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6.12
아내와 산책을 하다가 내가 보수를 싫어하는 첫번째 이유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별다른 긴 이유를 댄 것이 아니라 한마디로 사람들이 재미가 없어서 라는 것이 나의 이유였다. 사실 나는 진보니 보수니 하는 구분이 싫다고 누누히 말한다. 더구나 사람을 한국 사람 일본 사람으로 나누건 진보와 보수로 나누건 결국 어느 쪽에도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으니 보수가 재미가 없다라고 말했을 때는 그에 대한 예외가 줄줄이 나오기 마련이다. 재미없는 진보의 예는 더 찾기 쉬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위 자칭 보수라고 하거나 현 박근혜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서 어떤 공통점을 흔히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점을 가리켜 보수라고 부르고 그게 괜찮은 건줄 아는 것같다. 보수건 진보건 그것은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지키는 것이다. 집에 불이 나도 가만히 앉아서 건물밖으로 안 나가는 것, 게을러서 입던 옷 계속 입는 것 같은 것을 나는 보수적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재미가 없다라는 말은 불감증과 통한다. 불감증이라는 말은 권위주의와 학벌주의, 유명메이커를 좋아하는 특성, 유행에 잘 흔들리는 특성과도 통한다. 유행에 잘 흔들리는게 어떻게 보수냐고? 그러니까 보수니 진보니 하는 구분에는 큰 착각이 따라붙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한마디로 내가 본 박근혜 정부 지지자들은 자기 입과 자기 귀와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는 일이 흔하다. 여기 허름한 의자가 하나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 이게 프랑스에서 온 1억짜리 의자래요라고 말하면 어 그래 하면서 그 의자에 깊은 감동을 느낄 것 같은 사람. 여기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하버드 졸업생이래요라고 말하면 갑자기 어 그 사람 매우 훌룡하군. 국회의원 시켜줘야겠어라고 말할 것같은 사람. 뭐 이런 식인 것이다.
사람이란 누구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같은 것을 계속하면 흥미를 잃고 지루해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거기에도 정도차이가 있다. 재미없는 사람들은 한마디로 재미를 깨고 재미를 엄청난 속력으로 소진시켜 버린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바닷가에 위치한 중소도시를 간다고 하자.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무엇보다 자신의 눈으로 그렇게 하는 사람은 결국 언뜻봐서 다른 곳과 그리 다르지 않은 그 도시에서도 많은 새로움을 찾아낸다. 색다른 석양이라던가, 낡았지만 기품있어보이는 담벼락이라던가, 할머니들이 인상적인 시장이라던가, 하다못해 다른 곳에서 못먹는 해산물 요리 한접시라던가 뭐든지 새로움을 찾아내서 거기서 재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처음에는 다 비루한 것이 아니었던가? 다 남들이 뭐 그런 걸 가지고 놀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요리도 음악도 심지어 과학도 새로운 아이디어는 주류에 올라서기 전에는 당연히 거기에 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초라한 그런 것이었다. 가장 멋진 자동차를 타고 하는 여행은 물론 아주 훌룡하지만 때로는 야간 열차를 타고 고생하면서 하는 여행이 재미가 있다. 가장 훌룡한 야채를 쉽게 사먹을 수 있다고 해도 때로는 내가 키운 상추 한조각이 가장 맛있을 수 있다. 누구나 부러워 할만한 대기업 사원이 되어 사는 것도 좋지만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도 멋있을 수 있다. 세상은 1등만 기억되어지는 그런 곳이 아니다. 이게 옳으면 저게 틀린게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다 상황에 따라 옳을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은 이게 옳지만 내일은 저게 옳을 수도 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재미가 없다. 답이 하나라고 생각하니 세상을 볼 필요가 있겠는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보장하고 어떤 권위가 보장하는 그런 답을 딱 들으면 이제 더이상 세상을 직접 보고 들을 필요가 없다. 그러니까 남들이 집을 사면 나도 집을 사고, 남들이 누구를 욕하면 나도 덩달아 욕한다. 보수라고 자신을 자칭하지만 실은 대부분의 경우 그저 남따라 다니는 것 뿐이다.
재미없는 사람들은 아 그동네 거기 아무것도 볼 것없어. 거기 뭐가 있다고. 이렇게 쉽게 말한다. 그래서 조심스레 언제 거기 가보셨어요라고 물어보면 한 15년됬나 하는 식의 답이 돌아오기 일수다. 5년만 지나도 세상이 바뀌는데 15년전에 가봤으니 다 안다는 것이다. 사실 그런 분들은 새로 가봐도 그 분들의 믿음처럼 '별거'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가 재미없는게 아니라 그 도시, 그 동네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런 것을 가르켜 불감증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분명해 졌는지 모르겠다. 불감증 환자가 가득찬 세상은 비효율적이고 재미가 없다. 집앞의 텃밭에서 자라는 상추를 뽑아다가 이게 독일에서 온 비싼 야채라고 하면 백만원 이백만원 마구 내놓을 것 같은 사람들은 사기 당하기 딱 좋은 사람들이다. 나는 미국을 존경하고 미국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도외시하는 성인군자만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광화문에서 성조기를 휘두르는 자칭 보수 세력을 보면 나는 그 사람들이 사기 당하기 좋은 광신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들이 '아니 미국이 그럴수가' 라고 말하는 장면이 함께 그려지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재미나 즐거움이라고 하면 소모적이라고만 생각하지만 삶에 재미가 없다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건 끔찍한 삶이다. 자식을 위해 세상의 기준에서 보아 아무런 즐거움을 누리지 않는 것같은 부모도 바로 그 자식이 커가는 것을 보고 느끼는 즐거움이 있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며 만약 그런게 아니라면 너무나 딱한 일이다. 자유가 없는 사람은 왕의 의자에 앉아있어도 재미가 없다. 어떤 객관적 기준으로 즐거움과 재미를 측정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재미없는 불감증 환자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BMW타면 너무 너무 행복하다고 쉽게 생각하는 그것 말이다.
요즘 청년 보수층이라던가 일베충이라던가 하는 말들이 들려온다. 내가 보고 들은 사람의 수야 얼마 안되지만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어쩌면 한결같이 그럴까 싶을 정도로 그들은 즐거움이라는 단어와 괴리되어 있고 불감증이라는 단어와 가깝다. 결국 그들은 재미를 거세한 삶을 추구하라고 판에 박힌 소리를 아이들에게 말한 어른들이 만들어 낸 괴물일수 있다.
이름은 뭐라고 불러도 좋다. 나는 재미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판에 박힌 고정된 생각만 반복하는 그런 것은 누구도 결국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일까 내가 본 대부분의 보수는 행복하지가 못하다. 그들은 공포에 쩔어 있거나 권력이나 사회적 성공같은 것에 중독된 환자에 가깝다. 그들은 파괴적으로 정복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일을 빼고나면 오늘 하루가 절망적일정도로 재미가 없다. 내일도 모래도 오늘과 똑같다. 결국 삶자체가 사는게 뭐가 있어. 아무것도 없지. 뭐 이런 상황인 것이다. 재미라는 단어가 어떻게 보면 절박하게 느껴지는 그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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