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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주 생활

빵을 구우며 하는 생각

by 격암(강국진) 2018. 11. 24.

나는 가끔 빵을 굽는다. 그래봐야 파운드케익과 스콘을 구울 뿐이지만 말이다. 오늘은 아무도 없는 집에서 몸을 움직일까 싶어서 집안일을 좀 하다가 빵도 구워보기로 했다. 그래서 설거지를 하거나 밀가루를 꺼내고 버터를 자르며 한동안 분주히 움직였다. 뭐든 그렇겠지만 우리가 뭔가를 해보면 우리는 거기서 우리 자신에 대해 뭔가를 배우게 된다. 그것도 새삼 다시 깨닫기 싫은 것을 말이다. 




나는 그동안 아주 여러번 빵굽기를 시도해서 다 실패했었는데 지나고 보면 내가 언제나 레시피를 무시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럼 옆에서 아내는 왜 레시피를 따라하지 않냐고 성화다. 또 모처럼 빵같은 것을 구웠나 싶으면 매번 대충 만들기 때문에 혹은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때문에 예전의 그 것을 구워내지 못한다고 답답해 한다. 


그럼 나는 왜 레시피를 대충만 참고할까?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나는 한 물리학회에서 발표하는 물리학자의 농담이 생각났다. 그는 어떤 법칙에 대해서 설명하다가 그 법칙이 이미 발견되어 발표된 것이었는데도 그걸 독자적으로 새롭게 발견한 물리학자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를 말하며 그가 언급하기를


"물론 물리학자들은 절대 남의 논문을 안 읽죠!"


라고 했던 것이다.


물리학자가 논문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사실이기도 하다. 물리학도들은 대개 남이 쓴 것을 보고 이해를 하기 보다는 기초적인 원리에서 시작해서 자기가 설명을 구성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데이터를 봤을 때 어떤 법칙이 있는 것 같으면 물리학자들은 빨리 논문들을 뒤져서 그게 어떤 법칙인가를 찾아보는 데 시간을 쓰는 대신에 스스로 그 법칙이 정말 있는지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나와 함께 일한 교수님은 딸 아이에게 수학을 가르키다가 딸과 관계가 나빠졌다고 여러번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어떤 공식이 등장해도 그 교수님은 그 증명을 어딘가에서 찾아보거나 그 공식을 그냥 외우라고 하는 대신에 이렇게 말씀 하셨기 때문이다.


"외울필요 없어. 이건 모두 다 처음부터 증명할 수 있는거니까 말이야!"


그 딸은 그 교수님을 미워하게되었고 교수님은 나보고는 자식에게 수학을 직접 가르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 


사실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나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제를 하려고는 하는데 왠지 하나에서 수십 수백가지를 다 증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데에 이르면 자제력을 좀 잃게 된다. 그게 바로 나같은 물리학도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잘난체 하려는게 아니라 이거 정말 멋지지 않냐고 감탄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나의 감탄은 물리학도가 아니면 잘 이해를 못한다. 


다시 빵으로 돌아가자. 그래서 방금전까지 반죽을 주무르다가 이번에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레시피를 무시해서 빵굽기 실력이 늘지를 않을까?"


질문을 던지자 바로 답이 나왔다. 나는 물리학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빵굽기에 접근하는 방식이 약간은 독특하다고 할 수있다. 나는 왜 그런지도 모르고 이런 저런 레시피를 따라하면 빵이 나오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이렇게 나에게 묻게 된다. 


"빵이란 무엇인가?"


그러니까 도대체 밀가루가 어떤 재료와 어떻게 섞이면 우리가 맛있는 빵이라고 말할만한 물건이 되는가에 대한 일반론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어려운데도 나는 굳이 레시피대로 하지 않으려고 하고 나의 가설대로 이렇게 하면 빵이 될 거야하고 맘대로 굽는다. 지난번에는 크림이 빵에 미치는 영향이 궁금해서 빵반죽에 무조건 크림을 부어버렸다. 그런 식이니 빵같은 것이 나올리가 없다. 옆에서 아내는 답답하다고 할 때가 많다. 


그래도 수십년간 간간이 시도한 덕분에 이제는 파운드 케이크는 먹을 수 있는 물건으로 만들 수 있는 것같다. 아내는 여전히 나의 호기심을 제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있다. 하지만 나는 빵을 만들 때마다 자꾸 다르게 해보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러면 아내는 말하는 것이다. 


"제발 그냥 원래대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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