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7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이 무익하다는 이야기는 이제는 정말 지겨울 정도로 여러번 이야기 된 것이다. 그러나 요즘 정국은 다른 의미에서 과연 한국보수라는 말이 실체가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다. 그것은 마치 여러사람들이 그것을 잡으려고 하지만 유령처럼 잡히지 않아서 애초에 허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만든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친박세력때문이다. 박근혜가 아버지인 박정희의 신화까지 껴앉고 정치적 동반자살을 한 지금 이 시국에서 보수란 바로 친박세력이다라고는 말할 수 없거나 적어도 말하기 껄끄러워졌다. 때문에 정말 늦었지만 박근혜의 출당을 자유한국당이 결정했고 친박의 거두인 서청원과 홍준표가 싸우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잘한 계산을 뒤로하면 홍준표는 친박이 아닌 보수는 존재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사실 이미 한단계 부정된 바 있다. 만약 친박이 아닌 보수라는 것이 실체라면 사실은 박근혜가 탄핵된 정국에서, 압도적인 국민들이 탄핵에 찬성하는 국면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은 바른정당이 보수 세력의 중심에 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른 정당을 만든 사람들도 그걸 기대하고 자유한국당을 나간 것이 아닌가?
요즘보도에 따르면 박근혜는 국정원돈까지 써가면서 자유한국당을 진박들의 당 그러니까 진짜로 박근혜-박정희에 충성스러운 사람들만의 당으로 만들려고 했다고 한다. 그 결과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은 사실 친박당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내부로부터의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일군의 사람들이 새누리당에서 탈당하여 바른정당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정국은 아주 묘하게 흘렀다. 현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의 다수는 바른 정당이 아니라 자유한국당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친박이 아닌 사람들이 탈당하여 더더욱 순수하게 친박당이 되어버린 자유한국당을 말이다. 11월 6일자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주요 정당의 지지율은 민주당이 51.7%, 자유한국당이 16.8%, 국민의 당이 6%, 정의당이 5.9% 이며 바른정당은 4.8%밖에 안된다. 결국 바른정당은 1차 2차 탈당사태가 일어나면서 소멸의 위기에 까지 몰렸다.
이런 현실을 보면 상당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같다.
결국 친박이 아닌 보수란 매우 미미하여 허상에 가깝다.
그런데 친박 세력이란 자신이 이미 죽은 것을 모르는 좀비나 마찬가지다. 천지개벽할 정치적 변화가 앞으로 또 있을 수도 있겠지만 매우 높은 확률로 친박의 정치적 복권은 있기 힘들다. 박근혜는 앞으로도 계속 재판을 받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박정희의 신화는 더더욱 망가질 것이다.
한국정치는 87년 6월 이후 불가역적인 변화를 겪었다. 요즘 실질적 내각제의 실시로 이 현실을 타파하려는 사람들이 있지만 국민들이 이뤄낸 대통령직선제라는 것은 그냥 세계 보편적인 차원에서 말할 수 있는 정치형태의 하나가 아니라 한국 시민들의 강력한 의지로 일궈낸 게임의 법칙이다. 그래서 87년 이후에는 군사구데타는 없었고 선거개입같이 대통령 직선제를 부정하는 일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 되었다. 이건 헌법적 질서 중에서도 그 중심적 지위에 확고히 도달한 것이다. 그냥 남이 써준 헌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희생으로 만들어 낸 질서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탄핵된 대통령인 박근혜는 다시 한번 한국정치가 불가역적인 변화를 겪게 한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자유한국당이나 자칭 보수세력들은 물타기를 통해 관행이니 김대중 노무현정부도 그랬느니 하면서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지만 세계적으로 화제가 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참여한 촛불집회가 만들어 낸 탄핵은 검증되지 않은 비선실세가 존재하고 관행이라는 이유로 법적인 근거도 없는 돈과 권력이 남용되는 정치는 허용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박근혜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박근혜 스타일로 정치를 하려는 사람은 정치적 승리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스타일이 결국 박정희 스타일이다. 과거 선거에서 박정희처럼 보이려고 하는 후보가 많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변화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과거 자칭 타칭 보수세력이라고 불렀던 사람들의 승리의 방정식이 깨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선거에 나와서 박근혜 박정희 만세를 부르는 것으로는 적어도 집권세력이 되기는 어렵다. 적어도 앞으로 몇년간은 그럴 것이다.
이런 현실에 기반해서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이 질문은 앞으로 몇년간 한국정치를 지배할 질문이다. 과연 친박이 아닌 한국보수라는 것은 실체인가 유령인가?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세력인가 아니면 앞으로 만들어 져야할 세력인가? 물론 이것은 보수를 어떻게 해석하냐의 문제다. 많은 사람에게 사실 문재인 정부는 보수정부다. 민주당이 보수다. 그러나 지금 홍준표나 유승민이 찾아헤매는 보수는 물론 이런 보수가 아니다. 그들은 친박이 아닌 한국보수라는 것이 있다고 주장한다. 가식이 아니라 진지하게 그렇게 믿고 있는 것같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친박이 아니면서 즉 지난 탄핵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유의미한 한국보수라는 세력은 없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한국 보수 세력의 대표적인 특징이 비일관성이다. 이것은 사상이 없는 사람의 특징이다. 한국 보수세력은 이미지만 있고 욕망만 있을 뿐 제대로된 사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자아성찰이 없다. 물론 보수세력 안에도 학자도 문인도 있다. 때문에 보수세력에도 사상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나는 현실을 보려면 정권 그 자체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보수세력에게 이성이나 학문은 그저 장식에 불과하다. 그것은 공산주의라는 것이 북한정권에게 그저 장식에 불과한 것과 마찬가지다. 실질적으로 북한은 그저 김일성 일가의 왕국이다. 마찬가지로 한국보수라는 것도 구데타로 세워진 왕국에 불과하다. 거기에는 대한민국의 헌법과 양립하면서 주장될 수 있고 지켜져 온 가치나 사상이 없다. 오죽하면 뉴라이트나 일베같은 것이 번성했겠는가?
그러니까 한국보수라는 것은 박근혜가 실각했어도 박사모처럼 여왕을 계속 모셔야 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또다른 박정희 일가의 피를 찾아 새로운 왕을 옹립하거나 아니면 또다시 피와 힘으로 구테타를 하고 정권을 장악하여 새로운 왕조를 창건하는 수 밖에 없다. 이것들은 21세기 한국에서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박근혜는 부활할 수 없고 박정희 왕조는 죽었다. 재벌도 무력쿠데타를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민주공화국에서 의미있는 정치세력은 사실 관념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사상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세력의 뿌리는 쿠데타같은 폭력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무력 쿠데타는 없다. 그러니 사상이 없으면 정치세력도 없다. 폭력으로 만들어져 인정받고 있었던 과거의 세력은 한번 죽으면 다시 부활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 세력이 이제 폭력이 아니라 사상과 이성으로 부활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 폭력으로 만들어진 세력의 본질은 반이성적이고 반사상적이다. 한마디로 세상에 내놓을 만한 일관성있고 깊이 있는 사상이라면 오히려 박사모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들에게 통하는 사상이란 생각하지 말고 충성하라는 것 밖에 없다. 일관성을 찾기 시작하면 눈을 뜬 광신도들에게 보이는 것은 추한 자신의 모습들 뿐이다.
여전히 정치판은 이 유령같은 한국보수를 찾아 헤매고 있다. 그것은 폭력과 부패를 기반으로 일어난 적폐 권력이 한국에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갔지만 재벌은 가지 않았다. 재벌은 후원자는 될 수 있어도 그 자체가 정치적 세력이 될 수는 없다. 민주국가는 1인 1표이지 주주총회처럼 돈많은 사람이 주인인 세상이 아니라서 그렇다. 나는 재벌을 지배해 온 가문들이 이미 가진 것에 만족하고 시대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한국의 미래를 걸고 싸움에 나설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박근혜가 감옥에 있는 지금 다음 싸움의 장소가 재벌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재벌회사를 비민주적으로 초법적으로 지배하는 가문들이야 말로 적폐의 또다른 본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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