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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국가란 무엇인가

진보나 보수나 뭘 너무 하려고 하는게 문제다.

by 격암(강국진) 2019. 2. 24.

19.2.24

정치에 관련된 사람들이 늘상 걸리는 병이 있다. 그건 바로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정치에 신경쓰는 이유는 세상이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해서 이기 때문이므로 뭔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우리는 스스로의 행동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비판할 때도 대개는 뭔가를 해야 하는데 안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일이 많다. 때문에 우리는 모두 뭔가를 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보수 정권은 자꾸 뭘 지으려고 한다. 운하를 파고 도로를 만들고 아파트 공사판을 벌이려고 한다. 우리나라 보수는 주로 공사를 하고 국민들이 더 경쟁을 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같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은 재벌이나 큰 기업의 경우에는 그 반대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재벌들은 불필요한 경쟁을 하지 않도록 해야 나라가 발전한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한국의 통신사업이었다. 시티폰이 등장했다가 망한 일을 몇몇 사람들은 대단한 비극처럼 말하지만 사실 일반시민들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큰 기업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대화하면서 과다경쟁을 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게다가 한국통신도 민영화해버렸다. 그래서 와이브로 서비스를 대충해도 누가 대신 할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대기업이 와이브로 사업권을 따고 서비스개선을 안해도 다른 누군가가 그걸 더 잘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경쟁을 막아버린 것이다. 대기업은 경쟁이 없어야 하지만 물론 일반 시민들은 가열차게 경쟁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발전한다. 이게 그들의 생각이다. 실은 그 반대가 옳은데 말이다. 기업은 죽어도 되고 고통도 느끼지 않지만 사람은 그래서는 안되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나라 진보정권도 비슷한 문제가 사실은 있다. 방법이 다를 뿐 이 사람들도 우리가 뭔가를 해야 세상이 살기 좋아진다고 생각한다. 진보는 주로 무슨 규칙을 바꾸고 법을 바꾸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같다. 그래서 대학입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선거법을 바꾸면 나라가 좋아진다고 생각하며, 자치경찰제를 도입하면 시민들이 살기 좋아진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음란사이트 접근을 막겠다고 시민들의 웹서핑 기록을 모두 들여다 보려고 한다고 공격을 받고 있는데 내가 느끼기에는 이러한 지적과 공격에 대해서 제대로 방어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같다. 그들은 재벌이나 사법부의 자료를 들여다 보는 일은 그렇게도 조심스러우면서 국민들의 행동을 감시하는 것은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다는 이미지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실감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듯하니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사실 무슨 법을 만들든 효과는 그다지 대단치 않을 것이고 후일에 악한 정권에 의해서 악용되었을 경우 부작용만 엄청날 텐데 말이다. 

 

그러니까 보수든 진보든 뭔가를 열심히 하려고 한다. 그것도 지나치게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주된 이유는 두가지다. 하나는 언론의 눈으로 정치가를 보면 계속 뭔가를 하는 것만 찾기 때문이다. 뭘 하는 사람이 언론을 타며 아무 것도 안하면 비판받는다. 언론은 항상 대책을 내놓으라고 하고 뭔가를 하기를 요구한다. 그럼 적당한 이론과 함께 어떤 대책을 실시하라는 압력이 등장한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진짜 대책은 대개 인기가 없다. 사람들은 대개 인위적이고 말만 그럴듯하지만 사실은 무책임한 계획을 좋아한다. 게다가 대책을 모를 때 모르겠다고 솔직히 말하면 사람들은 분노한다. 마치 정치가는 언제나 모든 일에 대해서 대책이 있어야 당연하다는 식이다. 그러니 엉터리고 자기도 안믿어도 대책이 있다고 말하거나 무슨 무슨 위원회를 만들어 대책을 만들겠다는 것을 대책으로 말하는 일이 많다. 사람들은 시스템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서 일처리에 교통혼잡만 일어나게 만드는 것을 대책이 된다고 믿는 어리석음을 예전이나 지금이나 보여주고 있다.  

 

두번째 이유는 첫번째 이유보다도 더 강력하다. 뭔가를 해야 그 결과가 기록으로 남고 정치가들은 그 기록을 자신의 치적으로 남기고 싶어한다. 법이든 도로든 댐이든 자기가 만들었다고 하고 싶은 것이다. 평균적으로 말하자면 정치가들만큼 자기 이름을 알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없다. 이름을 알려야 선거에 이기니까 선거란 어떤 의미로 관심종자만 살아남게 만드는 도구인 셈이다. 그러니 정치가들은 부지런히 뭔가를 하려고 하거나 뭔가에 자꾸 끼어들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의 정치인들은 항상 뭔가를 지나치게 한다. 오늘날 일을 너무 적게 하는 정치인이란 존재하기가 불가능하다. 임기가 고작해야 4년 5년이니까 그 안에 뭔가를 해야 또 당선될 것이다. 하는지 안하는지 모를 장기플랜은 이래서 인기가 없다. 

 

그런데 이런 모든 과정을 한걸음 뒤로 물러서면 우리는 아주 중요한 것을 잊고 있고 서로 서로 그걸 잊어버리자고 세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이것이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의 기본적 책임은 한국인에게 있다. 

 

좀 뜬금없이 들릴지 모르므로 아주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자. 어느 학교의 학생들이 성적이 나쁘다고 하자. 갑돌이가 말했다. 

 

이것은 학교교실이 후져서 공부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것이니까 교실을 지어야 합니다. 

 

갑순이가 말했다.

 

이것은 선생님들의 수업에 문제가 있는 것이므로 교사의 선발과정과 처우를 바꿔야 합니다.

 

이런 말들은 모두 일리가 있을 수 있는 말들이다. 하지만 동시에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 것이다.

 

공부는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이고 학생들이 하는 것이며 학부모들이 돕는 것이다.

 

갑돌이와 갑순이의 말에 비하면 이런 지적은 너무 당연해서 의견같이 들리지도 않는다. 그걸 누가 모르고 누가 잊는다는 말인가하고 무시하기 쉽다. 하지만 이런 당연한 지적이 말하고 있는 것은 사람의 일은 시스템에 의해서 100% 결정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같은 시스템, 같은 건물, 같은 법이 있어도 사람이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결과는 크게 다를 수 있고 우리는 지금 있는 시스템안에서 인간인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언지를 최대한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혁이 나쁘다는게 아니라 개혁이 공짜가 아니라서 그렇다. 40년전의 입시와 비교하면 지금의 입시는 정말로 복잡하다. 요즘 세상에 40년전처럼 학생을 뽑으면 문제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정말로 우리는 그렇게 복잡하게 입시를 만들어서 문제를 해결했는가? 4년마다 8년마다 바뀌는 입시 경향은 눈치작전을 극심하게 만들어서 그냥 학교공부하고 교과서 보는 학생들을 허탈하게 만들어 왔다. 그렇다고 해서 창의력이든 무슨 재능이든 더 복잡한 시스템이 더 잘 반영한다는 근거도 없다. 아니면 요즘 세상은 없는 집에서 태어난 학생들에게 기회를 더주는 세상이 되었는가?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닌가? 선생님은 좋은가? 요즘 선생님은 수업하는 것보다 학생들 추천서쓰고 학생기록부 작성하는 일이 더 많다고 한다. 나는 요즘 아이들이 끝도 없이 시험보고 원서 내는 것을 보면 정말 안쓰럽다. 시험 한번 떨어지는 것이 얼마나 가슴아픈데 이게 왠 고문이고 시간과 돈의 낭비인가. 

 

그렇다고 해서 나는 굳이 지금의 학교가 40년전의 학교보다 못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개혁들이 정말로 필요한 것이었냐고 묻는다면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저런 정치가들이 치적을 남기려고 책상위에서 한두줄 쓸 때마다 무슨 실험쥐가 된 것처럼 수십만 수백만의 학생들이 젊은 청춘과 재능을 낭비하게 된 것이 현실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 정치가들의 이력서에 뭔가를 남기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다면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니 어쩌자는 것인가? 이 경우에는 답이 하나 있다. 답을 모르면 우리는 시스템을 최대한 간단하게 만들고 거기서 생기는 문제들은 대증적으로 그리고 인간적 판단에 의해서 대처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꾸 답도 모르면서 어떤 시스템이나 법이나 규칙을 더 복잡하게 도입하는 대신에 말이다. 게임의 법칙을 더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간단하게 하자. 그렇게 해도 문제는 많을 것이다. 그러나 뭐가 되든 보다 투명은 하고 시스템에 적응하기도 쉬울 것이다. 경쟁의 규칙이 간단하니까 말이다. 게다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교육의 결과는 학생과 선생님과 학부모와 한국 사회의 책임일 것이다. 어떤 시스템의 책임이 아니고 말이다. 복잡한 시스템은 사람들을 무력하게 만들어 그걸 잊어버리기 쉽게 한다. 

 

우리는 혁명을 좋아한다. 성질급한 나도 그렇다. 그러나 사실은 혁명이란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하는 필요악같은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급격히 변할 수가 없다. 그런 급격한 변화는 천국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대개 기회주의자들을 양산하고 변화의 속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많은 국민들을 오히려 더 힘들게 살게 한다. 새로운 게임의 법칙이 갑자기 확 들어서면 그게 뭔지도 모르고 몰려드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재정이든 교육정책이든 환경정책이든 맘같아서는 싸그리 뒤집어서 4년뒤에는 천국을 만들고 싶지만 가능하다면 꼭 필요한 것만 정말 천천히 바꿔야 한다. 이명박이 자기 임기동안에 4대강을 다 뒤집어 엎은 4대강 공사의 최악의 측면은 그걸 했다거나 안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걸 어떻게 결정하고 얼마나 빨리 실행했는가에 있다. 

 

그런데 앞에서 나는 이미 정치가들이 왜 뭔가를 지나치게 하는지 설명한바가 있다. 그런 이유로 해서 사람들은 가장 몸통이 되는 중요한 우리의 책임을 너무 쉽게 망각한다. 세상에 대한 책임감을 가장 쉽게 잊는 방법은 그것에 등돌리는 것이 아니다. 뭔가 기적같은 방법하나를 생각해 낸 다음에 그것만 되면 그것이 세상의 모든 일을 이뤄줄 거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누군가가 선거법을 개혁하는 것이 이 나라를 개혁하는 핵심이라고 믿는다고 해보자. 선거법만 고치면 좋은 정치인이 뽑히고 그들이 모든 개혁을 이뤄낼 것이니까 선거법을 고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그 사람은 피를 토하듯 외칠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른 모든 사회적 현안들에 대해서는 우선 핵심인 선거법을 고치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언제나 우리의 시간과 힘은 제한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이것의 문제는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바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선거법이든 부동산 소유세든 학벌철폐든 어떤 변화가 생기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그래서 그런 얄팍한 계산은 잘 현실화가 안된다. 기득권세력이 반대를 하기 때문이다. 그 반대는 잘 뚫리지도 않지만 그걸 뚫다가 협상을 하고 타협을 하다보면 설사 선거법이 개정되도 개정하나 마나인 상황이 되기 쉽다.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해도 새로운 법체계에서도 사람들은 구멍을 찾아낸다. 사람들은 똑똑하다. 한국의 부동산 문제는 소유세개혁만 하면 다 해결된다는 식의 발상은 듣기에는 그럴듯하지만 결코 현실은 아니다. 우리는 상대를 가지고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개혁이 나쁘고 개발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기 머릿속의 개혁안만으로 세상을 좋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망상이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개혁이 되는 이유, 세상이 좋은 세상이 되는 이유는 결국 다수의 사람들이 그걸 원하기 때문이다. 좋은 도로나 어떤 법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은 바보같아 보일 때가 많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을 바보처럼 수동적인 존재로 여기면 되는 일이 없다. 그래서 이러니 저러니 자기 생각을 하는 것은 좋지만 정치가는 국민통합을 하려고 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의 현실보다 딱 한걸음만 더 바꾸는 쪽으로 가야하고 먼 미래를 억지로 자기힘으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된다. 선택은 국민들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가가 되고 정치판에서 이러니 저러니 떠들다보면 내 생각과 내 손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환상에 빠지기가 아주 쉽다. 더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래야만 한다는 소리가 사방에 넘친다. 내가 안 미쳐도 환상에 빠진 광신도 지지자들이 마구 주장한다. 사인 한번만 하면 세상을 구할 수 있는데 왜 세상을 구하지 않냐고. 그래서 오늘도 세상은 해봐야 부질없는 짓, 사람들을 괴롭히고 더 힘들게 만드는 일 나아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에 바쁜 정치인들로 넘쳐난다. 예를 들어 수십조 수백조를 들여서 출산율 높이기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부모들은 황당하다. 그 돈 그냥 나주면 기꺼이 애 하나 더 낳을 것같은데 말이다. 아니면 모든 교육비를 공짜로 만들거나 말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어리석은 일들이 넘쳐나는 것을 자제하면 자제할 수록 한국은 좋은 세상이 된다. 좋은 일은 그러다보면 거의 저절로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니 가장 좋은 정치인이란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안하는 정치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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