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에 있어서 지금 이순간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한국에 박사모말고 유의미한 보수가 있는가?
나는 1년반쯤 전에 '한국보수라는 이름의 유령'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에서도 말했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로 이 질문이 한국 정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1년반전에도 홍준표의 자유한국당이 있었고 유승민의 바른미래당이 있어서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홍준표는 친박이 아니지만 자유한국당에 있었고 실질적으로 박사모를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승민은 그렇지 않았다, 이 땅에는 박사모말고도 유의미한 보수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제 시간이 1년반이 지났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결과를 알고 있다. 탄핵직후에는 자유한국당이 고생했지만 결국은 바른미래당은 찌그러들었고 자유한국당은 부활했다. 친박아닌 유의미한 보수세력이 있었다면 사실 바른미래당이 떠야 마땅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자유한국당은 지금도 5.18망언 공청회나 열면서 박사모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결국 이 땅에 박사모 말고 유의미한 보수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나는 보수가 뭔지 정의할 생각이 없고, 박사모가 아니지만 나는 보수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유의미한 보수란 그 숫자가 선거에서 통할 정도로 많고 하나로 뭉쳐서 정치세력이 된 사람집단을 말한다. 예를 들어 재벌가문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수로 여길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많은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정치는 궁극적으로는 표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자신만으로는 선거에서 유의미하지 않다. 사람을 모을 수 있는 어떤 매개를 통해서 세력이 되어야 하고 이날 이때까지 이 나라에서 보수란 결국 박정희의 추종자들을 몸통으로 하는 봉건적 사고방식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박근혜가 문제를 만들었다. 박정희는 총탄에 죽었고 과거의 사람이니 미화가 가능하다고 해도 박근혜는 현재를 살고 있으니 미화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박근혜 탄핵국면에서 박근혜를 그래도 따르겠다는 사람과 민주국가에서 도저히 이건 용납할 수 없다는 사람으로 나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보수에서 박사모가 떨어져 나간 원인이다.
문제는 그렇게 되었을 때 과연 박사모란 보수의 일부일 뿐이며 박사모없이도 이땅에 보수라는 정치세력이 유의미하게 있는지 아니면 박사모가 보수의 몸통이며 그들없이는 보수란 정치세력이 존립불가능한 것인지가 핵심적 질문으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자칭 보수들은 자신은 박사모처럼 광신도가 아니며 이 땅에는 건전보수가 있다고 믿었던 것도 사실이다.
시간은 진실을 들어내 주고 있다. 이땅에는 그런게 없다. 이 문제는 굉장히 중요하고 심각하다. 박사모를 몸통으로 하는 보수가 그나마 집권세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앞에서 말했듯이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과 동거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사모가 적폐세력과 재벌에 충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다.
지난번 촛불혁명때 봤듯이 박사모가 대단하다고 해도 결국 그 숫자로 보면 전체국민보다 훨씬 작다. 그러니까 만약 박사모가 요구하는 것처럼 박근혜를 사면복권시킨다면 박사모에게 맞아죽기전에 국민들에게 맞아죽을 판이다. 그런 일이 있으면 다시 촛불집회가 일어나지 않겠는가? 우리 역사에서 이제 박근혜를 다시 긍정평가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아무리 부자고 인맥이 강해도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것이 있다. 그런데 박사모는 그걸 넘어서고 있다. 그들은 합리적 세력이 아니다.
현실은 이렇다. 첫째로 박사모는 사실 자유한국당을 좌지우지하고 망칠 수는 있어도 과연 총선이나 대선에서 선거를 이기게 해줄 정도인가는 회의적이다. 다음 총선에서 박사모가지고는 결국 선거에 이길 수 없다는 판정이 내려지고 나면 한국 정치는 개국이래 최대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결국 적폐세력의 최상위인 재벌이 진보정치세력과 협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이제는 그 효력이 의문시되는 소위 보수정치세력의 대부분은 사그라들 것이다. 조선일보도 망할 수 있다. 적폐가 틀어막고 있었던 국회도 열릴 것이다. 우리는 그야말로 대단한 변화의 앞에 있는 것이다.
둘째로 설사 박사모가 선거를 이길 수 있게 해준다고 해도 문제다. 박사모를 근간으로 해서 정권을 잡는다면 어떻게 될까?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들은 합리적인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박근혜의 사면복권과 역사다시쓰기를 요구할 것이다. 그걸 들어주지 않으면 이제 그 칼날은 보수 정치인들에게 향할 것이다. 괴물을 풀어놓을 때는 좋았지만 앞뒤로 막히면 자신이 괴물에게 물려 죽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보수정치권이 처한 현실이다. 그러므로 박사모는 역사적인 효용가치가 이제 다한 것이다.
총선은 이제 1년이 좀 넘게 남았지만 그 이전에도 온갖 움직임이 있을 수 있다. 그 총선이 박사모의 무의미함으로 결론난다면 당연히 움직임은 더 커질 것이다. 박사모를 중심으로 하는 집권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자각한 보수권력은 새로운 빅딜을 추진하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그런 빅딜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게 바로 김영삼의 3당야합이다. 그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고 사실 협상은 언제나 중간에서 일어난다는 점에서 보면 누군가의 눈에는 3당야합처럼 보이는 사건이 또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크다. 즉 과거를 정리하기 위해 사회적 대타협이 시도되었을 때 그 타협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걸 배신이나 3당야합으로 볼 사람은 분명히 있을 거라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앞에서 말한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왔다고 믿는다. 그러나 아직은 모든 사람이 그렇게 믿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게 될 때까지 이 한가지 질문을 계속 다시 던지게 될 것이다.
한국에 박사모말고 유의미한 보수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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