거나 박지성처럼 축구를 할 수 없듯이 타고난 재능의 문제도 있으며, 어릴 적부터 준비하지 않은 사람이 넘기 어려운 장벽도 있다. 결국 여기도 1% 학생쯤이 아니라면 넘기 어려운 면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물리학과같은 곳은 물리학을 얼마나 배우던 나는 취미로 배워보겠다는 식이 아니라면 고등학교 단계에서 상당히 우등생이었고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는 경우가 아니면 권장되지 않는다. 대학수준의 학문은 배우기가 대단히 어렵다. 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개 그렇다. 한세기전의 수준과 별로 다르지 않은 고등학교공부와는 다르다. 따라서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는 사람은 이 부분에 대해 조심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다시 크론먼이 지적한 문제로 되돌아 보자. 대학이 인생의 의미를 배우고 전인교육을 위한 곳일 때 그리고 오직 소수의 사람만이 대학에 가기때문에 그 사람들이 직장을 찾는 것에 별로 어려움이 없었을 때 우리는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기가 쉬웠다. 그저 우리의 취향에 맞는 곳을 선택해서 능력대로 적당히 들어가면 됐다. 대학은 애초에 취업을 위해서 가는 곳도 아니었고 취업은 걱정하지 않아도 대학졸업자에게는 쉬웠다.
그런데 오늘날의 대학은 이미 전인교육을 하기 힘들게 된지 상당히 오래되었다. 사실 대학은 교수를 뽑으면서 전공에 관련된 논문들의 수를 따질 뿐 후보자를 전인교육적 차원에서는 이미 거의 평가하지 않는다. 즉 교수는 점점 더 특정분야에 전문화되어 지식을 늘리는 일에 능력을 보이는 전문가가 되어왔다. 그런데 대학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간다. 30년전만 해도 대학은 상위 30%정도의 학생만 가던 곳이었고 반세기 이상전에는 당연히 매우 소수의 사람들만 대학에 갔다. 대학의 문호가 넓어지는 추세를 보고 있으면 대학은 더더욱 전인교육을 강조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가르치는 곳이 되어야 할 것같은데 현실의 대학은 그 반대로 가고 있다. 이것은 물론 대학의 다른 기능인 연구기능을 위해 사회가 그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대학은 더 많은 사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회적 변화와 더 전문화된 지식을 생산하라는 사회적 요구에 의해 완전히 반대방향으로 힘을 받고 있는 셈이다. 모순된 상황의 유지를 위해 대학은 돈이 더 많이 필요해진다. 이것이 대학교육이 점점 더 비싸지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등록금을 내는 사람들은 하나둘 대학교육을 받으면 취업이 잘돼서 돈을 더 잘 버는 거냐고 묻고 있다. 즉 돈을 들인 것보다 더 벌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애초에 대학에서 전문화된 학문을 배울 셈이라면 많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적성에 맞지 않다. 결국 그들은 전인교육도 받지 못하고 전문지식도 배우지 못한 채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때로는 빚까지 내게 될 수있다. 그렇게 졸업해 보면 그렇게 딴 졸업장은 아무 의미도 없을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대처하는 한가지 자연스러운 방법은 더욱 더 전문화하는 것이다. 대학을 진로와 학문분야에 따라 더욱 더 전문화하면 배워야 하는 분량이 어느 정도 줄어든다. 전문화를 일찍 시작하면 취업 경쟁에서도 유리한 면이 있다. 그래서 요즘도 특정직업을 위한 학과가 생기는 경우도 있는 것같다. 하지만 사실 19세기 독일의 대학 개혁이래 우리는 계속 이 방법을 써왔다. 그 결과 전문화의 한계에 이르러서 대학을 더 전문화하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시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학과를 계속 개설하고 그 학과들의 규모를 예전의 학과와 같은 것으로 한다면 대학은 무한 팽창할 것이고 돈이 너무 든다. 그렇다고 자꾸 학과를 쪼개면 학과가 너무 작아져서 생존능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지나치게 전문화한 것은 사소한 사회적 흐름의 변화에도 쓸데없는 것이 될 수 있다. 결국 대학이 더 전문화되는 것은 어렵다. 그렇게 전문화를 했는데도 지금 우리는 문제를 겪고 있고 더 이상의 전문화가 어려운 경지에 이르른 것이다.
전문화된 교수들은 자기 전공지식이 학생들에게 도움도 안되고 많은 학생들이 그걸 배울 재능도 없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다고 그들이 새삼 전인교육을 할 능력도 안된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을 대충 가르치고 대충 학점주고 그들이 대학공부에 전념하지 않고 따로 취업공부에 시간을 많이 쓰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흔한 대학교육의 현실이 되었다. 교수도 졸업생 취업률때문에 고민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취업해주시는 고마운 학생들을 학교와 교수들이 대우해 줘야 하는 형편이다.
오늘날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대학에 대한 기대를 먼저 줄이는 것이다. 뭔가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한다는 것은 오히려 우리의 선택을 나쁘게 만든다. 이런 의미에서 대학에 대해 적절한 기대를 하는 것은 오히려 대학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을 제대로 평가하도록 돕는다. 대학교육은 여전히 중요하고 소중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매우 불충분하다. 요즘 세대는 대학만 나오면 직장이 잡히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다. 그저 대학에만 들어가고 대학에서 시키는 것만 하고 있으면 앞날이 저절로 열릴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요즘 대학은 한마디로 비싸고 취업에 그다지 도움이 안된다. 대부분의 학생에게 있어서 대학교육은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학생들은 대학교육과는 별도로 자신의 장래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 즉 대학과 자신의 장래를 어느 정도 분리하고 자기가 자기 나름대로 장래에 대해 생각하고 그에 필요한 자격증과 경력을 쌓아나가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미 대학생중에는 대학을 휴학하거나 졸업을 유예하고 그렇게 하는 사람이 꽤 많다. 취업을 하고 싶다면 취업하고 싶은 분야나 회사에서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따로 조사하고 시간을 써서 준비해야 한다.
세상에는 요즘 뜬다는 전공과목을 막연히 선택하는 학생들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별로 학생의 장래에 도움이 안된다. 내 성적이 이정도 인데 나는 이 학과가 좋으니 이 대학의 이 학과에는 갈 수 있겠다라는 식으로 적당히 성적에 맞춰서 선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선택은 대개 최악의 선택이다. 3류대학에서 어려운 학문을 하고 졸업한 학생은 취업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다. 요즘 인기있다는 학문을 한다고 해도 누구나 다 연구직에서 일하게 될 수 있는 것은아니다. 내가 아이때문에 상담한 고3 담임교사는 솔직히 이런 대학에서 이런 학과를 나오면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것밖에는 장래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사실 그런 식이면 대학을 졸업한 것이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학생들은 막연히 폼나는 학문을 하는 학과에 들어가고 싶으니 적당히 가겠다는 식이라기 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게 물어야 한다. 나는 정말 학문이 많이 하고 싶은 지 그리고 그럴만한 재능이 있는 것인지. 취미로 좋아하는 것과 직업으로 생각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답이 부정적이며 나는 그저 생활비를 벌고 소시민적 행복을 누리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진로를 일찍 취업이 잘되는 쪽으로 바꿔야 한다. 요즘 인기있는 학과 중에는 간호학과가 있다. 이것은 물론 취업때문이다.
상황이 좀 안좋지만 나는 정말 특정전공분야를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즉 나의 학문적 열정이 진짜라면 나는 되도록 함부로 경쟁률 낮은 대학에 가지 말고 차라리 재수를 하건 유학을 가건 좀 유명한 대학에 도전하라고 권하고 싶다. 학생은 학문을 할 생각이 있고 교수는 가르칠 생각이 있는 곳에 가지 않고서 어떤 학문을 제대로 하기란 지극히 힘들다. 좋은 정보와 기회가 그쪽으로만 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의 가치는 취업이 전부가 아니다. 대학이 취업에 큰 도움이 될거라는 기대를 버리면 오히려 우리는 대학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다. 사실 우리는 미래에 우리의 경력과 지식이 어떻게 우리의 직업에 기여하게 될까를 미리 알 수 없다. 그러니까 취업생각은 접어버리고 대학의 고전적 가치인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는 기회를 찾거나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를 공부하겠다는 생각에 몰입하는 것이 오히려 더 현명할 수 있다. 너무 일찍 약삭빠르게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은 자신의 미래 예측 능력을 과신하는 사람이다.
대학은 예전과는 다르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에게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는 지식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고등학교까지 입시공부에만 젖어있었던 사람들은 대학공부를 하면서 도대체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가치있는 일이다. 요즘은 사과장수를 해도 커피숍주인을 해도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한 시대다. 괜히 취업에도 도움도 안되고 관심도 없는 학과를 선택해서 시간낭비를 하는 것보다는 그런 쪽으로 목표의식이 있다면 대학은 오히려 더 알찬 시간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인문학과의 가치를 무시한다. 그런 지식은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문학을 배우는 것이 가치있는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어떤 전공도 다 취업에 도움이 안된다고 말한다. 미국의 경우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조지메이슨 대학의 교수인 스티븐 펄스타인은 통계적으로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칼럼 링크는 여기) 위에서 말한 앤서니 크론먼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국은 상황이 틀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 대학을 나오건 어떤 학과를 나오건 다 취업이 힘들다는 현실이 우리를 누르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학생들이 아직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모르기 때문일지 모른다. 모른다면 그것을 찾는데 시간을 쓰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을까? 인생은 그렇게 길지도 않지만 그렇게 짧지도 않다. 빨리가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를 느리게 가게 만든다.
우리는 이런저런 행운을 꿈꾼다. 그래도 평범하게 일하고 저축하는 것을 넘어서 날마다 가진 돈으로 모두 로또복권을 사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성공법이라고 권하는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다. 이런 저런 사람들이 어려운 희생이나 성취없이 쉽게 장래를 열어가는 법을 설교한다. 편입이니 유학이니 하는 방법들을 이야기하는데 물론 그런 길의 가능성이 0은 아니겠지만 대개 처음 어려운 쪽이 전체적으로는 쉬운 길이고 쉽게 쉽게 가는 쪽이 나중에는 불가능에 가까도록 어려워진다. 학과와 대학을 선택할 때는 자기가 대학에서 뭘 원하는지, 자기가 어느 정도 성취를 했으며 앞으로 어느 정도까지 뭘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뭘 포기할 수 있고 뭘 포기할 수 없는지에 대한 솔직한 평가가 필요하다. 그런 각오 없이 쉽게 쉽게 가는 길을 선택하면 그 선택은 가능성없는 로또복권을 사는 것처럼 된다. 그런 대학과 그런 학과는 피해야 할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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