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7
누가 진보인가는 말하기 나름이지만 현대의 한국에서 통상 진보라고 타칭 자칭 불리는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족쇄가 따라다닌다. 그 족쇄는 진보라는 개념을 비틀거나 협소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사회적 진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 효과는 반대로 생각하면 보수권 정치인들이 종종 얼마나 지나치게 자유로운가하는 것에서도 목격될 수 있으며 보수정치인들은 이 족쇄를 지키기위해 세뇌라도 시키려는 듯 계속해서 족쇄를 말한다.
진보의 첫번째 족쇄는 진보는 가난하다이다. 이 말은 다르게 말하면 진보라는 사람들은 부자는 무조건 싫어하며 따라서 진보가 부자이면 그 사람은 위선자라는 말이 된다. 말도 안되는 말이지만 이 말만큼 자주 반복되어지는 말도 없다. 그래서 진보적인 사람이 왜 집이 강남에 있냐거나 왜 빌딩이 있거나 외제차를 타거나 고급 옷을 입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은 왜 자신의 전 재산을 환원하지 않는가. 그 사람은 왜 박원순처럼 전재산이 마이너스가 아닌가. 이 족쇄는 저절로 누군가가 부자라면 진보진영에 동조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든다. 당신은 부자인데 여기서 뭐하고 있냐는 것이다. 진보는 부자들을 거지로 만들려는 사람들 아니냐는 것이다.
진보의 두번째 족쇄는 진보는 윤리적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다르게 말하면 진보는 무슨 신선이나 부처나 예수처럼 모든 일에서 참고 화내지 않고 남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며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은 있어도 남에게 화내고 남에게 복수하는 일 같은 것은 절대 하지 않는 그런 성인군자가 진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최근에 끝난 인기드라마 열혈사제에서 김남길이 주인공 연기한 김해일 같은 사람은 진보가 아니다. 진보가 주먹도 쓰고 편법도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진보정권이 서면 권위주의정권밑에서는 지나치리만큼 아무 말도 못하던 사람들이 벌떼같이 일어서는 일이 많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좋지만 내 권리만 생각하고 남 생각은 안하는 것은 당연히 억지다. 하지만 억지라도 데모를 하고 점거를 해야 한다. 왜냐면 진보는 무조건 참을테니까. 왜냐면 그게 진보의 세계니까. 그런 정권밑에서는 억지부리는 것이 합리적 행동일테니까 그렇다. 이런 행동은 특히 보수단체들이 많이 한다. 나는 무리한 요구를 하면 진보주의자들은 양보하는거 그게 진보 아니냐는 식이다. 그 결과 사회적 질서를 지킬 힘이 없다는 것이 진보정권의 약점으로 부각된다. 사이비 종교단체나 쌍욕을 하는 저질 행동을 막을 수 없는 것이 진보정권이라고 말해진다.
이것말고도 진보라는 단어에 붙어있는 족쇄는 더 있겠지만 이 정도 족쇄만 가지고도 진보는 정말 거의 무력화된다. 최근에 유시민이 진보의 세력이 필요하다, 노무현정권때는 세력이 없어서 아쉬웠다는 취지의 말을 했는데 이런 말도 같은 맥락에 있다. 진보에게 족쇄가 씌워지면 그 행태가 일종의 순혈주의 같아 진다. 그래서 포용력이 없어진다. 이 사람 저 사람 흠잡아 모두 배척할 뿐만 아니라 같이 좋은 세상만들자던 사람도 별거 아닌 일 하나로 배척해 버리고 말게 되기 쉽다. 다른 거 없다. 노무현이 박정희나 이명박과 뭐가 다르냐는 말을 쉽게 쉽게 하는 것이다. 진보가 왜 이런 것인가? 위에서 말한 진보에 대한 두가지 이미지만 겹쳐도 진보는 사람이 아니다. 진보는 한 시대에 몇명 있을 수 없는 성인들이나 하는 것이 진보다. 그러니까 내가 진보라고 말하는 사람은 99.999% 위선자들일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진보 보수 개념이 무의미하다고 지적해 왔다. 진보나 보수 개념에 매달리는 것은 음식을 맛있는 음식 맛없는 음식하는 식으로 양분하고 그런 양분법을 정당화하거나 그게 중요하다고 매달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세상은 통째로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누구나 변해야 하고 그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다만 그 방식이 다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행상, 역사적 이유로, 진보 개념을 쓴다고 하자. 그럴 때도 우리는 진보세력에 누군가를 포함시키는 것과 누군가를 지지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건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도 지하철을 같이 타고 같은 주차장을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하철에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규칙이 있고 주차장에는 주차장을 이용하는 규칙이 있다. 이 최소한의 게임의 법칙을 지키고 있는 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포용해야 한다.
그러니까 진보세력이라는 집단이 가지는 게임의 법칙을 만족시키는 한에서 누구에게나 진보세력은 열려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이 바로 내가 진보세력에 누군가를 포함시킨다고 해서 그것이 당신이 그 누군가를 지지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고 하는 말이다.
세력이 인간들의 무리를 말하는 거라면 세력은 당연히 공간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나도 여기있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도 저기 있을 수 있어야 한다. 정말 최소한의 게임의 법칙을 지키고 있다면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명박같은 사람을 정말 싫어하지만 저런 사람을 총으로 쏴죽여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법적 정의를 주장할 뿐이고 정치적으로 지지하지 않을 뿐이다. 이명박은 무수한 규칙을 어겼고 따라서 그가 보다 작은 공동체나 집단에 속하는 일은 불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이명박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도 인권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을 진보 보수로 나누는 것도 모자라서 진보의 개념을 뒤튼 후 그 개념을 한없이 작게 잡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결국은 어떤 살아있는 인간도 그걸 만족 시킬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문재인과 자기 자신도 말이다. 결국 그런 사람들이 갈 길은 뻔하다. 하나 하나 배신자니 가짜 진보니 하고 부르다가 모두가 썩었고 따라서 차라리 나는 썩었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자유한국당이 좋다고 그쪽에 붙어서 전투요원일이나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하나 둘인가. 나도 문재인을 지지하지만으로 시작해서 문재인의 주변 사람들을 모두 쳐내고 결국은 끝에 가서 문재인도 변했다, 문재인도 내가 알던 그 문재인이 아니다로 끝내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한계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기본적 욕망을 가지며 실수도 하고 유혹에도 진다. 우리는 다만 최소한의 규칙을 정해서 그 규칙에 대해서는 엄격해 지기를 원할 뿐이며 그 규칙에 대해서도 정해진 댓가를 치루고 나면 그 사람을 용서해 주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줘야 한다. 여기서 최소한의 규칙이란 우리가 모든 것을 규칙으로 정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지켜야 하는 그 규칙조차도 최소한의 규칙인 것이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논쟁이 꼭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응당 그 최소한의 규칙이 뭐냐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세상은 이미 행동하는 보통 사람들의 세상이다. 보통 사람이란 결함이 있기 마련이다. 보통사람이라고 해도 사람이 차이가 있고 솔직히 높낮이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완벽한 지도자를 찾아서 그 지도자에게 절대복종하는 식으로 세상이 굴러가는 세상은 이미 지났다. 그래서 박정희를 반인반신 운운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비웃는 것이 아닌가. 무슨 단군신화나 박혁거세 신화도 아니고 말이다.
우리가 인간의 집단이란 말에 대해 고민이 없으면 진보에 대한 족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위선자들이 설치는 꼴을 계속 봐야 할 것이다. 자기도 완벽하지 않으면서 남에게는 정말 펄펄 뛰면서 잔인하게 구는 위선자들 말이다. 그들은 그런 것을 지적당하면 대개 자신의 과거를 부인한다. 그러다가 안되면 자신이 비판하는 사람은 일반인이 아니며 예를 들어 공인이라고 말한다. 별거 아닌 것같지만 그런 순간이 바로 그 사람이 가정하는 사상이 들어나는 순간이다. 바로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엄격히 구분하는 권위주의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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