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6
한국 정치에 있어서 보수냐 진보냐는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문열같은 사람들이 보수가 죽어야하니 부활해야 하니라고 말하고 있으니 이 말들은 나름의 생명력을 가지고 제멋대로 쓰이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과연 보수란 무엇인가에 대해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예들을 들어서 고민하고 분석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나는 그보다 먼저 한국 사회와 상식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한국의 상식이란 입장에서 보수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걸 생각하면 결국 한국에는 보수라는 것이 아직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국에 보수가 있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보다 보수란 지킨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영어로도 그런 뜻이 있다. 그리고 지킨다고 하는 것은 먼저 뭔가 지킬 것이 있을 때 성립 한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정치적으로 말했을 때 특히 지킬 것이 거의 없었다. 배울 것뿐이었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공화정을 스스로 발전시켰는가? 아니다. 우리 민족이 발전시킨 정치형태는 왕조였다. 그것도 자유주의나 과학같은 것이 아니라 유학에 근거한 사회질서였다. 그래서 우리의 문화, 우리의 언어에는 그 과거의 질서가 뿌리깊게 박혀 있다. 일제시기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천황제를 중심으로한 것이었으며 그나마도 우리 민족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주체가 아니라 피지배층으로 주인의식없이 그 시대를 살았다. 그런 한반도에서 민족이 일본 제국으로 부터 해방된 이후 자유민주주의 공화국 헌법을 내세워서 대한민국이 세워졌다. 그 시기는 따지고 보면 얼마 되지 않았다. 이 나라에는 아직 일제시대에 태어났던 사람들도 많이 살고 있다. 대한민국이 시작하면서 가졌던 틀은 이런 의미에서 그 안에 살고 있던 사람에 비해서 훨씬 미래적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킨다니 뭘 지킨다는 말인가? 지금 대통령이 조선시대처럼 왕인가? 한국이 사농공상으로 나뉘어서 신분의 차이가 존재하는 나라인가? 한국은 해방이래 새로운 헌법에 걸맞는 철학과 문화를 창출하기 위해 몸부림쳐 왔고 한 순간이라도 더 빨리 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한국 사람들이 빨리 빨리 병에 걸리고 새 것이라면 뭐든지 더 좋게 생각하는 습관이 있는 이유도 이때문이다. 우리는 과거로부터의 크나큰 단절을 겪어야 했고 특히 정치적으로 그랬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에서 배운 사람은 누구나 진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우리의 과거로부터의 진보라는 뜻에서라면 말이다.
무엇보다 헌법이 그렇게 되어 있다. 현실을 모르는 무식쟁이들이라면 몰라도 정치가로서 지금 우리나라에서 진심으로 보수 이야기하는 사람은 전부가 아니면 대개 헌법정신을 위배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국민평등이란 이상과 멀기 때문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개혁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고 계몽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한국이다. 이런 나라에서 미국이나 유럽처럼 과거 수백년간 정치체제를 발전시켜오고 그에 대한 철학과 관습과 제도를 발전시켜온 나라에서 말하는 보수가 있을 수가 없다. 뭘 지킨다는 말인가?
문제는 개혁의 속도 뿐만이 아니다. 만약 개혁의 속도만이 문제라면 우리는 얼마나 빨리 개혁을 추진할 것인가를 가지고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고 그것도 상당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패망이후 식민지시대와 분단전쟁까지 겪은 한국은 일단 자기 정체성의 확립이 약하다.
즉 대한민국이란 어떤 나라인가라는 것에 대한 보편적 합의자체가 약하다. 헌법에 대한민국이란 이런 나라다라고 쓴다고 사람들의 생각들이나 문화가 순식간에 변할 수는 없다. 여러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하는데 그 생각들의 대부분은 또 자기 체험에서 천천히 길러나온 것이 아니라 외국의 정치 사회 철학을 불완전하게 번역하여 이해한 것들이다 보니 대중적인 이해는 지지각각일 수 밖에 없고 대개 자기 편한대로 생각하는 일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우리의 경험이 없이는 우리의 철학은 자라나지 않는데 공화국 시민으로서 우리의 경험은 너무나 부족했다.
한국 사회의 정체성이 약하다는 말은 한국 사회가 공동체 정신이 약하다고 표현될 수도 있으며 한국 사회에서는 보편적으로 통하는 상식이란게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말로 표현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니까 죽으나 사나 혈연타령만 하고 가문만 따지는 막장드라마가 공중파를 채운다. 혈연이면 금수저고 그게 아니면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공동체 정신이 약한 것이다. 그 분열과 허약함이 공동체의 위기를 가져오고 생산성 저하를 가져온다. 사람들이 분열하여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고 싸우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공공의 자산을 빼돌려 혼자 먹고 튈려고 한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분노하고 불안해 한다. 바로 최순실일가가 잘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상식의 위기도 그렇다. 왜 우리는 박근혜 최순실의 병신환란에 괴로워하는가. 보통의 시민들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규칙이나 의무가 특권층에 가서는 너무나도 어이없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자기 딸 정유라 하나 살리자고 나라를 불태워 버리는 것같은 최순실의 모습에 어이가 없고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으며 나라가 혼란에 빠져서 국민이 고통받게 만든 사람, 바로 그 불을 지른 박근혜가 그 불을 수수방관하고 내가 뭘 잘못했냐고 말하는 모습에 어이가 없다.
한국에는 상식이 있을까 없을까. 없다면 없고 있다면 여러 개가 있다. 그게 뭐건 여러개가 있다면 그건 결국 상식이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이 살고 똑같이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다 달라도 어떤 면에서는 강력한 합의와 같음이 필요하다. 그게 상식이다. 지금의 한국에는 그 상식이란게 아주 약하다. 그러므로 해방이후 이제까지의 역사는 바로 그 상식을 세우기 위한 시간이었다고 말해도 될 것이다. 그 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박근혜 최순실 병신환란이 그것을 보여준다. 남북의 통일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는 남한의 통일도 아직 이뤄내지 못했다. 그래서 서로 다른 게임을 한다.
이러한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지가 않다. 누군가가 나는 보수다라고 말하면 그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 명확히 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종종 박정희가 보수의 영혼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같고 한국의 역사를 김대중과 노무현을 제외시키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역사로 이해하는 것같다. 그들은 또한 한국의 역사에서 대중의 역할을 제외한다. 왜냐면 대중이 큰 일을 해냈다고 주장되는 4.19나 6월 항쟁이나 노무현 탄핵 반대 촛불집회같은 것은 그들에게는 중요한 역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둔한 대중이 가져온 혼란에 불과하다. 그들은 한민족이라는 대중의 힘을 인정하지 않기에 그들이 보는 것은 미국이나 일제같은 권력이다. 그래서 일제시대의 친일은 누구나 했던 당연한 행위이며 그때의 독립운동이란 실은 별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대단한 일로 기념할 것도 없는 일로 인식되는 것같다. 물론 대한민국은 일제로부터의 해방때 만들어 졌다. 건국절 논란으로 이야기되듯이 말이다.
이것이 한국에서 말하는 보수가 지켜야 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왕가를 말한다. 즉 박정희 왕가가 대한민국을 지배할 정통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박정희의 대를 이어 박근혜에게 왕을 시키고 그 혈통에 다른 피가 있다면 이번에는 그 사람에게 왕을 시켜야 할 판이다. 이것은 공화국정치 이전의 것이다. 이런 걸 보수주의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건 헌법위반이다. 이건 바로 북한의 정치다.
내가 보기에 한국에서 내세울 수 있는 진짜 보수는 대중의 힘에 주목하는 것이다. 결국 상식이란 누구 한 사람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생각과 공감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멀리는 동학에서 일제시대의 독립운동으로 그리고 4.19와 6월 항쟁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만들어져 왔다. 해방이후 진짜 대통령같았던 대통령은 김대중 노무현밖에는 없다. 왜냐면 그들만이 국민에게 선출되어 평화롭게 정권을 이양했을 뿐만 아니라 쿠데타세력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쿠데타 세력이나 정권무한연장을 위해 법칙을 어긴 세력들에게 대한민국의 법통을 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한국은 짐승의 우리가 되고 만다. 힘있는 놈이 권력잡고 갑질하는 것이 당연한 짐승의 세계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보수를 말하는 사람은 하나도 보수가 아니다. 심지어 야당도 상당수 그렇다. 삼당야합으로 쿠데타 세력에게 투항한 사람들이나 노무현을 무리하게 탄핵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이 땅에서 지켜져야 했던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다시 말해서 어렵게 민중이 세운 상식을 무너뜨리려고 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김대중이 보수고 노무현이 보수다. 그들을 탄핵하려했고 인정하지 않으며 지금 박근혜탄핵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보수가 아니다.
누가 보수냐 누가 진보냐 하는 것은 지금 이순간에는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보수란 무엇인가라는 말을 하게 되는 이유는 보수라는 게 있다면 그것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조건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다른 사람에게 떳떳히 내세울 상식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보수니 뭐니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식이 없다는 것은 윤리와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애매한 말로 사람들을 홀릴 뿐 그 안에 일관성있는 상식이 없을 때 결국 보수란 저열한 짐승의 탐욕을 가치의 잣대로 말하는 사람들에 불과하다. 그런 것을 정치집단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되도록 비합리적으로 만들고 권위에 굴종하도록 협박이나 할 뿐이다. 그건 적어도 자유 민주주의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도 언젠가는 보수를 말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지금 이 박근혜 최순실 병신환란을 제대로 거치고 나면 그 때에 다가가게 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보수에게는 애매한 관습만이 있을 뿐 상식과 가치가 없다. 그것은 보수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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